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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내믹 부산 제1490호 기획연재

‘생각하는 건축가’ 승효상에게 부산건축의 길을 묻다

내용

‘생각하는 건축가’ 승효상, 잡지 ‘부산이야기’ 중 ‘차용범이 만난 부산사람’이 만난 부산출신 건축대가입니다. 여러 신문·잡지를 통해 그의 쟁쟁한 명성 익히 들었구요. ‘감성으로 집을 짓는 사람’, ‘아시아 대표 건축가’ 같은 평가도 귀에 익습니다. 그럼에도 전, 그를 ‘부산사람’으로 인식하질 못했습니다. ‘건축가 승효상’의 명성은 그동안 부산을 떠나, 서울을 바탕으로 쌓아왔기 때문입니다.

‘생각하는 건축가’ 승효상에게 부산건축의 길을 묻다

‘승효상=부산사람’을 못질해 준 이는 연출가 이윤택입니다. 혹 기억하실지 모를 일입니다만, 전 ‘부산이야기’ 3월호에서 그를 인터뷰한 적 있구요. 그 인터뷰에서 저와의 인연도 좀 밝힌 바 있습니다. 그 이윤택, 저와 같은 어느 문화상 받은 인연도 있구요. 그 수상자 모인 한 문화포럼의, 같은 회원이기도 하지요.

얼마 전, 그 포럼에서 문화토론 가졌습니다. 발제자는 부산문화재단 남송우 대표, 연극연출가 이윤택 교수, 두 분 다 같은 문화상 수상한 포럼 회원이죠. 이 교수의 발제 주제는 “부산문화, 넘치는 것, 모자라는 것”, 이 교수는 정말, 그답게, 알차고도 신랄한 발제를 해 주었어요. 그 발제에서 이윤택은 중요한 한 가지를 지적하더군요. “부산문화, 왜 부산사람 범위를 폐쇄적으로 가르냐?”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세계 속에서 한국을 빛내는 유명한 ‘부산사람’들을 왜 부산사람으로 대접하지 않느냐고 항변하고, 그 대표적 인사로 승효상, 백건우 같은 분들을 거론하더군요.

승효상을 인터뷰한 계기입니다. 승효상과 이윤택은 고교 동기더군요. 인터뷰 전, 이윤택의 ‘부산사람론’을 얘기했더니, 그도 “그런 일이 있었냐?”면서, “아, 나도 공감하는 얘기”라고 받더군요. 며칠 전 중앙일보 주말섹션 ‘중앙 J View’에 난 ‘승효상의 아기택처(我記宅處)’ 중 안동 병산서원 얘기도 나왔구요. 그 사진에 실린 그 시각 그대로, 얼마 전 포럼 회원들이 서원에서 일박했으며, 그 때 선생을 초대할 생각도 했었다는 얘기까지 덧붙이니, 인터뷰 ice-breaking은 ‘끝’. 가벼운 분위기 속에서 인터뷰 일사천리 진행한 결과, 아래와 같이 엮어 올립니다. 인터뷰 기사는 ‘부산이야기’ 9월호에 게재 예정.
 

‘생각하는 건축가’ 승효상에게 부산건축의 길을 묻다

‘생각하는 건축가’ 승효상에게 부산건축의 길을 묻다

‘생각하는 건축가’ 승효상(承孝相, 59). 한국을 넘어, 세계 건축계의 대가로 큰, ‘부산사람’이다. 그의 건축에는 독특한 철학이 있다. 사람과 자연의 조화, 보기 좋은 건축보다 그 안의 사람이 행복한 공간.... 그만의 깊은 감성에 바탕한 휴머니즘 건축이다. 그의 지향점은 뚜렷하다. ‘인간성을 회복하는 (도시)공간’이다.

그는 ‘감성으로 집을 짓는 사람’이란 평가지만, 그저 소박한 건물만을 짓는 건축가는 아니다. 거대한 파주 출판문화단지 프로젝트를 지휘하고, 중국 만리장성 주거단지 상징건물을 설계하며, 올 광주디자인비엔날레 총감독을 맡은, 엄연한 아시아 대표 건축가의 한 사람이다. 오늘도 부산 사투리를 펄펄 날리며 부산을 즐겨 찾는 건축대가, 그 휴머니즘 건축의 눈은 오늘 부산건축을 어떻게 볼까?
 

‘생각하는 건축가’ 승효상에게 부산건축의 길을 묻다

‘생각하는 건축가’ 승효상에게 부산건축의 길을 묻다

먼저, ‘부산사람 승효상’의 정체성을 확인한다. “당신은 왜 부산사람인가?”

그는 반응한다, “나는 기질부터 부산사람이다. 그 기질 그대로 살고 있다.” 그가 말하는 그 기질은 ‘절박함’과 ‘낙천성’이다. 억센 억양의 사투리, 앞뒤 끊고 얘기하는 어법, 화끈한 성격..., 지리적, 역사적 바탕을 그대로 드러낸다는 것이다. 두 단어 역시 동전의 양면으로 본다. “내가 일하는 원동력은 그 절박함 때문이다. 나는 일상에 지칠 때면 고향 부산을 찾고 있다. 부산바람을 쐬며 내 기력을 회복한다.”

그는 부산 태생이다. 본적지는 서구 서대신동 194번지, 지금 구덕운동장 뒤편이다. 가족은 해방 후 월남, 6.25전쟁 때 피난 왔다. 어렸을 땐 불우했다. 육성회비를 내기 어려웠다. 수업을 받지 못하고도 바로 귀가하지 못해, 송도 바닷가까지 걸어가 시간을 보내곤 했다. 방황하던 소년시절, 도서관 사서 선생님의 배려가 있었다. 도서관의 책을 마음껏 읽으며 현실 밖의 세상을 한껏 탐험했다. 책은 삶의 돌파구였다.

“나는 어렸을 때 살던 집, 그 마당에 아련한 추억이 있다”, 마당을 가운데 두고 일곱 가구가 모여 사는 형태, 마당을 중심으로 벌어졌던 사건, 마당에서 바라본 풍경..., 그의 건축인생을 가름한 중요한 모티브다. 그가 추구하는 ‘땅과 사람을 위한 건축’이다.

그가 건축을 전공키로 한 것은 경남고교 3학년 때. 어릴 때부터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며 미술에 빠졌다가, 누님의 권유 덕분에 건축의 길을 찾았다. 서울대 건축학과 석사과정까지를 마치고, 오스트리아 비엔나 공과대에서 실무를 겸하며 공부했다. 한국 건축계의 거장 김수근 문하로 건축계에 입문, 15년간 ‘공간연구소’에서 일했다. 1989년 건축사무소 ‘이로재’(履露齋; 이슬을 밟는 집)를 창업, 독자적 건축세계를 구가 중. 한국예술종합학교 객원교수, 서울건축학교 운영위원까지, 다양한 건축활동에 열정을 쏟고 있다.
 

‘생각하는 건축가’ 승효상에게 부산건축의 길을 묻다

‘생각하는 건축가’ 승효상에게 부산건축의 길을 묻다

“건축, 과연 뭔가?”

“철학자 하이데거의 명제가 있다, ‘사람은 거주함으로써 존재한다. 그 존재는 건축으로 나타난다’-너무도 정확한 말이다. 나는 건축이 우리 삶을 바꾼다고 굳게 믿고 있다.” 그는 건축설계를 ‘어떻게 사는가를 조직하는 것’으로 정의한다. 공간의 구성과 동선에 따라 사는 방식이 달라진다, 부부가 닮아가는 것도 같은 공간에서 그 공간의 법칙에 지배를 받으며 살아가기 때문이다, 공간은 확실히 우리의 생활을 바꾼다....

승효상, 그는 이런 점에서 건축은 공학이나 예술 분야가 아닌, 인문학의 영역임을 거듭 강조한다. “건축가에겐 문학적 상상력과 역사에 대한 통찰력, 사물에 대한 사유의 힘이 필수적이다. 이웃의 삶에 대한 애정과 존경 속에 작업해야 하므로. 좋은 집을 지으려면 남이 어떻게 사는지를 알아야 한다. 기술이나 조형은 간단하고 부차적인 것이므로.” 소설도 많이 읽고, 영화도 많이 보고, 역사·철학 공부도 많이 해야 한단다. 인문학적 소양이 바탕에 쌓여야 좋은 건축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그의 서재엔 건축관련 서적이 압도적이지만, 인문과학 서적도 상당히 많다. 무엇보다 사상과 철학 서적들이 즐비하다. 사색하는 건축가임을 반증하는 것이다. 신간 ‘지식인의 서재’ 중 ‘승효상의 건축 찾기’편도 그의 독서편력을 보여준다. 특히 ‘침묵의 세계’는 물신주의에 빠진 현대에 더 많이 읽혀야 하는 책이라고 평가한다. 침묵이 왜 우리에게 필요한지를 말해 주기 때문이다. ‘침묵을 모르는 도시는 몰락을 통해서 침묵하게 된다’-그는 이 경고 메시지에 푹 꽂혔단다.
 

‘생각하는 건축가’ 승효상에게 부산건축의 길을 묻다

건축가 승효상, 그의 건축철학은 ‘빈자(貧者)의 미학’이다. 절제, 소박, 단순하게-, 가난할 줄 아는 사람들의 미학이다. 그는 건축주에게 “이 집은 당신 집이 아니다. 사용할 권리는 당신에게 있지만 소유할 수는 없다”고 말한다. 집은 주변사람에게 영향을 주는 만큼 공공적 가치를 지녀야만 한다, 법규가 허용하는 최대치를 고집하지 말고 이웃집, 주변 환경들과 조화를 이루는 건축을 해야 한다..., 그의 강조점이다.

‘건축가는 건축주의 시녀가 아니다, 개인 아닌 공공을 위해 봉사해야 한다’-그는 이 철학에 걸려 고생도 많이 했다. 건축이 한 개인의 시녀로 전락하면 공공적 책무를 상실한다는 철학, 이 때문에 처음엔 일을 제대로 맡지 못했다. 그인들 처음부터 명성이 있었겠나, 그인들 왜 돈의 유혹을 받지 않았겠나. “밥을 굶으며 그 시간을 견뎌내야 한다. 그게 ‘절박함’ 아닌가?” 이젠 그들이 중요한 일·큰 건축거리를 갖고 그를 찾아온다.
 

‘생각하는 건축가’ 승효상에게 부산건축의 길을 묻다

‘생각하는 건축가’ 승효상에게 부산건축의 길을 묻다

“그렇다면 ‘좋은 건축’이란 어떻게 지어야 하나?”

그는 세 가지 기준을 얘기한다. 첫번째, 합목적성 문제. 학교는 학교 같아야 하고 교회는 교회 같아야 하며 집은 집 같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건축만이 훗날 그 자체로 고고학적 가치를 지닐 것이다. 두번째, 시대와의 관계. 건축을 가리켜 ‘시대의 거울’이라고 일컫는 만큼, 그 시대에 가장 적합한 공법과 재료와 양식으로 지어야 바른 건축인 것이다. 그 건축을 통하여 우리는 그 사회의 풍속과 문화를 알 수 있다.

세번째, 건축과 장소의 관계. 건축은 반드시 땅 위에 서는 것을 전제로 한다.이 땅들은 오랜 세월을 그 자리에 있으면서, 특수한 지리적. 역사적 컨텍스트를 갖는다. 이 ‘장소’의 성격을 제대로 반영한 건축이 바른 건축이다. 당연히, 미국과 한국의 집은 달라야 하며 서울과 부산의 집은 다른 형식이어야 한다.

그가 설계할 때 중시하는 요소는 ‘승효상 건축’의 특징으로 나타날 터. 그는 그 중에서도 공공성을 중시한다. 건축의 윤리는 곧 공공성의 확보로 본다. 건축주에게 “이 집은 당신 집이 아니다”라는 말을 꼭 하는 이유다. 개인이 돈을 내고 짓더라도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주지 않을 수 없는 게 건축이다, 건축의 소유권은 개인 아닌, 시민에게, 사회에 있다....
 

‘생각하는 건축가’ 승효상에게 부산건축의 길을 묻다

승효상의 건축세계를 오롯이 반영한 작품은 뭘까? “도시, 주택, 병원, 교회..., 내 작품인들 왜 하자·결점이 없겠는가. 다만, 늘 전철 밟을 것을 걱정하며 대비하곤 한다.” 굳이 그에게 의미 있는 건축이라면? “결점은 많지만, 수졸당(1993, 서울 학동)을 들지 않을 수 없다.” 수졸당,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로 유명한 유홍준 교수 자택이다. 도심 속에서 전통과 현대의 조화를 시도한 작품, 곧 ‘승효상 건축세계’ 제1호다. “유 교수는 가난한 학자일 때, 아버지 퇴직금으로 그 집을 지었다. 그 집에서, 좋은 책 써서 돈 많이 벌고, 문화재청장 지내고, 우뚝한 명성 얻었으니, 좋은 집 아닌가?” 수졸당은 합목적성-시대성-공간성을 다 구비했다고, 그는 평가한다.

더불어, 그는 공공성 강한 건물들에 강한 애착을 드러낸다. 도시건물은 그 자체를 넘어, 앞동네.뒷동네를 잇는 중간이므로. 도시 건물은 주변과 어떻게 어울려야 하나? 그 예로 도심 속 건축의 공공성을 강조한 ‘웰콤시티’(2000, 서울 장충동)와, 풍경식 건축 개념을 시도한 대전대 혜화문화관(2003·대전)을 든다. 두루 한국 건축사에 큰 획을 긋는 그의 작품들이다.

‘생각하는 건축가’ 승효상에게 부산건축의 길을 묻다

승효상은 부산 구덕교회(2008. 부산 서대신동)에도 각별한 애정을 갖고 있다. 그 교회는 그의 정신적 근간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곳. “아버지가 설립하고 지은 교회, 집과 담벼락을 마주하는 곳, 나는 교회마당 한 켠의 무화과나무와 더불어 자랐다.” 그래서, 그 옛 모습을 되살려 다시 지은 건물이다. 그가 40여년 서울생활에 묻혀 있을 때 교회에서 찾아왔다. “아직도 구덕교회를 기억하고 있나?”면서. 그가 그 교회를 어떻게 잊을 것인가? 그러니, 그의 감격은 얼마나 컸을 것인가?
 

‘생각하는 건축가’ 승효상에게 부산건축의 길을 묻다

이제, ‘생각하는 건축가’ 승효상에게, 부산건축을 묻는다. 독특한 건축철학을 가진 건축대가, 지칠 때면 해운대 바닷가를 찾는 부산사람, 그에게 부산건축에의 평가가 없을 수 있겠는가.

‘답답하다’-그는 망설임이 없다. “사실, 분별없는 건축이 늘고 있다. 부산의 지역적 정체성을 잃고 있다. 해운대나 광안리는 정체 모를 신흥도시로 변모하는 느낌이다.” 그는 부산의 부분들, 바닷가-산-시가지 부분을 보는 건축의 원칙과 방법이 서로 달라야 한다고 본다. 지금 부산은 그 개념을 잊고 있다고 본다.

최근 부산사회 일각의 난개발 논란에 대해서도, 그는 훤하다. 해운대의 무분별한 개발을 지적하는 언론 칼럼들도 두루 꿰고 있다. “정말이지, 해운대처럼 아름다운 경관을 가진 해변은 별로 많지 않다. 옛날의 와우산과 바다, 비록 남루하지만 시대상을 담은 건물, 그 절경들이 해체상태다. 해운대 ‘장소’ 곳곳에 고층건물만 늘어서면 삶의 흔적은 송두리째 없어진다.”

그래서, 그는 미포 단골회집에서 밥을 먹고 해질녘 노을을 즐기면서도 ‘개발지역’에 눈길 두기를 꺼린다. ‘터에 새겨진 무늬’가 깡그리 없어지는, 그 터무니없는 현장들이 두렵기 때문이다. 이쯤에서 도시 디자이너 김석철의 글을 얘기한다. 유수 월간지에 기고한 건축이야기, “공중으로 치솟는 집 ‘하늘의 게토’ 될까 두렵다”이다. ‘21C 바벨탑 초고층 주상복합’에 초점을 맞추며, “반인간적·반자연적 주거공간 문제 산적... 도시적 조건과 미래문명을 내다보는 안목으로 대응해야”한다는 주장이다.
 

‘생각하는 건축가’ 승효상에게 부산건축의 길을 묻다

건축가 승효상, 그는 김 박사의 생각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고층화, 역사적으로 인간의 원초적 본능이다. 단, 평지,사막도시에선 통할 수 있으나 해운대에선 그럴 수 없다. 고층화, 삶 자체에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없다. 건축, 언젠가 무너진다. 여러 현대적 설비는 건축수명을 단축하기 마련이다. ‘이 건축, 어떻게 무너질까?’를 생각한다면, 과연 지금 양식을 택하겠는가?” 그의 코멘트 한 마디-“집은 황금알 부동산을 넘어 공공적 가치를 지녀야 한다.”
 

‘생각하는 건축가’ 승효상에게 부산건축의 길을 묻다

‘생각하는 건축가’ 승효상에게 부산건축의 길을 묻다

‘생각하는 건축가’, 그는 어떤 건축으로, 어떤 평가를 받고 싶을까? 그는 일찍부터 ‘건축이 삶을 바꿀 수 있다’고 믿어온 사람 아닌가. 자신의 목표는 ‘건축을 통해 삶의 진실을 찾는 것’이다. 제자에게도 혹독하다, “나쁜 건축은 사람을 망친다. 건축을 희롱하지 말라”고 강조한다. 그는 건축의 인문학적 해석을 시도하며 인간위주 공간을 창조하고 있다. 그가 듣고 싶은 평가도 바로 이럴 터-.

“부산사람 승효상, 부산으로 귀향할 생각은?” “지금은 어렵다, 나를 필요로 하는 곳 , 아직 그 절박함에 호응해야 한다. 내가 일을 벗어던질 때, 나는 기질 맞는 부산에서 살고 싶다.” 고향 부산에의 기대는? 부산은 대한민국 땅의 한계를 극복할, 지정학적으로 대단히 중요한 곳이다. 부산은 넓디넓은 대륙의 끝을 마주보는 시,종착점 아닌가. 부산, 맡아야 할 몫을 잘 감당해 주면 정말 좋겠다....

인터뷰 끝에 오간 말, “오늘 얘기, 파문을 빚거나 구설에 오른다면?” 그는 단문으로 대답한다, “난, 신경 안쓴다, 맷집이 좋으므로-.” 그는 지금, 광주 디자인 비엔날레의 성공에 ‘올인’하고 있다. 이 일에서 앞으로 맡아야 할 일을 생각할 계기를 찾을 것으로 기대한다. “건축가는 끊임없이 새로워져야 한다. 땅이 다르면 건축도 달라져야 하기 때문에”, 늘 새로워지려 노력하는 건축가 승효상, 그 속 깊은 변신의 끝은 과연 어디일까?

작성자
차용범
작성일자
2011-08-29
자료출처
부산이라좋다
제호

부산이라좋다 제1490호

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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