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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내믹 부산 제202011호 기획연재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 '관객', 세상의 모퉁이에서 관객의 새로운 역사 만든다

부산의 전시·문화공간 ⑪모퉁이극장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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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구 40계단 앞 분식집 건물 4층에는 부산 관객영화운동의 요람 '모퉁이극장'이 있다.


모퉁이는 꺾이는 곳이다. 길을 가다 꺾어서 돌아가는 곳이다. 꺾는다는 것은 방향을 전환한다는 것이고, 방향을 전환하면 새로운 세계가 나타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세상의 모든 곳에는 모퉁이가 있다. 아니 꼭 필요하다. 공간으로서의 모퉁이는 작고, 외지고, 보잘것없지만, 모퉁이가 없으면 새로운 세계는 열리지 않는다. 그러므로 모퉁이는 세상의 끝이면서 새로운 세상이 시작되는 시원(始原)이기도 하다.


관객영화모임이자 시민영화관인 `모퉁이극장'(중구 40계단길 7)은 이름처럼 부산 영화계의 모퉁이 역할을 충실히 해내는 곳이다. 모퉁이극장은 `관객'에 방점을 둔 단체다.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인 관객을 중심에 두고 다양한 활동을 편다. 영화모임이 영화보다 관객에 방점을 찍었다는 건 고정관념을 뒤집는다. 인식의 전환을 통해 고정관념을 허무는 도발을 이 작은 영화모임은 거뜬히 해내고 있다.


관객을 중심에 둔 영화 운동은 관객`만'을 중심에 둔다는 의미는 물론 아니다. 영화를 새로운 관점에서 보고 향유하고, 그것을 통해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내겠다는 것이다. 즉, 관객이 주도적으로 이끄는, 관객 중심 영화관이다. 좀 더 쉽게 말하면, 대부분 극장에서 중심은 영화다. 관객들은 영화를 보러 극장에 오고, 영화가 끝나면 극장을 떠난다. 영화를 선택하는 것은 관객이지만, 그 선택은 수동적이고 타의적이다. 극장을 떠나면 관객이라는 위치는 사라진다. 영화 감상이나 비평은 개개인의 영역으로 숨어들고, 전문가들의 목소리만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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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퉁이극장 내부. 극장의 지난 시간을 담은 다양한 포스터가 붙어 있다.


그런데 뒤집어보면, 영화는 흔히 창작자(주로 감독과 배우)의 몫으로 인식되지만, 실은 영화를 보는 관객의 몫도 있다. 관객이 많은 영화는 역사에 기록된다. 관객에 의해 영화는 역사가 되지만, 안타깝게도 그 역사에서 창작자만 남고 관객은 사라진다.
모퉁이극장 김현수 대표는 생각했다. 영화의 주인공이 관객이 될 순 없을까? 영화를 사랑하는 마음을 가진 관객의 위상을 세우는 일도 중요하지 않을까?
김 대표의 이러한 사고의 전환은 `관객'이 중심이 된 `모퉁이극장'을 탄생시키는 계기가 됐다. 여기에 함께 인문학 공부를 하던 김동길 부대표와 변혜경 사무국장의 뜻이 보태졌다.


관객에 의한, 관객을 위한, 관객 영화관
`모퉁이극장'이 생긴 것은 김 대표의 지극한 영화 사랑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극장'이라는 이름을 달고 오랜 역사를 견뎌온 공간들마저 멀티플렉스에 속절없이 밀려나고 사라진 시대에 극장의 등장은 아이러니한 사건처럼 보였다.
김 대표는 영화감독 지망생이었다. 단편영화를 직접 찍기도 한 그는 영화감독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다. 현실적인 직장인으로 사느냐,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사느냐는 고민도 했다. 그러나 1년에 1천 편 이상 영화를 볼 정도로 영화를 사랑한 그가 영화를 쉽사리 떠날 수는 없었다. 영화와 관련된 일을 하고 싶었다. 그러던 중 관객과 관련된 일을 하는 것은 어떨까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좋은 감독은 되지 못했지만 좋은 관객이 되자." 궁리 끝에 그는 `관객 중심' 영화관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고안했다. 관객들의 다양하고 고유한 생각들을 `관객 활동'이라는 이름으로 개념화하고, 이를 실현할 수 있는 공간을 열었다. 2010년부터 준비 과정을 거쳐 2012년 `모퉁이극장'이 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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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퉁이극장 내 상영관.


처음에는 공들여 만들고도 대중에게 주목받지 못하는 독립영화를 중심으로 상영회를 열었다. 독립영화 상영회는 입소문을 타고 회를 거듭하면서 관객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그해 연말 열었던 `관객들의 밤' 행사에 1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참여하는 뜨거운 반응을 보면서 김 대표는 `관객의 힘'을 실감했다. 누구보다도 영화를 사랑하지만, 관객이라는 위치-영화를 보면 혼자 감상하는 데 지나지 않는-에 있는 사람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영화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것은 관객이라는 `영화인'에 대한 자각이기도 했다.


그들의 목소리를 담은 잡지 발간은 모퉁이극장을 알리는 결정적인 매개가 됐다. `관객문화 응원 잡지'라는 부제를 단 잡지 `모퉁이극장'은 모든 필진이 순수 `관객'으로 구성되어 있다. 2012년 메이드인부산 독립영화제의 본선 진출작 26편에 대한 `관객 리뷰'를 실었다. 필진으로 참여한 `관객 리뷰단'에는 글을 쓰는 것에 익숙한 관객도 있었지만, 처음 리뷰를 쓰거나 독립영화를 잘 접해 보지 못한 관객도 있었다.


모퉁이극장의 관객 운동은 물결처럼 잔잔히 번져갔다. 그 덕분에 2013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하나의 섹션을 맡을 수 있었다. 다름 아닌 `모퉁이 관객살롱'이다. 관객 자신이 직접 영화를 선정해 상영회를 했다. 9명의 관객이 직접 사연이 있는 영화를 골랐다.


관객 주도 영화 상영과 이후 활동
김 대표는 `관객 중심'이라는 극장의 정체성에 맞는, 관객이 더 적극적으로 영화의 주인이 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2015년부터 시작된 `관객문화교실'은 상·하반기를 나눠 10주간 교육하는 프로그램으로, `나만의 영화 톱10 목록' 소개하기 같은 커리큘럼을 통해 관객 활동가를 양성한다. 20대 젊은층부터 중년층까지 다양한 세대가 영화를 통해 자연스럽게 소통하고 연대한다. 과정이 끝난 후에도 이들은 동호회를 만들어 주도적으로 활동을 이어간다. 그중 하나가 영화 상영 프로그램 기획 등의 활동을 하는 `애프터 시네마클럽'이다.


`애프터 시네마클럽'은 영화 이후 시작되는 관객의 시간에 시선을 맞춘 프로그램으로, 영화를 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함께 감상과 의견을 나눈다. 다양한 계층의 다양한 생각들을 통해 영화는 그저 보는 것이 아닌 입체적인 문화 활동의 장이 열리는 것이다.


매년 연말 개최하는 `관객 영화제'도 마찬가지다. 관객들이 자신의 `인생 영화'를 골라 상영하는 이 프로그램은 영화를 통해 일상의 이야기를 나누면서 공감하고 소통한다. 뿐만 아니라 이들은 전시, 공연, 독서모임 등 문화 활동을 이어간다. 매달 마지막 주 수요일 `문화가 있는 날'에 열리는 `40계단 시민극장'도 관객이 주역이다. 지나가는 시민, 주변 상인들도 이날은 모퉁이극장의 관객으로 출연한다. 때로는 특색 있는 동호회가 중심이 되어 주제에 맞는 영화 상영을 하고, 강의나 공연도 한다. 가령 아마추어 뮤지컬 동호회의 경우 영화 상영 전 뮤지컬 공연을 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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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퉁이극장 입구.


`모퉁이극장'이라는 작은 간판이 달린 건물 안으로 들어간다. 사람들의 발길에 닳아 문드러지고 반질반질해진 좁은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극장의 지난 시간을 담고 있는 포스터가 관객을 맞는다. 극장 입구에서부터 그동안 모퉁이극장을 일구어온 진정한 주인인 `관객'들의 역사가 전시되어 있다. 관객들이 고르고 상영하고, 함께 활동한 흔적들이 애틋하게 그러나 품위 있게 자리를 지키고 있다. 영화 포스터만 있다면 공간의 의미는 반감된다. 영화와 함께한 관객들의 얼굴, 관객이 영화를 보고 그린 그림이나 미술작품, `관객들이 고른 톱 10 영화(벌써 1천여 편에 이른다)' 등 참여자의 개성과 정체성이 어느 하나 튀지 않고 어우러져 모두가 주인공이 된 역사의 기록을 만날 수 있다. 처음에는 작은 날갯짓에 불과한 것 같은 `모퉁이극장'의 이 실험적 운동은, 이제 국제적인 운동으로 확장됐다.


모두가 주인공인 `우리 모두의 극장'
`모퉁이극장'은 2018년 부산국제영화제의 관객 참여형 프로그램인 `커뮤니티 비프(BIFF)'를 구상하고 제안했고, `리퀘스트 시네마'를 맡아 관객이 보고 싶은 영화를 직접 프로그래밍할 수 있도록 도왔다. 같은 해 김현수 대표는 일본 야마가타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 창의도시 콘퍼런스에 유네스코 영화창의도시로 지정된 부산 대표로 참가해 부산의 시민영화 문화와 모퉁이극장의 활동에 대해 발표해 관심을 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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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퉁이극장 내부.


지난해 BNK부산은행, 부산국제영화제(BIFF), 중구는 협약을 맺고 부산은행 신창동 지점에 지역 문화예술 발전을 위한 공간으로 비엔케이(BNK)아트시네마를 조성했다. 모퉁이극장이 이 공간의 운영을 맡았다. 이곳 상영관을 통해 모퉁이극장의 `향유자 중심' 영화 문화 활동은 더욱 활성화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도시철도 1호선 중앙동역 11번 출구로 나와 40계단 쪽으로 걸으면 모퉁이극장이 있다. 그 이름처럼 모퉁이극장은 세상의 `모퉁이'에 있다.

중구 40계단 앞 분식집 건물 4층에는 부산 관객영화운동의 요람 `모퉁이극장'이 있다.


글·김진 / 사진·권성훈

 
 

작성자
하나은
작성일자
2020-11-03
자료출처
부산이라좋다
제호

부산이라좋다 제202011호

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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