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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정

숫자로 보는 부마민주항쟁

내용

 


0
새벽 0시 비상계엄선포
1979년 10월 18일, 정부는 새벽 0시를 기해 부산 일원에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7
부산대학교 정광민의 폐정개혁안
부마민주항쟁의 시발점이 된 부산대학교 정광민의  ‘선언문’에 담긴 폐정개혁안은 총 7가지다.

유신헌법 철폐, 안정 성장 정책과 공평한 소득 분배, 학원사찰 중지, 학도호국단 폐지, 언론·집회·결사의 완전한 자유와 보장, YH사건에서와 같은 반윤리적 기업주 엄단, 전 국민에 대한 정치적 보복 중지


9
긴급조치 9호
당시  “유신철폐”와  “독재타도”를 외치는 것은  ‘긴급조치 9호’ 아래에서 상상도 하기 힘든 일이었다.
 ‘긴급조치 9호’ 는 유신헌법에 대한 반대는 물론이고 개정이나 폐기를 청원하는 것,  그것을 보도하는 일조차 금지했다. 


40
1979 ~ 2019 : 40주년
2019년은 부마민주항쟁이 일어난 지 40주년이 되는 해이다.


61

박정희 61세
부마민주항쟁이 일어났을 때 박정희의  나이는  61세였다.


500
부산대학교 학생 집결 
1979년 10월 16일, 부산대학교 구내 도서관 앞에서 약 500명의 학생이 모여 독재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인 것이  본격적인 시위의 시작이었다.


8000
마산의 야간시위
항쟁의  불길이  타오르던 1979년 10월 18일, 마산의  야간시위에는  8,000여 명의  시민이  참여했다.


2

부산과 마산
부마민주항쟁은 부산과 마산, 두 도시에서 일어난 대규모 시민항쟁이다.


5
5시에 모이자
“3·15의거탑에서 5시에 모이자!”
1979년 10월 18일, 경남대학교 학생들의 약속이었다.


10
박정희 대통령 피살당하다
부마민주항쟁이 일어난 지 10일이 지난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이 김재규의 총에 의해 피살당했다.


12
12시 위수령 발동
10월 20일 12시를 기해 정부는 경상남도 마산 및 창원 일원에 위수령을 발동하였다.


18

유신독재 18번째 해
부마민주항쟁이 일어난 1979년은 박정희 유신독재가 시작된 지 18년을 맞는 해였다.


1000
1979년 10월 18일, 1,000여 명의 경남대학교 학생들이  마산 시내 번화가에 산발적으로  집결해 시민들과 함께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5000
첫날 시위에 참여한 부산대 학생들
첫날 시위에 참여한 부산대 학생들은 총재적생 약 7,000명   중  5,000명이었다.


50000
시위에 참가한 부산 시민들
1979년 10월 17일 부산 시위에 참가한 시민들의 수는 50,000명을 헤아렸다.

3000000
부마민주항쟁이 일어난 후

“캄보디아에서는 300만 명을 죽이고도 까딱없었는데  우리도 데모 대원 1, 2백만 명 정도 죽인다고 까딱 있겠습니까”
청와대 경호실장 차지철은 대통령 박정희에게 이렇게 말했다.

구동우 기사 입력 2019-10-08 다이내믹부산 제201910호
자료출처 : 다이내믹부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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