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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산복도로에 오르다 - 다섯 번째 이야기

내용

일주일 새 구봉산, 수정산 산복도로 산 빛이 몰라보게 달라졌다. 동일파크맨션에서 초량 한신아파트를 지나는 길엔 벚꽃이며 진달래, 개나리, 목련 등속이 활짝 폈다.

산복도로 벚꽃은 도심의 그것과는 사뭇 다르다. 약지 않은 느낌이랄까. 요란스럽지 않다. 순박하다 못해 깨끗하다. 지척간의 산 빛도 그러하다. 공기가 맑아서일까? 깃들어 사는 사람들의 인심의 영향일까? 내려다 뵈는 부산항과 도심은 안개 낀 듯 올 때마다 늘 뿌옇다.
 

산복도로를 같이 걷고 싶습니다.

이지량. 고3 딸과 고1 아들을 둔 엄마이자 외국을 풀방구리 드나들 듯 하는 여성이다.

“이래도 법인 등록증 다 있고요...^^”

그냥 그런 작은 개인 여행사가 아니라는 듯 일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테마에 대한 기획력을 인정받는 것 같아요. 며칠 전에도 동경에서 클럽문화 활동하시는 분들과 팬들이 100명 들어왔는데요, 그 분들 모시고 평창까지 갔다 왔어요.”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에도 계속 전화가 온다. 건축학과 교수들 인솔해서 스페인에 가는 일정이 잡혔단다. 일정 체크와 여행지에 대한 상담을 그냥 길 위에서 다해버린다. ‘걸어 다니는 오피스’다.^^ 그녀는 부산에 있는 여행사 대표다.

골목길 어슬렁거리기 독자로서 산복도로 이야기를 보다가 필이 왔단다. 마치 본인의 이야기처럼 들리더란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는 산복도로에서 태어나 산복도로에서 자랐다. 좌천초등학교, 경남여중, 남성여고, 게다가 안창마을은 국민학교 소풍 장소. 수정동이 친정이다. 아버님은 산복도로에서 70년째 살고 계신 토박이.^^

아니 보지는 못하리라. 산복도로에서 만나자 했다. 그런데 이 분, 만나자마자 직업정신 120% 발휘한다. 홀로 고독 뜯으며 어슬렁거리는 골목길 취재 스타일을 순식간에 뒤흔들어놓는다. 여기로 가자, 저기로 가자, 여기는 어떻고 저기는 어떻고, 완전 물 만난 고기마냥 산복도로 ‘관광 가이드’로 돌변한다.
 

86번 버스의 추억과 산복도로 주요 산업(?)

“사람들 떠나고 젊은 사람이 없어서 좌천초등학교는 지금 폐교 위기에요. 경남여고도 명문이라는 명맥을 잇기 위해 기숙사를 지었는데 도심이라서 어떻게 될지(기숙사 효과가 잘 나타날지). 부산고등학교도 해운대로 옮기려다 지역주민과 동문들 반대가 심해서 저렇게 남아 있지만 언제 떠날지 모르죠. 산복도로 르네상스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교육 문제도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에요. 교육이 삶의 질에 많은 영향을 미치잖아요. 안 그래도 사람들이 빠져나가서 문젠데 학교마저 떠나버리면 걷잡을 수 없게 되죠.”

“(여긴)사람 살 지 않는 빈 집이 많아요. 그런 데는 다문화가정에게 임대를 한다든지 해서 그 분들을 한데 모아서 살게 하면 좋을 텐데. 흩어져 사는 것보단 이웃에 같이 모여 살면 마음도 편하고 서로 도울 수 있어서 정착이 빠를 거잖아요. 시나 구에서도 지원이 편할 거고. 빈 집도 없어지고. 동네사람들이 이해를 해주고 포용해 주면 좋은데.”

“86번 버스는 참 특이한 문화를 안고 달리는 버스에요. 옛날엔 동여중, 선화여상, 덕원공고, 삼성여고를 지나갔거든요. 지금은 학교 이름도 바뀌었지만. 아침에 등교할 때 (학교 순대로)차례대로 애들이 내리는데 보이지 않는 이상한 문화가 느껴졌던 거 같아요. 밤에 돌아올 때는 반대로 오잖아요? 그런데 선화여상, 덕원공고 애들은 없거든요. 야자를 안 하니까...”

“산복도로에는 옥상에 주차장이 많잖아요? 왜 그런지 아세요?”

“망양로 도로선 위로는 건물을 올릴 수 없으니까 도로와 수평으로 옥상 주차장이 생겼다 그러던데요.”

“그런 것도 있고요. 여긴 주차난이 굉장히 심각해요. 아무 데나 주차할 공간도 없고. 그러니까 옥상 주차장에 월차 사업하는 분들이 많아요. 산복도로 주요 사업은 아마 주차장 사업이라 해도 맞을 걸요.^^”

산복도로를 걸으면서 느낀 것이 음식점 구경은 힘들어도 옥상 주차장은 많다는 거였다. 그런데 그게 그냥 개인 주택의 주차장이 아니라 산복도로 특유의 서비스산업인 ‘월(月) 주차’ 사업을 하는 주차장들이었다니. 혼자 막연히 산복도로를 헤매던 것과는 전혀 다른 정보들이 쏟아진다.
 

당신을 '제1호 산복도로 가이드'로 임명합니다

“산복도로 가이드해본 적 있어요?”

“아뇨. 처음인데.^^ 산복도로는 여기서 살아본 사람만이 설명할 수 있어요.”

“그럼 이지량 씨가 산복도로 가이드 제1호네.^^”

맞는 말이다 싶다. 산복도로는 여느 관광지처럼 책 몇 권 읽고 설명할 수 있는 곳이 아닌 듯하다. 마을 구석구석에 얽힌 사연들을 모르고는 그저 겉으로 드러난 모습들- 부산항이 시원하게 내려다보이는 풍경, 골목마다 보이는 바다, 빽빽하게 들어선 낡고 오래된 집들, 옥상 주차장, 화려한 듯 쓸쓸한 야경만 보고 말 뿐이다.
 

40년 된 마을 사진관

수정5동에 들어서면서 그녀의 목소리가 상기한다. 고향집이 가까워졌나 보다.^^

“저게 40년 된 사진관이에요. 학교 졸업 사진, 증명사진, 제 인생의 흔적들이 저기에 다 있어요.”

산복 사진관. 수정5동 삼거리에 위치한 작은 건물은 그리 오래된 거 같아 보이진 않는다. 하지만 그 안에는 수정5동 주민들의 40년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누구네 아이가 커가는 모습, 누구네 식구들 벼르고 별러 제일 좋은 옷으로 차려 입고 가족사진 찍은 날, 마을의 대소사가 추억이란 이름으로 남아 있는 곳. 사진관 안에 걸린 사진을 보는 순간 시계는 과거로 향한다. 40~50대 이상인 분들은 아마도 사진첩에 한 장씩은 들어있을 법한 센치멘탈 흑백 사진들.

“요즘은 사진 찍는 사람들 없어요. 필름 사가는 사람도 없는데. 디지털이 다 돼 가지고.

노인들 주민등록증, 복지관에 내는 증명사진이나 찍는 거지 뭐. 가족사진은 장소(사진관)가 작아서 못 찍어요. 옛날에는 가족사진도 다 찍고, 학교 졸업식 앨범 사진도 찍고 했는데... 아저씨는 다른 일 하고 내가 (사진관 일)하고 있어요.”

사진관은 그대로지만 사람들은 세월과 함께 변하고 추억을 남긴 채 떠난다.
 

산복도로는 '아날로그'다

골목을 들어서는 순간, “아줌마 저 지량이 왔어예.”

“아이고 지량이 왔네. 너거 엄마 병원(뒷산)에 갔는데. 가만 있어봐라 내가 커피 타 오께. 손님도 오셨는데.”

동백꽃 활짝 핀 골목 안이 순식간에 노천카페로 변한다. 담 벽에 기대 앉아 이야기꽃을 피운다. 지량 씨 어머니는 마을 뒷산 약수터를 병원 삼아 다니신다.

“좀 좋은 데로 모시고 싶었는데 엄마가 여길 못 떠나시는 건 마을사람들 정 때문이에요. 어머니가 불편하실 때 밖을 잘 못 나가셨는데 동네 아줌마들이 오며가며 밖에서 부엌 창 안으로 나물이며 반찬이며 군것질거리 같은 걸 자꾸 넣어놓고 가셨데요. 그때 “쌀 빼고는 다 들어온다” 그러셨는데 그게 엄마한테는 많은 힘이 되셨나 봐요.”

골목길 어슬렁거리면서 자주 보는 광경이 있다. 아이들이 어른들을 만나면 자연스레 인사를 한다는 거다. 어른들도 반갑게 인사를 받아준다. 특히 산복도로에서 자주 보게 되는 풍경이다. 야쿠르트 아줌마에게도 인사하는 애들이 있다.

대단지 아파트에서는 엘리베이터를 같이 타도 이방인 대하듯 하는 애들이 많다는 이야길 들은 적 있다. 어른들 사이에도 서로 면벽(面壁)하는 분위기 땜에 작은 아파트로 이사해버렸다는 친구 이야기도 들었다. 물론 동네마다 차이는 있을 것이다.

인향만리(人香萬里)라 하였던가! 사람의 향기는 바람을 거슬러 만리를 가고도 남는다.

산복도로는 아날로그다. 산복 사진관, 즉석으로 벌어지는 골목 카페, 이웃간의 정 때문에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 산복도로 아날로그 문화의 아이콘일 수 있겠다 싶다. 이런 공간(장소)과 문화들을 어떻게 지켜내고 많은 이들과 나눌 수 있을까. 또, 이런 아날로그 아이콘들은 관광자원으로서의 가치는 없는 걸까.

산복도로 출신 전문 관광 가이드와 동행하며 드는 생각이 있다. 산복도로에서 살아본 사람으로서 전문적인 지식까지 겸비한 ‘산복도로 설명사’가 있다면 산복도로를 함께 걸으며 지역주민의 삶과 생활 현장들을 이해할 수 있는 살아있는 ‘생활체험형 관광’이 시도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주민들의 삶을 한갓 낯선 구경거리로 전락시키지 않고, 산복도로의 매력은 한껏 키우면서 지역 주민들에게 혜택을 돌릴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하다. 산복도로 사람들의 인심(人心)에 반해서 이사 오는 사람이 늘어날 지 누가 알겠는가.

도심과 주요 관광지만 운행하는 2층 오픈탑 시티투어버스도 산복도로를 달려보면 어떨까. 매연 적은 상쾌한 공기, 탁 트인 부산항 전경, 아름다운 부산 야경은 버스나 오픈탑 시티투어버스를 타고 구경하는 것이 제격인데 말이다.

마침 부산시에서는 중·동구 10개 마을을 대상으로 산복도로 르네상스 ‘마을 만들기’ 사업을 본격 추진하고 있다. 교수, 단체 활동가, 전문가를 중심으로 마을 만들기 활동가와 계획가들도 위촉했단다. 지역주민들의 창조적인 지역 재생 에너지와 꿈들을 잘 끌어내어 활짝 꽃 피웠으면 하는 바람이다.

원성만 기사 입력 2011-04-14 다이내믹부산 제호
자료출처 : 다이내믹부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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