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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내믹 부산 제843호 시정

꽁트/ 매디슨카운티의 다리(1)

글/ 정태규·그림/ 이우호

내용
저 영화는 꼭 봐야겠어요.』  아내가 TV의 신년 특집 〈명화 극장〉의 방영 예고 방송을 얼핏 보며 이렇게 말했을 때, 수환은 속으로 참 별일도 다 있다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평소에 아내는 영화에 별 취미가 없는 편이었다. 수민이 아무리 요즘 잘 나가는 비디오를 빌려와 같이 보자고 꼬드겨도 몇 장면 건성으론 훑어보다가 이내 부엌으로 들어가 설거지를 하거나 숙제를 봐주느라 아이들에게 종알종알 잔소리를 해대는 것이었다. 작년 결혼 기념일엔 모처럼 기분을 낸다고 둘이서 시내 극장 구경을 간 적이 있었는데, 영화가 시작되고 한 10여분이나 지났을까, 옆자리의 새근대는 숨소리가 수상해 돌아보았더니, 아 글쎄, 아내는 고개를 모로 떨어뜨리고 잠이 들어 있는게 아닌가. 하도 기가 막히고 밉살스러워 그때까지 끼고 있던 팔짱을 홱 털어냈더니, 이 여자 보소, 잠깐 깨는 눈치더니 곧 다시 잠들어 버리는 것이었다.  『내가 목석하고 산다. 목석하고 살아. 아이구 내 팔자야.』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수환이 이렇게 투덜거리자, 아내는 오히려 가소롭다는 눈길로 돌아다보며 조용한 저음으로 한마디했다.  『시끄러워요. 애들 기다리겠어요. 빨리 가기나 해요.』  사정이 이렇고 보니 아내에게 꼭 봐야겠다고 결심할 만한 영화가 생겼다는 건 별일 중에서도 별일이었다.  그후로도 아내는 예고 방송을 볼 때마다 몇번이나 더 확고한 어조로 그 영화를 보아야겠다는 의지를 천명했다. 따라서 수환은 목석같은 아내를 의지에 불타는 여인으로 만든 그 영화가 도대체 어떤 영환지 재빨리 챙겨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그 영화의 제목을 보곤 햐, 요것 봐라,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그건, 「명화 극장」의 프로들이 다 그렇듯, 이미 몇 년 전에 크게 히트하고 이젠 한물 지나간, 메릴 스트립과 클린트 이스트우드 주연의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란 영화였다. 원작인 소설도 유명했고 영화로도 꽤 성공을 거두어 인구에 크게 회자된 바 있는 것이었다. 수환도 한번 보리라 벼르다 놓친 작품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적어도 수환이 주워들은 풍월로는, 그 영화의 내용이 중년 부인의 불륜적 사랑을 다루고 있다는 것이었다. 어느 날 갑자기 아내가 시위라도 하듯이 불륜적 사랑에 지대하고도 유난스런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라고 깨달을 때 대한민국의 평균적 남편들은 어떤 심정이 될까. 그건 참 아니꼽고 더럽고 메시껍고 치사하고 유치한 심정이 아닐까. 수환도 그런 범위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 심정이었다. 그러므로 아쭈구리, 요것 봐라, 하는 가소로운 생각과 함께 슬며시 불쾌한 감정이 가슴 밑바닥에서 몽실몽실 피어나기 시작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드디어 아내가 그토록 고대하고 고대하던 토요일 저녁이 되었다. 아내는 저녁식사가 끝나자마자 서둘러 설거지를 마치고, 떠들며 장난질을 치고 있는 두 아이를 윽박질러 잠자리에 들게 한 뒤, 마주앙 병과 잔을 챙겨 소파 앞 탁자 위에 놓았다. 그리곤 거실의 조명을 침등으로 바꾸더니 소파 위에 오두마니 두 무릎을 모우고 앉아 리모콘으로 TV의 채널을 맞추는 것이었다. 말하자면 한껏 분위기를 잡자는 것인데, 그건 수환이 신혼시절 이후론 이제껏 보기 어려웠던 아내의 모습이었다.  수환은 그런 아내의 요상스런 행태에 처음엔 약간 어리둥절해졌으나, 차차 속이 메시꺼워졌다. 그래서 마주앙을 잔 가득 부어 벌컥벌컥 들이켜버렸다. 아내는 수환이 그러거나 말거나 TV 화면에 눈을 박고 있었다. 드디어 영화가 시작되고 있었다.〈계속〉 ▲작가약력:부산일보 신춘문예 당선, 제1회 부산소설문학상 수상. 한국소설가협회 회원, 민족문학작가회의 부산지회 회원, 부산소설가협회 회원.
작성자
부산이야기
작성일자
2000-06-09
자료출처
부산이라좋다
제호

부산이라좋다 제84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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