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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내믹 부산 제1472호 시정

‘숙명의 가난’ 굴레 벗고 마을 탈바꿈

부산 새마을운동 그때는…

내용

부산의 학술단체인 ‘목요학술회’는 지난 22일 “새마을운동은 1970년 4월22일, 그 해의 극심한 가뭄과 보리농사 피해 대책을 강구하기 위해 박정희 전 대통령이 부산시청 회의실에서 주재한 전국지방장관회의에서 처음 제창했다”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발표했다.

이날 언론이 보도한 “1970년 4월22일 박정희 전 대통령이 중앙청 지방장관회의에서 처음 새마을운동을 제창했다”는 내용은 사실이 아니라는 것.

논란은 새마을운동 발상지를 두고도 있다. 경북 청도읍 신도1리와 포항시 기계면 문성리가 서로 발상지라고 주장하고 있는 와중에 부산 기장군 만화동 동서부락이 발상지라는 새로운 주장도 나온 것이다.

아무튼 부산은 이러한 논란의 중심에 설 정도로 새마을운동과 떼려야 뗄 수 없는, 활발한 운동이 일어났던 곳이다. ‘부산시보’ 창간호(1977년 1월21일자)도 특별한 새마을운동 모범사례를 소개하고 있다. ‘집념의 얼굴-구포동 문화촌 황기숙 씨’라는 제목의 기사는 ‘여우고개’라 불리던 구포동 923번지 일대 마을을 번듯한 부촌으로 바꾼 황기숙(당시 45세) 씨 이야기다. 6·25 전쟁 이후 18년간의 군 생활을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온 황 씨가 ‘가난을 숙명으로 안고 살아가는’ 주민들을 설득, 6년 동안 ‘집념의 새마을운동’을 통해 결국 부촌을 일궜다는 것.

황 씨가 앞장서 농지를 개간하고, 지하수와 간이 상수도를 설치하고, 폭 4m 길이 1천m의 마을 진입로를 개설하고, ‘아담한 문화주택’ 500여 채를 지어 마을을 탈바꿈시킨 이야기를 상세히 전하고 있다. 황 씨는 1974년 이 같은 공로로 대통령표창과 100만원의 상금을 받았으며, 1976년에는 대통령으로부터 새마을훈장 근면장을 받았다고 소개하고 있다.

‘부산시보’는 그 이후에도 ‘총화단결 총력진군 결의-새마을 전진대회’ 같은 기사를 곳곳에 싣고 있다. 부산의 새마을운동이 그만큼 활발했음을 알 수 있다.

작성자
구동우
작성일자
2011-04-27
자료출처
부산이라좋다
제호

부산이라좋다 제147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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