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바로가기

다이내믹 부산 기획연재

[쿨부산 스토리텔링 공모전 대상] 봉수의 화려한 외출

내용

내가 지금의 초등학교로 부임해 왔을 때, 두유를 한 손에 들고 큰 소리를 지르며 운동장을 걸어가는 아이를 봤다. 특수교사인 나는 한 눈에 그 아이가 내가 가르쳐야할 학생이라는 것을 직감했다. 아니나 다를까, 올 해 맡게 된 세 명의 학생 중에 그 아이가 있었다. 이봉수. 겉으로만 봐서는 평범한 초등학생처럼 보이는 봉수는 자폐증과 정신지체장애를 함께 가지고 있는 발달장애 학생이었다. 어색하고 긴장된 탓에 봉수는 첫 만남부터 바지에 대변을 봤다. 그렇게 봉수와의 짧은 여정은 향기롭게 시작했다.

부모님과의 첫 상담이 있던 날, 봉수 할머니가 찾아왔다. 전임선생님의 말처럼 할머니의 역정은 역시나 대단했다. 아이가 조금 부족하다고 학교에서 대우나 교우관계가 나빠지지 않도록 신신당부를 했다. 나는 공손히 할머니의 말을 귀 기울여 들었고 나의 태도에 안심이 되었는지 할머니는 가끔씩 찾아와 넋두리를 늘어놓으셨다. 서울에 집이 한 채 더 있다는 둥, 봉수 어머니는 일본으로 유학을 갔다는 둥 집안 자랑이 한창인 동안 잠시 내 눈은 봉수의 구멍 난 양말을 보고 말았다. 나는 할머니의 집안 자랑이 허세라 여기지 않았다. 시간이 흐르면서 나는 그 말들이 손자가 업신여겨지지 않도록 하려는 할머니의 따뜻한 거짓말이란 것을 알게 되었다. 한번은 약속이 있어 평소 다니지 않던 시장 뒷길을 가다가 멀리 채소를 팔고 있는 봉수 할머니를 보았다. 그 길로 가는 게 아니었다. 행여나 볼까 싶어 발걸음을 되돌렸고 그 후로 한동안은 그 길을 가지 않게 되었다.

“봉수 왔습니다. 봉수 왔습니다.”

봉수는 항상 자기 교실로 가기 전에 내가 있는 학습도움반에 와서 빼꼼히 문을 열며 인사를 하고 갔다. 5학년 봉수는 가끔씩 터지는 돌발적인 행동과 괴성을 지르는 것 빼고는 별 문제없이 학교를 잘 다녔다. 그러던 어느 날, 급식에 봉수가 좋아하는 돈가스가 나왔다. 봉수는 신나했고 평소도 많이 먹던 점심을 그날따라 더 많이 먹더니 결국 집에 가서 배탈이 났다. 다음날 봉수 할머니는 학교로 와서 급식에 문제가 있지 않냐며 따지셨다. 봉수에게 괜찮냐고 묻자 봉수는 '봉수 돈가스 주세요. 돈가스 주세요.'라는 말만 반복했다. 봉수에게 아침은 항상 들고 오던 두유 하나가 전부였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서는 처음으로 봉수 할머니에게 부탁을 했다. 아침에 한 상 차려줘도 매번 안먹는다는 할머니의 거짓말이 나를 더 슬프게 했다.

모처럼 화창한 날씨 속에 현장학습을 가기로 한 날, 봉수는 나타나지 않았다. 전날까지 함께 간다고 했지만 집전화도 받지 않았다. 전임선생님은 일 년에 대여섯 번 있는 현장학습에 겨우 한 번 참석하거나 아예 안가는 해가 더 많았다고 했다. 봉수는 시계추처럼 학교와 집만 오갈 뿐이었다. 그러고 보니 학교를 마치고 돌아가는 봉수 옆에는 항상 누추한 차림의 할아버지나 모자를 눌러쓴 아버지가 있었던 것 같았다. 구멍 난 양말처럼 혼자 있을 때는 아무렇지도 않던 것도 다른 사람 앞에서는 부끄러운 존재가 되어버린다. 부족한 자식이 행여나 사고가 나거나 미움을 살까봐 봉수네 가족은 상처 입은 파랑새를 집에서만 꼭꼭 품고 살아왔던 것이다. 1학기 동안 2번의 현장학습은 봉수 없이 다녀와야 했다.

1학기 중반 무렵이던 어느 날, 교실 문 밖으로 서성거리는 누군가가 보였다. 수업 마치는 종이 울리고 조심스럽게 노크 소리가 들렸다. 구부정한 허리에, 느린 걸음으로 어렵사리 걸어 들어온 사람은 다름 아닌 봉수 할아버지였다. 평소 차림과는 사뭇 달랐다. 말끔한 양복에, 반짝반짝 광이 나는 구두가 얼마나 신경 써서 이 자리에 왔는지를 말해주고 있었다. 몸이 불편해져서 앞으로 자주 못 볼 것 같다는 말, 그리고 우리 봉수를 잘 부탁한다는 말을 남기셨다. 봉수 할아버지와의 만남은 그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마지막 가시는 길에 손자가 마음에 걸렸나 보다. 두 달 후 봉수 할아버지는 돌아가셨고 봉수는 일주일을 결석했다.

여름방학이 끝나고 2학기가 시작되었지만 봉수는 학교에 오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복도에서 요란한 고함소리가 들렸고 내 입은 미소를 머금었다. 잠시 후 빼꼼히 교실 문이 열렸다. 나는 한걸음에 달려가 봉수를 안아주려 했지만 이내 멈춰 섰다. 봉수는 혼자 온 게 아니었다. 봉수 뒤에는 모자를 눌러쓴 봉수 아버지가 서 있었다. 봉수는 자기 교실로 올라갔고 학습 도움반에는 나와 봉수 아버지, 둘 만이 남았다. 이렇게 가까이서 뵙기는 처음이었기에 차를 내오는 손이 조금은 떨렸다. 평소에 쓰고 다니던 모자가 양복 때문에 어색해 보였다. 뭔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기쁨과 슬픔은 겹으로 온다고 했던가. 봉수 아버지가 모자를 벗자 삭발한 머리가 나타났다. 집 나간 봉수 엄마는 소식도 없고, 자신은 최근 '폐암 말기' 판정을 받았다고 말했다. 봉수가 초등학교를 다니는 동안에는 어떻게든 살아있기 위해 열심히 항암치료를 받고 있었다. 봉수는 대화가 잘 되지 않는 중증 장애인이지만 올 해 들어서는 학교에 가고 싶다는 말을 많이 한다며 나에게 고마워했다. 나는 감사에 앞서 봉수가 더 씩씩하게 커가기 위해서는 언제까지 감싸지만 말고 세상에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고통이 있더라도 다른 또래 아이들과 어울리고 세상 사람들과 만나며 사회성을 키워야했다. 봉수와 나를 믿어달라며 도리어 내가 부탁했고 봉수 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였다.

드디어 2학기 첫 현장학습의 날이 밝아왔다. 오늘도 오지 않으면 어떡하나 했지만 그것은 괜한 걱정! 교문에서부터 신이 난 봉수의 고함소리가 들렸다. 아직 뜯지 않은 두유를 들고서 봉수는 버스 안에서 큰 트림을 했다. 아침 잘 먹고 왔구나. 나는 다른 승객의 시선에도 아랑곳 않고 잘했다며 봉수를 쓰다듬어 주었다. 백양산 자락에 있는 어린이대공원을 향해 힘든 줄 모르고 걸어 올라갔다. 울창한 숲과 탁 트인 아름다운 호수를 보며 우리들은 일렬로 줄서서 심호흡을 했다. 심호흡이 뭔지 모르는 봉수는 '아으. 아으.' 흉내만 내고는 재미있는지 제자리에서 풀쩍풀쩍 뛰었다. 갑작스런 난리법석에 깜짝 놀란 주변 사람들도 이내 웃으며 봉수를 쓰다듬고 지나갔다. 다른 또래 학생들에게는 시시한 놀이기구. 하지만 이 아이들에게는 이것마저 즐기기 버거운 것들뿐이었다.

봉수가 선택한 것은 '회전컵'이었다. 나는 봉수를 만나고 그렇게 환하게 웃는 모습을 처음 봤다. 빙글빙글 돌아가는 회전컵 안에서 봉수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너무 많이 타서 마지막에는 부축을 해줘야할 정도였다. 놀이공원에서 실컷 놀고 늦은 점심을 먹는 자리. 커다란 돈가스를 기다리는 봉수의 발이 의자 밑에서 신나게 그네를 탔다. 샌들 신은 발에서 잘 꿰매어져 있는 양말을 보고 나는 울컥 울 뻔했다. 할아버지의 죽음도, 아버지의 병도 이해하지 못하는 봉수. 살며시 작은 어깨를 감싸 안으며 눈물을 흘리지 않으려 창 밖 먼 하늘을 바라보며 마른기침만 해댔다.

그 후로도 우리는 현장학습을 통해 세상을 알아갔다. 어린이 뮤지컬도 보고, 금정산 금강공원에 있는 해양자연사박물관도 견학했다. 넓은 광안리 바다는 햇살에 비쳐 눈부시게 반짝거렸고 봉수의 눈도 따라 반짝였다. 그 환한 미소를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다음엔 꼭 부산 불꽃축제에 데려갈게.

조현숙 씨.

임신한 배가 불러오면서 나는 다음 해에 출산휴가를 냈다. 같이 일했던 보조선생님이 계속 돌봐준 덕에 봉수는 6학년을 무사히 마쳤다. 아기를 출산하고 복직하기에 앞서 나는 졸업식에 참석했다. 강당에 줄서있는 학생들 사이로 대견한 봉수가 보였고 나와 눈이 마주치자 제자리에서 펄쩍펄쩍 뛰었다.

봉수와의 추억은 여기까지였다. 특수학교에 들어간 봉수는 가정형편이 어려워 재활원에서 생활하게 되었다. 어쩌면 아버지도, 할머니도 없는 세상을 미리 연습하고 있을 런지 모른다. 가족이 못 다해준 사랑을 이제는 우리 사회가 해줄 때이다. 힘든 아이들이 세상을 알아가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세상이 힘든 아이들을 알아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봉수의 화려한 외출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봉수! 잘할 수 있지? 누가 뭐래도 닌 부산 싸나이 아이가!

요즘도 가끔, 닫힌 교실 문을 바라보며 문득 눈을 감고 봉수의 목소리를 더듬어본다.

 “봉수 왔습니다. 봉수 왔습니다.”

 

□ 스토리텔링 공모전 심사평

"부산사람 진한 인정 돋보여"

쿨부산 스토리텔링 공모전 출품작은 167편. 작품 대부분이 부산사람의 진한 인정과 따뜻한 인간관계, 사랑을 잘 담아냈다. 특히 대상작 '봉수의 화려한 외출'은 자폐증과 지적장애가 있는 초등학생 봉수와 그를 돌보는 특수교육 교사의 사랑과 인정을 잘 그려내 심사위원들로부터 찬사를 받았다.

시장에서 채소장사를 하는 할머니가 장애아인 손자가 무시당할까 봐 부자 집인 것처럼 허세를 부리는 것을 교사는 따뜻하게 바라보고, 교실이나 현장학습에서 성의를 다해 봉수를 돌보고 가르치는 교사의 마음이 애틋하게 다가왔다는 평가.

우병동 심사위원장(경성대 신문방송학과 교수)은 "부산이 가지고 있는 좋은 환경과 역사적인 사실, 부산사람의 인정과 열정적인 삶의 궤적들이 자산이 돼 풍성한 이야기 거리를 만들었다"며 "계속적으로 감동적인 스토리텔링이 이뤄져 시민들에게 삶의 여유와 활력소를 제공하길 기대한다"고 평했다.

작성자
조현숙(부산시 당감동)
작성일자
2012-10-31
자료출처
부산이라좋다
제호

첨부파일
부산이라좋다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이전글 다음글

페이지만족도

페이지만족도

이 페이지에서 제공하는 정보에 만족하십니까?

평균 : 0참여 : 0

댓글은 자유로운 의견 공유를 위한 장이므로 부산시에 대한 신고, 제안, 건의 등 답변이나 개선이 필요한 사항에 대해서는 부산민원 120 - 민원신청 을 이용해 주시고, 내용 입력시 주민등록번호, 연락처 등 개인정보가 노출되지 않도록 주의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상업광고, 저속한 표현, 정치적 내용, 개인정보 노출 등은 별도의 통보없이 삭제될 수 있습니다. 부산민원 120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