갯마을 소년 ‘청암 박태준기념관’ 둘러보다.
- 내용
▲ 고 청암 박태준의 생가 및 기념관전경
고 청암 박태준기념관은 부산광역시 기장군 임랑해수욕장 서쪽 끄트머리에서 2021년 3월에 개관을 하여 부산시민이 아직 잘 모르고 있다. 청암은 대한민국 근현대사에 큰 족적을 남긴 분이고 기념관 경내 작은 도서관을 운영하고 있다. 1200여권의 책을 갖추고 있으면서 주말에는 주변 청년들이 찾아와서 책을 탐독하고 청암의 길을 걷고자 하는 이들이 줄을 잇는 기념관입니다. 기념관에는 청암과 관련된 모든 자료들이 연도별로 잘 정리 정돈되어 있습니다.
▲ 당시 갯마을 소년시절 사진부산광역시에서 강원도 속초까지 뚜벅이가 걸어가는 해파랑길로 이름이 나 있다 이 길의 일부 기장군 장안읍 임랑해안길 1번지에서 대한민국이 세계철강강국으로 탄생을 시킨 청암靑巖(고 박태준의 호)선생이 1927년 9월 29일 태어난 곳입니다. 청암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하여 일본으로 건너가 학창시절을 보냈습니다. 식민지아이로 차별대우를 받으며 일본 와세다대학 기계공학과를 졸업하였다
▲ 청암은 건군에서 건국으로 족적을 남겼다청암은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미아리고개 전투, 형산강전투에서 목숨을 바쳐 나라를 지킨 군인이었다. 6.25 한국전쟁에 참전한 공훈으로 충무무공훈장 등 4개의 무공훈장을 받고 1954년 육군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하고 국방대학 책임교수 등 역임 후 1963년 36세 나이에 육군소장으로 군을 떠났다.
▲ 드디어 나왔다, 쇳물1966년 대한 국제제철차관단이 발족하면서 추진위원장으로 임영을 받았다. 청암은 제철소 건설자금 확보를 위해 하와이 구상 및 오스트리아 철강회사인 푀스트알피네의 투자유치에 총력을 다 하였다. 그 후 청암의 헌신으로 포항제철이 1973년 6월 9일 포항영일만 제1고로에서 첫 출선과 함께 세계적인 철강기업으로 도약하는 발판을 만든 1등수훈자이다.
▲ 한국사학의 새 지평을 열었다.청암은 포항공과대학설립에 투자와 지원을 아끼자 않았다. 오늘날 포항공대가 최고의 연구시설을 갖춘 연구중심대학으로 발전을 시켰다. 청망은 연구가 천하의 공업이며, 만인의 정성으로 이루어진다, 라는 진리가 그의 철학이다.
▲ 영일만의 기적을 낳았다.포항종합제철소의 성공은 ‘짧은 인생을 영원 조국에게’라는 하면서 절대적 절망은 없다, 라고 말을 하였다. 청암의 신념은 철을 만들어서 나라에 보답하자, 라고 말하기도 했다. 즉 한자로 제철보국製鐵報國정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라고 말을 하였다. 그는 정치인으로 입문하여 1980년 대혼란, 1997년 아이엠에프를 거치면서 2000년 국무총리를 맡기도 했습니다.
- 작성자
- 황복원
- 작성일자
- 2025-05-13
- 자료출처
- 부산이라좋다
- 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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