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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고전 전문가 한형조 교수에게 인문학의 길을 묻다

“행복을 꿈꾸는가, 인문학 통해 ‘삶의 기술’ 연마하라
인문학, ‘삶의 기술’ 배우고 익히며 행복 얻는 학문“

내용

한국학중앙연구원 고전한학·철학 전공 한형조(韓亨祚) 교수(56). 동양고전의 현대적 해설을 통해 삶에의 통찰과 행복의 길을 전파하는 한국 인문학계의 쟁쟁한 고수다. 고리타분할 것 같은 동양철학을 오늘 '삶의 문제'로 널리 귀환시킨 입심 좋은 얘기꾼·인기 높은 글쟁이다.

'유교, 희로애락의 기술', '붓다의 치명적 농담', '허접한 꽃들의 축제'..., 그의 저술과 문장은 모던하고 경쾌하되 엽기와 과감을 넘나든다. 이 양의 동·서와 시대의 고·금, 진지함과 레토릭을 넘나드는 종횡무진은, 그가 모든 원전과 원전에의 다양한 해석을 형형한 눈빛으로 꿰뚫고 있기에 가능했다는 찬사다.

동양고전의 현대화를 통해 삶의 문제를 천착해 온 집념은 어디에서 출발했나? 위대한 불교경전에도 인문학적으로 접근, 종교의 정수를 쉽고 깊이 있게 설명하는 그 저력의 뿌리는 무엇인가? 한국의 인문정신을 찾는 열정으로, 우직하고 성실한 대중강연·글쓰기를 통해 인문학의 심화·확산에 헌신해 온 그의 남은 숙원은 또 무엇인가?

한형조, 그는 동양철학을 오늘 ‘삶의 문제’로 널리 귀환시킨 쟁쟁한 고수다.  인문정신을 찾는 강좌에도, 스스로 ‘마냥 나서지는 않겠다’는 경계 속에, 적잖이 참여한다. 강좌에서 그가 전하는 메시지는 일정하다, ‘인문학, 지속적 자기훈련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우리는 과연 행복한가? 누구나 잡으려는 행복, 하지만 많은 이에게 행복은 그림의 떡이다. '성공한 국가 불행한 국민'-한 애널리스트(투자분석가)의 신간 제목처럼, 국민들은 (국가의)경제적 풍요가 (국민의)행복을 담보하지 않는다고  본다. 그 인식의 뿌리는 무엇인가?

'한국사회와 그 적들'-대한민국 대표 융 심리학자 이나미 박사 역시 한국인의 행복을 걱정한다. 대한민국, 세상 어딜 가도 이만한 자연도 없고 이만큼 친절한 관공서도, 이만큼 정 많고 똑똑하고 잘 생긴 국민도 없다. 그 속에서 한국인은 욕망의 덫에 빠지고, 통하지 못하며, 분노에 지쳐 외로운 사람들로 살아가고 있다. 그 집단정신의 바탕은 무엇인가?

정녕 우리 사회는 '냄비사회'다. 성공의 사회학으로부터 재테크가 태어나고,  '웰빙'과 '힐링'이 그 자리를 대신하더니, 이제 '행복'이 등장했다. 그 행복 증후군은 '스스로 행복 찾아가기', 곧 '빨리 달리기' 대신 '깊이 살기'의 추구다. 대학가에선 문(文)·사(史)·철(哲)이 찬밥 신세지만 살아 본 사람은 안다, '빨리 달리기'만으로 세상을 뚫는 통찰의 눈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을. 대중들은 이제 먼저 나를 뚫고, 사람을 뚫고, 세상을 뚫기 위해 인문의 힘을 기대한다. 융합·통섭을 얘기하는 인문학의 바탕 위에서 '행복'을 추구하는 그 사회적 흐름이다.

인문학, 인간적 삶 구현하기 위한 처절한 노력

Q. 가히 인문학 열풍이다. 사전적으로 '인간의 사상·문화를 탐구하는 학문', 그 인문의 열기가 뜨겁다. 인문학, 도대체 뭔가? 동양철학에 정통한 인문학자로서, 현대적 어법으로 설명해 달라.

"인문학은 삶의 기술(The Art of Living)을 배우고 연마하는 학문이다. 인문학에서의 종교, 철학 모두 자아의 한계를 극복하고 사랑과 성장, 삶을 존중하고 겸손을 배우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결국 인문학은 인간적 삶을 구현하기 위한 처절한 노력이라고 할까.”

철학에 바탕한 인문학자 한형조는 인문학의 효용 몇 가지를 든다. 첫째, 지금까지와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볼 수 있게 하고, 둘째, 삶을 견뎌내는 기술을 습득시키며, 셋째, 의미와 유대를 강화하는 훈련을 시켜 준다는 것이다.  결국 인문학의 기술은 인생을 견디게 하는 것이며, 고전·역사의 수많은 사람의 인생을 통해 위로를 받고 조언을 받을 수 있는 길이라는 강조다.

Q. 인문학, 어떤 값어치가 있어 오늘, 그토록 열풍인가?

"최근 우리 사회가 인문학을 배우려는 것은 물질적으로 잘사는 것을 넘어, 정신적·육체적 조화를 이루는 '웰빙(wellbeing)'에의 요구가 커졌다는 의미다. 누구나 그 '삶의 기술'을 원하지만 누구도 가르쳐 주지 않으니 곳곳에서 인문의 열기는 뜨겁고 강좌는 넘쳐날 수밖에 없다."

그는 고은 시인의 시 '그 꽃' 구절을 들어 인문학의 가치를 설명한다. "내려올 때 보았네/올라갈 때 못본/그 꽃”-우리 인생도 나이 40, 50에 들어서면 꺽어진다, 내려갈 때 보면 그동안 올라갈 때 봤던 것과는 또 다른 가치, 또 다른 풍경들이 눈에 들어온다, 그동안 소홀히 한 것들이 눈에 들어오면서 막 뛰기만 하던 삶에 또 다른 가치를 만나는 것이다, 우리가 놓친 삶의 진실들을 바라보게 하는 것, 그게 인문학의 가치다, 이런 얘기다.

그는 일반대중의 인문학에 대한 관심을 얘기하며 우리의 물질적 풍요에 미치지 못하는 행복 수준을 지적한다. 실상, '성공한 국가'-대한민국의 세계 속 경제위상은 경이롭다. 한국은 2012년 '20·50클럽'에 가입했다. 세계 7번째다. 1인당 국민소득 2만 달러-인구 5000만 명을 동시에 충족하는 국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기존 선진국 말곤 한국이 유일하다. '불행한 국민'-한국의 행복지수는 OECD 34개국 중 26위. 교육, 일자리, 치안 항목의 높은 평가에, 환경(29위), 일과 삶의 균형(30위), 공동체 생활(33위) 항목에서 최하위권이다. 갤럽 조사 결과, 세계 148개국 중 97위다.
 

우리, 자기 마음·상대방 마음부터 배워가야

Q. 오늘을 사는 우리, 인문학에서 무엇을 배워야 하나?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인간' 자신이다. 놀랍게도 우리는 자신을 잘 모르고, 특히 사람들은 누구나 스스로에 대해 먼저 생각하기 때문에 상대방의 마음에 대해 이해가 부족하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자기중심적으로 자신만을 생각하며, 사람을 하나의 수단으로 대하기 마련이다. 사람은 '사물'이 아닌 아닌 목적으로 대해야 한다.

그는 특히 '나' 자신부터 제대로 다뤄야 함을 강조한다. 인문학의 중심은 물질이 아닌 자기 마음속에 있다는 것을 명심하고 자기중심적 시각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눈치가 없으면 곤란하다 싶어 우리는 늘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으려고 노력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따로 있다는 것. 그는 로마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경고를 인용했다, "자기 마음의 움직임을 보지 못하는 자는 결국 불행해질 수밖에 없다."

Q. 사실 행복은 온 인류의 변함없는 소망이다. 동양철학에서 말하는 행복은 뭔가?

"삶에는 희로애락이 있다. 주자학자의 눈으로 요즘 한국인을 보면, '노(怒·분노)'와 '애(哀·슬픔)'가 주축이다. 반면 '희(喜·기쁨)'와 '락(樂·즐거움)'이 약하다. 그것이 우리가 놓치고 있는 지평이다. 그런 점에서 인문학 코드는 '분노'와 '슬픔에서 '기쁨'과 '즐거움'으로 넘어가는 징검다리가 될 수 있다. '기쁨'은  지속적이고 은근한 기쁨, '즐거움'은 손발을 고양시키는 존재의 흥분을 말한다. 그게 곧 행복 아니겠나."

그의 인기 높은 인문학 저작은 유교와 불교가 반반, 때로 엽기와 과감을 각오한 종횡무진으로 위대한 경전까지 자유롭게 풀어낸다. 주간 ‘현대불교’ 칼럼 원고를 점검하는 장면.

인문학 공부, '기쁨' 얻는 과정... 독립적 삶 안겨

Q. 그런 행복을 어떻게 일굴 수 있을까?

"공부하는 삶이 바로 그 통로이다. 공자가 말한, '배우고 때로 익히면 즐겁지 아니한가(學而時習之 不亦悅乎)'를 기억할 것이다. '배우고 익힘'은 스스로를 엔터테인먼트 한다는 말과도 같다. 곧 인문학 공부는 '기쁨'을 얻는 과정이며, 이로써 '분노'와 '슬픔'을 불식할 수 있는 처방이기도 하다. 배움으로써 얻어진 기쁨은 독립적이고 세련된 삶을 안겨준다. 철학자 쇼펜하우어도 이 눈물의 골짜기, 고해로부터 우리를 구원할 비책은 오직 '공부하는 삶(intelellctual life)'에 있다고 역설했다.

존재의 충일감을 느끼며 살고 싶은가? 그렇다면 배워라. 상처로부터 배우고 고전으로부터도 배워라. 그를 통해 우리는 고통 속에서 '나'를 바로 세우는 이치를 터득할 수 있다. 그렇게 터득한 이치가 우리의 삶을 자유롭게, 지혜롭게, 행복하게 한다. 결국 행복이란 가만히 있어도 저절로 찾아오는 건 아닌 것이다."

최근 출간작 '인문학에 묻다, 행복은 어디에'(2014)에도 한 교수의 행복론이 들어 있다. 이 책, 행복을 화두로 놓고 17명의 인문학자·과학자·예술가를 만난 기록이다. '행복'이란 미지의 대륙에 대한 탐사 보고서다. 행복의 형태와 질감, 색깔과 맛을 찾으려는 시도다. 철학자에게 상처와 힐링을 캐묻고 뇌과학자에게 행복의 근원을 따진다. 천문학자와 삶의 의미를 이야기하고 시인과 선악을 논한다. 그의 행복론 제목 역시 '배우고 때로 익히면 즐겁지 아니한가'이다.
 

동양고전, 현대 물질문명 폐단 해결할 효과적 대안

Q. 현대사회에서 동양고전의 가치는 어디에 있나?

"현대사회는 왜 인문학의 가치를 강조하나? 산업화를 통한 물질적 풍요 속에서 그동안 소외 되어온 '인간의 정신'을 돌아보고, '인간 존재의 가치'를 되찾는데 인문학이 주요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 때문이다. 동양고전은 현대 물질문명의 폐단을 해결할 수 있는 효과적 대안이다."

그는 확신에 찬 표정과 특유의 레토릭으로 강조한다. 동양의 고전 중엔 동양의 대표적 철학자, 문학가의 정신을 오롯이 담은 주옥 같은 작품, 시공을 초월하여 인간과 세계, 인간자아에 대한 진지한 탐구와 객관적 관조를 가능케 하는 명작들이 즐비하다고. 그런 면에서, 동양고전은 파고들어 씹고 또 씹을 때 그 진미를 맛볼 수 있는 인생의 고전(苦戰) 중 하나이기도 할 것이라고-.'대한민국 대표 인문학자들이 들려주는 인문학명강; 동양고전'(2013)-을 보라.

쟁쟁하고 쟁쟁한 학자 13명이 동양고전을 빌려 들려주는 삶과 앎 얘기가 뛰어나고 맑다. 한 교수는 이 책에서 율곡 이이의 '격몽요결(擊蒙要訣)'을 풀어 얘기한다. 1577년 율곡이 학문을 시작하는 이들을 위해 쓴 책이다.

Q. '격몽요결', 어떤 책인가?

"이 책, 어린이들이 읽는 책으로 오해하는 사람들이 있다. '동몽선습(童蒙先習'이나 '동몽수지(童蒙須知)'가 어린이 책이어서 그런 것 같다. 그러나 이 때의 '몽(夢)'자는 어린이를 의미하기보다, '무지몽매(無知蒙昧)'하다는 뜻이다. 인간은 누구나 무지 속에 있기 때문에 그것을 깨우쳐야 한다. '격몽요결'의 대상은 오히려 어른을 향해 있다.

현자들의 우화는 대체로 '인간의 무지'를 두고 한 일침, 혹은 풍자인 경우가 많다. '장자'의 '조삼모사(朝三暮四)'나 불교의 '육도윤회(六道輪回)'가 그러하다. '격몽요결'의 취지도 어린이를 가르치는 것이기 보다 인간이 갖고 있는 무지를 깨는 비결을 보여주는 데 있다."  

Q. '격몽요결', 고전으로서의 가치는 어디에 있나?

"동서양의 고전은 무궁하고 다양하다. 그 중 유교가 내세운 대표적 고전은 '사서삼경(사서삼경)'임은 익히 알고 있을 거다. 여기 '격몽요결'은 삶의 기술에 대한 유교적 입문, 혹은 기초를 담고 있다. 율곡은 오랜 전통을 따라 '학문'을 지금의 분과(分科) 지식과는 달리, '삶의 기술'로 정의했다.”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 사람노릇을 하자면 '공부(학문)'를 해야 한다. 공부라고 하는 것은 무슨 남다른, 특별한 어떤 것이 아니다. 일상적 삶에서, 관계와 거래에서, 일을 적절히 처리하는 법을 배우는 것일 뿐이다. (...) 공부를 안하면 마음은 잡초로 뒤덮이고, 세상은 캄캄해진다 그래서 책을 읽고 지식을 찾는다...'. 한 교수는 '격몽요결'의 서문을 들어, 유교식 학문의 정의를 내린다. 곧 학문은 사람이 살면서 익혀야 할 최초·최후의 기술이라는 것이다. 이것을 현대용어로 '인문학'이라고 부른다면서-.   

이 책에서, 다산 정약용을 소개한 박석무 다산연구소장은 그의 이름만 알고 사상 공부는 뒷전인 세상을 한탄하며 "다산을 읽어보면 정말 안 미칠 수가 없다”고 일갈한다. 퇴계 이황의 '성학십도'를 설명한 이광호 연세대 교수는 성학을 '인간의 향기를 꽃피우는 학문'이라 푼다. 심경호 고려대 교수는 매월당 김시습을 일러 "이런 사람이 우리 역사에 있었다는 것은 참으로 다행”이라고 안도한다.
 

유학, '낡은 학문' 이미지 극복... 새 전통 뼈대로

문화평론가 조우석은 얼마 전 유학을 '전 시대 정신유산의 큰 몫'이라고 평가하며, 한 교수에 대한 인물비평을 시도한 바 있다. "그 유학을 보다 탄력 있고, '맛있게' 저술해서 동 시대에 유통시킬 만한 젊은 학자가 무척 드물다. 거기에 근접한 사람이 한형조 교수다. 그가 갖는 매력은 '구질거리거나 곰팡내가 풍기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만큼 신선하다”, 이런 표현이다.

그는 몇 해 전부터 주간 '중앙선데이'에 유학 관련 에세이 '교과서 밖 조선유학'을 연재했다. 그리고, 그가 보는 유학에의 생각을 더듬을 책 '왜 조선유학인가'를 출간했다. 조우석의 평에 따르면, '젊은 유학 관련서로 손색 없는 책', '젊은이들의 마음을 움직일 만한 유학책'이다. 그러니 그의 유학 공부 얘기도 물어야 한다.

Q. 유학, 한국의 대중에게 여전히 '고리타분한' 학문이다. 특정집단의 지배도구로 전락했다는 이미지 때문이다. 그럼에도 현대인은 동양고전에 주목하고 열광한다. 유학, 지금 우리에게 어떤 위치인가?

"유학, 원래 낡은 학문, 한국 근대화에 실패한 사상이다. 그 유학, 지금 새롭게 우리에게 다가서는 국면이다. 이게 참 역설이다. 근대화 돌입과 함께 전 시대의 도그마인 유학의 유산이 거의 전부 와해됐기 때문에, 그 잿더미 위에서 21세기에 유학을 달리 논의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된 거다. 19세기 말 조선의 망국 앞에서 단재 신재호가 "일찌감치 육경(六經)을 불 싸질렀어야 했다”고 유학을 저주하며 그 책임을 물었다면, 이제 시대가 다시 바뀌긴 바뀌었다. '포스트모던'한 지금 은근히 옛 것에 관심이 쏠린다. 이제 조선 망국의 책임이 유학에 있다는 준엄한 시선은 조금 무뎌졌다."

요컨대 시대정신이 학문을 규정하는 상황이다. 그는 한국 또한 근대화(를 못 이뤘다는) 콤플렉스를 벗어 던지면서 이제 또 다른 실용적 목표 아래 전통과 유학 읽기를 실험하는 중이라고 평가한다. 산업화에 성공한 글로벌 강국, 이제 자기 문화·전통에 바탕한 고유 브랜드, 곧 전통을 구축하는 과정이라고 본다. "나는 그것이 고맙다”는 고백이다.

Q. 유학은 지난 수천 년 동안 조선과 중국·일본을 지배해 온 윤리학·정치학 측면의 주류사상이다. 그 유학을 종교적 관점에서 체계화한 유교(儒敎)가 있다. 그 유교의 핵심 주제는 무엇인가?

"유학은 심학(心學)이다. 곧 '마음의 훈련과 연습이다. 그런 뜻에서 나는 유교를 '삶의 길(ars vitae)을 찾아 나선 구도의 모험'이라고 얘기한다. 너무 늦기 전에 이 오래된 학문[古學]에 뛰어들라 하면 시대착오라 하겠지만."

한 교수는 유교에 대한 세 가지 오해를 얘기한다. 첫째, 유교는 중국의 장물이라는 인식, 둘째, 유교의 현장은 문중이나 유림이라는 생각, 셋째, 유교를 도덕적 설교로 읽는 통념이다. 그는 강조한다, 현대사회 속 전통의 가치 유학을 말하려면, 이런 상황을 이해하며 보다 날렵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낡은 이념인 삼강오륜을 다시 들먹이고, 도덕과 군자의 도리를 말하는 유학 이야기는 좀 수상쩍거나(시대착오적 강요 때문에), 아니면 좀 우스울 수도(세상 변화를 모른다는 뜻에서) 있다는 것이다.

유학을 위한 변호인가? 한 교수의 발빠른 전환은 나름 근거가 뚜렷하다. 유학의 그런 한계에도, 조선왕조는 500년을 다스려 왔다. 세계 역사에서 보기 드문 장구한 세월이다. 결함 없는 이념이 어디 있고, 단점이 없는 지배 이데올로기가 어디 있나?

그는 한국학의 세계화에도 작은 노력을 보태고 있다. 미국 보스턴 하버드 옌칭연구소의 한국학 컨퍼런스에 참여하는 것도 그러하다. 잠시, 시티투어 버스르 타고 보스턴 시내를 둘러보는 장면.

"난, 인문학 강좌에서 '지속적 자기훈련' 강조한다”

Q. 그동안 생활 속의 한국학과 인문정신을 찾는 인문학 강좌에 참 많이 참여했다. 올해 만 해도 한국학중앙연구원 '2014 한국학 콘서트', 예술의 전당  '한국철학 강좌', 한국국학진흥원 '문화유전자 탐방열차', 경북대의 '치유인문학: 마음을 살리는 길' 강좌..., 얼마나 많은 강연을 했나? 그리고 강연에서 주는 메시지는 무엇인가?

"음..., 작은 오해가 있다. 사실 난 강연·강좌 많이 안한다. 가끔 나간다. 인문학강좌는 최근 폭발적으로 늘었다. 레퍼런스(reference)나 소스(source)는 달라도 강연자들이 주고자 하는 인문학적 메시지는 일치한다. 거기 나까지 낄 필요가 있나 싶기도 하다. 스스로 게으르기도 하고, 마냥 나서지는 않겠다는 경계도 있다. 학자들의 최우선의 가치는 여가이다. 공개되었다간 바빠질까 싶어 강연을 VTR로 녹화도 못하게 한다. 아, 농담이다.”

강조에서 주고 싶은 메시지? 그의 생각은 뚜렷하다. 인문학이 뭔가? 우리가 살아온 일상의 코드, 곧 물질주의 같은 세속적 지향에서 벗어나 정신적 충족 같은 다른 가치를 추구하는 게 아닌가. 인문학 강좌, 현재 우리의 삶 곳곳에 스며들어 있는 한국의 인문정신을 우리의 역사와 문화를 통해 새롭게 조명한다. 그 속에 담긴 지혜와 가치, 창의성을 함께 배울 수 있는 자리다. 그는 한편 일침을 잊지 않는다. 인문학은 멀고 험한 등정이다. 앉아서 듣는 한두번의 강좌로 '치유'나 '성장'을 기대할 수 없다는 것. 자동차 운전을 생각해 보라. 매뉴얼만 읽고 운전한다? 턱없는 낙관이다. 지속적 자기훈련이 필요하다. 이런 메시지를 주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거대한 산맥 같은 그 동양철학을 익히려 많은 동양고전을 읽고 궁리한다. 하나의 키워드가 명료하게 드러날 때까지, 깊이를 얻고 사무칠 때 까지 되씹는 것이다. 주자학 공부의 체계적 매뉴얼, ‘성학집요(聖學輯要)’ 역시 평소 펼쳐두고 ‘되씹는’ 기본 텍스트다.

'서양철학' 교육에 실망... 독학으로 '동양철학' 입문

인문학 이야기, 과학의 공식처럼 정확한 결론이 있진 않다. '삶의 기술'이란 표현 속에서 '삶의 지혜'를 얘기하는 부분이니 그 흐름 역시 물 흐르듯 매끄러울 순 없다. 추상적이고 모호한 단어들로 현실과 마주한 구체성을 찾아내는 과정이 그리 쉽기만 할 것인가. 다행스럽게도, 그는 첫 인상부터 맑고 온화했고, 더러 '우문현답'을 나누면서도 내내 여유 있고 겸손했다. 인터뷰 전 인물정보에서 본 얼굴표정 그대로, 그는 온몸에서 융숭 깊은 멋을 뿜어내는 동양철학자였다.  

'대학을 졸업할 무렵부터 사회적 관계와 책임을 묻는 유학 공부를 시작했다. 한국정신문화연구원(현 한국학중앙연구원)의 한국학대학원에서 학비 걱정 없이 공부하였다'-그의 자기소개 구절이다. 그는 어떤 계기로, 대학생활을 하며 동양철학에 빠졌을까?

"대학 초년 때 잠깐 산에서 지낸 적이 있다. 불교가 가르치는 '무의미의 기술'에에 지금도 혹하는 이유다. 대학 졸업 무렵 유학 공부를 시작해 주자학에 납치 혹은 중독됐다. 주자학이 과연 지금도 여전히 삶의 기술로 유효한가를 화두 삼아 이야기를 펼치기를 즐긴다.”

그는 인문학을 하려 서울대 철학과를 갔다. '삶'에 대해 알고 싶었고, 거기 이르는 길이 궁금했다. 인간만이 자신의 '존재'를 묻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시 대학 철학교육의 주류는 서양철학 중에서도, 분석철학-현상학-헤겔철학이었다. 거기다 철학적 사조나 문학적 흐름 같은, 단편적 지식정보를 전하는 교습방식에 실망했다.

그는 삶의 조언자로서의 철학을 목말라 했다. 원래 철학이란 이름이 '지혜를 추구하는 것' 아닌가. 동양철학에 입문했다. 불교철학을 통해서다. 한 한기를 견디다 휴학계를 던지고, 동해안 어느 암자로 들어갔다. 한 학승(學僧)으로부터 저녁마다 심리학강의를 들었다. 그는 도대체 알아듣지 못했고, 학승은 일본어판 전문서 읽기를 권했다. 역시 쉽지 않았다. 원전과 직접 대면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는 한학을 독학했다. 보통 한학을 공부하는 과정에는 유명한 한학자의 '훈도'(가르침)가 있곤 하지만 그는 그저 혼자 공부했다.

"그건 천재의 영역 아닌가?” 그는 잘라 대답한다, "아니다, 동양학의 다른 분과는 사정이 다르지만, '철학'은 독학이 가능하다. 특히 영어 번역이 현대적이고, 일본어 주석이 상세하다.” 이들을 길잡이로 띠풀을 헤쳐 나갔다니 고단했을 여정을 짐작할 수 있다. 그는 "이 독학이 내 스타일의 원천이자 동시에 한계(?)”라고 덧붙였다.

Q. 동양철학, 감히 쉽게 넘기 힘든 거대한 산맥의 영역일 터. '동양고전 전문가', 그동안 공부한 기본 텍스트는 어떤 것들인가? 또 그 텍스트들, 왜 읽고 궁리해야 했나?

"불교의 반야(般若),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 원효의 저작, 지눌의 저작, 유교의 공자, 맹자, 제자백가, 송대(宋代)) 주자학, 조선유학의 화담 서경덕, 퇴계 이황, 율곡 이이, 다산 정약용, 혜강 최한기..., 동양철학의 기본서를 두루 섭렵했다. 중요한 책은 좀 봤다.

사실 철학에선 많은 텍스트가 필요하진 않다. 불교 역시 경전은 팔만의 방대함을 자랑하지만, 기본적 취지는 심플하다. 반야, 열반, 공(空), 지혜..., 이런 가장 익숙한 키워드가 명료하게 드러날 때까지, 깊이를 얻고 사무칠 때 까지 되씹는 것이다. "절대 많이 읽지 말라... 대신 절실하게 체험적으로 사유하라”, 이건 역사적으로 오래 가르쳐 온 고전의 독서법이기도 하다."

그는 주자학의 '골륜탄조(渾淪呑棗)'를 들어 "씹기”의 중요성을 되새긴다. '골륜'은 '새가 대추를 통째로 삼키어 먹는다'는 뜻, '탄조'는 '대추를 삼키다'는 뜻이다. 곧 공부를 하면서 조리를 분석하지 않고 두루뭉수리 넘겨 외우려만 들어서야 되겠나, 그런 뜻이다.

그는 ‘삶의 조언자’로서의 철학을 목말라 동양철학에 입문했다. 앞으로, ‘유교의 두 얼굴’에 집중하여 공부할 생각이다. 복고적·억압적 측면과 자유를 향한 심신의 훈련 측면이다. 즐겨 찾는 여행지·휴식처 역시 불교 사찰, 유학 서원이다.

'금강경 강의', '종교' 아닌 '인문'으로 불교에 접근

Q. '한형조 교수의 금강경 강의', 그 2권을 출간한 서평에 "특히 한형조 교수의 저술은 엽기와 과감을 각오하고 종횡무진, 이 위대한 경전을 자유롭게 풀어냈다는 데 의의가 있다”는 평가 있다. 그 밖에도 '중고생을 위한 고사성의 강의'도 있고, '한글세대를 위한 불교', '화엄의 사상'을 우리 말로 옮기기도 했고. 그 많은 저작, 어떤 집념과 열정으로 수행하고 있나?

"사실 불교는 나의 첫 도전이었다. 유교가 엄격한 격식을 요구한다면, 불교는 자유롭고 편하게 얘기한다. 이 '금강경 강의'는 '종교'가 아니라 '인문'으로 불교에 접근한다. 종교적 도그마에 발목 잡히지 않고, 제도 의례의 관습, 집단의 논리를 떠나, '불교' 그것이 알려주는 '인간학'에 오로지 집중한다. 그리하여 독자들의 종교적·문화적 배경에 상관없이 심금에 닿도록 배려했다."

금강경 강의, 이 책의 특장은 역시 풍부한 일화와 변죽에 있다. 아무런 연관이 없어 보이는 일상의 에피소드들이 기실 불교의 진실을 보여주고 있다는 믿음의 산물이다. 예컨대 만공스님의 음담패설 법문을 통해, 그는 곁에 두고도 못 깨닫는 중생의 어두운 눈을 일깨우는가 하면, 영화 '라쇼몽'을 통해 욕망이 빚어낸 상(相)의 문제를 이야기한다. 보시를 베풀고 덕을 실현하는 방법을 논하며 아내의 젖은 손을 묘사할 때, 그의 문장은 편편의 에세이처럼 쉽고 편하다.

'금강경'? 지금도 절간에서 늘 독송되는, 대승 반야의 핵심적 경전이다. 압축적·논리적인 '반야심경'에 비해, '금강경'은 흩은 곡조로 반복되고 변주된다. 촌철살인, 경구 경구마다, 깊은 의미와 통찰력을 갖춘 이 경전이다.
 

번거로움 싫어하는 인문학자 '천막'에 끌어넣기

이쯤에서 인터뷰를 갖기 전 한 교수와의 '관계맺기' 과정을 되새긴다. 그가 제시하는 '인문학 속 행복의 길'을 '부산이야기' 2015년 신년호에 실을 요량으로, 지난 여름 어느 날 인터뷰 요청 편지를 보냈다. 그는 늦은 답장을 주며, '국제 세미나를 하고 왔고, 공부하는 재미가 만사(?)를 잊게 해 주었다'고 얘기를 시작했다.

편지와 기획을 읽고, '부산이야기'와 '차용범'이란 인물을 검색해 봤다, '부산사람에게 삶의 길을 묻다'(차용범 저) 서평을 보고, 기획의 의도와 방향을 대강 짐작했다, 인터넷에 건축가 승효상 편이 있어 읽어봤다, 정리 잘 했더라, 깔끔한 고수의 칼 솜씨(?)를 보는 듯 했다....

이 부분까지 읽고 인터뷰의 성사를 낙관한 것은 성급한 것이었다. 그는 인터뷰를 피하는 이유를 열거했다. 아주 흥미 있겠다는 생각을 했으나 나는 거기 끼지 않아도 될 듯하다, 인문학은 실용이나 건축, 예술에 비하면, 한가한 소리 아닌가, 하고 싶은 얘기는 책에서 하고, 가끔 신문에 적기도 했고, 인터뷰를 하자면 오가는 번거로움도 번거롭고..., 그렇게 이해해 주면, 마, 고맙겠다는 얘기였다.

그리고, 그 이메일의 각주에 붙은 한자성어가 예사롭지 않았다. 원전은 '중산간괘(重山艮卦)', '간기배(艮其背) 불획기신(不獲其身) 행기정(行其庭) 불견기인(不見其人) 무구(无咎)'..., '그 등에 그치면 그 몸을 얻지 못하며, 그 뜰에 행하여도 그 사람을 보지 못하여 허물이 없으리라', 대략 이런 풀이였다. 현대어로 번역하면 '생각이 적절한데서 멈추어 본래의 지위를 벗어나지 않는다'는 정도였다.

그의 내심을 짐작했다. 그는 '공부하는 재미'를 얘기했으니 공자의 말대로 행복을 얻는 길을 즐거이 걷고 있다. 그는 '번거로움도 번거롭고'를 말하며 '허물이 없으리라'를 넌지시 들이미니, 그 역시 행복을 즐기는 길의 한 갈래겠다. 이런 사연을 딛고, 한 두어달 묵혀가며 대시한 끝에 성사에 이른 인터뷰이다. 그는 '낙타가 천막에 들어가는 수에 걸렸다'고 한탄했지만. 그런 만큼, 그에게 이 부분을 물어야 한다.

Q. 동양고전을 바탕으로 인문학의 가치를 설파하는 당신, 지금 얼마나 행복한가?

"난감한 질문이다. 나도 잘 모른다. 에둘러서 말해보면, 사실 '행복'이란 말은 수입어, 신조어다. 유교·불교에는 없던 개념이다. 행복은 '요행(幸)'으로 얻은 '행운(福)'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중용'에는 '요행수를 바라고, 무리한 일에 뛰어드는 것'을 깊이 경계하고 있다. 대신 '주어진 자리를 지키면서 운명을 수용하기(君子居易而俟命)'를 주문한다. 그 안에, 어디쯤에 '행복'이라는 부수 효과가 들어있을지 모른다. 다른 사람 눈에는 그게 한심해 보일 수도 있지만... 요컨대, 행복은 쫓아오게 해야지, 절대 쫓아가서는 안된다. 내 생각이다.

이 점에서 웰빙(well-being)이라는 말이 원래의 취지에 가깝다. 유기농 음식을 먹고 스파에서 쉬는 것으로들 알고 있는데 이 말은 글자 그대로, '잘 존재하는 것'을 의미한다. 거기 행복이 수줍게 숨어 있을 것이다. 행복 이전에 존재를 물어야한다. 성경도 같은 주문을 하고 있다.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하여튼, 요행수에 대박을 꿈꾸거나, 자기 밖의 가치에 매달리지 마라. 남의 눈에 비치거나, 걸치고 있는 것에 집중하기보다, 자신을 구성하는 것, 건강이나 인격에 더 깊이 유의하고 잘 보살펴야 진정 노리는 '행복'에 가까이 갈 수 있다, 그런 얘기다.
 

인문학 열풍, 문명적 추세 딛고 상당 기간 지속 전망

Q. 40여년 동양철학을 연구하며 모든 고전들도 상당할 것 같다. 지금까지 어떤 자료들을 얼마나 모았나?

"내 서가에는 책이 몇 권 없다. 두 달에 한번씩 책을 솎아내 대학원생들에게 나눠준다. 퇴계 두 권, 율곡 두 권, 이 정도면 평생을 해도 새롭고 아직도 가야 할 곳이 있기 때문에 책을 많이 가질 필요가 없다. '오늘 한 겹을 벗기고 내일 한 겹을 더 벗길 뿐'이라는 자세로 책을 대하면 충분하다.”

한 교수는 "책에 대한 골동적 취미가 없다”고 잘라 말한다. 어차피 읽는(읽어야 하는)책은 누구나 보는 오픈 소스일 것, 버리고 없으면 또 사면 된다는 생각이다.

Q. 동양고전에 바탕한 한 교수의 인문학 저작, 인터넷 검색망에 16권 올라 있다. 최근 인문학 열풍 속에 책도 많이 팔렸을 것 같다. 그런 저작을 통해 기대하는 것은?

"온전한 내 저작은 7권 정도, 나머지는 프로젝트의 산물이다. 난 독자에게 책을 읽히려 출판하는 게 아니다. 일종의 나르시시즘? 내가 뒤적이려고(?) 출판을 한다. 출판사가 들으면 기겁을 하겠지만.... 자기만족이라고 할까? 나도 결혼할 때 집사람에게 '뻥'을 친 적이 있다. '책 1-2권 쓰고 나면 빌딩 생길테니 걱정 말라'고. 난, 책 2권 쓰곤 '이게 아님'을 실감했다. 동양고전, 독자가 한정적이다. TV강의를 거절해 온 것도 그렇다. 레벨을 '중3 수준에 맞춰달라'니 불감당이다. 동양철학은 심화과정 아닌가.”

그의 저작은 유교와 불교가 반반이다. 출판사 말로는 고정 매니아 층이 있다고 한다. 다만, 그는 자신의 저작을 수십번씩 읽는다. 공부하는 도정의 중간보고 내용을 확인하는 것이다. "이거 정말 내가 썼나?”면서 감격할 때도 있지만, 정리가 덜 되고, 변죽을 더듬는 자신을 더 자주 발견한다고 한다. "역시 임중도원(任重道遠), 길은 멀고 짐은 무겁다.”

지금 퇴계 이황의 평생 온축이 담긴 '성학십도(聖學十圖)'를 준비 중이다. 퇴계가 한사코 물러나며 성학에의 간절한 기대를 담아 갓 등극한 어린 선조에게 올린 주자학의 문법이자 설계도다. 10년전 200자 1,500매 분량으로 정리하고도 아직 출판을 못했다. 개정판을 염두에 두고 쓴 최초의 책, 내년 초 출판할 계획이다.   

Q. 인문학에의 관심과 필요성이 날로 높아지고 있다. 이 '인문학 열풍', 언제까지 이어질 것 같나?

"상당 기간 이어질 것 같다. 우선 문명적 추세가 기본적으로 먹고 사는 경계와 생존의 위협을 극복한 단계다. 이제 인간의 궁극적 관심이며 정신적 만족을 찾는 본질적 욕구가 있다. 그리고 고령화 시대다. 수렵·농경시대 수명 40-50세의 생존을 걱정하다, 이제 50세부터 인생의 절반을 더 살아가야 한다. 새로운 지식·기술이 필요한 시대다. 특히 산업적 기술보다 인간과 삶의 관계를 이끌 문화가 중요하다. 기댈 곳은 인문학 아닐까?”

책 쓰고 연구하고 강의하는 멀티 플레이어, 그의 건강관리법은? 자택 뒤 개운산(서울 성북구 안암동) 산책이다. 철학자 한형조, 그가 “독서·산책 취미를 함께 즐기는 곳”이라며 직접 촬영한 개운산 산책길 설경.

우등생의 철학과 선택... 유교의 두 얼굴 다루기 집중할 터

한 교수는 동해안 바닷가 경북 영덕군 강구 출신이다. 부산과의 인연? 그는 '운명적'인 데가 있다고 했다. "홀어머님의 결단으로 부산으로 유학, 그 희생으로 경남고등학교를 졸업했다”는 자기소개 대로다.

중학 2학년 시절, 친구들이 '대처(大處)'로 떠나갔다. 어느 날, "나도 보내달라”고 어머니를 졸랐다. "동상이몽, 나는 친구가 그리워서 떼를 쓴 건데, 어머니는 공부가 그리도 하고싶은 줄 아셨다.”

사흘을 잠 못 자고 고민한 어머니는 점쟁이를 찾아갔다. 첫째, 보낼 건가, 말 건가? 답은 '보내야 한다'였다. "시골에 그대로 있으면 '판장(어판장) 지킴이'로 살 것”이라는 예언(?)과 함께. 둘째, 간다면 어디로 갈 것인가? 답은 '서쪽 아닌 남쪽으로'였다.

당시는 대처 유학 붐을 막으려, 온 가족 이사가 아닌 학생만의 전학을 금하던 시대였다. 어머니는 온 가솔을 이끌고 이사짐을 쌌다. 전학증을 손에 쥐고 나서, 이웃과 누나집에 맡겨둔 짐을 다시 찾아와 풀었다. 중3 한형조는 영도 부산남중으로 전학했다.

곧 고등학교 입학이 다가왔다. 당시 서울·부산은 추첨제, 대구 등지는 시험제였다. 그는 대구로 진학하려 했지만, 학교는 체력장 확인서를 떼 줄 수 없다고 거절했다. 나중에 많은 부산친구들이 외지로 진학했다는 소식을 듣고 억울(?)해 했지만... 결국 '뺑뺑이 1기'로 경남고에 진학했다. 대학 진학은 그의 '뜻대로' 였다. 학교와 어머님은 '공부 잘하는 한형조'가 법대로 갈 것을 종용했지만, 그는 인문대로 갈 것을 고집했다. 자기의지에 따른 선택, 공부하는 삶, 그는 만족한다.
 

그는 중·고교 시절을 보낸 부산생활을 새삼 회고한다, "운명적인 데가 있다고 한 것은 부산이 내가 원한 곳이 아니었기 때문”이라고. 용한(?) 점장이 덕분에, 그리고 대구행을 가로막은 남중학교 덕분에 그는 경남고에서, 하숙집을 오가며, 훌륭한 선생님들의 지도를 받으며, 원 없이, 아무런 디스트랙션 없이, 공부에 몰두할 수 있었다. 남들이 들으면 잘난 척이라 하겠지만, 그는 심심해서(?) 공부했다.

그때 입시에 지쳤으면 아직 공부를 붙들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예전 유학자들도 그랬다. 정치와 가정 관리에 바쁠 때는 시간을 내기 어렵다. 정치적 격변을 겪으며, 유배를 가서야, 비로소 학문에 집중할 수 있다. 부산은 그런 점에서 내게는 일종의 유배지였다..., 그래서 그는 되새긴다, "돌이켜 보니, 나를 키운 것은 절반이 부산이다. 나머지 절반은 당연 어머님이고....”

Q.동양철학, 앞으로, 언제까지, 어떤 부분을 더 연구할 계획인가?

"동·서양 철학을 같이 공부하고 있다. 지금 서양철학과 인문전통에 조금 더 힘쓰고 있는 단계다. 서양철학도 동양의 문제와 기법을 공유하고 있다. 생각보다 공유지반이 넓고 대화는 생산적이고 풍요롭다. 우리는 기술적 진보시대를 살며, 고대인은 소박하고 고리타분하다고 생각한다. 오해다. 고대인은 훨씬 지혜로웠다. '진리는 오래된 것이다. 다만 오류만이 새롭다'는 듀런트(W. Durant)의 경구를 기억해야 한다."

그는 앞으로 집중할 연구분야로 '유교의 두 얼굴'을 말했다. 복고적? 억압적 측면과 자유를 향한 심신의 훈련 측면이다. 권위적 유교와 인문적 유교라 부를 수도 있겠다. 이 대립은 유교만의 것이 아니라 모든 철학과 종교, 사회학과 정치학의 근본 대립이라고 덧붙였다. 성학십도, 성학집요 같은 심화된 매뉴얼 2-3권을 발간하는 것을 단기적 작업 주제로 잡고 있다. 유교심학의 정수를 보여주기 위해서다.

"벌써 환갑 즈음에, 수염·머리칼도 하얗고 게을러 내 공부를 심화시키지 못한 단계지만, 진짜 조금 알았다 싶을 때까지 공부를 다할 생각이다. 그 꿈을 못이뤄도 중도(中途) 단계에 이르긴 했지 않나?"   
 

"주변 평가 관심 없다, 기억·기념도 번거롭고..."

Q. 인문학을 통한 동양고전의 대중적 해설과 확산, 얻은 보람은 무엇이며, 남은 숙원은 무엇인가?

"보람이라니, 어색하다. 책은 내가 고전의 띠풀을 헤쳐나간 보고서라 할 만하다. 그 노트를 누가 읽었다고 '뿌듯하다'든가 이런 의식이 약하다. 내가 쓴 것은 이전의 누군가가 했고, 지금도 쓰여지고 있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이 없다 하지 않은가. 그럼에도 내가 쓴 책을 읽고 좋았다거나, 삶을 다시 성찰할 수 있었다는 얘기가 들리기도 한다. 썩 괜찮은 기분이다. 그게 보람이라면 보람이다."

Q. 책 쓰고 연구하고 강의하고, 멀티 플레이어의 역할에 체력 소모가 클 것 같다. 평소 건강은 어떻게 관리하나?  

"집 뒤 개운산(서울 성북구 안암동) 산책을 즐긴다. 산에서 독서하는 재미도 그저 그만이다. 취미가 독서·산책인가? 해동검도 경력도 있지만 지금은 그만 뒀다. 먹는 것도 '고급'이다. 가령, 된장찌개 같은... 깊은 맛? 양은 일정하지 않다. 몸은 음식을 안다. 몸에 전권을 주면 알아서 한다. 너무 많은 걱정·의도로 생각이 번잡하기보다, 깨끗하게, 적절히 섭취하면 건강을 충분히 유지할 수 있다."

Q. 앞으로, 어떤 사람으로 평가 받고 싶은가?

"그런 생각해 본 적 없다. 얼마 전 아들에게 딴에는 선심을 썼다. '나 죽고 나서 제사 지낼 필요 없다'고. 아들녀석은 바로 대꾸하더라, '누가 지내 드린다 했나요?' 내가 밥알을 튀길 뻔했다. '네가 진정 내 뜻을 잘 알고 있구나.' 기억하고 기념하는 것도 번거롭지 않나. 죽기 전에 가상 장례식이나 치르면 쿨하겠다 생각 중이다. 정리는 살아서 해야지, 보고 싶은 사람도 보고, 묵은 감정이 있으면 찾아와서 삿대질도 하고..."

한 교수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 한 구절을 기억했다. "언젠가 너는 세상을 잊을 것이다. 세상 또한 너를 잊을 것이다-"

그가 인터뷰 때 전해 준 책 한권을 살폈다. '인문학의 즐거움과 희망'(충남대 대전인문학포럼)이다. 그는 이 포럼에서 '유교 심학(心學), 혹은 오래된 삶의 기술'을 주제로 강연했다. 이 발제의 마지막 단원 제목은 '(마무리) 나 자신을 위해 산다'-위기지학(爲己之學; learning for myself)'이다.

결국 그는 유교의 공부법에 따라 스스로 마음의 훈련을 거듭하며, 인문학의 이름으로 그 심학을 심화·확산시켜 온 줏대 있는 '딸깍발이 선비'였다. 이 선비는 특유의 열정과 숙성한 경륜으로, 어디까지 '좀 아는 수준'의 공부를 성취하며, 언제쯤 나름의 행복을 느낄 것인가? 두루 참 궁금한 부분이다.

작성자
차용범 편집고문
작성일자
2014-12-24
자료출처
부산이라좋다
제호

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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