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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내믹 부산 기획연재

"지방대 출신, 꼬리표가 아니라 빛나는 브랜드죠"

이윤주 세계지식재산권기구 부심사관

내용

대한민국은 지금 'TED(테드)' 열풍입니다. 조금 더 정확하게는, 테드 콘퍼런스 혹은 TEDx(테드엑스)라고 부르지요. '테드'라는 말을 듣고, 혹시 뚱뚱하고 귀여운 곰 한 마리를 떠올리시는 분은, 띠-딕- 경고! 지금부터 저를 따라오세요. ^^

TEDx + SNS … = 감정적 알고리즘?

기술(technology), 엔터테인먼트(entertainment), 디자인(design), 이렇게 세 단어의 앞글자를 따서 만든 것이 'TED'. "세상을 바꿀 아이디어, 퍼뜨릴만한 아이디어를 공유하자"는 취지로, 미국의 한 비영리단체가 주도한 첨단기술 관련 강연회입니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 침팬지 연구로 유명한 제인 구달 등 초대형 강사들이 강연에 나서고, 1년 전에 예약해야 참여할 수 있을 정도로 아주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습죠.

지금 대한민국도 이 '테드앓이' 중입니다. 학교별, 지역별 모임이 자발적으로 형성돼 강연회뿐 아니라 재능기부 활동 등 다양한 형태로 발전되고 있지요. 우리 방송가에도 적잖은 파장을 불러일으켰는데요. 각 방송사마다 짧은 강연 형식의 프로그램을 전진 배치하고, 시청자들을 TV 앞으로 불러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누군가의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전달되는 지적 활동, 지식 공유에 사람들은 열광했습니다.

저는 올 초 지인의 권유로 한국형 테드 애플리케이션이라고 불리는 '세바시(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를 접하게 됐는데, 역시나 강렬하고 자극적이었습니다. 시인 최영미 씨가 나와서 바르셀로나 축구팀에 관한 끝없는 찬사와 더불어 왜 축구에 빠질 수밖에 없는지에 대해 발표합니다. 요즘 잘나가는 인기강사 김미경 씨는 결혼이나 인생을 조건으로 따지는 이들에게 대놓고 "청년들이여 불공정거래 하지 마라"고 외칩니다. 그래서인지 출퇴근 길, 이제 책 대신 이 앱이 많은 사람의 충전제가 되고 있지요.

2012년 올해 세바시 강연의 첫 문을 연 권오현 군. 강연 동영상 중 일부 화면 캡처.

특히 세바시 올해 첫 강연은, 제게 기분 좋은 충격으로 남아있습니다. 주제 '감정적 알고리즘'. 노트와 만년필을 사랑하던 아날로그형 한 청년이 페이스북을 통해 자신의 삶이 어떻게 바뀌었는지를 상세하게 알려주었지요. 지구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과 나누는 세계시민의식, 자기도 모르게 이끌리게 되는 감정적 교류와 사랑, 진정성을 기반으로 시작된 '글로벌 르네상스 운동'까지…. 세상에 없던 너무도 신선한 강연이었습니다.

그런데, '감정적 알고리즘'이란 것, 멀리 있는 게 아니었습니다. 지금부터 제 얘기를 들으시면 말이죠. SNS를 사용하고 있다면, 이미 당신도 겪고 있을지 모르는 세상입니다.

제네바에서 부산으로… 글로벌 리더의 화려한 귀국

#1. 2012. 5. 20 이윤주 페이스북 페이지

김희동 ▷ 이윤주

잘 지내시죠^^ 조만간 부산청년을 위해 자문을 구하려 하는데. 꼭 도와주세요^^ 제가 좀 오지랖이 넓어서^^ 주말 잘 보내세요^^ 그리고 항상 행복하세요!

그녀의 페북 담벼락에 누군가 글을 남겼습니다. 그런데 그녀는 대답은?

"저도 같은 과입니다 ㅋㅋ 뭘 도와드려야 하나요?"

"ㅋㅋ 감사합니다. 지역 대학생들에게 멘토링을 진행할 예정입니다. 그때 본인의 경험 등을 알려주시는 거죠. 조만간 자세한 내용이 만들어지면 알려드리겠습니다. 동참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부산의 젊은 친구들에게 도움이 된다면 적극 도와드려야죠! :-)"

지난 5월 이윤주 박사의 페이스북에서 김희동 대표가 부산지역 청년들을 위한 멘토가 되어달라 제안합니다(위). 이후 이 박사의 페북에서 멘티들의 흔적을 자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이 대화가 훗날 어떤 파장을 불러일으키게 될지, 당시에는 알았을까요?

페이스북을 통해 서로 친구가 된 부산지역 SNS 마당발 김희동(스마트소셜 대표) 씨가 제네바 국제기구에 근무하고 있던 이윤주 씨에게 쉽지 않은 제안을 하나 합니다. 그녀는 기다렸다는 듯, '오케이!'라고 답하죠. 부산 젊은이들의 멘토가 되겠다는 그의 바람은 그렇게 실현되었습니다.

#2. 2012. 10. 12 동의대학교 인력개발처

이윤주. 그녀가 드디어 우리 앞에 나타났습니다. 한국 나이 서른아홉. 그의 직업은 UN WIPO(세계지식재산권기구) 부심사관입니다. 국제출원특허에 대한 심사를 전 세계 공개하고, 특허소송 등의 분쟁을 조정하는 역할이죠. 페이스북에서 사진으로만 봤지, 저도 실물은 처음이었습니다. 앗, 첫눈에 봐도 대단한 미인입니다. 이렇게…. 얼굴도 모르는 페북 친구의 제안에 단숨에 한국을 찾았습니다.

페북 절친 두 분이 이제야 상봉을 했네요. 페북에서 서로의 생각을 나누며 부산지역 청년들의 멘토링 프로그램을 꾸며나가셨다는 김희동 스마트소셜 대표(좌)와 이윤주 세계지적재산권기구 부심사관.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많지만, 꼭 이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왜 그렇게 도서관에서 꼼짝 않고 스펙만 쌓고 있나요? 왜 스스로 비교의 대상이 되어 그렇게 비교만 당하고 있나요?"

"앉아있으면 스펙이 쌓이나?"… 청춘에게 고하는 메시지

만점에 가까운 영어성적표에, 각종 어학연수 증명서, 인·적성 검사 관문을 통과하기 위한 상식·교양 쌓기, 이름만 들으면 알만한 대외활동 직함 등등. 스펙 쌓기에 열을 올리고 있는 대학생들에게 일침을 가합니다. 자리에 가만 앉아 머리로 재지 말고, 끊임없이 도전하고 움직이라고.

부산외국어대 아랍어학과 93학번. 지방대 출신의 그녀가 유엔 기구의 공무원이 될 수 있었던 건, 오로지 끊임없는 도전과 모험 때문이라고 합니다. 현재 WIPO의 한국인은 2명. 국제무대에서 지방대는 아무런 꼬리표가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소수민족, 여성, 약자라는 조건이 다양성을 존중하는 국제기구 채용에서는 도움이 되기도 한다는군요.

지난 해 말 자신이 모델이 된, 스위스 인종 다양성 캠페인 광고판 앞에 남편과 아들이 함께 서봤다고 하네요. 저 캠페인 광고는 누구 말처럼 메디컬 드라마의 한 장면 같죠? ^^

어릴 적 만화가를 꿈꾸던 그녀. 그저 아랍 문자가 예쁘다는 이유로 학과를 선택했고, 학과를 다니다 보니 아랍이 너무 좋았답니다. 그리하여 교수를 꿈꾸던 1997년 어느 날, 말 그대로 가방 하나만 달랑 메고 영국 유학길에 오르게 됩니다. 토익이며 토플 등 이렇다 할 성적표 하나 없이 정말이지 의욕 하나만 가지고, 그것도 아시아, 아프리카, 중동지역 연구의 최고봉인 런던대학교 '소아즈'(School of Oriental and African Studies)의 문을 두드립니다. (전공분야는 개발학과 리더십. '경제성장 리더십 비교'라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영국 대학의 입학 조건에는 토플 성적도 없었을뿐더러, 입학에 관한 모든 사항은 들어가서 모두 만족시키겠노라는 게 그녀의 제안이었죠.

IMF가 매섭게 몰아칠 무렵, 많은 유학생이 학업을 포기하고 귀국했지만, 그녀는 버텼습니다. 집안의 반대에도 불구, 유학길에 올랐던 그녀였기에 오히려 더욱 맹목적으로 살길을 찾았습니다. 아르바이트를 단 한 번 거르지 않았고 남들이 하기 싫어하는 일에도 선뜻 나섰습니다. 그런 그녀에게 오히려 "윤주는 뭐든 잘해낸다"는 평판을 주었고, 대학에서는 오랜 기간 한국어 교육 강사로 채용하기도 했습니다.

브라질 친구의 결혼식에 참석한 날이랍니다. 아름다운 한복으로 신부보다 더 주목받지 않았을까요.

그녀가 유엔 기구로 들어가기까지 밑거름 역시, 박사 학위보다는 '사회 경력'이었다고 합니다. 박사학위 전공을 살려 유엔대학 산하 요르단의 리더십대학에서 강의를 맡았으나, 프랑스인인 남편(다보스포럼 근무)을 만나면서 스위스 제네바로 자리를 옮겨야 하는 상황에 부딪힙니다. 또 무작정 제네바로 들어옵니다. 유엔기구가 이렇게 많은데 설마 들어갈 자리 하나 없을까.

그런데 정말이지 오라는 자리 하나 없었답니다. 번번이 채용에서 떨어지자 결심한 것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자'였습니다. 박사학위까지 받은 그녀는 당장 NGO에서 무보수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WIPO 인턴(번역)으로, 결국엔 현재 심사팀의 정직원으로 들어가게 된 것. 무보수라고 좋으니 사회경력을 쌓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이유를 알겠지요?

응답하라 1997! 통역·봉사활동 통해 세계를 맛보다

사실 저와 나이 차 1년. 그래서 '응답하라 1997' 때 대학을 다녔습니다. 당시엔 '스펙'이라는 개념도 없었고, 요샛말로 최고의 스펙이라고 한다면 "워드프로세서 1급 자격증" 정도?

이윤주 박사가 당시 "1분에 몇 타 치느냐"가 가장 큰 화젯거리였다는 얘기를 할 때는, 저도 빵~ 터졌습니다. 당시엔 나우누리, 하이텔로 '디디디딕~~~' 해서 겨우 접속하는 시대였고, 요즘처럼 온라인에서 한자리에 앉아 세계 정보를 뒤진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죠. 그러니 겨우겨우 DOS 배우던 실력으로, 컴퓨터 한글 타자 얼마 치느냐가 중요한 과제였겠죠. 고작 15년 지났는데 세상은 참 많이 바뀌었습니다. 컴퓨터가 나오고, 온라인 세상이 열리고, SNS를 사용하면서 우리의 삶은 이렇듯 참 달라졌네요. 흠흠 --.

아무튼, 그 당시 대학생치고 이윤주 박사는 참 다른 구석이 있었더라고요. 아무런 정보도 없는데, 대학 때부터 이미 봉사활동, 국제활동을 두루 다양하게도 경험했고, 그것을 기관으로부터 인증받은 자료를 보관할 줄도 알았습니다. (당시엔 봉사활동 점수니, 인증서니 하는 것들도 없었지요.) 구청 게시판에 걸린 국제 교류 정보도 허투루 놓치지 않았고, 해야겠다 마음먹은 것은 모두 참여했습니다.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 때는 알사바 아시아올림픽평의회(OCA) 회장의 통역을 위해 잠시 귀국도 감행했다구요.

지난 12일 동의대에서는 멘토링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글로벌 리더십' 강연이 열렸는데요(위). 이 박사에게 자신감을 전수받은 멘티들의 모습이 무척 밝아보입니다.

이렇게 대학 시절부터 시작한 무수한 봉사활동과 통번역, 한국어 강사 등 다양한 활동 경력이 국제기구에서 제 역할을 하는 데 기여한다고 믿습니다. 국제기구가 직원을 채용하는 방법으로 흔히 4가지 정도가 있습니다. 첫째가 우리의 행정고시와 비슷한 JPO시험, 둘째가 국제공무원으로 파견된 후 정착하는 방법, 셋째는 판사나 인권변호사 등 국제기구가 승인한 전문가집단으로 들어오는 방법, 그리고 마지막이 이 박사 같은 경우입니다. 두드리면 열립니다. 마음먹고 실천하면 됩니다. 이제 SNS를 통해 원하는 사람을 어디서든 만날 수 있고, 원하는 정보를 어디서든 구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세상은 점점 더 좁아지고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저를 만난 날, 이윤주 박사는 페북에서 만나고 있는 동의대 멘티들에게 ‘글로벌 리더십’이란 제목으로 강의하더군요. 그녀의 목소리로 여러분께 들려드린 이 이야기를 갈무리하고자 합니다.

"암기를 못한다면, 재능이 없다면 더는 하지 마세요. 모두가 같은 스펙 쌓기에 시간 낭비하지 마세요. 자신이 진짜 하고 싶어하는 활동에 나서세요. 지방대를 꼬리표로 만드느냐, 자신의 브랜드로 만드느냐는 여러분에게 달려 있습니다."

작성자
감현주
작성일자
2012-10-22
자료출처
부산이라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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