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란수도광장, 점바치 골목 사진으로 보는 옛 추억.
- 내용
당시 성업하던 점바치 골목의 당시의 점집 모습
현존하는 점집의 모습한국의 비극인 6.25한국전쟁 당시 부산시중구남포동 영도다리 아래에 형성된 점술가거리로 이름을 알렸던 곳이다. 사람은 누구나 급하면 어디 용한데 없는지를 먼저 살피는 것이 기본태생이다. 전쟁으로 이산가족이 된 피란민들이 남으로 내려와 부산을 찾아 점바치 골목에서 잃어버린 부모자식을 찾기 위해 이곳 점바치 골목을 기웃거리지 않고는 못 버틸 던 시절이었기 때문입니다.
지게를 진 어른이 점집을 찾아 언제 만날 수 있는지 상담을 하고 있다.
요즘도 사랑하는 아들딸들이 대학을 가기 위하여 수능시험을 치른다. 자식들은 공부에만 열중하지 부모들이 자식을 위해 얼마나 정성을 다하는지는 자식들이 성인이 되어 그의 자식을 낳아 길을 때 비로소 느끼는 것이 부모와 자식 간의 인지상정이랍니다.
폐허가 된 당시의 점집
한국전쟁 당시에는 노점상으로 시작을 하여 점차 가게들이 판잣집 형태를 갖추게 되었던 거리였으며 성업 중일 당시는 50여 곳에서 점을 쳤다. 그 후 5.16혁명으로 판잣집이 헐리면서 수가 급격히 줄어들었다. 2013년 영도대교가 새롭게 탄생하면서 역사의 뒤안길로 살아졌다. 당시의 점바치 골목의 점포 구조는 목조건물이었다.
현제의 유라리광장에서 사진을 찍는 시민의 모습
한국전쟁 당시 이 거리는 피란수도광장으로 피란민들이 많이들 모였던 곳이지만 지금 근현대화로 백화점이 들어서고 걷기 좋은 부산의 갈맷길로 산책하는 어른들의 모습만 간간히 보입니다. 영도다리아래 점집은 한국전쟁이 낳은 유산입니다.
피란길에 오른 피란민들은 해어지면서 무조건 부산 영도다리아래에서 만나자고 하면 기약 없는 이별을 하였다. 해어진 가족들은 혹시나 하고 영도다리아래에서 저녁이면 인산인해를 이루었던 곳입니다.
근현대화로 영도다리의 현재의 모습
그 후 인천상륙작전이 성공을 하자 북한에서 부산으로 오는 배를 타고 내려온 사람들이 답답함을 못 이기고 이들의 점집을 찾아 잃어버린 가족을 언제 만날 수 있을까라는 생각으로 점집을 찾았고 점집은 대성황을 이루었지만 지금은 역사속으로 살아져갑니다.
- 작성자
- 조분자
- 작성일자
- 2025-12-13
- 자료출처
- 부산이라좋다
- 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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