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조선 침략 전초기지 김해죽도왜성
- 내용
한국 역사에서 조선시대 일본이 침공한 임진왜란은 매우 참혹한 전쟁의 하나였습니다. 온 국토가 쑥대밭이 됐고 많은 백성이 목숨을 잃거나 포로로 끌려 갔습니다. 나라가 힘이 약하고 국방과 안보에 실패하면 어떤 참담한 시련이 닥치는지 여실히 보여준 쓰라린 경험이었습니다.
임진왜란 역사 흔적은 아직도 나라 곳곳에 남아서 역사의 반면교사로 여기게 합니다. 부산에도 여러 곳에 임진왜란의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김해죽도왜성입니다.
김해죽도왜성은 부산광역시 강서구 죽림동 가락산에 있는 것으로, 가락성 또는 죽도성이라고도 합니다. 가락산은 동서로 길게 뻗은 독립된 야산으로, 그 동쪽 끝이 낙동강 서쪽 지류에 인접해 있어 선박을 정박시킬 수 있는 지리적 조건을 갖추고 있습니다.
이 성은 임진왜란 때 왜장인 니베시마가 쌓은 것으로, 해발 35m의 낮은 구릉지 양쪽에 축조되었습니다. 제일 높은 곳에는 소위 일본성의 양식인 본환(本丸)이 있는 것이 특징적입니다. 석재는 부근에서 구하기가 어려워 먼 곳에서 육로 및 뱃길을 이용하여 운반한 것으로 보입니다.
김해죽도왜성은 주변의 구포왜성, 양산왜성과 함께 삼각형을 이루어 김해 북쪽지역에서 내려오는 병력을 효율적으로 차단할 수 있는 방어의 요충지 역할을 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낙동강 지류를 이용하여 배로 만든 다른 성들과 긴밀한 연락을 도모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였습니다.
이 성은 감동포(甘同浦:구포)성과 함께 성 아래에 선박을 정박시킬 수 있었으며, 면적은 30,000㎡ 정도로서 축성할 때는 왜군이 점령지의 조선백성들을 강제로 동원하여 쌓았는데, 연 4만 여명의 인부가 동원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현재는 약 100m정도의 성벽만 남아있습니다.
비록 일본인의 이름으로 쌓았으나 강제로 동원된 조상들의 피와 땀으로 만들어진 문화유산이므로 소중히 보존되어야 할 것입니다. 김해죽도왜성은 부산 강서구 죽림동 787번지 일원에 있는데 부산시지정 기념물 제47호로 지장돼 관리하고 있습니다.
- 작성자
- 박정도
- 작성일자
- 2025-08-09
- 자료출처
- 부산이라좋다
- 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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