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평선/ 왜관 기념표석
- 내용
- 부산에 왜관(倭館)이 생긴 것은 1407년(태종 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우리나라 동남해안에서 노략질을 일삼던 왜인들을 통제할 목적으로 부산포와 내이포에 머물 수 있도록 한 것이 그 효시다. 이후 부산의 왜관은 대마도정벌, 삼포왜란, 임진왜란 등으로 폐쇄됐다가 재개되는 등 정치적 사회적 변란에 따라 존폐의 거듭이 반복됐다. ▶임진왜란이 끝나고 강화교섭이 시작되면서 1609년에 현 부산 동구 수정동 일대에 8천여평 규모의 왜관이 지어졌는데 이것이 두모포왜관이다. 왜인들은 협소한 공간 등을 이유로 줄기차게 왜관의 이전을 요구했으며 60여년 뒤인 1678년에는 현 용두산공원 일대에 10만평 규모의 왜관을 신축했다. 그래서 두모포왜관은 고관으로, 신축한 왜관은 초량왜관으로 구별돼 불리고 있다. ▶헌데 당시 왜관으로 인한 밀무역과 풍기문란 등 각종 사회적 문제는 심각했었다. 결국 왜관 둘레에 복병막을 설치하고 동래나 양산으로 나가는 길목에 검문소를 설치, 밀수상인을 단속하기도 했다. `복병산\"\이나 지금까지 `기찰\"\이라고 불리는 부곡동~오륜동 간의 길목이름이 바로 그 흔적이다. ▶이처럼 달갑지 않은 두모포왜관과 초량왜관 터에 역사유적지 기념표석이 세워진다고 한다. 왜관을 바라보는 시각을 한·일 외교문화 교류의 출발지라는 긍정적 시각으로 바꿔보자는 입장이다. 조선이 능동적으로 일본에 문을 열어주었던 부산, 고추 고구마 담배 공예품 등이 활발하게 오가는 18세기 동북아 교역의 중심지였던 부산으로 재조명하자는 주장이다. 이같은 인식의 전환이라면 싫지는 않다.
- 작성자
- 부산이야기
- 작성일자
- 2000-06-09
- 자료출처
- 부산이라좋다
- 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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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이라좋다 제86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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