‘부산의 두뇌’, 그들은 오늘, 무엇을 얘기하는가?
[기자 블로그] BDI 아이디어 미팅을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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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전 댓바람에 남의 집에 가지마라’고 배웠습니다. 아침형 인간이 늘어나고 있고, 꼭두새벽부터 밤까지, 쉴 새 없이 바쁜 현대인들에겐 이미 낯선 말이 되어 버렸지만요. 저 자신부터 아침도 쫄쫄 굶고 벌써 7시 반부터 남의 집 사랑방에 앉아 있습니다. 예전 어른들 눈으로 볼 땐 실례도 이런 실례가 없을 거 같습니다. 하지만 이곳은 예외죠. 어디냐 구요?
영어로는 BDI, 한글로는 부산발전연구원입니다. 8시부터 시작하는 아이디어 회의에 참석했습니다.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매일 8시면 BDI 원장실에서 웃음이 새어나옵니다. 아! 원장실 입구 벽에 붙여놓은 액자의 원훈(院訓)-일반 회사 같으면 ‘사훈(社訓) 같은 거죠-이 먼저 눈을 붙잡더군요. 요즘 보기 드문 ‘국한문 혼용체’를 구사하여 큰 포부를 간결하게 적어놓았더군요.
여기에 옮겨 보겠습니다. 세계적 사고(世界的 思考), 현장적 정책(現場的 政策), 무한한 창의(無限한 創意). 無限한 創意에서 ‘한’이 한자로 표기될 수 없음을 무척 아쉬워하면서 원장실로 들어갔습니다.
이언오 원장을 처음 뵈었습니다. 자그마한 체구에 얼핏 보아도 재주가 많으신 분으로 느껴지더군요. 평생을 삼성맨으로 삼성경제연구소에서 근무하셨으며 삼성경제연구소 전무로 계셨고, 삼성 회장 비서실, 국가정보원에도 계셨습니다. 경제 브레인으로 요즘은 청년 실업 해소를 위해 ‘1인 창업’ 쪽에 많은 관심을 쏟고 계시다 들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속사포 같은 말씀 중에도 부산의 청년 대학생들을 걱정하는 마음이 잔뜩 묻어났습니다.
말씀하실 때마다 부산 청년들에게 꿈과 희망을 줄 수 있는 게 뭔지, 어떻게 하면 정책과 사업을 지역의 청년 실업 해소로 연결시킬 수 있는지를 계속 고민하시는 듯했습니다.예를 들면, 이런 겁니다.
지방대 출신으로 빛을 못 보던 청년이 혈혈단신 미국으로 건너가 국제 광고상을 휩쓰는 광고 천재가 된 ‘이제석’ 같은 친구들을 많이 발굴하자는 겁니다. 보석에 묻은 진흙을 BDI가 닦아주자는 거죠. 찬란하게 빛을 발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어떻게?원장께서 제시한 방법은 이렇습니다. 부산을 발전시킬 아이디어 공모를 해서 입상하면 입학사정관으로부터 가산점을 받을 수 있도록 해서 대학 입학에 도움을 준다는 겁니다. 희망제작소 박원순 변호사 같은 분과 손을 잡고 대학 신입생을 위한 이벤트도 BDI가 만들어보자고 하시더군요.
회의 진행은 사회자나 진행자 없이 자유롭게 흘러갔습니다. 그날의 주요 뉴스를 정리한 자료만 가지고 뉴스를 따라가면서 사안별로 그때그때 자유롭게 이야기하는 방식이죠. 말 그대로 ‘아이디어 회의’ 이니까요. 원장을 포함해 5명이 작은 사각 테이블을 중간에 놓고 둘러앉아 주거니 받거니 아이디어를 쏟아내며 이야기를 해나갑니다.
가령 행정구역 통합 기사가 있다면, 이언오 원장이 먼저 운을 뗍니다.“김해를 보고 있으면 찬밥이라는 생각이 든다. 마·창·진 통합으로 양산, 김해는 스스로를 찬밥 신세라고 느끼고 있다. 이럴 때 부산권으로 감싸 안는 노력이 필요하다. 버스 패스를 같이 쓰거나, 김해 양산 시민들이 부산의 공원을 구경할 때 할인해 주는 방법도 좋다. 시장님이 김해, 양산을 방문해서 공동 사업을 의논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면, 다른 분이 “(BDI)경제교육 특강을 양산 쪽으로 넓혀가는 것도 좋겠다. 부산대 양산 캠퍼스가 있으니 사랑방 좌담회도 (양산) 현장에 맞춰서 할 수도 있다.” 이런 식입니다.
포보스가 미래뉴스에 이런저런 예측을 했다는 기사가 있으면, ‘부산의 미래뉴스’를 한번 만들어보는 건 어떠냐. 앞으로 10~20년 뒤 부산은 이렇게 변한다는 내용을 담은.
‘2015년 부산 방문 중국 관광객 120만명 예상’ 기사나 ‘중국인 관광객만 탑승할 수 있는 전용기 운항’ 기사에 대해서는, 중국인들이 좋아하는 숫자인 ‘8’을 활용해서 ‘부산 8대 명소’를 정하고, 중국인 전용 부산관광 안내 전화번호도 888-8888로 하자. 고 하면,
다른 분이, 서면 롯데호텔에 중국, 일본 관광객이 많이 묵으니 인근 서면시장과 부전시장에 다양한 음식과 전자 제품 코너를 강화하여 밤늦게까지 하는 야시장을 열자, 고 맞장구를 치는 거죠.
부전마켓타운은 오는 10월 30일까지 매주 토요일 오후 토요문화야시장인 '얼쑤~난장' 장터를 엽니다.이렇게 아이디어들이 나오면 어떻게 하느냐고 물었더니, 회의에 나온 아이디어 다, 정리해서 '연구지원실‘로 보내 연구 방향을 잡도록 참고하라고 ‘권고’ 한다네요. 이런 식으로 일주일 내내, 아침마다 쏟아져 나올 아이디어가 만만치 않을 텐데, 역시 ‘내부 소통’이 중요하겠다는 느낌이었습니다.
산복도로 ‘빈집’을 기부 받아서 집주인에게는 세제 혜택을 주고 공원이나 공공 목적으로 쓰자는 아이디어도 있었고, 대기업 복지재단을 끌어들여 공익사업을 할 수 있도록 BDI ‘사랑방 좌담회’가 연결고리가 되어야 한다는 이야기.
그 외에도 전업주부에 맞춘 저출산 정책, 40-50대 청장년층 인재 양성 프로그램, 부전역세권 살리기, 공무원들의 중앙 모방식 정책 개발의 병폐를 지적하는 안타까움,,, 하루 종일 아이디어가 쏟아져 나올 거 같은 불안감이 엄습(?)하는 순간, 원장께서 얼굴에 웃음을 띤 채 테이블을 쓰윽- 쓰다듬으시며 한 마디 하시더군요.“오늘은 여기까지.”
회의 내내 잠시도 쉬지 않고 계속해서 아이디어를 쏟아내고, 책을 인용하고, 추진되는 일들을 짚으시는 이언오 원장의 말씀 속도. 그런 가운데서도 손님(필자)을 배려해 농담도 던지시며 배려하는 여유도 있었지만, 저로서는 따라잡기 힘든 ‘질주 본능’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헉헉.... “원장님 말씀이 상당히 빠르시다” 했더니, 돌아오는 대답 왈, “오늘은 상당히 천천히 하시는 겁니다. 보통 ×2 (2배속) 정도 나가시는데.” 헐~ㅠㅠ
회의 시작하면서 책 한 권을 선물로 주시더군요. “이런 책이 ‘부산’에서 나와야 하는데.” 라는 말씀과 함께요. 거문도에서 태어난 한창훈 작가가 쓴 <인생이 허기질 때 바다로 가라 -내 밥상 위의 자산어보->. 돌아와 거칠게 뒤적이니 제목 그대로, 30종의 해산물을 잡거나 채취해서, 요리하여, 먹는 법. 거기에 애련한 ‘사람살이’가 들어 있는 거 같습니다. 어떻게 아셨을까요? 아침 댓바람에 쫄쫄 굶고 나온걸. 인생이 허기진 분들, 같이 읽으시죠. ㅎㅎ
이언오 원장이 오신 뒤로 BDI에서 ‘Dynamic BOOK'을 발간하고 있습니다. 특정한 책 한 권에 대한 서평을 레터 형태로 보내고 있는데요, 10호까지 나왔습니다. 이언오 원장과 BDI의 고민이 어디에 있는지를 가늠해 볼 수 있죠.
<인생이 허기질 때 바다로...>는 부산을 생각하면 아직 배가 고프다는 말인지?? ^^그날 신문 기사를 정리한 3쪽 짜리 자료 한 장만 달랑 가지고 1시간 넘게 부산 살리기 아이디어를 쏟아내는 ‘부산의 두뇌들’. 다음 주에 또 ‘인셉션’ 해 드리겠습니다.
- 작성자
- 원성만
- 작성일자
- 2010-09-15
- 자료출처
- 부산이라좋다
- 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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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이라좋다 제1441호
- 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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