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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내믹 부산 제1724호 칼럼

피란수도 유산

수 평 선

내용

 부산은 임시수도와 피란수도의 아픈 역사를 안고 있다. 정부는 6·25전쟁 발발 후 1950년 8월18일부터 1953년 8월14일까지 1천23일간 각 기관을 부산으로 옮겨 전시 비상 업무를 수행했다. 당시 경남도청사를 중앙청으로 사용하고 부산시청사에는 사회부와 문교부가 자리를 잡았다. 경남도지사 관사는 대통령 관저로 사용했다. 국회는 부산극장에, 사법 기관은 부산지방법원에, 검찰 기관은 부산지방검찰청에 두었다. 이 때문에 부산은 전쟁 중에도 정치인·예술인·기업인·상공인 등으로 북적였다. 이와 함께 전쟁을 피해 전국에서 피란민들이 모여 들었다. 당시 40여만명이었던 부산인구가 100만명을 넘어섰다. 

 

 부산이 피란수도의 각종 유물과 자료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하고 있다. 피란 관련 자산은 유형자산 264곳과 무형자산 200여개를 비롯해 피란수도 당시 국무회의기록·관보·신문자료·구술자료 문화예술 활동 자료 등의 기록 자료다. 이 중 주요 건축·문화자산은 임시수도 정부청사·대통령 집무실·국회의사당·국립중앙관상대·미국영사관·용두산공원·국제시장·부평깡통시장 등 66곳이다.

 

 피란수도 유산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다면 국제관광도시 부산의 영광이 아닐 수 없다. 최근 한 연구기관에서 문화유산 가치 측정을 위한 피란수도 부산의 건축·문화자산이 세계유산으로 등재될 경우 경제적 가치가 10년간 1조4천35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발표한 바 있다. 6·25전쟁 당시 부산의 역할과 가치가 재조명된다는데 더 큰 의의가 있을 것이다. 시민 학계 언론 관련기관 등의 적극적인 관심과 협조가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이다. 

작성자
부산이야기
작성일자
2016-04-14
자료출처
부산이라좋다
제호

부산이라좋다 제172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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