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의 뿌리를 잇는 길, 금정산 옛길로 들어서다"
재미있는 부산 함께 걸어요-범어사에서 노포동까지 천년을 걷는 금정산 옛길
- 내용
부산의 진산이 마침내 국립공원의 이름을 갖게 됐다. 성문을 지키던 군사의 손길이 남아있는 금정산성, 장정들이 생활 물자를 나르던 고갯길, 마을과 절을 오가던 부산 사람들의 발길이 다져놓은 산길까지. 금정의 길에는 부산의 역사와 삶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국립공원 지정은 금정산을 새롭게 바라보게 하는 계기이자, 오래된 길을 다시 걸어볼 이유가 된다. 이번 봄, 금정산국립공원을 걸어보자. 풍경과 함께 오래된 시간이 반길 것이다.

△사진은 금정산 4망루와 원효봉. 사진제공·비짓부산비석·바위·종소리·목어…금정이 품은 역사의 길을 걷다
부산의 산은 솔직하다. 있는 그대로 내보인다. 덧대거나 일부러 높이지 않는다. 부산의 산은 대부분 바닷가. 대부분 바다 높이에서 시작한다. 바다 높이는 해발 0m. 지상 낮은 거기서 시작하는 부산의 산은 솔직하다. 덧대거나 일부러 높이지 않는다.
높은 산은 있다. 낮다고 어찌 다 낮으랴. 높은 산은 높고 낮은 산은 낮으면서 소 잔등 같은, 말 잔등 같은 능선을 연이어 가는 부산의 산. 금정산은 그 능선의 정점이다. 그 능선이 가장 치솟은 절정이다. 부산의 산길은 금정산을 절정에 두고 갈래갈래 갈라진다.
갈래갈래 갈라지는 금정산 산길은 크게 세 갈래로 나뉜다. 동래 온천장 쪽에서 금강공원 쪽으로 올라가는 길, 도시철도 범어사역 쪽에서 올라가는 길, 그리고 낙동강 화명동 쪽에서 올라가는 길이 있다.
물론 이게 다가 아니다. 백양산 쪽에서 가는 길, 북구 덕천동 쪽에서 가는 길, 양산 쪽에서 가는 길 등도 있다. 금정산성 성벽을 밟으며 걷는 길은 눈맛이 만점이다. 부산 산의 정점이고 절정인 만큼 부산을 대표하는 갈맷길 역시 빠뜨리지 않는다. 갈맷길 전체 아홉 구간 중에서 두 구간이 금정산을 거친다.
이들 길은 대부분 옛길. 어제오늘 생긴 길이 아니고 최소한 몇백 년 옛길이다. 범어사 스님이 이 길로 다녔으며 보살이며 처사가 이 길로 다녔다. 그 옛날 산성 성벽을 쌓던 장정도 이 길로 다녔으며 막걸리 새참을 나르던 산성마을 주민도 이 길로 다녔다. 숱한 이들이 몇백 년 밟고 다니면서 딴딴해진 길이 금정산 옛길이다.

△범어사를 찾은 시민을 반기는 조계문.범어사에서 노포동으로
숲길 따라 이야기 따라
범어사에서 노포동으로 이어지는 숲길도 옛길이다. 금정산 다른 옛길은 대부분 옛길이란 구체적 물증이 없는 반면 여기 옛길은 구체적 물증을 갖추었다. 조선시대 고색창연한 비석 다섯 기와 `금어동천' 네 글자를 새긴 큼지막한 금석문 바위가 그 물증이다. 범어사∼노포동 옛길을 걸으면 국립공원 금정산의 역사가 얼마나 깊고 문화가 얼마나 높은지 실감한다.
범어사∼노포동 옛길은 범어사 매표소에서 시작한다. 매표소 저 아래 왼편에 보이는 오솔길이 범어사∼노포동 옛길의 시작이다. 오솔길은 보는 순간 마음에 착 감긴다. 꿈에서나 어디선가 본 듯한 길이며 평상시는 잊고 지내다가도 보는 순간 바로 "아, 이 길!" 그러는 길이다.
"이 귀한 나무가 여기 다 있네."
범어사∼노포동 옛길은 시작부터 귀티가 난다. 서어나무가 숲을 이뤘다. 서어나무숲은 극상림. 지구에 극한이 닥치더라도 마지막까지 존엄을 지키는 나무다. 나무의 존엄존자다. 서어나무숲 유명하기론 고창 선운사와 고성 옥천사다. 부산 범어사 숲길 또한 이제 극상림의 반열이다.
범어사 유명한 나무는 차고 넘친다. 매표소 뒤편 등나무군락지는 천연기념물. 국가 지정 문화재라서 격이 대단히 높다. 설법전 뜰의 1980년 기준 `580년' 은행나무와 성보박물관 뒤편 은행나무, 독야청정 노송, 함께청정 대숲 등등 나무마다 법어를 들려준다. 때로는 이파리 소리로, 때로는 바람결 소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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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에 흔들리며 청량한 소리를 내는 범어사 풍경.
△범어사 목어.여기 옛길은 소리도 귀티가 난다. 숲 안쪽 소리, 바깥쪽 소리 죄다 귀티를 풍긴다. 삼백육십오일 천년의 세월 범어사에서 퍼져나간 종소리, 법어 소리, 목어 소리 그 모든 소리를 받아들인 숲길이니 오죽할까. 목어는 한마디 제대로 못 내고 생을 거둔 이 세상 모든 물고기 대신으로 소리를 낸다. 이 세상 모든 물고기를 위무하고 천도하는 묵묵한 곡소리가 목어 소리다.
범어사는 6·25전쟁 전사자도 위무하고 천도했다. 한국 최초 국립묘지이자 세계 최초 유엔군 묘지였다. 성보박물관 `제1회 경남지구 전몰장병 추도식' 사진은 둘. 1952년 4월 6일 정오 범어사에서 열린 추도식엔 유가족과 스님을 비롯한 사부대중이 가득하다. 범어사 조실 동산 스님이 축원문을 봉독했으며 경남지구 병사구사령부 사령관 김준원 대령이 `아! 순국하신 전우여!' 제문을 봉독했다.
다섯 비석과 바위에 얽힌 부산 역사
옛길 접어든 지 5분이나 됐을까. 왼편에 고색창연한 비석이 보인다. 모두 다섯. 여기 숲길이 오래된 길이란 구체적 물증이다. 조선시대 고위직이 범어사 가는 길에 보라고 세운 비석들이며 유람차 부산을 찾은 유림이 범어사 가는 길에 보라고 세운 비석들이다. 비문 원문과 번역은 부산시 홈페이지에 나온다. 홈페이지 들어가 부산 소개-부산의 역사-지역사도서관-부산금석문-금정구 순으로 검색하면 된다.

△조선시대 세워진 다섯 비석들. 가운데가 조엄 공덕비다.
다섯 비석 한가운데 비석은 조엄 공덕비다. 조선의 보릿고개를 구황작물 고구마로 낮춘 그 조엄이다. 범어사를 비롯한 사찰의 폐단을 혁파한 공덕을 새겼다. 최장수 동래부사를 지낸 정현덕 공덕비도 보인다. 흥선대원군 심복 정현덕은 풍운아였다. 대원군이 흥하면 같이 흥하고 망하면 같이 망했다. 유배지에서 사약을 머금고 죽었다.
금어동천(金魚洞天) 바위도 옛길이란 물증이다. 금어는 중의적이다. 금빛 물고기 또는 금정산 범어사다. 동천은 신선이 산다는 선경(仙境)이다. 한국 최초 도심형 국립공원 금정산 이 일대가 그 옛날부터 조선의 무릉도원이라는 물증이 금어동천 네 글자를 새긴 큼지막한 금석문 바위다.
어디 있을까. 조엄 비석들에서 조금 더 내려가면 체육공원. 거기 평상에서 잠시 숨을 돌리자. 평상 바로 앞은 큼지막한 바위. 그 바위 뒷면에 금어동천을 새겼다. 공원 쪽에서 보면 뒷면이지만 실상은 글자를 새긴 면이 앞면이다. 노포동 쪽에서 범어사로 가는 이들이 보라고 새겼다.

△금정산 금어동천 글자가 새겨진 바위.백록동천(白鹿洞天)을 새긴 너럭바위도 있다. 장전동 벽산블루밍아파트 문화재 보호구역에 있다. 소정마을 자리다. 이 일대는 금정산에서도 풍광이 빼어났다. `소하정(蘇蝦亭)'이란 전망대 같은 정자를 두었다. 조선시대 지도에 나온다. 동래읍성-온천장-소하정-금정산성 동문으로 이어졌다.
소하는 흰 사슴 타고 다니는 신선. 흰 수염 날리는 신선이 무척이나 신령스러웠으리라. 자연마을 소정은 소하정에서 유래했다. 너럭바위는 아파트 단지 조성하면서 조각조각 깨질 뻔했으나 그러면 안 된다는 마음이 모였다. 금정산 영세불망 백록동천이고 영영세세 금어동천이다.

△범어사 옛길에서 잠시 쉬는 시민들.작장마을·오시게시장 …
다시 인심 가득한 삶 속으로
금어동천 바위를 지나면 길은 갈라진다. 갈라지면서 이어지고 이어지면서 갈라진다. 처음 갈라지는 데선 망설이지 않아도 된다. 이리 가든 저리 가든 만난다. 시멘트 전신주 갈라지는 데선 왼편 울타리 쪽으로 가면 된다. 노포동 작장마을과 지경고개로 이어진다. 작장마을은 부산과 양산 낙동강 강나루를 잇는 길목. 조선시대 노포동 본동이다.
지경고개는 부산과 양산 땅의 경계다. 땅의 경계라서 지경(地境)이다. 옛날 지도엔 사배현(沙背峴)으로 나온다. 김정한 단편소설 `사밧재'의 현장이다. 이 고개를 넘으면 양산 사송신도시가 나온다. 사송은 사배마을과 외송마을에서 한 글자씩 땄다. 지경고개 굴다리를 따라서 내려가면 도시철도 노포역이 나온다. 역 맞은편은 2일, 7일 장이 서는 오시게시장이다.
범어사∼노포동 옛길은 귀하다. 금정산에 길은 많아도 여기만큼 옛길의 자취가 온전한 길은 드물다. 길은 순하다. 순하고 선하다. 순하고 선한 길을 걷는 지금. 이 순간만큼은 순해지고 선해진다. 종잡지 못해 들쑥날쑥하던 심사가 순해지며 내 바깥만 보고 내 앞만 보던 성정이 선해진다. 걷는 순간만큼이라도 사람을 순하게 하고 선하게 하는 부산의 옛길. 부산이라 좋다.
글·동길산 시인
- 작성자
- 조현경
- 작성일자
- 2026-03-10
- 자료출처
- 부산이라좋다
- 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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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이라좋다 제20260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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