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 전 일본의 만행 ‘우암 소막마을’ 스토리
- 내용
부산시남구 우암동에 위치한 소막마을은 일제강점기 일본이 우리나라 농우(농사짓는 소)를 수탈하기 위한 사전조치로 소의 건강 유.무룰 위한 ‘우역검역소’라는 소막사를 설치하여 둔 곳이다. 그 후 한국전쟁의 슬픈 시절 빈 막사에서 하루하루 버티었던 피란민의 애환이 묻어나는 곳이며, 2018년 5월 8일 대한민국의 국가등록문화재 제715호로 지정을 하였다.
1909년부터 일제는 우암동에 위치한 우역검역소에서 검사를 마친 소를 만주나 일본 본토로 수출을 하였다. 이 수출하기 위하여 임시 수용한 소막사를 20여동을 지어서 수출용 소의 대기소 역할을 하였던 곳이다.
그리고 한국전쟁 당시 북한이 낙동강전선까지 치고 내려오는 바람에 부산은 수많은 피난민들이 갈 곳이 없어서 소막사를 주거공간으로 개조를 하여 여러 세대가 살 수 있는 택지로 변형시켰던 곳을 오늘날 역사적 자료를 남기기 위해 소막마을을 정비하여 오늘에 이르는 곳입니다.
한국전쟁기 피란수도 부산의 유산 소막마을은 산업화시기에는 노동자들의 주거지로서 역할을 하였다. 현대는 그때의 가치를 재조명하여 2022년 12월 15일 유네스코 세계유산 잠정목록, 한국전쟁기, 피란수도, 부산의 유산 등 9곳 중 한곳입니다.
소막마을은 근대기 우리나라 민중의 삶 근원이었던 소가 우암동을 통해 수탈된 역사적 사실을 토대로 마을에 소가 돌아온 것으로 상처의 자유, 지역의 재활성화가 이루어져 마을의 이곳저곳에 기억의 흔적을 남기고 있습니다.
수출소의 검역소 엣 터1909년부터 1945년 해방 될 때까지 23.725평의 부지에 4.600평 규모의 축시시설을 갖추고 한 번에 약2.460마리의 소를 검역할 수 있는 검역소가 있던 자리입니다. 당시의 행정구역은 경상남도 동래군 서면 우암리였으며, 우리나라에 검역소가 8곳에 있었으며, 그 중 가장규모가 큰 곳으로 소는 10일에서 15일 동안 검역을 하여서 일본이나 만주로 수출을 하였다.
우암동 소막마을의 주택이 있었던 곳입니다.당시 우암동(당시적기. 모래구찌)포구에서 소를 배에 옮기는 모습
되돌아오지 못할 다리를 건너는 소들의 모습(당시 평안남도진남포)
- 작성자
- 황복원
- 작성일자
- 2026-03-13
- 자료출처
- 부산이라좋다
- 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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