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살 영도다리가 들려주는 부산 이야기
- 내용

내 이름은 ‘영도다리’랍니다. 나는 나이가 많아요. 내가 태어나서(1934년 11월 23일) 91살이니 할머니지요. 그때 내가 태어날 때는 일본사람들이 만들었대요. 절영도라는 섬 봉래산 아래 넓은 목장에서 튼튼하고 달리기도 잘하는 말을 키우며 조용하게 살고 있는 섬에 일본사람들이 마구 들어와서 고기도 잡고 공장도 세우고 땅도 넓혀 자기네가 차지하고 자기네 맘대로했답니다. 육지로 건너가려고 나룻배를 타고 다니려니 많이 불편하니까 큰 다리를 만들어야겠다고 일본에서 다리 만드는 기술자가 와서 나를 만들었답니다.처음에는 ‘도진교’라는 이름으로 공사를 시작해서 다 만들고 나서 ‘부산대교’라고 이름지어주대요. 그리고 큰 배가 지나다니도록 다리 한쪽을 올렸다 내렸다 하는 도개교를 만들었어요. 하루 일곱번씩 들어올렸다 내렸다하는 신기한 광경을 보려고 많은 사람들이(당시 5만여 명의 관중) 모여들었지요. 전차도 다니고 (1935년)자동차도 다니고 사람들도 많이 다녔지요.
오전에 네 번 오후에 세 번 들어올렸다 내렸다 나는 신이 났습니다. 나는 신났지만 너무 많은 사람들이 불편해하고 자동차도 많이 불편해서 하루 두차례만 올렸다 내렸다하게 됐지요.
어느 날 6·25전쟁이라는 끔찍한 일이 일어나 슬픈 사람들이 많이 왔어요. 가족과 헤어져 피난 온 사람들이 “부산가서 영도다리에서 만나자”고 약속하고 헤어졌던 사람들이 많이 모여들었지요. 가족을 만나 얼싸안고 춤추는 사람들도 많고 몇날몇날을 찾아와도 만나지 못해 눈물만 흘리고 한숨만 쉬는 사람도 많았답니다.
다리난간에다 큰 쪽지 작은 쪽지기(쪽박) 주렁주렁 매달아 가족들을 애타게 찾았지요. 그런 사람들이 슬펐고 나도 슬펐답니다.
점점 바쁜 사람들만 오갔습니다. 학교 가는 학생들, 자갈치시장으로 국제시장으로 장사하러가는 많은 사람과 자동차들이 달렸어요. 영도에서 남포동으로 남포동에서 영도로 많은 사람들이 다니게 되니까 올렸다 내렸다하던 다리가 불편해지고 영도에 많은 사람이 살게 되니 수돗물 공급도 해야 하니 중단해야 했지요. (1966년)

‘땡땡땡’ 종소리 울리며 달리던 전차도 중단됐어요.(1967년) 나는 좀 섭섭했지요. 그렇지만 사람들이 바쁘게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이 보기 좋았습니다.
어느 날 저쪽에 예쁜 새 다리가 세워지대요. 무슨 100주년(부산항 개항 100주년 기념 1980년)이라면서 세우더니 다리이름을 ‘부산대교’라 부르고 나를 ‘영도대교’라고 부르래요. 기분이 영 안좋더라고요.
한데 더욱 슬픈 일이 벌어졌어요. 글쎄 나를 헐어버린대요. 더 넓은 다리를 만들어야 한다며 헐어 없애야 한다 하니 나의 운명도 여기서 끝인가 했지요.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나를 사랑했어요. 절대 헐어버리면 안된다면서 회의하고 또 회의를 해서 넓은 새다리로 고치기로 했어요. 너무 기뻤어요. 드디어 2013년 11월 23일 47년만에 올렸다 내렸다하는 영도다리로 돌아왔어요. 전국에서 관광코스로 매일 십여 대의 버스가 많은 사람들을 실어 오고 새로운 구경거리가 됐답니다. 정오에 들어올리고 내리고 15분이 걸립니다.
시골서 온 할머니들이 “히안하다. 저 큰 다리가 우째 들리노?” “아이구. 진짜로 올라간다 올라가.”
박수 치고 사진 찍고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니 나 ‘영도다리’는 기분이 참 좋습니다. 오래 살아온 보람이 있지요? 다시 일년이 지났어요. 2014년 11월 23일 영도다리 개통 80주년과 도개 재개통 기념잔치를 크게 치러주데요. 대단히 기쁘네요. 오래오래 여러분들과 살고 싶습니다.
글 김계리아(영도구 청학동)
- 작성자
- 조현경
- 작성일자
- 2025-12-18
- 자료출처
- 부산이라좋다
- 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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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이라좋다 제202512호
- 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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