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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내믹 부산 제부산이야기 2월호 통권 136호호 기획연재

과거와 현재 어우러진 시장 골목마다 발길 잡는 맛집 가득

소설가 길남 씨의 전통시장 탐방기 - 못골시장

내용

한파가 몰아친 이른 아침이지만 시장은 하루를 시작하기 위해 서서히 기지개를 켜고 있다. 

벌써 문을 연 채소가게와 어물전 주인은 상품을 보기 좋게 진열하느라 여념이 없다. 

신청주정육점 옆으로 재첩국과 선짓국 등을 파는 골목에 

언제부터인지 ‘문화관광의 중심 못골 골목 시장’이라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못골시장

 

뽈찜·선지국·재첩국 동네 맛집 모두 모인 못골시장 


1월의 어느 아침, 소설가 길남 씨는 출근을 위해 달려가다 건널목 앞에 선다. 7시 57분. 카풀하는 양반이 기다리는 남구청에 8시 5분까지는 가야 한다. 그가 서 있는 곳은 대연초등학교 부근 진남로 앞. 길남 씨는 뒤통수가 가려운 느낌에 돌아본다. 작은 소주방의 간판이 있고 큰 글씨의 상호명 외에 ‘구 신기루’라는 이름이 작은 글씨로 붙어 있다. 몇십 년째 심야 단골인 그곳에서 어제 새벽 마지막 차수를 채웠던 그이다. 하지만 지금은 지옥의 사슬과 같이 돌아온 출근 시간. 세상을 다 씹어 삼킬 듯 허풍을 치던 새벽의 그 시간은 모두 신기루였던가! 

하지만 투덜거리고 있을 새가 없다. 건널목을 건넌 그는 못골시장 입구로 접어든다. 매일 아침 관통하는 시장 길을 오늘은 8분 만에 주파해야 한다. 달려가는 그의 곁으로 양파양념의 신기원 김유순 대구뽈찜, 불났다가 더 잘 되는 찬미치킨, 토박이 동창 형이 20년 넘게 하는 못골낙지, 신선한 고기로 유명한 양산박 등 음식점이 휙휙 지나간다. ‘전통시장 탐방기’의 맛집 취재를 핑계로 친우들과 부어라, 마셔라, 씹어라 모조리 들렀던 곳들이다.  

“출근길에 다시 확인하는 못골 맛집 순례라…. 으으으!” 

쓴웃음을 짓던 길남 씨는 갑자기 온몸을 부르르 떤다. 추워도 너무 춥다. 허연 입김을 내뿜으며 휴대폰을 꺼내든 그는 날씨의 기온을 확인하다 끔쩍 놀라고 만다. 부산시 남구 대연동 -9°. 본적 부산시 남구 대연2동, 현재 거주지 부산시 남구 대연동. 부산에서 태어나 군대 빼고는 모조리 부산에서 살아왔던 길남 씨. 도대체 영하 9도라는 수치가 실감나지 않는다. 

“이거 뭐, 냉장고하고 뭐가 다르노? 돌았네, 돌았어!”

 

못골시장은 남구 대연동에서 규모가 가장 큰 시장이다. 지역주민들도 즐겨 찾는 시장이다(사진은 못골시장 상인들 모습).

못골시장은 남구 대연동에서 규모가 가장 큰 시장이다. 지역주민들도 즐겨 찾는 시장이다(사진은 못골시장 상인들 모습).

▲못골시장은 남구 대연동에서 규모가 가장 큰 시장이다. 지역주민들도 즐겨 찾는 시장이다(사진은 못골시장 상인들 모습). 

 

‘하얀 김’으로 시작하는 시장의 아침 


한파가 몰아친 이른 아침이지만 시장은 하루를 시작하기 위해 서서히 기지개를 켜고 있다. 벌써부터 문을 연 채소가게와 어물전의 주인들이 상품을 보기 좋게 진열하느라 여념이 없다. 신청주정육점 옆으로 재첩국, 선짓국 등을 파는 골목에 언제부터인지 ‘문화관광의 중심 못골 골목 시장’이라는 천막이 쳐져 있다. 

길남 씨는 해장하지 못한 배를 어루만지며 골목으로 들어가 ‘며느리선지국’ 집에서 국밥 한 그릇 하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힌다. 나물을 넣고 고추장과 참기름에 밥을 비벼서는 뜨끈한 선짓국을 한 입하면 바랄 것이 없겠다. 현재 시간은 8시 1분. 길남 씨는 침만 꿀꺽 삼키고는 바쁜 걸음을 계속한다. 

문을 연 생선가게에는 팔뚝만 한 대구들이 나란히 줄을 섰고 시장중간 사거리 섬진강 재첩국 집의 창은 허연 김이 서려 있다. 길남 씨는 재첩국 집만 지나가면 그 옛날 1988년 디스코 청바지를 사기위해 용돈을 모으며 고군분투하던 추억에 젖곤 한다. 그 자리는 원래 ‘럭키사’란 옷집이 있던 곳이다. 이젠 인터넷에도 별 기록이 남아있지 않은 ‘럭키사’지만 당시 디스코 청바지의 광풍을 불러온 유행의 산실이었단 사실. 가게 터는 그대로인데 청바지는 간데없고 재첩국만 팔팔 끓고 있지만 말이다. 

 

따뜻한 커피 한 잔으로 하루 시작하는 상인들 


사거리를 지나자 충북상회, 강원상회 등 방앗간이 양쪽으로 나타난다. 이 시간쯤이면 말린 고추·참기름·간장·곡물 가루 등등 판매대를 내놓고 세우느라 한참 정신없을 때다. 아침 일찍 고구마·감자·옥수수를 삶아 놓고 호박죽·팥죽을 내놓은 좌판에는 평소보다 더 하얀 김이 모락모락 솟아오르고, 구페 베이커리 빵집에선 빵을 구워내느라 내외가 함께 부산하다. 추어탕 집도 시래기를 삶아내느라 김을 뿜어낸다. 아침 시장 풍경을 상징하는 게 많겠지만 아마 저 풍성한 하얀 김이 1등이 아닐까 길남 씨는 생각해 본다. 씩씩한 길거리 카페 아주머니께서 커피 한 잔씩을 타서 좌판에 배달한다. 

“아따 마, 오늘 아침은 엄청 시원하구마!”

커피잔을 받는 아저씨 한 분의 농담에 좌판 아주머니들의 웃음소리가 넘쳐난다. 휴대폰이 울린다. 시간은 8시 5분.

“니 지금 어디쯤이고?” 

“네, 네, 형님. 다와 갑니다. 1분, 1분! 쪼매만 기다리 주이소.”

정겨운 못골시장의 아침은 꿈틀거리는데 삶에 쫓긴 길남 씨는 이러거나 저러거나 헐떡대며 시장의 끝을 향해 달려가는 중이다.

 

못골시장에는 시민들이 즐겨찾는 오래된 맛집이 많다.

▲못골시장에는 시민들이 즐겨찾는 오래된 맛집이 많다. 

 

재개발, 그리고 사라져가는 신정시장

 

사실 남구 대연동은 시장이 많은 편이다. 수영로를 기점으로 황령산 쪽의 못골시장과 우룡산 쪽의 신정시장을 비롯해 수영로 266번길에 위치한 대연상가시장(옛 제일은행 부근), 못골시장 건너편의 수영로 196번길에 위치한 동성하이타운시장 등이 그것이다. 그중 못골시장이 가장 규모가 큰 편이고 다른 시장들도 아직 활기를 잃지 않고 제 역할을 다하고 있다. 하지만 못골시장과 양대산맥으로 불렸던 대연고개의 신정시장은 재개발로 인한 이주로 인해 차츰 사람이 줄더니 이젠 시장으로서의 역할을 거의 상실한 상태다. 

길남 씨는 1년 전 신정시장을 찾았다가 사라져 버린 시장을 보고 이만저만 충격을 받은 게 아니었다. 그의 본적이 말해주듯 그의 유년시절 중 절반은 신정시장 부근에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시장 보고 금방 올테이까 이거 묵고 있어라이. 아지매 순대하고 간 좀 썰어 주이소.”

길남 씨는 엄마가 아무리 늦게 와도 순대 1천원 어치만 있으면 까짓것 얼마든지 버틸 자신이 있었다. 슈퍼 옆의 몇십 년 전 순대 좌판 자리에는 비닐 포장의 분식집이 아직 자리하고 있다. 시장좌판의 흔적이 참 질기게도 남은 셈이다. 

 

찜용 콩나물을 찾아라! 

 

얼마 전 길남 씨는 퇴근길에 못골시장을 찾았다. 그날의 미션은 아귀찜용 재료를 사는 것이었다. 신선한 아귀를 두 마리 얻었는데 집에다 해물 아귀찜을 해보겠다고 큰 소리를 쳤던 터였다. 이거 뭐 눈감고도 다닐 수 있는 시장이라 미션에 대해선 자신이 만만했다. 그깟 식재료 하나 못살까봐? 들깨가루니 미나리니 오징어니 이것저것 봉지를 움켜쥔 그는 마지막 미션인 찜용 콩나물에서 살짝 난감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이모, 콩나물 천원 어치요. 찜용 콩나물로다가.” 

그를 바라보는 아지매의 눈빛이 심상찮다. 

“찜용 콩나물? 우리는 그거 안 파는데? 저기 시장 안쪽으로 가보이소.”

눈치가 빠른 길남 씨는 채소 가게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며 내놓은 콩나물의 굵기를 가늠해본다. 그러나 찜용 콩나물은 그 정체를 드러내지 않는다. 

저기요, 찜용 콩나물…. 아지매, 찜용 콩나물…, 사장님, 그러니까 찜용 콩나물…. 

길남 씨는 서서히 지쳐가기 시작했다. 시장 상인들 모두는 손가락을 한 쪽으로 가리켰다. 

“저짝으로 가면 있어요, 저짝으로 가면 할배 하나가 팔 거여.”

눈감고도 다닌다던 못골시장은 어느새 미로로 바뀐 상태. 대연동 토박이라던 길남 씨는 자존심이 완전히 무너지고 만다. 마지막 시장입구의 채소 아줌마에게 그는 하소연을 쏟아 놓는다. 

“이모, 그라니까 찜용 콩나물 파는 할아버지가 도대체 어디 있단 말입니까? 시장 끝에서 끝으로 두 번이나 다녀도 그런 사람 없구만.”

채소 아줌마가 눈을 끔뻑거리더니 45도 각도로 손가락질 하며 한 마디 던진다. 

“저기 상가 시장 안에 가 봤는교?”  

“예? 저 안에 아직 장사 합니꺼?”

“장사를 하지. 왜 안 해? 없는 거 빼고 다 있지. 호호호!”

 

한때 못골시장 만큼 규모 있는 시장이었던 신정시장은 주변 지역 재개발로 시민들의 발길이 뜸해지면서 시장의 역할을 잃었다.

▲한때 못골시장 만큼 규모 있는 시장이었던 신정시장은 주변 지역 재개발로 시민들의 발길이 뜸해지면서 시장의 역할을 잃었다. 

 

맛있는 먹거리에 인정 넘치는 못골시장 

 

멍한 표정의 길남 씨는 정신이 번뜩 든다. 그래, 잊고 있었구나. 상가 안에도 시장이 있었지. 그는 친구 어머니가 채소를 팔던 기억까지 떠올리며 떨리는 마음으로 상가로 들어선다. 그는 급한 마음에 아무나 잡고 찜용 콩나물 할배가 어디 있냐고 질문을 던진다. 그러자 질문을 받은 아저씨가 손가락을 편다. 또 그놈의 손가락. 길남 씨의 눈이 커진다. 성인군자처럼 서 있는 반백의 할배가 도매급으로 쌓인 채소를 정리하고 계신다. 그에게 다가간 길남 씨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한다. 

“저기…, 찌, 찜용 콩나물 있습니까?”

“얼마넌치?”

할배는 단호하게 수량을 묻고는 콩나물 1천원 어치를 봉지가 터지도록 담는다. 찜용 콩나물 봉다리를 들고 집으로 향하는 길남 씨. 매일 스쳐 지나가던 못골시장이 새롭게 느껴진다. 오래 살았다고 다 아는 것은 아니다. 시장은 항상 제 나름의 규칙과 비밀들을 가지고 있다. 오늘 못골시장에서 또 하나를 배운 길남 씨이다. 

길남 씨가 앞서 언급했던 가게들 외에도 못골시장은 셀 수 없을 만큼 맛집들이 밀집해 있다. 미식가로 알려진 A화장품 회장이 찾았다는 미누재 양갱, 저렴한 가격의 소문난 족발, 50년 전통의 생선요리집 조씨집을 빼놓은 이유는 길남 씨가 달리는 동선에서 벗어나 있다는 이유일 뿐. 

작성자
배길남
작성일자
2018-02-01
자료출처
부산이라좋다
제호

부산이라좋다 제부산이야기 2월호 통권 136호호

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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