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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내믹 부산 제1634호 문화관광

정치·경제·외교 잇는 조선 최고 대동맥

특별강연 요지
조선 왕조 건립과 긴밀한 관계
조선시대 도로 중 가장 큰 비중
길따라 서민 생활문화 꽃피워

내용
강연하는 최영준 고려대 명예교수.

역성혁명을 통해 새 왕조를 세운 이성계는 통치체제를 강화하기 위해 여러 가지 정책을 수립했다. 영남대로의 성립도 이와긴밀한 관계가 있다. 조선의 한양정도는 서울을 중심으로 X자형 도로망이 확립된 계기가 된다. 여러 도로 중 영남대로는 일본과의 외교관계와 인재 및 자원의 공급이라는 정치·경제적 비중 때문에 가장 중요시되었다.

영남대로 지역은 면적에 비해 14개나 되는 많은 역도를 설치했다. 특히 양재, 유곡, 황산 등 3개도는 일본통신사, 왕사, 왜사 등 인마의 왕래가 많고, 조세와 토공의 수송이 잦았다. 영남대로 지대는 임진왜란 중 왜군 주력부대의 진력로였고, 경남 일대는 7년동안 왜국이 주둔했던 지역이었으므로 인명과 재산피해가 가장 극심한 지역이기도 했다.

경부고속도로의 시원적 모체인 영남대로는 한반도에서 가장 소통이 활발했던 도로였다. 영남대로는 한반도에서 역사가 시작된 이래 사람과 문물의 이동이 가장 활발하게 일어난 길이었다. 영남지방의 각종 물화는 359여 개의 장시에서 거래됐으며, 영남대로를 타고 서민의 생활과 밀접한 문화가 확산되었다. 영남대로 지역에서는 사대부의 가옥 중 상당수가 중앙에 중정을 둔 'ㅁ'자형 가옥이고, 영남대로권에 영남방언과 경기방언만 존재한다는 것은 영남대로를 통한 문화 확산의 대표적 사례다.

한 나라의 교통로는 혈맥의 기능을 가진 가장 기본적인 사회간접자본의 하나로서 그 나라 국민의 기술과 지식, 자본력, 노동력을 토대로 건설·운영된다. 도로의 관리와 운영이 철저했던 시기는 국가의 기동력에 활력이 넘치는 전성기였다.

작성자
김영주
작성일자
2014-06-18
자료출처
부산이라좋다
제호

부산이라좋다 제1634호

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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