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근대역사관
#2. 공간 이야기 첫 번째:10.16 부마민주항쟁로 명예거리 탐방기 – 민주주의의 길을 걷다
1979년 10월 16일, 부산대학교 앞에서 학생들의 외침이 터져 나왔습니다. "유신 철폐, 독재 타도!"
그날의 함성은 이내 시민들의 발걸음을 불러 모았고, 부산 전역과 마산까지 번져갔습니다.
닷새 동안 수많은 이들이 체포되고 다쳤지만, 그 외침은 결국 유신체제를 무너뜨리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부마민주항쟁은 4·19 혁명, 5·18 민주화운동, 6·10 민주항쟁과 함께
대한민국 현대사의 4대 민주화운동으로 기록되며, 지금도 '민주주의의 새벽을 연 항쟁'이라고 불립니다.
그리고 바로 그 첫걸음이 시작된 자리에, 지금은 '10·16 부마민주항쟁로 명예거리'가 조성되어 있습니다.
1979년 10월, 자유를 향한 첫걸음
당시 부산대 도서관 앞에는 먼저 500여 명의 학생이 모였습니다. 하지만 교문을 나가 가두시위를 시작할 때는 그 인원이 5천여 명으로 늘어났습니다. "유신 철폐, 독재 타도!" 그들은 담벼락을 넘어 도심으로 향했고, 외침은 부산과 마산을 울리며 유신 독재를 흔들었습니다. 처음에는 그저 평범한 대학가 도로처럼 보였지만, 걸음을 옮길수록 여기가 민주주의의 역사를 품은 장소라는 걸 온몸으로 느끼게 되었습니다.
길 위에 남은 기억과 도로 조성의 배경
부마민주항쟁의 발원지인 금정구는 이 역사를 기리고 후대에 전하기 위해 2020년 「부마민주항쟁 기념 및 지원에 관한 조례」를 제정했습니다. 부마항쟁은 대한민국 민주화의 중요한 전환점이었지만, 5·18 민주화운동이나 6·10 민주항쟁에 비해 상대적으로 잘 알려지지 못했습니다. 이에 금정구는 '민주주의의 새벽을 연 항쟁'을 기념하고 기억할 수 있는 공간 조성에 나섰습니다.
2023년 9월, 당시 학생들이 실제로 행진했던 부산대 정문 앞에서 도시철도 부산대역까지 이어지는 440m 구간이 '10·16 부마민주항쟁로'로 지정되었습니다. 그리고 2024년에는 행정, 학계, 시민, 관련 단체, 디자인 전문가가 함께한 민관 협치 실무단이 꾸려져 명예거리 조성사업을 추진했습니다. 학생들이 담장을 넘어섰던 자리에는 상징물이 세워지고, 바닥에는 동판이 박히며, 벽면에는 이야기판과 사진이 걸렸습니다. 추진 과정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겨진 것은 항쟁 당사자와 시민들의 의견을 반영하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작은 표지판 하나, 디자인의 색감 하나에도 시민들의 뜻이 담겨 있으며, '이 길은 우리 모두의 민주주의를 위한 길'이라는 정신을 전하고 있습니다.
명예거리 전경 명예거리에 담긴 이야기
명예거리를 걷다 보면, 네 가지 주제가 차례로 이어집니다.
먼저 〈부마항쟁 5일간의 기록〉은 1979년 10월 16일부터 20일까지 이어진 항쟁의 흐름을 보여줍니다. 학생들의 외침이 어떻게 도심으로 퍼져갔는지, 닷새간의 긴박했던 시간이 어떻게 민주주의의 불씨가 되었는지를 전하지요.
〈시민들의 이야기〉는 학생들을 응원하며 함께한 주민들의 마음을 담고 있습니다. 김밥 한 줄, 따뜻한 물 한 잔, 짧은 응원의 눈빛이 얼마나 큰 힘이 되었는지를 보여줍니다.
〈당사자들의 구술〉은 당시 현장에 있던 이들의 목소리를 들려줍니다. "우린 두려웠지만 물러서지 않았다"라는 고백은 단순한 기록을 넘어, 지금도 가슴을 울리는 증언으로 다가옵니다.
마지막으로 〈숫자로 보는 항쟁〉은 구속자, 부상자, 참여 인원 같은 차가운 수치를 통해 항쟁의 규모를 보여줍니다. 하지만 그 숫자 속에는 이름 없는 얼굴과 민주주의를 위해 희생했던 수많은 사람이 숨어 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길가 벽면에는 당시의 흑백 사진들이 걸려 있습니다. 주먹을 불끈 쥔 학생들, 어깨동무한 시민들의 눈빛은 지금 이 길을 걷는 우리에게 말을 겁니다. "우리를 기억해 달라. 그리고 민주주의를 이어가 달라."
민주주의를 상징하는 디자인
명예거리 디자인은 기존 「미리내 꿈길」 옹벽을 그대로 활용해 '별'을 모티브로 꾸몄다고 합니다. 이는 부마민주항쟁이 밝힌 민주주의의 새벽이 미래 세대의 희망으로 이어진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또한 공식 BI(Brand Identity)는 스크럼을 짠 시위대의 모습을 형상화했으며, 네 개의 원은 부산, 마산, 학생, 시민을 각각 상징한다고 합니다. 여기에 시민참여 디자인 공모전을 통해 선정된 서체가 반영되어, 민주주의가 시민들의 손으로 완성되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440미터 남짓한 거리
이 길은 결코 짧지 않은 거리였습니다. 바닥에 새겨진 작은 동판 하나, 벽에 걸린 사진 한 장마다 민주주의의 발자취가 고스란히 새겨져 있었습니다. 걸으면서 저도 모르게 마음속에서 이런 다짐이 떠올랐습니다. '민주주의는 결코 저절로 주어진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함께 지켜나가야 하는 것이구나.' 길 끝에서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니, 마음속에 작은 별 하나가 켜진 듯했습니다. 그 별빛은 아마도 1979년 가을, 이 길을 함께 걸었던 수많은 학생과 시민들이 오늘의 우리에게 남겨준 민주주의의 불씨일 것입니다. 단풍이 물들어가는 가을이면, 한 번쯤 이 길을 걸어보시기 바랍니다. 1979년 그날의 가을과 같은 계절에, 그들이 걸었던 바로 그 길을 천천히 걸어보세요. 발밑의 낙엽을 밟으며 걷다 보면, 45년 전 이곳을 지나간 젊은 발걸음들이 들려올지도 모릅니다. 담벼락을 넘나들며 "유신 철폐!"를 외쳤던 그들의 목소리가 가을바람에 실려 여전히 이 길 위에 머물러 있을지도 모르지요.
그 짧은 산책이 끝날 무렵, 당신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오늘의 민주주의가 얼마나 소중한지, 그리고 그 출발점이 바로 이 평범한 대학가 길이었다는 것을 말입니다. 부디 그날의 가을 길을 걸으며, 민주주의의 참뜻을 되새기는 시간이 되시길 바랍니다.
공간 탐방의 여정을 깊고 풍성하게 만들어주신 금정구청 관계자 여러분의 소중한 자료와 따뜻한 설명에 감사드리며, 부마민주항쟁의 더 자세한 기록과 이야기는 부산근현대역사관 본관 4층 상설전시실
〈현대도시 부산: 부산, 민주항쟁의 중심에 서다〉에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10·16 부마민주항쟁로 위치정보
• 시작지점: 부산대학교 정문 앞
• 종료지점: 부산 도시철도 1호선 부산대역
• 거리길이: 약 440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