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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내믹 부산 이야기리포트

600년 역사품은 <기장읍성(機張邑城)>

조선시대 군사·행정의 중심지 <기장읍성>

내용

얼마전 기장읍성 일원에서 「2026 기장읍성축제」가 열렸다.  처음 열린 축제이므로 기장읍성을 보다 친숙하게 알리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기장읍성터 표지

기장읍성터 성곽

 

기장읍성은 조선시대 세종 7년인 1425년에 축조되어 약 600년의 역사를 간직한 기장의 대표적인 문화유적지로, 그동안 발굴조사와 문헌, 고지도 등을 통해 읍성의 범위와 성벽, 주요건물지의 위치 등 역사적 실체가 점차 확인되고 있으며, 과거 기장지역의 행정과 생활의 중심공간으로서 가치도 재조명되고 있다.


기장읍성 전경 00

기장읍성 전경 <기장군청 누리집 퍼옴>


기장읍성 발굴조사
기장읍성 발굴조사 현장 <기장군청 누리집 퍼옴>


읍성이란 군이나 현의 주민을 보호하고, 군사적·행정적인 기능을 함께 하며, 왜구의 빈번한 침략으로부터 기장현의 각종 시설과 백성을 보호하기 위하여 쌓은 성이다. 기장읍성은 북쪽의 낮은 산과 남쪽의 평지에 걸쳐 만들어졌다.


기장읍성터0

기장읍성터


기장읍성터
일광산 아래 기장장읍성터


대마도와 가까운 동남해안에 자리한 기장읍성은 삼국시대 이래 왜구의 침입에 대응하기 위한 해안 방어 거점으로 축조됐다. 성곽둘레만 1천 38m에 달하며  높이는 4m이다. 평지의 성벽은 바깥과 안쪽 모두 돌로 쌓았으며, 지형이 높은 바깥쪽 성벽은 돌로 쌓았고 안쪽은 흙과 잡석으로 채웠다. 동·서·남문에는 성문을 보호하기 위한 옹성을 둘렀으며, 성 안에는 관장이 집무를 보던 동헌을 비롯하여 향사당, 객사들이 있고, 성 밖에는 망풍정, 망루대가 있었으나 현재는 장관청만 남아있다.


읍성 복원 조감도0
기장읍성 복원 조감도


기장읍성은 단순한 '군사시설'이 아니었다. 조선시대 읍성에는 성 안에는 지방 행정을 담당하는 관아와 군사시설 등도 있었다.

이 점 때문에 기장읍성을 이해할 때는 성벽만 보는 것보다 성 안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생활하고 행정이 이루어졌는지까지 함께 살펴보는 것도 중요하다.

기장의 3.1운동과 연결되는 특히 중요한 장소가 바로 기장읍성 장관청이다. 당시 기장 지역의 청년들은 독립운동을 준비했다. 기장문화원 자료에 따르면 서울에서 활동하던 김수룡이 기장 지역 청년들에게 독립선언서를 전달했고, 김도엽·권철암·구수암·최기복·이택규·박공표·오기원 등이 이를 바탕으로 독립운동을 준비했다.


장관청01
태극기와 독립선언서 만든 기장읍성 <장관청>(명정의숙)


독립선언서를 등사하고 만세운동을 준비하는 활동이 옛 장관청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즉, 수백 년 전에는 기장의 군사와 행정을 담당했던 공간이었지만, 약 500년 뒤에는 일제강점기에 독립을 외치는 사람들의 활동 공간이 된 것이다.


표지0
고지도와 해자
고지도와 해자


기장의 항일만세운동은 1919년 4월 5일 기장 장터에서 크게 전개됐다. 기장문화원 자료에 따르면 독립운동을 준비한 청년들은 옛 장관청을 중심으로 독립선언서를 등사했고, 태극기와 '조선독립만세' 등의 깃발을 만들었다. 그리고 기장 장터에서 독립선언서를 나누어 주며 만세운동을 벌였다고 한다.


읍성터 모음
기장읍성터 여러 모습


당시 명정의숙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명정의숙은 1910년 기장 지역 유지들이 세운 민족교육기관이었고, 1919년 4월 5일  만세운동을 준비하면서 독립선언서 약 400장을 인쇄하고 태극기와 대형 깃발도 제작했다. 당시 학교는 현재의 장관청 자리에  있었다.

 

독립운동의 산실이었던 기장읍성은 단순히 "600년 된 돌로 만든 성"이 아니라 왜구의 침입을 막으려 했던 조선의 국방 역사와 세종 시대 지방 행정과 성곽 건설의 역사, 그리고 일제강점기에 독립을 되찾으려 했던 기장 사람들의 역사를 함께 품고 있는 곳이다.

발굴현장 모음

기장읍성터 발굴현장


또 기장읍성은 왜구의 침입에 대비하기 위한 기장의 방어·행정 중심지였으며, 수백 년 뒤에는 장관청과 명정의숙 등을 통해 기장 지역의 3.1운동과 독립운동의 역사와도 연결되는 매우 중요한 역사적 공간이었다. 특히 2025년 발굴에서 1425년경 최초 축성 당시의 성벽과 해자가 실제로 확인되면서, 기장읍성의 600년 역사를 보여주는 고고학적 근거가 더욱 분명해졌다.


읍성 성벽0
은행나무와 성곽 <기장읍성 >

 

조선 전기 동남해안으로 침입한 왜구에 대응하기 위해 축조되었고 1996년 5월 부산시 문화유산 기념물 제40호로 지정된 600년 역사의 기장읍성, 이제 국가유산으로 조속히 지정될 그날을 기대하며, 과거의 역사만을 바라보는 공간이 아니라, 주민과 관광객이 편안하게 머물고 즐길 수 있는 장소로 기억되도록 역사적 가치는 충실히 보존하면서도 일상 속에서 누구나 찾을 수 있는 기장의 대표 역사문화공간으로 잘 보존되고 관리되기를 시민의 한사람으로서 기대해 본다.


남문 옹성

남문옹성 안내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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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장읍성 터
 

기장읍성터14
기장읍성터 

 

대중교통은 시외버스는 기장시장(해운대↔울산노선) 하차 → 도보(5분), 시내버스는 33번, 181번, 183번, 1003번 → 기장시장 하차 → 도보(5분), 승용차는 국도14호선(울산↔반송) → 기장읍성, 기차는 동해선 기장역 하차 → 도보(10분) 걸리는 거리이다.

 

김동균(金東均)

작성자
김동균
작성일자
2026-10-20
자료출처
부산이라좋다
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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