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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내믹 부산 이야기리포트

항일독립운동의 성지 <기장읍성>

기장시장 만세시위 준비지 ‘기장읍성 장군청’

내용

3월은 독립운동의 달이자 만물이 소생하는 달이다. 일제가 강탈한 나라를 되찾고자 떨치고 일어난 3.1운동 104주년을 맞아, 독립투쟁에 나섰던 지사들의 애국정신을 되새겨보고자 기장지역의 항일독립운동의 성지인 기장읍성 일원을 3월 1일 08:00에 찾았다. 기장읍성, 장관청, 기장공덕비군, 기장항일운동기념탑등을 차례로 소개하고자 한다.



기장읍성2 

기장읍성터 주요모음


기장읍성터 전경 

기장읍성터 원경  

 

기장읍성(機張邑成)은 부산광역시 기장군 기장읍에 있는 읍이다. 1996년 5월 25일 부산광역시 기념물 제40호로 지정되었다. 읍성이란 군이나 현의 주민을 보호하고, 군사적·행정적인 기능을 함께 하는 성을 말한다. 기장읍성은 북쪽의 낮은 산과 남쪽의 평지에 걸쳐 만들어졌다.


기장읍성00

성이 3단으로 축조되어 있음


기장읍성표지00
 기장읍성터 주요 모음 

 

기장 읍성은 고려 말에서 조선 초 왜구의 빈번한 침략으로부터 기장현의 각종 시설과 백성을 보호하기 위하여 쌓은 성이다. 기장읍 동부리서부리대라리 일대에 걸쳐 있으며, 둘레는 1km  정도로, 높이 3m 정도의 성벽이 남아있다.


성벽00

기장읍성터(공덕비 뒷편)


전체 방향 안내도

기장읍성 안내판

읍성 내부에는 수령의 집무처인 동헌(東軒)과 관아 건물, 누각(樓閣), 창고, 무기고 등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에 성벽과 건물이 철거되고 이후 주택들이 들어서면서 대부분 사라졌다. 현재는 기장현 소속 군인들을 지휘하던 장관들의 집무처인 장관청(將官廳)만 원래의 자리에 복원하였고 성터만 일부 남아있다.


성벽0

기장읍성 안내도

기장 읍성은 고려 시대의 성곽 축조 기법을 유지하면서 조선 시대 초기 읍성과 축조 기법의 변화 과정을 보여주는 중요한 역사·문화 자산으로 평가받고 있다.

장관청은 전국적으로도 많지 않은 조선 시대 군관용 관아 건물이다.


장관청 안내도

기장 장관청 표지판


장관청 총괄

장관청 본관, 명정의숙, 회화나무 안내표지판

2013년부터 2014년에 거쳐 100% 원형 복원을 끝낸 장관청은 조선 중기 건물로 건축사적으로도 중요하며 문화재적 가치도 높다고 한다.

 

장관청 원경1

기장장관청 본관, 당집, 회화나무

 

장관청

기장장관청 집무실

 

회화나무

기장장관청 입구

원래 앞면 5·옆면 2칸이었지만 현재는 앞면 8칸·옆면 2칸 규모이다보수가 많이 되어 원형이 손상되기는 했지만 조선 중기의 관아건축의 양식을 살펴볼 수 있어 문화재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2015년 3월 18일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 제153호로 지정되었다.


장관청 원경

기장 장관청 전경

또한 1919년 4월 5일  기장장터 만세시위 당시 태극기와 독립선언서를 만들었던 명정의숙이 읍성 장관청에 있었다. 명정의숙은 기장의 유지들이 1910년 설립한 민족학교로서 1913년 기장 장관청으로 이전하여 기장지역 여성교육을 담당하였다.

 

명정의숙

명정의숙 안내표지판

이 장관청 앞에 커다란 회화나무가 있다.


회화나무 안내판

기장 동부리 회화나무 안내판

 

회화나무는 우리 선조들이 최고의 길상목(吉祥木)으로 손꼽아 온 나무로 집안에 심으면 가문이 번창하고 큰 학자나 인물이 나며, 잡귀신이 감히 범접을 못하고 좋은 기운이 모여든다고 하여 우리 선조들은 이 나무를 매우 귀하고 신성하게 여겨 함부로 아무 곳에나 심지 않았다.이 회화나무는 기장읍성 내 장관청의 입구에 위치해 있다. 높이20m, 수관이 사방 18m에 이르며 수령은 기장현청이 교리에서 옮겨올 때 기념식수한 것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회화나무

기장동부리 회화나무


동부리 회화나무는 기장의 역사, 장관청의 역사와 관련성이 있고, 동제의 당집 및 서낭당으로 사용되었으며, 나무 자체의 인문학적 특성, 노거수로서의 식물학적 가치 등 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가 매우 높다고 한다.

   공덕비군 안내도

기장공덕비군 안내표지판


기장공덕비군은 기장현에 부임한 관찰사와 어사, 현감, 군수들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석들로 전국에서 가장 많은 공덕비가 모여 있다고 한다


공덕비군3


기장읍성 동문 공덕비군 


용소골 장승배기와 남문 밖 등에 세워진 각종 비석이 도시 확장과 새마을사업 등으로 유실될 것을 우려한 향토사학자들의 노력으로 1972년 기장초등학교 정문 왼쪽에 모아 보존했는데 2004년 도로확장을 하면서 동문 앞 현 장소로 옮겼다고 한다. 


공덕비군 

기장공덕비군 주요 모음


관찰사비 7기비, 수군절도사 비1기, 어사비 1기, 현감비 14기, 군수비 5기, 아전비 2기, 객사건성비 1기, 교량개축 등 2기 , 기타 3기 등 36기 등  공덕비가 있는데 전국에서 유일하게 철 비석도 남아있다. 비석에 쓰인 글씨가 많이 마모되었고 오히려 쇠에 새긴 글이 그래도 알아볼 만하다. 왜 돌이 아닌 철로 비석을 만들었을까 궁금했는데 녹이 슬었지만, 그래도 글씨가 보인다.  


공덕비군 안내도0

기장공덕비 안내 설명도



공덕비군4


기장공덕비군 1 


공덕비군2

기장공덕비군2


그중에서 어사비의 이름이 낯익다. 물론 비석의 글씨는 마모되어 알아볼 수 없고 그 앞에 있는 설명 판을 보고 알게 되었지만


어사 이도재 비 

어사 이도재 생사단 공덕비


죽성리 앞바다에 있는 바위 어사암의 유래를 들으면서 들었던 이름 어사 이도재 생사단이라고 쓰인 공덕비이다. 조선 시대 고종 20년 양곡을 실은 배가 마산포로 가다가 기장 앞바다에서 침몰했고 굶주리던 주민들은 물에 빠진 곡식을 건져 먹는다. 당시 조정에서 어사를 파견해 진상을 조사할 만큼 큰 사건이었다. 어사로 파견된 이도재는 주민들의 딱한 사정을 듣고 죽을 위기에 처한 주민을 살린다. 지금도 '이도재'라는 한문 글자와 당시 주민을 대표해 이 어사를 설득한 기생 월매의 이름이 어사암에 남아있다.

 

부산 기장군 기장읍 차성동로88-8 새마을공원 내에 위치한 기장 항일운동 기념탑은 항일운동에 헌신하다 순국한 지역주민들의 영령을 추모하고 희생정신을 기리며 선열들의 자랑스런 항일독립운동 정신을 후대에 전하고자 2011년에 군비3억원을 들여 건립하였다고 한다.찾아간 날은 제104주년 3.1절 기념식을 이곳에서 기장군 주관으로 개최하는데 08:00부터 준비에 바빴다.


항일운동 기념탑

기장항일운동 기념탐(새마을 공원내) 

 

과거 없는 현재는 없고, 현재 없는 미래는 없다. 조상들의 호국 정신을 잊지 않고 계승하여, 후대에 전하는 것은 지금 우리들의 사명이자 의무이다. 3월을 맞아 가까운 독립운동 유적지(구포시장, 동래시장, 기장시장), 기장읍성, 장관청, 항일운동 기념탑 등을 한번 찾아 호국선열 들을 넋을 기려보는 것도 우리 삶에 긍정적인 활력소가 되지 않을까 한다.

 

김동균(金東均)

작성자
김동균
작성일자
2023-03-01
자료출처
부산이라좋다
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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