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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내믹 부산 기획연재

사진작가 최민식을 추억하며…

내용

우리 시대 최고의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최민식 선생이 지난 12일 오전 부산 남구 대연동 자택에서 별세했다. 85년 한평생을 살면서 따뜻한 시선으로 ‘사람’을 담아냈던 사진작가 최민식. 그는 부산 시장통과 골목길을 누비며 서민들의 희망을 그려낸 아름다운 부산사람이다. 그를 그리워하며 부산 대표잡지 ‘부산이야기’ 2004년 9·10월호에 실린 인터뷰 기사를 다시 읽어본다.

가난한 자 행복 위해 셔터 누른다

눈은 항상 낮은 데로 향해 있다. 평생을 함께 해온 카메라의 렌즈 또한 한없이 낮은 데로 움직인다. 남루와 고통이 없는 밝은 사회, 굶주림이 없는 지구촌을 염원하며 셔터를 누른다. 빈자(貧者)를 위해 필름에 빈자를 담는 치열한 삶이다.

평생을 고단하고 고립된 사람들 편에 서서 사진으로 빈곤 추방의 대 서사시를 써오는 그에게서 성자(聖者)를 떠올린다.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사진작가 최민식. 사진은 그에게 종교 이상이다. 사진이 그의 삶이고, 삶은 송두리째 사진으로 채워져 있다. 부산에서 그를 모르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우리나라 전체를 따져도 웬만한 사람은 그를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사진에 화려함은 없다. 거창한 기교 따위도 없다. 그의 눈은 지쳐 졸고 있는 시장 상인의 어깨 죽지에, 장애로 다리를 끌며 신문을 돌리는 목발에, 늘 살아 움직이는 생활현장에 고정돼 있다. 렌즈를 통해 아픔을 응시하고, 희망을 꿈꾸며 셔터를 누른다.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그가 추구하는 것은 리얼리티다.

그는 열혈 청년이다. 넥타이를 맨 그의 모습은 본 적이 없다. 늘 사진찍기에 편한 캐주얼 차림이다. 언제나 간편한 티셔츠 차림에 추운 겨울에는 허름한 야전 점퍼를 껴입는 정도다.

사진작가 최민식. 사진은 그에게 종교 이상이다. 사진이 그의 삶이고, 삶은 송두리째 사진으로 채워져 있다.

하루 100리 예사, 발품으로 사진찍기

팔순을 바라보는 나이지만 그는 요즘도 하루 100리 길 정도는 예사로 걷는다. 40㎞ 걷는 것쯤은 별 것 아니라는 이야기다.

그의 하루 일상은 대개 이렇다. 오전 9시쯤 카메라를 들고 집을 나선다. 집이 있는 남구 대연동 재래시장을 빠져 나와 문현교차로 쪽으로 걷는다. 다시 방향을 바꿔 부둣길. 길도 보고, 사람도 본다. 바다도 보고, 하늘도 본다. ‘아, 저것!’ 하는 생각이 들면 셔터를 누른다. 중앙동을 지나 자갈치시장을 돈다. 영도다리 위를 오르고, 다리 밑도 서성인다.

광복동을 돌아 남부민동을 치오르기도 하고, 송도쯤에서 지는 해를 보기도 한다. 해가 지면 그의 사진찍기도 끝이 난다. 어떤 날은 대연동에서 광안리 해운대 달맞이고개를 거쳐 송정  기장 일대를 훑고, 또 어떤 날은 온천장을 거쳐 노포동까지 같다 오기도 한다. 구포 김해 밀양 삼랑진도 간다.

그에게는 승용차도 운전 면허증도 없다. 오직 발품을 팔아 사진을 찍고, 해가 져서 걷다 지치면 버스나 지하철 기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온다.

1주일에 대개 3~4일 정도 그는 이런 작품 활동에 나선다. 땀이 줄줄 흐르는 삼복더위에도, 난로를 켜고 옷을 껴입어도 한기가 느껴지는 한겨울에도 그는 아주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카메라를 메고 집을 나선다.

최민식 사진작가는 인류의 행복과 평화를 위해, 그리고 ‘이 살자, 주변을 둘러보고 도와라’ 그런 메시지를 담아서 사진을 찍는다.

원래 꿈은 화가

그는 1928년 황해도 연안에서 가난한 소작농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 가난은 죽도록 싫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집을 나섰다. 이 도시 저 도시를 돌며 품팔이, 지게꾼 안 해본 것이 없었다. 원래 꿈은 화가였다.

“거리를 전전하던 끝에 화가가 되기로 하고, 1955년 일본으로 밀항했습니다. 그러다 우연히 헌책방에서 ‘인간가족(The Family of Man)’이라는 사진집을 발견했는데, 그 감동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화가의 꿈은 이때 접었습니다. 이때부터 헌 카메라를 사 독학으로 공부하며 이날까지 사람만 죽도록 필름에 담았습니다.”

그는 가난이 갖는 상처 때문에도 울었지만 그것이 사람의 영혼을 묶고 모든 희망을 근거 없이 수포로 만들어 버리는 것에 더 고통을 느꼈다고 한다. 자신이 목격한 남루와 고통의 실상을 증언함으로써 위정자들에게 반성을 촉구하고, 그들의 무관심을 고발해야겠다는 결심이 굳어졌다는 것이다.

사진 주제는 ‘사람’

그런 만큼 그의 사진은 ‘돈 안 되는 것’이었다. 사진작가의 길을 걸으면서 의식주를 해결하기란 쉽지 않았다. 쌀 사 놓으면 연탄 떨어지고, 연탄 들여놓으면 쌀 떨어지는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집도 팔아야 했기에 달동네를 전전했다.

사회 고발의 측면을 강조한 사진 때문에 유신과 군사독재 시절에는 사흘이 멀다 하고 끌려가 조사를 받는 곤욕도 치렀다.

“그러면서도 제 뜻을 꺾지는 않았습니다. 때문에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분도출판사의 독일인 임 세바스틴 신부 같은 분은 제 사진집 ‘인간’  4, 5, 6, 7, 8집을 모두 도맡아 출판해 주었고, 1972년부터 12년 동안 매달 50만원씩 쌀값까지 보태주었습니다. 얼마나 고마운 일입니까. 그러나 저는 이렇게 받아들였습니다. ‘저건 대가없는 도움이 아니다. 인류의 행복과 평화를 위해 사진을 찍고, 널리 알리라는 뜻일 게다.’ 그래서 ‘같이 살자, 주변을 둘러보고 도와라’ 그런 메시지를 담아서 사진을 찍었습니다.”

리얼리티가 살아있는 작품들.

‘같이 살자, 주변을 둘러보고 도와라’

그는 하루도 바쁘지 않은 날이 없다. 손 때 묻은 수첩에는 몇 년 동안 해야 할 일이 빼곡하게 적혀 있다. 우선 오는 9월에는 서울에서 월간 잡지를 만드는 ‘샘터’에서 사진작품집을 낸다. 자신의 사진에 시인 조은 씨가 글을 붙힌 230쪽 가량.

책이 나오면 10월부터는 출판기념회를 겸해 서울 일민미술관에서 2개월 간 ‘최민식의 다큐멘트 50년-1955~2004년까지’를 주제로 전시회를 열 계획.

내년 5월께는 낙동강을 주제로 한 사진 300점을 묶어 ‘낙동강’ 사진집도 발간할 예정. 부산시  한국수자원공사  낙동강보존회  낙동강을 낀 영남권 도시들이 두루 협찬해 사진집을 낸다. 사진집이 나오면 영남권 도시를 돌며 순회 전시회도 열 계획이다. 사진집에는 1955년부터 최근까지 낙동강과 낙동강 주변 생활상, 명승지, 낙동강변 절이나 서원 등을 두루 담아 ‘낙동강의 역사책’이 될 전망. 2년 뒤에는 여성만을 주제로 한 사진을 모아 ‘여자·Woman’라는 사진집도 낼 의욕을 불태우고 있다.

“사진을 조금 알고, 뭐 좀 할만하니까 나이가 들었습니다. 시간이 아깝습니다. 놀 시간이 없습니다. 그러니 나이만 먹지, 늙지는 않나 봅니다.”

그는 속절없이 흐르는 세월을 이렇게 표현했다.

최민식 사진작가는 말한다. “사진은 사진 자체로 말할 뿐이다. 가난한 자의 행복만큼 진실한 것은 없다. 나의 사진은 모든 가난한 사람들의 무한한 행복을 위하여 바쳐져야 한다.”

끝없는 창작열

그에게는 전국에서 사진을 하겠다고 찾아오는 젊은이가 많다. 그러나 ‘의식’이 없는 사람이 대부분이라고 한다. ‘철학’이 없다는 것이다. 그는 늘 후배들에게 공부할 것을 권한다. 공부를 하지 않으면, 깊이가 없고, 문제의식이 없고, 메시지가 없다고 다독거린다.

그의 독서량은 엄청나다. 그의 서재엔 사진 관련은 물론이고, 철학 심리학 문학 역사 사회학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교양서적이 꽂혀 있다.

“자신의 분야가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만큼 남의 분야도 꿰뚫고 있어야 합니다. 늘 공부하고 연구하지 않으면 한자리에 머물거나 도태하고 맙니다. 무슨 일을 하든 최선을 다할 것을 권합니다. 적당히 하는 일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그의 창작열, 의욕은 끝이 없었다.

“사진은 사진 자체로 말할 뿐입니다. 가난한 자의 행복만큼 진실한 것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저의 사진은 모든 가난한 사람들의 무한한 행복을 위하여 바쳐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철학자였다. 그리고 성자였다.

작성자
박재관
작성일자
2013-02-13
자료출처
부산이라좋다
제호

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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