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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읽는 글그림 독특한 작품세계 구축

서예가 현재 김종문
한글 상형화 외길 … 한국 조형서예 창시

내용

참으로 간결하고 고아한 그림이다. 그러나 찬찬히 뜯어보면 그건 단순한 그림이 아니라 조형미 넘쳐나는 한글 글자다. 그림이면서 동시에 글자인 서예작품. 어쩌면 저토록 기발한 묵향의 세계가 있단 말인가. 사람들은 그림인줄 알았다가 글자인 것을 알고 그 기발함에 한번 무릎을 치고, 기막힌 어울림과 조형미, 세련된 붓놀림에 다시 감탄하며 작품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서예가 현재 김종문(玄齋 金鍾文 · 76)의 글그림 작품을 보노라면 상형문자인 한자만 이미지를 담고 있다는 생각은 버려야 할 것 같다. 그는 한글 조형서예의 세계를 열고, 그 세계에 일가를 구축했다. 그의 작품은 '보는 글씨, 읽는 글자'요, 글그림이자, 그림글이다. 소리글인 한글을 형상화, 조형화하는 그만의 독특한 작품세계를 깊이 있게 펼쳐 보이고 있는 것이다.

'보는 글씨, 읽는 그림'의 대가
그는 '학'이라는 글자를 학이 외다리로 고고하게 서있는 형상으로 그려낸다. 자음 'ㅎ'은 학의 부리와 눈으로 형상화하고, 모음 'ㅏ'는 학의 몸통과 날개 죽지로, 'ㄱ'은 긴 다리로 표현해낸다. 기막힌 어울림이다.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학 그림에 먼저 감탄하고, 그 학 그림이 한글 '학'자를 써놓은 것이라는 걸 알아채고 한번 더 놀라게 되는 것이다.
'웃음' 글자는 남자와 여자가 다정하게 손을 잡은 형상으로 그려낸다. '웃'의 'ㅇ'은 사람의 머리로, 모음 'ㅜ'는 양팔로, 'ㅅ'은 몸통이면서 두 다리가 된다. 한글학회지 표지에 실리면서 전국적으로 이름을 알린 작품이 '웃음'이다. 남녀가 손을 잡고 빚어내는 웃음의 이미지는 만남의 기쁨, 이해와 화해의 안정감, 사랑과 행복의 기원 같은 다채로운 의미들로 변주되면서 보는 이의 무릎을 치게 한다. 사랑하는 남녀가 다정하게 손을 잡으면 어찌 행복한 웃음이 묻어나지 않을 것인가.

10년만의 개인전 7일부터 타워갤러리서
대한민국 조형서예의 창시자로 불리는 그가 10년 만에 '귀한' 개인전을 연다. 부산 사상구 낙동대로 국제식품 본사 4층 타워갤러리에서 10월 7~16일까지 열흘간. 지난했던 형상화의 결실을 60여 점의 작품으로 선뵌다. 귀한 개인전이라는 말은 그의 겸손함에서 비롯한다. 그는 57년째 서화(書畵)의 매력에 빠져 묵향의 예술혼을 불살라오고 있는 부산의 예인이자, 결 곧은 선비로 통한다. 젊은 시절 국전작가의 명성을 얻을 기회가 여러 차례 있었지만 번번이 고사했다. 아는 것이 있어도 그냥 입에 머금고만 있을 뿐 겉으로 내뱉거나 잘 드러내지 않는 겸양의 성품이 그를 세상 밖에 나서지 않고 조용히 묻혀 사는 선비, 처사(處士)의 길을 걷도록 한 것이다.
현재 선생의 겸손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그래서 그는 서력 57년에 단 3차례 밖에 개인전을 열지 않았다. 자기 작품에 새로운 게 없으니, 비슷한 것으로 재탕 삼탕하는 전시회를 열 까닭이 없다는 단호함이다. 1984년 광복동 로타리화랑에서 첫 작품전을 가진 이후 7년만인 1991년 중구 동광동 타워갤러리에서 두 번째 개인전을, 그리고 다시 13년만인 지난 2004년 세 번째 전시회를 타워갤러리에서 열었다. 그리고 올해 장소를 옮긴 타워갤러리에서 10년 만에 네번째 귀한 개인전을 갖는다. 참으로 오랜 세월을 묵히고 묵혀 세상에 내놓는 것이다.

형상화한 한글 조형서예 50여개
그는 이번 작품들에 간혹 색채를 썼다. 10년 만의 변화다. 오방색을 사용해 온화함은 더 온화하게, 냉담함은 더 냉담하게 강약을 줬다. 이전에 표현한 작품들은 끊임없는 실험을 거쳐 틀형을 잡고, 완성도와 원숙미를 끌어올렸다. 끝없이 고민하고, 형상화하고, 아이디어를 보탠 결실이다. 선 하나하나, 획 하나하나에서 묻어나는 운필의 강약, 선의 맛과 멋, 먹의 짙고 옅은 농담(濃淡), 굵고 가는 후박(厚薄)에다 그림이라는 창작요소까지 조화를 이룬 작품들이다. 묵향이 훅 풍기는 한지 글그림에 살짝살짝 색을 입히니 묵은 것과 새 것의 조화가 절묘하다.
"한글은 상형이 다 되는 것이 아닙니다. 친근감을 주고, 신비로움을 줄 수 있는 한글, 가까이 하고 싶은 말이거나, 가슴에 품고 싶은 대상을 제 작품의 소재로 삼습니다. 마음은 있어도 그런 한글을 상형화하기란 어지간한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렇게 발견하고 표현해낸 조형서예 글자는 학, 섬, 춤, 어머니, 아버지, 웃음, 집, 부산포, 탑, 사랑, 부처님 등 50여개를 헤아린다. 현재는 자신의 작품세계를 이야기할 때 여느 서예가들처럼 '글씨를 쓴다'는 말 대신 '글자를 발견한다'는 말을 곧잘 한다. 우리나라 조형서예의 창시자다운 표현이다.

한글 조형서예의 세계를 연 서예가 김종문 씨는 소리글인 한글을 형상화, 조형화하는 그만의 독특한 작품세계를 깊이 있게 펼쳐 보이고 있다.

서예대가 청남 오제봉 선생 수제자
현재가 서예와 인연을 맺은 것은 1957년 경남상고 3학년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학교에 유명한 서예 선생이 출강한다는 말을 듣고 서예반에 들었다. 그 유명한 분이 바로 당대 부산 서예의 대명사 청남 오제봉(菁南 吳濟峯 · 1908~1991)이었다. 청남 문하에 든 현재는 이후 부산사범대학을 졸업하고 동아대 미술과로 진학했고, 청남 선생 역시 이 대학에 출강하면서 사제간의 정을 더 다져갔다.
사제의 인연은 평생 이어져 현재는 청남 선생이 타계할 때까지 제자로서, 한 길을 걷는 동문으로서 선생을 모시고 교감을 나눴다. 미대 재학시절 당대 부산의 최고 한국화가였던 청초 이석우 선생은 그에게 한국화를 권했지만 그는 결국 서예의 길을 택했다.
청남 선생은 현재의 두 번째 작품전 도록 축하글에서 각별한 애정을 표현했다. '글씨는 재간도 중요하지만 그 사람의 인품이 더욱 소중하다. 내가 오늘날까지 현재를 지켜보아 왔고 곁사람들 말까지 들어보건대 그는 한결같은 선비다운 사람이다. 그는 정직하고 온후하면서도 바위처럼 과묵하고, 근면 성실하고, 곧고 굳은 사람으로 선비정신이 오롯하게 배어있음을 나는 잘 알고 있다'고 격려한 것이다.
청남 선생은 또한 '현재가 미술을 전공하여 미의 질서를 알고 형체의 단순 표현 능력과 오랜 경묵으로 다듬어진 선질이 어우러져 창작 표현한 학, 어머니, 새, 웃음 따위 한글의 단순부호를 구도가 완벽하게 형상화한 것은 현재가 아니고서는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말하자면 현재의 특허화되어 다른 이가 비슷하게 표현해도 현재의 모방에 지나지 않으며, 현재가 표현한 작품이라야 제 빛을 발하게 된다'고 적었다.

한글 조형서예 그만의 '특허물'
"청남 선생님 밑에서 중국과 한국의 서예 대가들이 쓴 작품을 베껴쓰기(임서 · 臨書) 하다 어느 날 우리 것을 찾자, 내 것을 찾자는 생각으로 마음이 움직였습니다." 남의 문자를 흉내만 낼 것이 아니라 우리 문자인 한글에 자신의 표현을 해 보자고 마음을 먹은 것. '흉내는 생명없는 글씨꼴일 따름이다. 정형화된 틀에서 벗어나지 않고서는 새로운 세계를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다. 한문 전 · 예서의 선줄을 한글에 접목시켜 나갔다. 1969년부터의 일이다.
"한글을 한자의 전서 · 예서체로 많이 써 보았습니다. 그게 재미있었습니다. 부산미협 전시회에서 전 · 예서체 느낌으로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냈는데, 그게 큰 관심을 끌었습니다. 이후 한글의 조형화에 관심을 쏟았지요."
한 때는 옳게 잠을 잘 수조차 없었다. 잠자리에 들었다가도 글자가 떠오르면 벌떡 일어나 먹을 갈고 붓을 들었다. 그러다보면 날이 밝아오기 일쑤였다. 그는 그렇게 초안을 잡은 두툼한 습작노트 겸 아이디어 노트 대여섯 권을 지금도 애지중지 지니고 있다.

아버지·부산포·섬.

부산 주요 표지석 · 현판들 그의 필체
부산에서 현재의 한글체 글씨를 만나기는 어렵지 않다. 영락공원의 가장 눈길이 잘 가는 벽면에는 '어버이 살아실제 섬기기란 다하여라'는 송강 정철의 훈민가가 현재의 필치로 걸려 있다. 부산박물관 현판, 백산기념관 표지석, 중앙공원, 부산역앞, 요트경기장 기념탑, 암남공원 표지석, 암남공원과 대신공원 안에 있는 시비들, 송상현광장의 동래부순절도 제명, 부산시민의 종 등에서 그의 글씨를 만날 수 있다.
그는 부산 동중학교에서 교사-교감-교장을 거쳐 정년했다. 지금도 그는 일주일에 5일 정도 서실에 나간다. 그의 작업실은 송도 바다가 한 눈에 들어오는 바닷가 오피스텔. '현재조형서예연구실'이다. 송도 바다를 내려다보며 사색을 하고, 책을 읽고, 먹을 간다. 그리고 글자를 생각한다. 길을 걸을 때도, 차안에서도 그림체 글자를 떠올린다. 시인이 시상을 그리듯, 조형글자에 골몰한다. 그러다 문득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퍼뜩 습작노트에 옮긴다. 천상 서예인이요, 영원한 프로다.

 

글 박재관 편집주관

작성자
부산이야기 2014년 10월호
작성일자
2014-10-20
자료출처
부산이라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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