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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내믹 부산 제8월호 통권 118호호 기획연재

맞춤 신사복에 최첨단 IT기술 입히다

세계최초 인공지능형 신사복 패턴설계 시스템 개발
“다른 사람이 백 번 노력할 때 나는 일천 번 노력”

내용

“사람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의식주 가운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옷이라고 생각합니다. 옷은 그 사람의 품격을 대신합니다. 마음에 드는 옷을 입은 날은 온종일 자신감이 넘치고 행복하기도 하고요.”

 

40년 외길, 맞춤 양복 명인·자수성가 CEO

세계최초로 인공지능형 신사복 패턴설계 시스템을 개발해 맞춤 신사복의 대중화와 경쟁력을 높여나가고 있는 ‘최기락슈트’의 최기락 대표가 옷에 담고 있는 철학이자 신념이다. 40여년이 넘는 긴 세월 동안 부산 신사들의 절대적인 사랑을 받아온 최 대표는 맞춤 양복 명인, 자수성가한 CEO로 불린다. 그런 최 대표가 최근 더욱 주목받고 있다. 

 

맞춤 신사복에 첨단 IT기술을 접목한 ‘슈테크(SUITECH·맞춤 패턴설계 시스템)’ 기술로 맞춤 양복업계가 나아가야 할 새로운 기준과 방향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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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테크’ 시스템은 컴퓨터 스스로가 수많은 사람의 다양한 체형을 체계화하고 각 부분별로 수치를 연동해 신사복 패턴을 설계하는 최첨단 기법이다. 고객의 신체 특징을 컴퓨터에 입력하면 단 몇 초 만에 신사복 패턴을 설계해 낸다. 숙련된 재단사가 몇 날 동안 해낼 작업을 엄청난 속도로 단축시켜 준다. 사람 손으로 재단해 내는 것보다 정밀성이 뛰어나 착용감과 신체에 주는 편안함도 탁월하다. 지금까지의 수기재단방식에서 오는 오차 및 문제점을 혁신적으로 해결한 것으로 맞춤 양복 대중화를 이끌 획기적인 기술이다. 슈테크 시스템은 세계적 신사복 브랜드들도 수차례 시도했지만 실패를 거듭했다.

 

컴퓨터가 신사복 패턴설계 척척

최 대표가 슈테크 시스템을 개발한 데는 남다른 이유가 있다. 1993년 제8회 한국 남성복기술경진대회에서 대상 및 월드 베스트테일러 상을 받은 그는 삼성그룹 주관으로 해외연수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당시만 해도 최신 기술을 접목한 맞춤의복 시스템을 사용하던 일본을 찾은 그는 ‘가시야마’라는 회사에서 사이즈를 자동으로 측정하는 모습을 보고 큰 충격과 함께 새로운 기회를 만났다. 날로 쇠퇴해 가던 맞춤 신사복 시장의 새로운 활로를 찾은 것이다.

 

“귀국해서 곧바로 맞춤 신사복의 과학화와 대중화를 위한 시스템 개발에 나섰습니다. 각기 다른 체형의 장·단점을 보완해 한 사람만을 위한 최적의 패턴을 만들어 내기 위해 정성을 쏟았습니다.” 최 대표는 자다가도 눈을 뜨면 천장에 복잡한 프로그램이 보일 정도로 연구에 몰두했다. 꿈에서도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자리에서 일어나 메모했다. 포기하고 싶은 순간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하지만 한 번 시작하면 만족스런 결과가 나올 때까지 물고 늘어지는 그의 집념은 고객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최적화된 표준형 맞춤 신사복의 패턴설계를 완성할 수 있었다.

 

최첨단 슈테크 시스템을 개발한 최 대표가 애초부터 컴퓨터와 IT에 능통했던 것은 아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메모지나 수첩에 보완 내용을 전부 연필로 적었다. 자료량이 산을 덮을 정도로 엄청나게 쌓였다. 결국에는 컴퓨터 캐드와 체계적인 노하우 관리를 위해 비주얼 베이직까지 배웠다.

 

아침 주문·저녁 납품 시스템 완성

컴퓨터 프로그램을 일일이 배워가면서 새로운 시스템을 개발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힘든 고비도 여러 차례 넘겼다. 가장 힘들었던 점은 사람마다 각기 다른 체형의 특징을 패턴화해야 하는데 정말 특이한 체형을 만났을 때였다. 어깨높이가 높은 형, 처진 형, 배가 나오고 등 굽은 형, 운동형, 몸통이 신장대비 크고 작은형, 오형 다리 체형 등등…. 그런 체형을 가진 고객을 위한 최적의 패턴도 완성해야 했고 그 변수를 보완하는 것은 더욱 힘들었다. 잠도 못 자고 매달리다가 어떤 순간에는 왜 이걸 시작했을까 후회하기도 했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그렇게 오랜 시간을 들여 완성한 슈테크 시스템을 통해 최기락슈트는 맞춤복의 한계를 뛰어넘어 신속한 제작이 가능해졌다. 고객이 오전 9시에 주문을 하면 사이즈 측정, 패턴제도, 재봉 등 전 과정을 당일 오후 6시까지 완성해 납품까지 가능하다. 국내의 관련 업체는 물론 외국에서도 많은 관심을 보일 정도로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다.

 

최 대표는 한 사람을 위한 최적의 패턴이 나왔으니 명품도 가능하다고 자신 있게 말한다. 명품관의 명품이나 기성복은 재고 부담을 덜기 위해 가격 거품이 있는 데 반해 맞춤 주문 제작을 하면 재고 부담이 없으므로 명품 이상의 품질을 유지하면서 가격 경쟁력까지 갖출 수 있는 것이다. 그는 이 같은 경쟁력을 바탕으로 중국과 미국 등 해외시장 진출까지 계획하고 있다. 기술력과 제품 경쟁력에 확신이 있는 만큼 성공에 대한 자신감도 높다. 더불어 맞춤 신사복의 대중화에도 적극 나설 구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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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기락 대표는 2008년 아시아주문양복연맹총회 기간 열린 남성복 창작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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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기락 대표가 직원들과 새 제품 디자인 개발 방향에 대해 논의하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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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테크 시스템은 컴퓨터 스스로가 신사복 패턴을 설계하는 최첨단 기법이다.

남다른 재능 … 1970년 부산과 인연

최 대표는 경북 청송의 농촌마을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 시절에는 어느 누구 할 것 없이 공부보다는 농사일을 우선으로 도와야 했다. 농사일 틈틈이 선대로부터 한학을 배웠지만 농사일이 아닌 다른 일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에 무작정 집을 나섰다. 물론 그 시절의 경험과 기억들은 최 대표가 인생을 살아가는 데 큰 자양분이 되고 있다. 대구로 간 그는 우연한 기회에 양복점과 인연을 맺었다.

 

“규모가 꽤 컸어요. 어깨너머로 배운 솜씨로 제 옷을 직접 만들어 입기도 했는데, 주위 분들이 특출한 소질이 있다고 많이 칭찬해주셨지요. 어린 나이였지만 이 일이라면 잘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섰습니다.”

 

남다른 재능을 지닌 만큼 서울로 진출해 더 큰 꿈을 펼쳐보라는 주위의 권유도 있었지만 왠지 모르게 부산으로 마음이 끌렸다. 최고의 재단 기술을 배워 자신만의 매장을 열겠다는 목표를 세우고는 1970년 무렵 부산으로 왔다. 부산에 정착한 지 3년 만에 동구 수정동 옛 부산지방국세청 인근에 자신의 이름으로 매장을 열었다. 매장은 하루가 다르게 번창해 갔고 고객의 발길이 이어졌다.

 

‘최기락슈트’에 대한 명성은 부산 전역에 널리 퍼졌다. 1997년 부산롯데호텔이 먼저 그를 찾았다. 아무런 망설임 없이 호텔에 입점했다. 보다 안정적으로 자신의 사업을 펼치겠다는 생각으로 지난 2013년 11월 부산진구 부전동 에이원플라자 1층 100㎡를 매입해 새 매장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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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기락 대표의 부산 사랑은 남다르다. 오늘의 자신을 있게 해준 부산에 대해 늘 고마움과 함께 보답의 마음을 가슴 속 깊이 간직하고 있다. 그 자신이 부산에 돌려줄 것이 너무도 많다고 확신하고 있다. 최 대표는 슈테크 시스템을 더욱 발전시켜 부산을 기반으로 서울은 물론 중국과 미국에까지 진출할 계획을 갖고 있다.

 

각종 대회 잇따른 수상 … 후진 양성 힘써

최 대표는 수상 경력과 세계 교류, 기술 발표 등에서도 입지가 단단하다. 국내 주요 대학 및 전문인을 대상으로 강의에 나서 후진 양성에 힘쓰고 있고, 중국의 사범대학 등에서 객원 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한국남성패션문화협회 부산시지회장을 역임했으며 한국남성복기술경진대회 대상, 제22회 아시아 주문양복 창작대회에서도 최고상인 대상(Best Creative Design)을 수상했다. 지난 2013년에는 부산대 의류학 석사를 졸업했다.

 

최 대표는 “서울 같은 수도권으로 진출하라는 권유를 많이 받았습니다. 서울에 왜 지점을 내지 않느냐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에요. 중요한 것은 최초이면서도 최고기술 실현이죠. 오랜 시간 동안 슈테크 시스템을 완성할 수 있었던 부산이 그냥 좋아요.”

 

남다른 부산사랑 … 부산 기반 해외진출 꿈

최 대표의 부산 사랑은 남다르다. 오늘의 자신을 있게 해준 부산에 대해 늘 고마움과 함께 보답의 마음을 가슴 속 깊이 간직하고 있다. 그 자신이 부산에 돌려줄 것이 너무도 많다고 확신하고 있다. 그래서 부산이 더더욱 소중한 것이다.

 

최 대표의 인생 좌우명은 ‘인백기천(人百己千)’, ‘다른 사람이 백 번을 노력할 때 나는 일천 번 노력한다’는 뜻이다. 신라시대 최고의 천재로 알려진 최치원이 12세에 당나라로 유학을 떠날 때 부친이 써준, 최치원이 평생 좌우명으로 삼은 글귀다. 최 대표 역시 ‘인백기천’의 뜻과 정신을 젊은 날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평생 간직하고 있다.

 

최 대표는 고객 만족을 위한 최고의 상품, 최선의 서비스, 품질 대비 적정 가격은 양보할 수 없는 가치라며 작은 성공에 안주하면 퇴보할 수밖에 없다면서 부산을 기반으로 서울은 물론 중국과 미국에까지 진출할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 이 글의 일부는 부산시 발간 ‘메이드 인 부산’에서 발췌했습니다.

작성자
조민제
작성일자
2016-07-29
자료출처
부산이라좋다
제호

부산이라좋다 제8월호 통권 118호호

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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