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에 얽힌 근대역사의 흔적들이 있는 소막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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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에 얽힌 근대역사의 흔적들이 있는 소막마을
국제시장 영화처럼 1950년 12월 함경도 흥남을 떠나 부산에 도착한 피난민들은 추위를 피할 수 있으면, 아무 곳이나 들어가 살았다. 피란민들은 일제가 조선의 소를 수탈하기 위해 만든 부산항 근처 우암동 검역소에 둥지를 틀었다. 바로 부산시 남구 우암동 189번지에 있는 ‘소막 마을’이다. 한 사람이 겨우 지나다닐 만한 좁은 골목 사이로 낡은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소막마을은 소 막사에 사람들이 들어가 산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 우임동 소막마을과 내호냉면 이정표
1909년에 설립된 ‘우암동 검역소’는 ‘이출우 검역소’라 불렸다. 1909년 처음엔 5개 동의 소막사를 지었다가 나중에 19개 동으로 확장되었다. 소 막사의 크기는 폭 10m, 길이 40m 내외로 각 막사에 50~60마리 소가 수용되었다. 해방이 되고 더 이상 우리 소가 반출되지 않게 되자 소막사는 텅 비게 되었다. 그후 일본에서 귀환한 동포들이 소 막사에 들어와 살았다가 6·25 당시 흥남철수 이후 가장 많은 피란민들이 들어와 살았다. 어릴 적 우암동을 ‘적기’라 불렀는데 ‘적기’는 우암리의 일본식 이름이다. 일본인들이 바다에서 우암리를 바라보면 붉은 색의 산이 보인다고 해서 ‘아카사키’라고 부른 것이 마을의 유래다.
▲ 일제강점기 우암동 검역소 현장 모습
▲ 소막마을 소막사 모습
소막사 한 동에는 40가구 정도가 들어갔는데 한 가구당 허용된 공간은 4평 남짓이다. 마땅히 경계가 없어서 합판을 이용해 임시로 가구를 분리했다. 화가 매향 이중섭도 소막사 수용소에서 살았단다. 곽경택 감독의 영화 ‘친구’에서 살인 혐의로 법정에 선 준석(유오성 분)은 본적을 말하라는 판사의 말에 "부산시 남구 우암동 189번지"라고 대답할 정도다. 소막마을 입구에 있는 ‘내호냉면’은 1952년에 개업해 60년 이상 자리를 지키고 있는 부산 밀면의 출발점이다. 정한금 할머니 고향인 ‘내호리’를 딴 ‘내호냉면’은 밀면의 성지인 부산 밀면 최고의 식당이다. 할머니는 메밀대신 당시 구호물자인 밀가루에 감자가루를 섞어 면을 뽑은 것이 밀면의 시초다.
▲ 소막마을 우암동 마실길 안내도
아직 소막마을엔 600여 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장고개와 동항성당 주변 안쪽엔 대단지 아파트들이 들어서고 있다. 이 마을은 2015년 ‘문화복합형 주거환경관리사업’ 사업대상지에 선정되어 주거환경 개선과 소 막사를 복원하여 부산의 피난 역사의 한 부분을 보여주고 있다.
- 작성자
- 이정례
- 작성일자
- 2022-01-11
- 자료출처
- 부산이라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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