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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내믹 부산 제202002호 전체기사보기

“이태석 신부님, 걱정하지 마세요. 아프리카의 눈물 제가 보듬을게요!”

“불혹에 시작한 해외 의료봉사, 나와 가족의 삶을 모두 바쳤죠”
이태석 신부 걸어간 길 따라 아프리카서 의료봉사
아프가니스탄·모로코·모리타니…15년째 의료현장 누벼
부산의 따뜻한 나눔·봉사 아프리카에 전하는 보람 커

내용

제9회 이태석봉사상을 수상한 박세업(58) 글로벌케어 북아프리카 본부장은 이태석 신부가 걸어간 길을 따라 아프리카에서 부산의 나눔과 봉사를 직접 전하는 부산사람이다. `불혹, 마흔의 나이에 해외 의료봉사에 뛰어든 이후 쉼 없이 달려온 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박세업 글로벌케어 북아프리카 본부장은 “이태석봉사상이 갖는 상의 무게와 의미를 잘 알고 있다”며

  “20∼30년씩 타지에서 고생하시는 분들이 훨씬 많은데 부끄럽고, 부담되지만 ‘더 열심히 하라’는 격려의

  뜻으로 상을 주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사진은 이태석봉사상 수상 후 기념 촬영). 


[인터뷰] 제9회 이태석봉사상 수상 박세업 글로벌케어 북아프리카 본부장


올해는 고(故) 이태석 신부의 선종 10주기이다. ‘남수단의 슈바이처’로 불렸던 이태석 신부는 1962년 부산시 서구 남부민동에서 태어났다. 1987년 인제대 의과대학을 졸업했다. 1992년 광주가톨릭대학교 신학과에 편입해 사제 양성 교육을 받았으며 2001년 6월 사제 서품을 받았다.

2001년 12월 아프리카 남수단 톤즈에 선교 사제로 부임한 이후 선교와 의료봉사 활동을 활발하게 펼쳤다. 톤즈의 아이들과 원주민들을 위한 학교도 세웠다. 2008년 11월 한국을 찾은 이 신부는 검진 결과 대장암 4기 판정을 받았다. 자신이 의사이지만, 몸을 돌보지 않는 헌신적인 봉사로 병을 얻은 것이다. 이후 톤즈로 돌아가지 못하고, 투병 생활을 하던 중 2010년 1월 14일 48세의 나이로 선종했다.

‘이태석봉사상’은 아프리카 남수단 톤즈 마을에서 헌신적인 봉사활동을 하다 선종한 부산 출신 이태석 신부를 기억하고, 숭고한 정신을 이어가자는 취지로 2011년 제정됐다.

제9회 이태석봉사상을 수상한 박세업(58) 글로벌케어 북아프리카 본부장은 이태석 신부가 걸어간 길을 따라 아프리카에서 부산의 나눔과 봉사를 직접 전하는 부산사람이다. `불혹', 마흔의 나이에 해외 의료봉사에 뛰어든 이후 쉼 없이 달려온 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2∼3면-박세업 글로벌케어 북아프리카 본부장08-지부장진료모습01

△박세업 본부장이 해외 의료봉사에 전념할 수 있었던 것은 가족의 응원이 큰 힘이 됐다. 박 본부장은 아흔을 바라보지만 장남을 기꺼이

  봉사의 삶을 사는 길에 내어 주신 한국에 혼자 계신 아버님, 같이 걸으며 내조해준 아내와 어려운 환경에도 잘 자라준 두 아들,

  지원해 주신 모든 분께 감사의 말을 잊지 않았다(사진은 아프리카 현지에서의 진료 모습).


△올해는 이태석 신부 선종 10주기이다. 이태석봉사상 수상 소감은. 

-이태석봉사상이 갖는 상의 무게와 의미를 잘 알고 있다. 이렇게 큰 상을 받을 자격이 있는지 모르겠다. 20∼30년씩 타지에서 고생하시는 분들이 훨씬 많은데 부끄럽고, 부담되지만 ‘더 열심히 하라’는 격려의 뜻으로 주신 것으로 생각한다. 이태석 신부님과 같은 해에 태어나 같은 의료인으로 그분이 생명을 쏟았던 아프리카에서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을 위해 더 열심히 봉사하라는 소명으로 받아들인다. 이태석 신부님이 걸어간 길처럼 더 낮은 곳에서 모든 열정을 다해 아프리카의 눈물과 아픔을 계속해서 보듬겠다.

△의료봉사에 헌신하게 된 계기는.

-부산대 의대(외과 전공)를 졸업하고 2001년까지 경남 창원(마산)에서 개인 병원을 운영했다. 하루 평균 200여 명의 환자가 찾을 정도로 이른바 ‘잘나가고 돈 잘 버는 의사’로 통했다. 하지만 어느 날부턴가 삶에 회의감이 밀려왔다. 의대에 진학하고 외과를 선택한 것은 소외된 어려운 이웃을 돕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결혼해서 아이들이 태어나고, 외환위기가 터지고 나서 가장으로 집안을 책임지느라 정신없이 살다 보니 그때의 꿈을 잠시 잊고 지냈다. 더는 미루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마흔 나이에 본격적으로 해외 의료봉사의 길로 들어섰다.



2∼3면-박세업 글로벌케어 북아프리카 본부장-가족

△박세업 본부장 가족의 단란한 모습.
 

△지나온 길을 되돌아보면. 

-1998년 베트남 남딘성에서 수술을 진행한 것을 계기로 베트남과 몽골, 중국, 아제르바이잔 등에 단기 체류하며 구순열(입술갈림증) 환자 수술 등 의료봉사를 했다. 봉사활동을 이어가던 중, 아프가니스탄 전쟁으로 많은 사람이 고통받으며 죽어간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2001년부터 본격적으로 준비해 개인 병원을 접고 2005년 아내, 두 아들과 함께 아프가니스탄으로 향했다. 아프가니스탄 카불큐어국제병원 외과과장으로 일한 것이 해외 의료봉사의 첫걸음이 되어 2007년부터는 바그람 미군 부대 내 코이카 한국병원 병원장을 5년간 맡았다.


△해외 의료봉사를 하면서 어려움은 없는지.

-처음 활동을 시작한 아프가니스탄은 한국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의료 환경이 열악했다. 그만큼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수도 카불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미군 기지 내 코이카 한국병원은 끊임없는 헬기 소리, 고막이 터질 듯한 전투기 이륙 소리, 로켓의 폭음 등 전쟁터와 다름없었다. 의료장비는 늘 부족했고 제대로 된 치료제는 구하기 힘들었다. 한국에서 개업 의사로 일했을 땐 퇴근하면 큰아들이 ‘아빠, 돈 얼마나 많이 벌어 왔어’라고 물었다. 아프가니스탄에서는 ‘아빠, 오늘은 어떤 환자를 만났어’라는 질문으로 바뀌었다.


박세업 본부장은 자신의 해외 의료봉사 일이 혼자서는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혼자서 할 수도 없는 일이라고 강조한다. 현지인들을 비롯해 많은 분이 함께했기에 기쁨은 배가 되고, 힘들 때는 위로와 격려가 돼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고 말했다.


2∼3면-박세업 글로벌케어 북아프리카 본부장-모로코 의료봉사5

△박세업 본부장은 "부산시민분들이 지역을 넘어 지구촌 어려운 이웃의 아픔과 고통도 함께 보듬어 주셨으면 한다"고 말했다.

  사진은 박 본부장과 부인이 의료봉사를 하는 아프리카 현지 모습.
 

△현재 활동하고 있는 지역은. 

-전쟁터 같은 참혹한 현장에서 생명을 구하고 아프가니스탄 현지 의사를 교육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많은 사람에게 최소한의 기초 의료혜택을 주고 싶은 마음에 쉰이라는 젊지 않은 나이에 미국 존스홉킨스(Johns Hopkins)대학에서 국제보건 석사를 마쳤다. 국제보건을 공부하면서 북아프리카에 결핵이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국제보건의료 비정부기구(NGO)로서 아프리카를 포함한 국내외 의료지원사업을 펼쳐오고 있는 글로벌케어와 인연이 닿았다. 2011년 이후 글로벌케어 북아프리카 본부장을 맡아 현재까지 모로코와 모리타니에서 보건의료 활동을 하고 있다. 특히 모리타니는 심한 빈부 격차와 절대 빈곤으로 국제사회의 도움이 절실하지만 원조와 의료인은 턱없이 부족했다. 다행히 코이카 민관협력사업으로 모로코와 모리타니에 스마트 약상자를 환자 집에 설치해 복약률을 높이는 보건사업을 진행할 수 있었다.


박 본부장은 환자 가정에 설치한 스마트 약상자가 복용시간을 알려주고, 미 복용자의 정보까지 확인할 수 있어 환자의 약 복용에 크게 도움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결핵 치료가 끝나 약상자를 수거할 때면 우는 환자를 종종 본다며 결핵으로 인해 가정과 이웃으로부터 소외된 이들이 사업을 통해 위로를 받는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돌봄의 진정한 가치가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된다고 밝혔다.


△해외 의료봉사 활동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해외 의료봉사에 나서기 전 호주의 NGO 기구에서 2년간 언어와 문화 이해 프로그램부터 참여했다. 해외에서 봉사활동을 지속하려면 현지 문화와 언어를 먼저 이해해야 한다. 실제로 제가 활동한 대부분 나라는 이슬람교를 믿는다. 저는 이슬람교도가 아니지만 라마단 기간에는 무슬림과 함께 단식한다. 이처럼 현지인의 문화와 종교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먼저이다. 육신의 병과 내면의 고통을 함께 치유하기 위해서는 현지인들의 삶 가운데로 들어가 그들의 문화와 언어, 삶의 방식을 배우는 것이 중요하다.


△가족이나 주변의 반대는 없었는지.

-지금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가족의 응원이 큰 힘이 됐다. 아흔을 바라보지만 장남을 기꺼이 봉사의 삶을 사는 길에 내어 주신 한국에 혼자 계신 아버님, 같이 걸으며 내조해준 아내와 어려운 환경에도 잘 자라준 두 아들, 지원해 주신 모든 분께 감사하다. 부산대 의대를 비롯한 지역사회의 은혜도 너무 많이 받았다.


△부산시민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씀은.

-아프리카에서 부산으로 오는 길에 따뜻한 뉴스를 접했다. 경기 침체에도 지난해 부산사회복지공동모금회를 통해 모인 기부금액이 209억 원으로 전년도 191억 원보다 약 10%(18억 원) 늘어나 ‘나눔 문화’가 확산하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이었다. 역시 부산사람들은 남달랐다. 너무 기뻤다. 부산시민분들이 지역을 넘어 지구촌 어려운 이웃의 아픔과 고통도 함께 보듬어 주셨으면 한다.


1면-박세업 글로벌케어 북아프리카 본부장05

△제9회 이태석봉사상을 수상한 박세업(58) 글로벌케어 북아프리카 본부장은 이태석 신부가

   걸어간 길을 따라 아프리카에서 부산의 나눔과 봉사를 직접 전하는 부산사람이다.


박세업 글로벌케어 북아프리카 본부장의 어릴 적 꿈은 보육원을 운영하며 아이들을 돌보는 것이었다. 어릴 적 꿈처럼 그는 늘 사회적 약자와 함께했다. 개인 병원을 접고 구순열 환자들이 많은 베트남을 찾았고, 외과의사가 필요하면 아프가니스탄으로 갔다. 결핵 환자가 많은 북아프리카 모로코와 모리타니로 기꺼이 향했다. 

그는 단순히 의료기술뿐 아니라 이태석 신부가 그랬던 것처럼 아프리카 사람들의 삶 가운데로 들어가 그들의 언어와 문화, 삶의 방식까지 배우며 함께 살아가는 삶을 꿈꾼다. 자랑스러운 부산사람, 따뜻한 부산사람 박세업 본부장을 힘껏 응원한다.

작성자
조민제
작성일자
2020-02-03
자료출처
부산이라좋다
제호

부산이라좋다 제202002호

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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