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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내믹 부산 이야기리포트

들꽃피어 불꽃처럼 살다간 ‘독립운동가3남매‘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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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시동래구칠산동 동래로에 위치한 항일운동가 3남매가 태어난 곳을 필자가 찾았다. 주택가에 있는 한옥집 앞 작은 공간은 이집에서 3남매가 독립운동가로 자라난 집이다. 대문은 활짝 열려있고 마당 오른쪽 끄트머리에 우물터가 있지만 물은 없고 당시의 우물터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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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버지 박용한과 어머니 김맹련 사이 5남매 중 장남 박문희의사는 1925년 동래청년연맹집행위원으로 활동하였으며, 1932년 8월 중국 남경의 군관학교훈련생으로 모집요청을 받고 국내로 들어와서 경상도와 경기도 일대에서 훈련생을 모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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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남 박문호의사는 1928년 경남에서 동래청년동맹 동래노동조합 간부로 활동하고 이듬해 중국으로 건너가 조선공산당재건동맹에 가입하여 상해, 천진, 북평일대에서 활동하였으며, 1933년 10월 조선공산당재건사건으로 체포되어 취조 중 1929년 9월경 정해로, 로부터 군자금을 받아낸 사실 등이 확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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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로 태어난 박차정의사는 일제강점기 때, 조선 혁명 군사정치 간부학교 교관, 조선의용대 부녀복무단장 등을 역임하였으며, 근우회, 의열단 등에서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한 독립운동가로 활동을 하였다. 오빠 박문희의 영향으로 어려서부터 강한 민족의식을 형성하게 되었고, 이를 바탕으로 1924년 조선소녀동맹 동래지부에서 활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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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문 양옆 오른쪽 주련에 ‘박문희박문호 의사생가’, 왼쪽 주련에 ‘박차정 의사생가’라고 붙였다. 그리고 부산미래유산 박차정 생가 부산광역시라고 한글과 영문으로 명패를 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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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한 한옥기와집 방으로 들어가니 중앙에는 3남매의 의사활동을 소개하는 영상을 틀어 놓았다. 오른쪽에는 평소 의사 3남매가 쓰던 다듬이돌, 방망이, 인두와 가위, 작은 손 빗자루 곰방대와 손저울이 질서 있게 정돈되어 놓았고 태극기도 함께 배치를 하였다. 왼쪽 작은 책상과 책꽂이에는 족보와 평소 즐려 읽었을 서적도 함께 놓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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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 상단에는 국충가효國忠家孝라는 액자를 걸었다. 

국충가효라는 뜻은 ‘나라에 충성하고 집안에 효도하라, 라는 말입니다. 

작성자
조분자
작성일자
2026-03-20
자료출처
부산이라좋다
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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