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량 옛 청관골목 \"\상해거리로\"\로 재현
부산시 중국 관광객 유치 위해 특화작업
- 내용
- 최근 부산시가 중국인 관광객 유치를 위해 초량의 청관(淸館)골목 일대를 `상해거리\"\로 조성키로 한 계획은 여러 면에서 매우 의미가 있다. 왜냐하면 바다를 끼고 있는 부산은 예로부터 일본이나 중국 등 인접한 여러 나라와 인적·물적 교류를 했고, 이러한 교류들은 자연스럽게 교류에 필요한 장소를 만들게 되는데, 그중의 하나가 바로 초량에 있는 옛 청관골목인 것이다. 따라서 이곳에 중국인을 위한 특화된 거리를 조성한다는 것은 단순히 관광객을 위한 상품개발의 측면에서 뿐 아니라 역사가 배여 있는 하나의 공간을 그 목적에 맞게 살려 냄으로써 부산을 한층 살찌고 윤택한 공간으로 만드는 것이다. 청관골목이란 동구 초량 1동 부산화교학교에서 동구와 중구 경계간 약 4백m 거리를 일컫는 것으로, 청나라 영사관이 있었던 골목이라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청관골목의 조성은 조선 후기인 1882년경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종9년(1882년) 임오군란이 일어나자 청군 3천명이 난을 진압한다는 명목으로 조선에 들어오게 되었다. 이들은 이후 동구 초량동과 중구 보수동에 이르는 약 9만7백㎡의 땅을 조차지(租借地)로 확정하고 살기 시작했다. 1884년에는 지금의 화교학교 자리에 영사관을 설치했다. 이 일대는 자연스레 번창하기 시작했다. 상해 등지에서 가져온 비단과 해산물을 거래했고 짜장면과 팔보채 등 중국음식들도 선보였다. 이들은 본국의 힘을 등에 업고 세도가 대단했다. 이러한 청인들의 기세도 1895년 청일전쟁에서의 패배 이후 크게 위축됐다. 더구나 패전으로 영사관마저 잃게되자 대부분이 본국으로 돌아갔으나 일부는 다시 들어와 포목상과 잡화상을 하며 철저한 신용거래로 다시 정착했다. 이 일대는 현재 약1백86세대, 4백여명의 화교들이 살고 있다. 주로 중국음식점과 잡화, 한약방 등을 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이 일대에 러시아인들이 몰려들어 `러시아타운\"\이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상권을 형성하는 등 점차 변신을 거듭하고 있는 추세이다. 화교들의 애환이 서린 이곳이 부산시에 의해 `상해거리\"\로 조성되면 중국인 관광객들의 잦은 왕래와 함께 부산의 새 명물거리가 되고 활기를 되찾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 작성자
- 부산이야기
- 작성일자
- 2000-06-09
- 자료출처
- 부산이라좋다
- 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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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이라좋다 제84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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