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만화가 박재동 화백을 만나다
“부산은 내 작품 영원한 배경·에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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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시사만화의 대가 박재동(61) 화백. 그를 만나기까지 몇 차례의 통화가 오갔습니다. 취재진이 서울에 가려던 일정을 변경, 2월 7일 그의 모교인 부산 성북초등학교에서 만났습니다. ‘박재동 화백과 함께 하는 62회 졸업스케치’ 강의를 마치고 인터뷰를 한 것입니다.
그는 성북초등학교 15회 졸업생. 이날 후배들에게 마음에 오래 남을 이야기를 들려줬습니다.
만화책 가득… 보물섬에서 만화가 꿈 키워
그는 강의를 시작하며 어릴 적 송곳으로 장판에 파도를 그린 일화를 들려줍니다. 어린 눈에 처음 봤던 바다가 인상적이어서 그려보고 싶었습니다. 종이도 없고 크레용도 없던 그때, 송곳이 눈에 띈 것입니다. 혼이 날까 걱정했지만 아버지는 오히려 어린 박재동을 칭찬했고, 그는 자신이 화가의 꿈을 키웠습니다.
그러다 만화와 가까워진 것은 초등학교 3학년 때 부산으로 이사를 오고 나서부터입니다. 그의 어머니는 전포동에서 만화가게를 운영하셨는데 그에게 이곳은 보물섬 같은 곳이었습니다.
그는 참 행복한 시절이었다고 회상합니다.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만화책이 가득하고 팥빙수, 떡볶이, 어묵, 꽈배기, 도넛을 마음껏 먹을 수 있었습니다. 그는 하루에 20권씩 만화를 보았습니다. 1년이면 7천권, 3년이면 2만권입니다. 그만큼 만화를 많이 본 사람이 또 있었을까요.
만화가 천대 받던 시절… 만화를 사랑하다당시 만화는 지금과 같은 대우를 받지 못했습니다. 어린이날이면 만화책 화형식을 했고, 담임선생님은 종례시간마다 학생들에게 만화책을 보지 말라고 당부하셨습니다.
하루는 담임선생님이 그림 잘 그리는 어린 박재동을 불러 포스터를 그리라고 하셨는데 주제가 ‘만화책을 보지 말자’였습니다. 박재동은 갈등합니다. 효자가 되어야 할 것인가, 그림에 충실해야 할 것인가. 결국 그림을 잘 그렸고, 상을 탔고, 담임선생님이 사주는 자장면을 맛있게 먹었답니다. 그리곤 집에 돌아와 아버지께 “우리 만화방 안 하면 안 돼요?” 했다지요.
“나중이 아닌 지금 만화가가 되어라”
한 학생이 박 화백에게 물었습니다.
“선생님, 만화가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만화가는 자격증도 없고, 나이 제한도 없습니다. 지금 당장 만화가라고 생각하시고 만화를 그리세요.”
박 화백의 대답은 명쾌합니다. 실제로 초등학교 6학년 학생이 만화를 그려 책으로 출판한 일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만화가 책으로 출판되든 출판되지 않던 본인이 만화가라고 생각하면 만화가인 것입니다. 팬이 5명이라도 있다면 행복한 만화가라는 것이지요.”
나중에 무언가 이루려고 하지 말고 지금 당장 시작하라는 메시지입니다.
“세상 모든 사람 다 그리겠다”
1시간여의 강의가 끝나고 사인회가 시작됐습니다. 교장선생님부터 학생들까지 200여명의 팬들이 줄을 섰습니다. 필자는 ‘사인 몇 장하시고 끝내겠지’ 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웬 걸, 이건 사인이 아니라 그림입니다. 박 화백은 줄 선 사람들의 얼굴을 한 장 한 장 그려주었습니다. 그림을 받아든 이들은 그림을 얼굴 옆에 대고 사진 찍기 바빴습니다. 박 화백의 작은 그림 하나로 모두가 행복해 합니다.
“모교에 오니 내가 즐거운가 봐”라며 그는 이날 100여명이 넘는 이들을 그렸습니다. 어느 인터뷰에서 박 화백은 세상 모든 사람 그리겠다고 했는데, 정말 가능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시사만화가에서 따뜻한 시선 가진 예술가로
박 화백은 1988년부터 8년간 한계레신문에 시사만평을 그렸습니다. 80~90년대 날카로운 비평으로 국민들의 가슴을 시원하게 뚫어주며, 한국 시사만화의 대가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박 화백은 비평을 하다보니 눈빛이 무섭게 변해 있었고, 일에 집중하느라 막상 그림연습을 못했다고 합니다. 몇 년 전부터는 작은 노트를 가지고 다니며 수시로 그림을 그렸습니다. 특히 누군가를 기다리는 잠깐의 시간은 그림연습하기에 더없이 좋은 시간입니다. 그는 이 시간을 ‘잠시 자기를 만나는 시간’이라고 표현했습니다.
그림 연습하다가 ‘이대로 작품이 되겠구나’ 싶어 꾸준히 그린 그림이 수천 점. 그중 200여 편을 골라 ‘박재동의 손바닥 아트’이라는 책으로 묶었습니다. 한 편의 그림일기 같은 것입니다. 이 책의 그림들은 작가의 따뜻한 시선과 사람에 대한 깊은 이해가 엿보입니다. 그림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특히 몇 달 전 펴낸 ‘박재동의 손바닥 아트’는 눈에 힘 풀고 사람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따뜻한 그림을 선보였습니다.
“누구나 자신만의 예술 꽃피울 수 있다”현재 박재동 화백은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애니메이션과 교수입니다. 그는 시사만화가 이전 고등학교와 중학교에서 미술교사를 했습니다. 남다른 교육방식으로 유명합니다.
박 화백은 교사 시절 미술시간에 종이비행기 날리기, 돌탑 쌓기, 운동장 집짓기를 했습니다.
“미술에 정답 없습니다. 아이들은 무엇이든지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그가 생각하는 미술교육은 가까이에 있는 것입니다. 낙서도 미술이 될 수 있습니다.
그는 사람들이 미술을 가까이 하지 못하는 이유를 ‘그림의 크기’에서 찾습니다. 사람들은 ‘그림’이라고 하면 어렸을 적부터 스케치북 크기를 먼저 떠올립니다. 색칠도 해야 할 것 같고 여러모로 부담이 됩니다. 그러나 “누구나 자신산의 예술 꽃피울 수 있다”며 사람들이 미술을 좀 더 가까이 느끼길 바란다고 합니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행복하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바람을 늘 갖고 있다는 그. 오늘 강의 중에 노래를 부르고 그림을 보여준 것도 같은 이유에서입니다.
부산이, 부산사람이 자랑스러운 박 화백“학창시절 미술반 활동을 하면서 부산을 참 많이 그렸습니다.”
성북초등학교와 문현동뿐만 아니라 에덴공원·다대포·부산항·전포동 등 부산의 여러 곳을 그렸습니다. 유년 시절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부산은 만화가로서 자신의 정서를 만들어준 고마운 곳이라고 말합니다.
박 화백은 부산이 세계 어느 도시보다 아름답다고 합니다.
“사방에 바다가 펼쳐져 있고, 선선한 바람이 불고, 시원합니다” 라며 “부산사람의 기질 또한바다를 닮아 시원시원하고 솔직하며 화끈하고 적극적”이라고 말합니다.
그는 서울대학교 재학 시절 부산이 너무 그리워 수업 빠지고 부산 찾기도 했을 정도입니다. 세상 모든 사람이 부산 사람들 같다고 생각했던 박 화백. 서울에 가서 처음엔 조금 혼란스럽기도 했지만 다양한 지역에서 온 사람들을 지켜보며 그들의 장점을 발견하기도 했습니다. “사람에 대한 애정이 더 깊어졌습니다”라며 웃는 그의 미소가 봄 햇살에 반짝이는 부산 바다를 닮았습니다.그는 하고 싶은 것이 많습니다. 만화, 애니메이션, 그림, 회화, 교육, 문화 운동 등. 박 화백은 몇 권의 책도 계획하고 있습니다.
“여행을 다니며 세계를 보고, 나이가 드니깐 관심사가 우리나라에서 전 세계로 확장됐습니다.”
현재 그는 2주 여정으로 네팔에 가 있습니다. 산악인 엄홍길 씨가 네팔에 세 번째 학교를 지으러 가는 데 동행한 것입니다. 네팔어로 번역한 그의 만화책을 전달하고, 한국예술종합학교 학생들과 벽화 그리고 미술교육도 하고 올 계획이다. 앞으로도 만화계를 위해, 부산을 위해, 할 일이 많은 박 화백을, 우리 부산 시민 모두가 열렬히 응원합니다.
성북초등학교에서 강의하고 있는 박재동 화백. 뒤쪽 스크린에 초등학교 때 그린 성북초등학교 그림을 띄우면서, 성북초등학교 그림이 여러 장 된다며 다 보여주지 못해 아쉬워했다.
초등학교 시절 그의 집은 만화가게였다. 당시 직접 그린 만화가게 그림을 슬라이드에 띄우고 에피소드를 이야기하고 있다.
박 화백은 강의를 하며, 어릴 적 그린 그림, 만화를 많이 보여 줬다. 아이들은 연신 ‘와~!’ 탄성을 질렀다.
15회 졸업생인 대선배 박 화백과 5, 6학년 후배들이 교가를 부르고 있다.
선배와 후배, 선생님 모두 모여 기념사진 한 장. 찰칵!
사인회에서 학생들의 얼굴을 그려주는 박 화백. 그는 인물의 특징을 포착하기 위해, 눈을 꼭 맞추고 부드러운 말투로 이것저것 물으면서 그림을 그렸다.
박 화백은 100여 장이 넘는 그림을 그려 선물했다. 박 화백 덕분에 작은 그림 하나로 남녀노소 모두 행복해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그린 성북초등학교 전경. 박 화백은 성북초등학교 15회 졸업생이다.
중학교 시절의 가방 스케치. 그림연습을 꾸준히 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그린 그림. 어린 시절 박 화백의 뛰어난 관찰력이 드러나는 작품이다.
고등학교 미술반 시절 그린 그림. 문현동, 에덴공원, 다대포, 부산항, 전포동 등 부산의 여러 곳을 그렸다.
박 화백이 중학교 2학년 때 그린 순정만화.
박 화백이 처음 그린 풍자만화. 중 3때 그린 그림이다. ‘이 산에서 살생을 하면 엄벌에 처함’이라고 적어 놓고는 고기 먹는 스님을 그렸다.
박 화백이 고교시절 그린 만화 ‘내 가슴에도 봄은 왔습니다’ 표지.
‘내 가슴에도 봄은 왔습니다’ 내지. 박 화백은 100여 페이지가 넘는 이 만화책의 스토리를 짜고 그림을 그렸다. 내용은 주인공 ‘풍당이’의 성장·사랑이야기다.
중학시절 스크랩. 좋아하는 것들을 모두 모아 놓았다.
중학시절 일기장이다. 색칠까지 한 그림이 돋보인다.
- 작성자
- 김정희
- 작성일자
- 2012-02-27
- 자료출처
- 부산이라좋다
- 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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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이라좋다 제151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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