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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내믹 부산 제202604호 기획연재

동래에서 돋아난 문화의 새순, 부산 전역을 연결하고 흐르다

2011년 동래 수안역 인근서 출발…매주 연 작은 음악회 ‘600회’
문화예술 어렵고 비싸다는 편견…15년 동안 허물어온 원더풀 여정

내용

공연이 끝난 뒤에도 한동안 객석은 쉽게 비워지지 않았다. 관객들은 자리를 뜨지 못한 채, 조금 전까지 공기를 채우고 있던 소리의 잔향을 천천히 곱씹고 있었다. 스페이스움(SPACE UM) 599회 공연이 막을 내린 밤이었다. 객석에는 아직 여운이 남아 있었다. 600회 작은 음악회를 앞둔 김은숙 스페이스움 대표를 무대 뒤편에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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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작은 음악회가 이어지는 스페이스움은 2011년 동래 수안역 인근에 문을 열었다.


∎김은숙 스페이스움 대표

매주 작은 음악회가 이어지는 스페이스움은 2011년, 동래 수안역 인근에 문을 열었다. 스페이스움이 자리 잡기 전까지 동래는 문화적으로 주변부에 가까웠다. 미술 전시나 음악 공연을 보기 위해서 동부산권으로 나가야 한다는 인식이 자연스러웠다.


직장인 시절 김 대표는 퇴근 후 공연을 보러 부산문화회관을 찾곤 했지만, 아슬아슬하게 공연장에 도착하는 것이 늘 아쉬움으로 다가왔다.


“동래에 작은 공연장과 갤러리가 있다면, 일상에서 예술을 가까이 즐길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마침, 오빠가 든든한 후원자로 나섰어요. 수안역 인근에서 병원을 하고 있었는데, 1층을 복합문화공간으로 사용하게 해주었죠. 올케언니도 힘을 보태면서 함께 공간을 열고, 하나씩 채워나갔어요.”


김 대표는 음악과 미술이 일상에서 만나는 살롱을 떠올렸다. 차를 마시며 그림을 보고, 연주자와 관객이 같은 눈높이에서 호흡하는 공간. 카페 수익으로 전시와 공연을 이어가겠다는 구상이었다. 하지만 현실의 첫 박자는 어긋났다.


“공연 날이면 의자 놓고, 조명 맞추고, 음향 테스트까지 전부 혼자 했어요. 객석에 빈자리가 생기면 급하게 지인들에게 연락해 자리를 채운 적도 있었죠. 우리 지역 연주자들의 뛰어난 연주를 많은 분이 감상하면 좋겠다고 생각했거든요. 참석하신 대부분의 관객이 제 의도에 공감해 주셔서 너무 감사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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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숙 대표가 스페이스움에서 관객들을 대상으로 살롱 콘서트를 진행하고 있는 모습.


위기 속에서 연결된 부산 소공연장

순항하던 스페이스움을 시험대에 올려놓은 것은 코로나 팬데믹이었다. 대형 공연장이 문을 닫고, 소공연장은 하나둘 사라지던 시기였다. 김 대표는 소공연장이 무너지면 그동안 쌓아온 연주자와 관객들이 쌓아온 생태계가 무너진다고 생각했다. 가까운 소공연장 대표들과 ‘부산소공연장연합회’를 결성하고, 한 달 동안 도시 곳곳에서 릴레이 공연을 여는 ‘부산 원먼스페스티벌’을 기획했다.


“각자 버티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봤어요. 소중한 공간들이 연결되면 도시 전체가 하나의 공연장이 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공간마다 다른 색의 악기처럼요.”


그 구상은 현실이 됐다. 수십 개의 소공연장이 참여했고, 장르를 넘나드는 공연이 도시 곳곳에서 이어졌다. 시민들은 집 근처에서 음악을 만났고, 연주자들은 더 많은 무대를 얻었다. 공연은 특정 장소의 이벤트를 넘어, 도시의 일상이 되기 시작했다.


2024년에는 부산 전역 40여 개 소공연장이 참여했다. 클래식, 재즈, 국악, 인디밴드가 각 공간의 특성에 맞춰 어울렸고, 부산마루국제음악제, 부산푸드필름페스타, 대동대학교, 부산음악창작소 등이 참여하며 협업의 폭을 넓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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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이스움에서 열린 원먼스페스티벌.


문화로 열어가는 부산

“축제가 거듭될수록 소공연장들이 서로 배우고 단단해지는 걸 느껴요. 연주자들에게는 무대가 늘어나고, 시민들에게는 집 근처에서 음악을 만나는 일이 점점 자연스러워지고 있습니다.”


현재는 공간 무사이의 최용석 대표가 연합회 회장을 이어받았고, 2026년에는 세 차례 공연이 예정돼 있다.


600회 공연을 앞둔 김 대표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을 물었다.


“시각장애가 있는 피아니스트가 유학을 떠나기 전 마지막 무대를 열었던 날이 떠오르고요. 이주여성을 돕기 위한 자선 공연에 수십 명의 음악가가 무보수로 참여했던 순간도 기억나요. 정신건강의학과 환우들의 그림 전시 앞에서 눈물을 훔치던 관객들, 아이와 부모가 나란히 바닥에 앉아 음악을 듣던 토요 공연까지. 제겐 모두 소중한 장면이에요. 문화예술이 어렵고 비싸다는 편견을 15년 동안 조금씩 허물어온 것 같아요.”


부산의 문화, 다음 무대를 향해

600회 기념 음악회를 앞두고도 김은숙 대표의 시선은 이미 다음을 향하고 있다. 스페이스움 하나의 공간을 넘어, 부산의 소공연장들이 서로 더 촘촘하게 이어지는 구조를 만드는 것. 그리고 그 흐름이 다른 도시, 나아가 해외로까지 확장되는 일이다.


“부산은 문화예술도시가 될 조건을 충분히 갖고 있어요. 이탈리아의 작은 도시들처럼, 정 많고 화끈한 사람들, 산과 바다가 함께 있는 환경까지. 좋은 기획자가 늘고, 소공연장들이 연결되면 부산의 작가와 연주자들이 굳이 서울로 떠나지 않아도 됩니다. 오히려 외지에서 부산을 찾게 되는 날을 만들고 싶어요.”


매주 금요일, 동래의 작은 공간에서 음악이 흐르기 시작한 지 15년. 이제 부산 곳곳으로 퍼져가고 있다.


글·목지수

㈜싸이트브랜딩 대표 / 매거진 ‘집앞목욕탕’ 발간

작성자
부산이라 좋다
작성일자
2026-03-31
자료출처
부산이라좋다
제호

부산이라좋다 제202604호

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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