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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내믹 부산 제202506호 문화관광

걸을수록 점점 자유로워지는 길을 품은 섬

부산을 걷다 욜로갈맷길 ③ 영도 흰여울 한바퀴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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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도 흰여울마을.


섬은 중의적이다. 고립이면서 개방이다. 사방팔방 물에 갇힌 고립이면서 사방팔방 탁 트인 개방이다. 욜로갈맷길 6코스 영도는 섬이다. 걸으면 걸을수록 점점점 자유로워지는 길을 품은 섬이다. 그대, 영도 섬길을 걸어보라. 때로는 휘어지면서, 때로는 꺾이면서 마침내 당도하는 섬길의 끝. 시작도 섬이고 끝도 섬인 거기서 가장 가깝고 가장 자유로운 나를 만나보라.


욜로갈맷길 6코스는 박물관의 길이다. 길에서 만나는 박물관이 무려 셋이나 된다. 셋 다 바다 내음을 물씬 풍긴다. 영도가 섬이고 바다라서 들어선 박물관이다. 해녀문화전시관과 패총전시관, 그리고 해양박물관이 그 셋이다. 해녀전시관은 제주에 이어 전국 두 번째 ‘해녀’ 관련 전시관이다. 패총전시관은 영도의 역사를 신석기까지 담아낸다. 국립해양박물관은 ‘해양수도 부산’의 위상에 걸맞은 바다의 모든 것을 모아 놓은 종합해양박물관이다. 


길의 시작은 영도대교. 도시철도 1호선 남포역 6번 출구로 나오면 된다. 대교를 지나서 섬의 오른편 해안을 빙 걸은 뒤 섬의 왼쪽 측면 아미르공원 국립해양박물관에서 끝난다. 세 시간 남짓 걸린다. 길은 편하고 군데군데 먹거리라서 빈손으로, 빈속으로 훠이훠이 나서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여행을 겸한 길 걷기는 그렇다. 가능하면 현지 음식을 맛볼 것. 생수 한 병이라도 현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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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라리광장에서 본 영도대교. 


영도대교는 도개교(跳開橋)다. 한국 유일의 들어 올리는 다리다. 매주 토요일 다리 상판 한쪽을 번쩍 올린다. 지금은 그렇고 처음 지을 때는 다리 양쪽에서 하루에 일곱 번 올렸다. 다리보다 높은 배는 상판 올리는 시간을 꼬박 기다렸다가 지났다. 다리 지은 지는 10년 지나면 100년. 100년 다 돼 가는 다리를 품은 역사의 도시가 영도다. 영도 근대사는 근대 조선(造船)의 역사와 맞물린다. 1887년 한국 최초의 근대식 조선소가 영도에 들어섰다. 남항동 대평초등 교정에 ‘한국 근대조선 발상 유적지’ 기념비가 있다. 


이 무렵 영도는 조계지(租界地, 외국인 거주지)였다.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일본 러시아 등이 있었다. 그래서 외국 함선이 드나들었다. 함선을 움직이는 동력은 석탄이었다. 1897년 영도에 석탄 저장고를 짓겠다고 러시아가 우리 정부에 청원하는 일도 있었다. 그 시절 영도는 해양 허브도시였다. 각국 함선이 수시로 드나들면서 근대 조선(造船) 도시로 나아갔다. 조선업 역사도 100년을 내세운다. 다리며 조선, 등대 등등 영도에선 엔간하면 100년이다.     

    

6·25전쟁 피란민 애환, 깡깡이예술마을


깡깡이예술마을은 낯설다. 그런 마을도 있나 싶겠지만 영도를 대표하는 아이콘의 하나가 깡깡이마을이다. 영도대교를 건너서 오른편으로 틀면 저만치 보인다. 깡깡이마을엔 낡은 배를 수리하는 조선소가 길 따라 이어진다. 길 역시 100년이다. 여기선 배를 수리하면서 배에 슨 녹도 벗겨낸다. 요즘은 그라인더 같은 기계로 녹을 벗기지만 오랜 세월 쇠망치로 “깡깡깡!” 두드려 벗겼다. 그래서 깡깡이마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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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깡깡이마을 깡깡이안내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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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깡깡이생활문화센터 2층 마을박물관에 전시 중인 옛 선용품들. 


깡깡이 일은 무겁고 고됐다. 밧줄에 매달려 몇 시간이고 이어졌다. 소변이 겁나서 물조차 양껏 마시지 못했다. 그 무겁고 그 고된 일을 도맡은 건 아낙. 인건비가 쌌다. 아낙은 6·25전쟁 피란민이 대부분이었다. 몸 하나 겨우 건사해서 빠져나온 그들에겐 먹고사는 일은 절박했다. 무겁고 고된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렇게 해서 생계를 이었고 자식들을 공부시켰다. 깡깡이마을 인근의 이북마을은 그때 그 역사를 고스란히 품었다.


나가는 배는 흰 등대

들어오는 배는 붉은 등대


깡깡이마을 다음 마을은 흰여울문화마을. 두 마을은 해안 산책로로 이어진다. 깡깡이마을을 벗어나 저 앞에 보이는 남항대교를 바라보고 가면 산책로가 나온다. 산책로 초입은 붉은 등대. 정식 명칭은 ‘부산 남항 동(東) 방파제 등대’다. 바다 맞은편 남부민동에 있는 서쪽 방파제 등대는 희다. 바다에서 들어오는 배는 붉은 등대에 붙어서 들어오고 나가는 배는 흰 등대에 붙어서 나간다. 그래야 충돌을 방지한다. 미국을 비롯해 우측통행 국가는 모두 그렇게 한다. 좌측통행 유럽 등은 그 반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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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도 중리항 방파제 등대. 


흰여울문화마을도 피란민 애환이 서렸다. 원래 이곳은 산아래 가파른 경사지였다. 졸지에 오갈 데 없어진 난민이 여기 틈새를 비집으면서 마을이 됐다. 국어사전은 여울을 ‘강이나 바다에서 바닥이 얕거나 폭이 좁아 물살이 빠르게 흐르는 곳’으로 풀이한다. 흰여울마을이 그런 데였다. 영도 봉래산 계곡물이 이 가파른 마을을 쏜살같이 지나면서 하얀 포말을 연신 튕겼다. 이 가파른 험지를 사람의 마을로 일군 개척자가 전쟁 피란민이었다. 극한에서 거둔 인간 승리의 현장이 영도 흰여울문화마을이다.


영도가 섬이니 흰여울마을도 섬. ‘문화’를 내세우는 섬마을도 섬마을이지만 앞바다 풍광도 정일품이며 바다 너머 풍광도 정일품이다. 상선이 장난감 배처럼 둥둥 뜬 앞바다는 묘박지(錨泊地). 태풍을 피해서 배가 모여드는 수역이다. 일종의 안전 주차장이다. 바다 너머는 송도. 한국 최초의 공설 해수욕장이 있다. 거기를 제1 송도, 흰여울마을 여기를 제2 송도라고 한다. 송도 쪽엔 섬들이 배처럼 두둥실 떴다. 섬 이름은 길을 걷다 보면 저절로 알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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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리 해녀촌의 해녀문화전시관. 


흰여울문화마을 다음은 중리 해녀촌. 1층은 해녀촌이고 2층은 해녀문화전시관이다. 2층 전시관을 둘러본 뒤 1층 해녀촌 야외에서 갓 잡은 해산물 한 상! 금강산에선 식후경이고 영도에선 경후식이다. 영도 해녀의 모태는 제주 해녀. 제주에서 부산으로 이주한 해녀가, 또는 그 해녀를 어머니로 둔 해녀의 억척 삶을 귀담아서 듣노라면 해삼 씹는 이에 힘이 꾹꾹 들어간다.


중리는 동삼동의 일부다. 동삼동은 영도 동쪽 세 마을. 상리·중리·하리다. 중리는 조선시대 말 목장이 있던 곳. 조선시대 그때는 말이 교통수단이면서 병기(兵器)여서 국가가 목장을 관리했다. 국마장이었다. 말은 곧잘 달아났다. 말이 달아나면 책임자를 엄하게 문책했다. 울타리 치는 일은 여간 고역이 아니었다. 천방지축 까부는 말을 가두는 울타리는 좀 기다랗고 좀 튼실했을까. 그러기에 달아날 우려가 낮고 울타리 덜 쳐도 되는 해안이나 섬을 국마장으로 선호했다. 영도가 그런 데였다.


넷에서 셋으로, 다시 넷으로


2017년 7월. 태풍 난마돌이 불어닥친 다음 날 중리 해변에 기이한 일이 벌어졌다. 2003년 9월 태풍 매미에 휩쓸려 바다로 떠내려갔던 조선시대 고색창연한 비석이 2017년 난마돌에 날려서 돌아왔다. 여기 있던 비석은 원래 넷. 모두 국마장 관련 공덕비였다. 그중 하나가 태풍으로 떠내려가서 셋이 됐다가 태풍으로 되돌아와서 넷이 됐으니 기이하다면 기이했고 길조라면 길조였다. 이 비석들은 태풍 유실을 우려해 동삼동 영도여고 뒤편으로 이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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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도구 하리에 위치한 수변공원 '아미르공원'.


중리를 벗어나면 하리. 중리 선착장에서 나와 말 동상을 지난 뒤 롯데캐슬 오른편 샛길로 접어들면 하리로 이어진다. 하리는 욜로갈맷길 6코스 끝 지점. 길 걷기는 무릇 그렇다. 시작도 생각하고 생각해서 정하며 끝도 생각하고 생각해서 정한다. 가장 낮은 마을 하리(下里). 6코스 대단원을 하리로 택한 건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대학교도 국립이고 박물관도 국립이며 패총전시관까지 품은 바닷가 신석기 명소가 여기 말고 또 어디 있을까. 국보 1호와도 맞바꾸지 않을 것 같은 수변공원까지 품은 하리. 그리고 욜로갈맷길 6코스. 나이면서도 나인지 몰랐던 가장 가깝고 가장 자유로운 나를 만난다면 또 좋으리.


글·동길산 시인

작성자
조현경
작성일자
2025-06-12
자료출처
부산이라좋다
제호

부산이라좋다 제202506호

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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