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근대역사관
#2. 공간 이야기 첫 번째: 시간이 머문 건축, 근대의 영도를 걷다


‘부웅-’ 하는 묵직한 사이렌 소리와 함께 거대한 영도다리가 서서히 하늘로 솟아오릅니다. 분주하게 오가던 남포동 일대의 차량과 인파는 일순간 멈춰 서서 이 장관을 숨죽여 지켜봅니다. 짙은 바다 내음을 머금은 영도다리는 1934년 건설된 이후 육지인 남포동과 섬인 영도를 잇는 통로이자, 사람과 물자의 활발한 왕래를 지탱하며 부산 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해왔습니다.
다리 건너편의 영도는 일제강점기에 근대 산업도시로 출발하여 광복과 6·25 전쟁이라는 격변기를 거치며 인구가 급증했습니다. 이에 따라 영도다리와 부산대교를 중심으로 시가지가 형성된 후, 대교 인근 매립지와 봉래산 기슭으로 도시가 확장되어 현재는 산 중턱까지 주택이 빼곡히 들어선 영도만의 독특한 풍경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영도다리와 인접한 대평동은 남포동과의 도선장 덕분에 영도에서 가장 먼저 발달한 지역입니다. 1930년 「부산부 직업안내도」를 보면, 도선장에서 영도 내부로 연결되는 간선도로를 따라 조선소, 공장, 유곽, 주점 등이 밀집해 있었습니다. 특히 이곳은 20세기 초부터 동해·남해로 출어하는 선박을 수리하고 급수를 받던 곳으로, 현재도 여러 조선소와 선박 관련 업체 및 공장이 밀집한 해양 산업 중심지 기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바다와 연결된 선대 위에 거대한 선박을 수리하고 있는 우리조선소 부지는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조선소인 다나카조선소(田中造船所)가 대평포 매립공사(1916∼1926년) 후 이전해 온 곳입니다. 대평물양장에 위치한 동명기술 창고는 일제강점기 조선질소비료주식회사(朝鮮窒素肥料株式會社, 1934∼1936년경)의 창고였는데, 목재 기둥·보, 블록 벽체, 목재 트러스와 슬레이트 지붕 등 옛 구조가 잘 보존되어 있으며, 세 개의 삼각 박공 외관은 이 지역의 랜드마크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인접한 1980년대 세워진 우리나라 최초의 주공 복합아파트인 대동대교맨션 부지는 1909년 부산의 선각자 박기종이 미국계 스탠다드석유 대리점을 설립했던 역사적인 장소이자, 해방 후 승리창고가 운영되던 곳으로 다양한 시대의 흔적을 담고 있습니다.

영도는 광복 후 귀환 동포와 더불어 한국전쟁 당시 피란민 수용소가 위치하여 다른 지역보다 훨씬 많은 피란민을 수용했습니다. 이로 인해 한정된 공간에 판잣집 등 열악한 재료로 지은 주택이 밀집했고, 1952년 ‘대평동 대화재’와 같은 빈번한 화재에도 불구하고 무허가 주택이 반복적으로 들어서는 불안정한 주거 환경이 이어졌습니다.


매립지가 많은 대평동에는 출신 지역별로 특색 있는 마을이 형성되었습니다. ‘이북동네’(대평남로 51번길 주변)는 한국전쟁 당시 함경도 피란민이 모여 살던 곳으로, 미로 같은 골목길에 한 지붕 아래 여러 방이 붙어 있는 구호주택 형태(단칸방, 공동 화장실)가 남아 있습니다. 인근의 ‘제주골목’(대평로 41번길 주변)은 1960년대 제주 해녀들이 정착한 곳으로, 폭 1m 내외의 좁고 복잡한 골목길에 집들이 밀집해 있어 마을 주민조차 위치를 정확히 설명하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봉래산 기슭에는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산복도로 마을들이 형성되었습니다. 서쪽 기슭 영선동에 위치한 ‘흰여울문화마을’은 해안 절벽 위에 자리 잡은 피란민 정착지입니다. 봉래산 물줄기가 바다로 내려가며 흰 물보라를 일으키는 모습에서 유래한 낭만적 마을 이름의 이면에는, 세로로 14개의 골목이 미로처럼 얽혀 있어 피란민들의 험난했던 삶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마을 앞바다는 부산항 선박들이 잠시 머무는 묘박지(錨泊地)로, 이색적인 경관을 제공합니다.
한편, 봉래산 북쪽 기슭 산복도로 마을인 ‘봉산마을’은 1970∼1990년대 조선업 활황기에는 조선업 근로자들의 주택지로 활기가 넘쳤던 곳입니다. 급경사 마을의 저층 주택과 좁은 골목에는 서민들의 삶의 정취가 깊게 새겨져 있으며, 지금도 토박이 주민들의 삶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조선업 불황과 인구 고령화로 인해 빈집이 증가하고 마을의 활기가 사라지는 위기를 겪고 있습니다.

최근 영도는 거친 파도와 함께한 조선소의 땀방울, 가파른 언덕에 새겨진 피란의 기억 등 ‘시간이 빚어낸 결’이 오히려 독특한 문화적 자산으로 재조명받고 있습니다. 2010년대 이후 적극적인 도시재생과 문화도시사업을 통해 깡깡이예술마을, 흰여울문화마을, 봉산마을, 봉래동 창고군 등 영도의 여러 지역이 문화예술을 품은 매력적인 공간으로 변모했습니다. 더불어 영도는 기존의 영도다리와 부산대교 외에 남구와 서구로 연결되는 부산항대교와 남항대교까지 개통되면서, 새로운 도약을 위한 변화의 바람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참고문헌>
윤일이, 「주생활」, 『영도 대평동 민속지 Ⅱ』, 국립민속박물관, 2020.
윤일이, 「부산지역 초기 아파트의 전개와 의미에 관한 연구」, 『항도부산』 제50호, 2025. 7, 73∼110.
장진숙, 「대평동 1·2가」, 『부산역사문화대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