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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내믹 부산 이야기리포트

시인 한찬식을 기리는 동삼동 <한찬식 시비>

내용

부산시 영도구 동삼동 177-11 소공원에는 시인 한찬식을 기리는 한찬식 시비가 있습니다. 부산시인협회에서 1999년에 설치한 가로 2.0m, 세로 2.4m의 시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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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영도구 동삼동 소공원에 자리한 한찬식 시비 전경.


6.25 한국전쟁 때에 월남 이후 영도에서 삶을 마감할 때까지 20여 년 간을 영도에서 교편생활, 문학 활동을 펼치며 부산지역 문학발전에 기여한 한찬식 시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건립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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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찬식 시비 앞을 지나는 행인.


한찬식 시인은 192121일 함경남도 함주군 상기천면 죽리에서 청주 한씨 유원 선생의 막내 외동아들로 출생하여 1940년 함남공립중학교를 졸업하였습니다. 이어 1941년 일본 오모리(大森) 회화연구원 1년을 수료하고, 1943년 일본 메이지(明治)대학 상과를 중퇴했습니다. 1946년 반동지주로 몰려 월남하여 한때 UN군 및 한국군 문관으로 종군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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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찬식 시비가 있는 소공원 전경.


시단 경력은 1956년 이후 시동인지 운석을 비롯하여, 시영토」「서정시」「서기동인에 참가, 주로 편집 일을 맡았고 1958자유문학지에 시[섭리], [하류(下流)], [물무늬] 등이 천료되었습니다. 개인시집으로는낙엽일기(1974유고시집다시 섬에서(1978)가 있고 1999년 한찬식 전집 간행위원회에서 한찬식 전집을 상재한 바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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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공원의 장승과 솟대.


()시인은 월남한 후에 함남고등학교에서 잠시 교편을 잡은 바 있으며, 영도에 정착한 후 대양중학교에서 미술선생으로 있으면서 세상을 뜰 때까지 근 20년을 영도 청학동에서 생활하였습니다.

한편 부산지역 문학 발전을 위하여 한국문협 부산지부 시분과 위원장을 맡은 바 있습니다. 그의 시세계는 고향 상실감과 시 []에서 보여주는 존재의 아픔을 극복하려는 의지와 자연 순리를 믿는 시 정신을 지니고 있습니다. 시인을 기리는 유족들과 부산의 시인들이 뜻을 모아 이 시비를 건립해 놓았습니다.

 

           늪

 

늪이 있다./하늘이 있다./별들이 있다./

곧은 지평선이/땅거미를 더불어/먼 저편 아슴하니 나앉을 때/

나는 늪이 되어 괴어 간다./영원히 수줍은 국외자(局外者)일까./

절박한 선해(船海)에선/별을 헤이지 못하듯/나는 나를 계산(計算)치 않고/

가장 아픈 밑바닥에서/

스스로의 인과(因果)를 시험하면서/멸(減)하지 않을/의지(意志)의 하늘을/

그 위에 포갠 다음// / 아침에 눈을 든다.

작성자
박정도
작성일자
2026-07-05
자료출처
부산이라좋다
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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