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영웅 ‘리차드 위트컴’ 장군의 한국사랑
- 내용
유엔 기념공원의 전경
부산시남구 유엔 기념공원에는 한국전쟁을 직접 참가하신 위대한 리차드 위트컴 장군과 그의 부인과 함께 영면을 하고 있습니다. 1953년 한국전쟁 당시 미 제8군 군수사령관으로 부임하였다. 한국전쟁에 참전하신 미군의 장군입니다.
절망에서 구호의 손길을 맞잡은 사람장군은 군인이었지만, 한국 재건을 위해 앞장을 선 장군입니다.
당시 메리놀병원 수녀회가 운영을 하던 작은 의원이었으며, 무료진료를 받으려는 수많은 피난민들이 병원에 모여들었다. 장군은 이 광경을 보고 직접 새로운 병원 부지를 매입하고 건물을 신축하는데 앞장서서 장비를 들여오고 부족한 건축비는 부하 장병들의 월급에서 1%를 기부하도록 독려를 하고 장군은 직접 한복을 입고 미국거리를 걸으면서 모금운동까지 벌였던 장군입니다.
부산대학교 캠퍼스 등 교육환경 조성또 부산대학교 윤모 총장의 애국심과 교육열정에 감명을 받은 장군은 캠퍼스조성을 위해 25만 달러 상당의 건축자재를 한국전쟁 복구사업과 미군대한원조기구를 통해서 지원을 하였다. 오늘날 부산대학교가 나기까지의 소중한 기여를 하였다.
전쟁고아의 아버지장군의 큰 애정은 전쟁고아들이었다. 아이들을 위한 고아원, 보육원을 세우고 식량, 의복, 침구를 지원을 하였다. 당시 한국인들은 장군을 ‘전쟁고아의 아버지’라고 부르셨다니 한국인보다 더 한국을 사랑하였다.
장군 부부 유엔 기념공원에서 영면 묘지한국과의 인연 그리고 사랑
장군은 퇴역한 뒤에도 귀국을 하지 않고 한국에 남았습니다. 그의 부인은 부산출신 한묘숙 여사와 결혼을 하여 더욱 한국과 인연을 이어 갔습니다. 장군의 부인의 삶 역시 부산과 깊은 관련이 있었기에 두 사람의 만남은 한국을 향한 장군의 헌신을 더욱 굳건하였습니다.
메리놀병원 등 근대병원시설 건립장군은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 보다 전쟁에서 상처를 입은 한국 국민과 함께 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평생을 한국의 재건과 전쟁고아들을 돌보기에 헌신을 다 하셨다. 부인 한묘숙 여사도 고아원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결혼 후에도 부부가 함께 지속적으로 후원하는 일에 노력을 하였습니
- 작성자
- 황복원
- 작성일자
- 2025-11-15
- 자료출처
- 부산이라좋다
- 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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