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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내믹 부산 기획연재

독자에게 돌려준 이 한 편의 시조

예술부산 ‘예인탐방’ ③ 시조시인 임종찬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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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부산|예인탐방
내용

임종찬은 내가 참 좋아하는 시인 중의 한 사람이다.

첫머리에 왜 이런 마음부터 먼저 보이면서 시작하는가 하면, 나에 대한 그의 섭섭함을 풀기 위해서다. 임 시인은 정이 많은 사람이다. 그리고 그는 생래적으로 타고난 시인의 기질을 지녔다. 그는 나에게 자주 전화를 걸어온다. 벚꽃이 열 번 피면 우리 인생도 끝나고 만단다. 그 뒤에 더 사는 것은 덤으로 사는 별 볼일 없는 삶이라는 뜻이겠지. 그러니 아직 핏기가 있을 때, 가는 세월을 술잔에 띄워 놓고 풍류와 더불어 정을 나누자는 것이다. 나는 올봄에 그 벚꽃이 지도록 임 시인을 만나지 못했고, 꽃 진 자리에 연록색 잎이 돋아나는 것을 쓸쓸히 바라보고 있다. 내가 뭐 잘난 게 있어서 ‘쪼’?를 빼는 것도 아니고, 사사로운 일들로 바빠서 그렇게 된 것이다. 나도 이렇게 사는 것이 싫다. 벗들과 더불어 정담을 나누고, 낙화유수를 바라보며 인생의 덧없음을 빨래판 장단에 실어 노래하고 싶다. 언젠가 술좌석에서 임 시인이 내게 투정을 했다. 나만 자꾸 전화를 하니 자존심이 상한다,며 술상을 탁 쳤다. 나는 이런 임 시인이 더없이 좋을 수밖에 없다.

내가 임 시인을 좋아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명리에 초연한 선비정신을 지녔기 때문이다. 그가 소위 문단정치라는 것에 휩쓸리지 않고, 몸을 깨끗이 가다듬고 사는 자세가 마음에 든다. 그리고 그 많은 문학상 주변을 조금도 기웃거리지 않는 점이 좋다. 언젠가 서울의 모 시인으로부터 육당문학상의 수상자로 제의가 왔을 때, 그는 단호하게 거절했다. 조국에 대한 변절자의 상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 기개가 썩 마음에 들었다. 때론 그가 나에게 귀에 거슬리는 소리를 할 때도 있지만, 속으로 삭이며 덮어두는 것은 그의 전체적인 인품이 제대로 된 사람이기 때문이다.

임종찬은 일찍이 고등학생 시절부터 이영도 선생의 문턱을 드나들면서 시조공부를 해왔다. 우리는 이영도 시인의 문하생들 중에서도 임종찬 시인이 가장 많은 총애를 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 아마 선생께서는 그의 문재를 꿰뚫어 보시고, 특별한 관심과 애정을 기울여 주셨던 것 같다. 그런 보람이 있었던지 임종찬은 1966년 부산일보 신춘문예에 시조가 약관의 나이로 당선되었으며, 1973년에는 『현대시학』에서 이영도 선생의 추천으로 문단에 등단한다. 그 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대학에 몸담고 있으면서 줄기차게 시조창작과 현대시조의 이론적 체계를 정립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어쩌면 임종찬에게 있어서 시조는 인생의 전부요, 종교일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임 시인은 요즘 현대시조작단에 대하여 걱정이 참 많다. 문예지에 현대시조라고 발표되는 작품들이 시조의 본령을 어기고, 자유시와 변별되지 않는 형식이 파괴된 비시조가 많다는 점 때문이다.

그렇다면 임종찬 시인이 말하는 시조의 본질은 어떤 것인가?

무리가 따르겠지만 큰 뼈대만 간명하게 소개하자면, 3장으로 된 시조의 각 장은 완전한 하나의 의미형태로 되어 있어야 하고, 문장구성은 주술관계가 선명해야 한다는 점을 역설한다. 그리고 초장, 중장, 종장의 세 의미단위가 유기적으로 결합하여  하나의 완결된 의미체가 되어 한 시조작품을 이룬다는 것이다.

그런데 요즘 현대시조랍시고 발표되는 작품들이 이 간단한 원칙을 무시하고, 각 장을 난삽한 수식어로 꾸며놓아 시조의 문장구조를 어지럽게 하여 독자가 이해하기 어렵도록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가급적이면 수식어를 배제한 간결한 문장으로써 의미해석을 쉽게 할 수 있도록 창작하자고 주장한다. 임 시인이 생각하는 바람직한 현대시조란, 이와 같은 문장 형식을 기본으로 하여 참신한 비유와 선명한 이미지, 그리고 신선한 주제 등으로써 창작된 작품을  말한다.

그러면 임종찬이 주장하는 시조의 본질에 충실하게 보법을 잘 지킨 작품들이 수록되어 있는 제7시조집 『나 이제 고향 가서』를 중심으로 화제를 삼아보자.
 

어부의 집

남쪽바다 남藍빛 보러 / 거제도에 당도하니
물이야 그대론데 / 내 마음이 늙어선지
짚히는 앞산 뒷산이 / 수척하여 뵈더라.

짐을 풀고 일박한 집 / 대구 잡는 어부의 집
밤중만 물질 가서 / 건져 올린 고기 중에
횟거리 두어 접시 남짓 / 잡어들도 보인다.

겸상한 아침상에 / 주인이 따르는 술
얼큰한 찌개 국물 / 더운 정이 왈칵 나서
거칠은 손을 맞잡고 / 형님하자 졸랐다.

인생이 외로우면 / 형님 집에 와야겠다.
바다소리 이불 덮고 / 깊은 잠에 취해보고
형수님 차린 반찬을 / 약으로나 먹어야지.

어부의 집을 읽어보면, 임종찬 시인의 시론이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난삽하지 않고 정확하면서도 간결한 문장구성, 잡다한 수식어가 배제됨으로써 율독을 통해 음악성과 함께 쉽게 전달되는 시의詩意, 그야말로 시조로서의 시조다움을 반듯하게 갖추고 있다. 직독직해 되는 쉽게 쓰여진 시조다. 임종찬 시인은 시조를 이렇게 써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한 판단은 독자들의 몫이지만, 어부의 집은 쉬운 문맥 속에 임 시인의 따스한 인간애가 곡진하게 노정된 인생론적인 작품이다. 그러면서도 바다의 물결소리를 이불 삼아 들으면서 깊은 잠에 들고자 하는 자연회귀의 염원을 현학적인 수사를 피하고, 시조의 그릇에 넘치지 않도록 수수하게  표현했다. 어부의 거친 손을 잡고 형님하자고 조르는 시적 화자의 소박한 인간미가 그리운 시절이 아닌가. 어쩌면 임종찬 시인은 차가운 지성으로 일으켜 세운 현대문명에 대한 반작용과 도전으로서 모더니즘에 완강하게 저항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이를 뒷받침하고 생각케 하는 추론은 ‘나 이제 고향 가서’를 읽으면 더욱더 확고하게 된다.

나 이제 고향 가서

나 이제 고향 가서 / 지친 몸을 쉬게 하고
날 키운 고향 강에 / 발 담그고 목 추기고
풋 남새 크는 재미로 / 세월 잊고 살련다.

어머니 밟던 흙에 / 이랑 지어 씨 뿌리고
내 묻힐 선산자리 / 도래솔에 세워놓고
막걸리 몇 주전자로 / 만석 삶을 살련다.

어리던 동생들과 / 나물 캐던 논두렁길
소학교 풍금소리에 / 절로 피던 민들레꽃
이 봄이 다가기 전에 / 그날 되어 살련다.

나 이제 고향 가서 / 지리산을 병풍 삼고
경호강 물소리를 / 베개 삼아 잠들련다
잠 속에 꿈을 꾸어도 / 고향집에 살련다.

임종찬은 을유생으로 해방둥이다. 그러니까 금년에 그의 연치가 예순다섯이 되었다. 세월은 이렇게 빨리 지나가는가. 그 곱던 홍안은 어디에 빼앗기고, 귀밑머리에 서리를 날리며 이렇게 귀거래사를 읊고 있는가. 언젠가 나는 그가 술을 너무 절제 없이 취음하기에 쓴소리를 했더니, 인생이 무상해서 견딜 수가 없어 그런다고 했다. 나도 그만 할 말을 잃고, 멍청히 허공을 쳐다보고 말았던 적이 있다. 그러던 그가 결국은 이런 시를 토해내듯 발표했다.

잿빛 도시의 삶에서 지친 영혼을 고향, 즉 자연으로 돌아가 쉬고 싶다고 술회한다. 도시 생활에서 느낀 고독과 염증이 심화된 만큼 고향의 과거 시간이 절절한 그리움으로 다가온다. 막걸리 몇 주전자를 만석 삶으로 여기려는 무욕의 전원생활을 지향하고 있어, 이 시를 읽는 독자들의 마음이 편안해진다. 예이츠가 문명의 공해가 극심했던 런던의 도심을 떠나 이니스프리 호도로 가서 아홉 이랑 콩밭을 갈며 간소한 삶을 영위함으로써 마음의 평화를 찾고자 했던 바와 다를 바가 없다. 지리산 자락이 병풍처럼 둘린 고향 산청에서 경호강 물소리를 베개 삼아 잠들면, 도시문명에 지친 마음이 안식과 평화를 누릴 것이라고 표백한다. 잠 속에 꿈을 꾸어도 고향집에서 살고 싶다는 임종찬 시인은 결코 도시의 시인이 될 수가 없었다.

냉정한 지적세계를 추구하는 모더니즘의 시를, 전원시인인 임종찬이 체질적으로 알레르기현상을 일으키는 것은 자연스런 반응일지도 모른다. 사실 임종찬은 첫 시조집인 『청산곡』에서부터 일곱 번째 시조집인 『나 이제 고향 가서』에 이르도록까지 일관되게 자연을 제재로 한 작시 태도를 견지해왔다. 이건 임종찬 시인의 시적 체질이므로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이런 경향의 작풍은 시조의 정체성과 전통성의 원류에 맥이 닿아 있음으로 해서 보수의 자장을 형성하기도 한다. 그러면서 혁신을 지향하는 안티 세력의 공략을 향토성 짙은 이미지로 형상화한 작품들을 발표하여 튼실하게 대응하고 있다.


난초

살갑게 근력筋力을 풀어 / 모래알을 움켜쥔 채 //
한 모금 물이라도 / 만석萬石으로 헤아리며 //
장검長劍에 날을 세우고 / 버텨서는 난초잎 //

일찍이 백수 선생도 난초잎을 칼에다 비유한 적이 있지만, 임 시인은 장검에 날을 세운 것으로 그 기상을 선명하게 이미지로 형상화하였다. 난초엔 시인의 감정이 이입되어 있다. 한 모금의 물을 만석 삶으로 여기며 자족하는 선비의 살림살이가 청빈함으로써 오히려 풍요롭다. 나물 먹고 물 마시고 팔 베고 누웠으니 대장부 살림살이 이만하면 족하도다고 한 선인들의 풍류를 방불케 하는 기상이 난초잎을 통해 칼날처럼 서려 있다. 이러한 이미지의 형상화 작업은 ‘봄 풍경’에서도 시도된다.


봄 풍경

매화꽃 흰 그림자 / 강을 건너 가더니만
음삼월 겨운 봄빛에 / 철쭉꽃 절로 타고
두어 점 산비둘기만 / 자리 옮겨 날고 있다. 

봄에는 녹슨 인연도 / 새로 꽃이 피는 건지
잊어도 한참 잊은 / 옛 애인 두고 간 눈물
동백꽃 주먹만한 슬픔이 / 여기저기 지는구나.

앞서 인용한 난초와 이 시를 읽어보면 보수와 혁신의 경계를 그을 것 없이 이미지는 이미 시의 기본기가 되어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시는 이미지이다, 라고까지 강변하는 것은, 시가 언어예술이라는 원론적인 명제에 깊숙이 그 뿌리가 닿아 있음을 방증하는 것이다.

매화꽃 흰 그림자 / 강을 건너 가더니만

이와 같은 선명한 이미지는 시예술의 한 경지를 놀랍도록 보여준다. 이러한 서술적 이미지는 시조의 문장구성에도 적합하다. 초장의 이런 인과관계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중장에서 음삼월 겨운 봄빛에 철쭉꽃이 홀로 탄다고 하여 시상이 비약된다. 그리하여 종장에서 ‘두어 점 산비둘기만 / 자리 옮겨 날고 있다’고 서술함으로써 시상의 전환과 더불어 결말로 매듭지어 놓았다. 그가 주장한 각 장의 의미 단락이 명백하고, 그것들이 유기적으로 이어져 봄 풍경의 첫째 수를 반듯하게 축조한 것이다. 둘째 수의 보법도 이와 같은 방식으로 끌어가면서도‘동백꽃 주먹만한 슬픔이 / 여기저기 지는구나’와 같은 이미지의 조형에 최선을 다했다. 현대시조 짓기의 모범을 스스로‘보여주기’ 한 작품이다.

임종찬은 평생을 시조의 본질을 규명하고, 이를 이론적으로 체계를 세워서 바람직한 현대시조의 모습을 정립하는데 몰두해 왔다. 그리고 이와 병행하여 그의 시론에 따라 충실하게 시조를 창작하고자 전력투구하고 있다. 그런데 필자는 가끔 이런 생각을 해본다. 임종찬 시인이 장구한 세월에 걸쳐 시조의 이론으로 무장하여 원숙의 경지에 든 요즘의 시조보다, 아직 이러한 시학이 완전하게 여물기 전에 쓰여졌던 초기의 작품들이 훨씬 현대시조답다고 느낄 때가 많다. 그래서 임종찬의 체취가 가장 짙게 풍기면서 바람직한 현대시조의 전형을 보여줬던 그의 초기 작품, ‘연꽃’을 다 함께 감상하면서 이 글을 마칠까 한다. 좋은 시는 해설보다 먼저 가슴으로 닿아오기에 덧칠할 언어를 허락하지 않는다. 읽고 좋다고 느끼면서 저절로 암송되면 그 시조는 성공한 작품이요, 마침내 독자의 것이 된다. 시인이 누리는 가장 큰 영광은 이럴 때 얻어지는 것이 아닐까? 이를 위해 시인들이 평생을 정진하여 한 편의 작품을 남길 수 있다면, 그 수고가 어찌 헛된 것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연 꽃

한 장 물빛을 열고 솟아오른 목숨입니다
실밥 따는 아픔이 낸들 어이 없을까만
받쳐 든 구층 하늘이 만 근 쇠로 누릅니다

헤아리면 당신 생각은 염주보다 무겁습니다
일주문 열고 앉은 부처님 졸음처럼
내 안에 더운 말씀이 연밥으로 익습니다

작성자
예술부산 2009년 5/6월호
작성일자
2012-04-17
자료출처
부산이라좋다
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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