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두렵지 않아요'가 던져준 간단치 않은 문제들
참척의 고통 혹은 참회의 기록 - 난 두렵지 않아요
- 내용
책 한 권, 읽었습니다. 아이들 책입니다. 아이들에게 읽히기 위해 만든 책이지만, 그 내용이 만만치 않았습니다. 흔한 감동이라는 말보다는 충격과 함께 지구촌의 각성을 촉구하는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린이는 물론 어른들이 읽기에도 전혀 손색없는 책, 어쩌면 어른들이 더 읽어야 할 책이라는 생각입니다. 다른 분들의 생각은 어떠할지 궁금하여 후기라는 것을 적어보기로 한 것이지요. 책의 이름은 <난 두렵지 않아요 -아름다운 소년, 이크발 이야기>(프란체스코 다다모 글/이현경 역/ 랜덤하우스코리아) 입니다.
책 소개에 앞서 이 책은 어떠한 책으로 불리어야 하는냐는 질문을 던져봅니다. 대저 세상에는 여러 종류의 책이 있지요. 책을 읽는 독자로서 책을 구분 짓자면, 우선 책을 읽으며 느끼는 ‘재미’로 갈래를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가장 손쉬운 방법은 ‘재미있는 책’ ‘진짜 재미있는 책’ ‘적당히 볼만한 책’ ‘지겨운 책’ ‘시간과 돈이 아까운 책’ 등등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겠지요.
<난 두렵지 않아요>는 평범한 독자들의 일반적인 책 분류법에서 상당히 빗나갑니다. 빗나가기만 하면 또 괜찮지요. 도대체 어느 지점에 이 책을 위치 지어야 할지 그 좌표를 찾지 못하겠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난 두렵지 않아요>는 책을 넘어선 책이기 때문입니다. 감히, 그렇게 생각합니다. ‘넘어섰’다고 표현한 것은 이 책이 엄청난 역작이어서는 결코 아닙니다. 완성도라든지 문학성이라는 잣대로 들여다본다면 평범한 범작 수준이라는 평을 들을 수 있을 것입니다. 평범한 수준의 책을 텍스트를 뛰어넘은 문제작으로 끌어올린 힘은 아동 노동력 착취 문제를 고발한 생생한 사실성에 기인합니다.
소설 형식에 담아낸 내용은 충격적입니다. 허구와 사실을 절묘하게 배합해 이 땅에서 벌어지는 부당한 아동 착취 현장을 생생하게 보여주는데요, 가치판단을 배제한채 단순 보여주기에 그쳤다면 이 책이 던진 충격은 반감되었을 것입니다. 저자 다다모는 보여주기를 넘어 아동 노동의 이면에 숨어있는 사회 부조리와 자본의 탐욕까지 차분하게 보여주는 데 성공한 듯합니다. 책이 던지는 메시지가 묵직한 이유일 것입니다.
이 책은 실제 파키스탄에서 일어났던 실화를 다루고 있습니다. 책의 주인공은 이크발 마시흐라는 어린이입니다. 책은 어린이 노벨상이라고 불리는 세계어린이 상 첫 수상자였던 이크발 마시흐의 비극적인 생을 담아냈습니다. 파키스탄 카펫공장에서 자행되고 있는 심각한 아동 노동력 착취 실태를 고발하는 아동 노동운동가로 살았던 ‘어린이’는 1994년 리복 국제인권재단에서 수여하는 ‘행동하는 청년상’ 수상 얼마 후 불과 12살 어린 나이에 살해됐습니다.
이 책은 이크발의 죽음에 애써 주목하지 않습니다(주목할 수 없는 이유가 분명 있습니다. 이크발의 죽음은 경찰에 의해 단순살해사건으로 발표되었으며, 범인은 잡히지 않았다고 합니다.) 책은 그의 동료였던 파티마(그녀는 저자가 만들어낸 가상의 인물로 책의 화자)의 시선을 빌려 파키스탄 카펫 어린이 노동자들의 절망적인 상황을 보여줍니다. 더불어 높고 두터운 절망의 벽을 부수고자 했던 어린 전사 이크발의 삶을 담담하게 보여줍니다.
파키스탄 극빈 가정에서 태어난 이크발은 불과 4살 때 집안의 빚 1만 5천 원을 갚기 위해 카펫공장으로 팔려갑니다. 그곳에서 그는 하루에 1원을 받고 카펫을 짜게 되지요. 하루에 1원씩 갚아 나간다면 1만 5000일 후에는 그는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1만 5000일 후가 언제인지 감이 오지 않는다면, 계산기를 두드려보시기를! 단 하루도 쉬지 않고 일한다면 이크발은 41년 후에는 집으로 돌아가게 되네요! 인샬라!
아프리카와 아시아를 비롯한 대부분의 저개발 국가에서 아동 노동력 착취 문제는 심각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중에서도 파키스탄에서의 아동 노동착취 문제는 독특한 사회 문화적 요소와 결합해 광범위하게 이뤄지고 있어 더욱 심각하다고 하는데요, 파키스탄에서 유독 어린이 노동력 착취가 심한 것은 주요 생산품이 카펫이기 때문입니다. 소위 말하는 명품 카펫은 조밀하게 만들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어린이들의 작은 손이 필요하다는군요. 조밀한 명품 카펫이라야 더 많은 돈을 벌게 해주기 때문에 카펫공장 사장들은 군말하지 않고 노동하는 어린이들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지요. 또한, 어린이들은 노동쟁의를 일으킬 염려도 없고, 게다가 노동력도 값싸기 때문에 돈벌이에 아주 유용하다니, 아동 노동력 착취가 근절되기에는 많은 구조적인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이와 함께 한계를 넘어선 파키스탄 가정의 경제난도 아동 노동을 부추기는 또 다른 원인인데, 별다른 생계 수단이 없는 가난한 집 아이들은 돈 몇 푼에 공공연하게 카펫 공장으로 팔려간다고 합니다.
카펫 공장에서 일하는 어린 노동자들이 처한 환경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열악한데요, 하루 10시간이 넘는 가혹한 노동은 기본, 도망가지 못하도록 어린아이들의 발목에는 쇠사슬이 채워지고, 형편없는 식사와 잠자리가 제공된다고 합니다.
이크발이 팔려온 카펫공장도 마찬가지였지요. 24시간 서로 감시하는 비인간적인 시스템 아래 어린 노동자들은 햇빛을 볼 자유도 없이 하루하루를 연명할 뿐이지요. 이들을 고용한 사장은 아이들의 지문이 닳아 없어지도록 일해서 만든 카펫을 백인 유럽 사람들에게 비싸게 팔았고, 사장의 금고에는 아이들의 고혈을 짜서 만든 화폐가 쌓여갔음은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동 노동력 착취의 부당함을 체득하고 있던 이크발은 자신이 깨우친 것을 속으로만 담고 있지는 않았던 듯합니다. 저항과 반항을 일삼는 이크발이 고용주로서는 여간 귀찮은 존재가 아니었는지, 그는 빼어난 카펫 직조 솜씨가 있음에도 여러 곳의 카펫 공장으로 팔려 다녔습니다. 그러던 이크발은 파티마가 일하던 공장에까지 흘러드는데요, 부당한 현실에 대한 저항의식이 남달랐던 소년은 공장에 도착한 첫날부터 어린 노동자들을 조용히 선동합니다. 가족을 만나는 것과 (높디높은) 공장 담장 밖으로 나가보는 것이 소원이던 파티마의 삶에 작은 불씨를 던지는데요, 형형한 눈빛의 소년은 첫날부터 고된 노동과 억압된 생활에 숨죽여 있던 파티마에게 충격적인 선언을 합니다.
“난, 여기서 도망칠 거야.”
이크발의 이 한마디는 도망이라는 것을 상상조차 하지 못하던 파티마를 비롯한 공장 아이들에게는 충격 그 자체였지요. 왜 그 아이들은 힘든 생활에도 불구하고 도망칠 생각조차 하지 못했을까요. (네가)도망가면 너희 가족은 모두 죽는다는 지속적인 협박과 세뇌에 힘없는 아이들은 인간답게 살 수 있는 마지막 끈조차 잡을 수 없었던 것이지요.
이크발은 달랐습니다. 작고 여윈 소년은 정말 도망칩니다. 그러나 혼자 도망가지 않았습니다. 동료를 구출하고, 어린이들을 불법으로 착취하던 카펫 공장 사장을 경찰에 고발합니다. 이크발의 행보는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사회단체와 연대해 파키스탄 카펫 공장에서 공공연히 자행되는 아동 노동력 착취 문제를 사회에 고발하고, 어린 노동자들을 구하기 위해 위험한 구출작전도 마다치 않았습니다. 신변이 위험해질 수 있다는 주변의 만류에도 그는 멈추지 않았고, 어느새 어린이 노동운동가 이크발의 이름은 세계적으로 유명해졌습니다. 아동 노동인권운동가로서 이크발의 명성이 높아갈수록 카펫 마피아들에게는 대단히 위협적인 존재가 되어 있었습니다. 누대에 걸쳐 편하게 해오던 사업이 이크발 때문에 최대의 위기를 맞게 된 것이니까요. 누가 이크발을 죽였는지는 모르지만, 국제변호사가 되어 어린이 카펫 노동자를 구출하겠노라는 꿈을 키우던 소년은 1994년 부활절 저녁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서너 발의 총을 맞고 쓰러집니다. 범인의 얼굴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시간이 지나며 사건은 잊혀갔지요.
실화와 픽션을 절묘하게 배합한 구성은 파키스탄에서 일어난 비극적인 사건을 눈앞에서 일어나는 일 인양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워낙 충격적인 내용이지만 저자 다다모는 대중을 일부러 선동하지는 않습니다. 시종일관 차분함을 견지하는 화자의 담담한 시선은 지나친 감정의 과잉을 자제시키며 끊임없이 이성적인 각성을 일깨웁니다.
책은 빨리 읽힙니다. 처지는 부분을 찾기 어려울 지경이지요. 책 읽기의 속도만으로 이 책을 ‘재미있는 책’ ‘흥미로운 책’이라고 말하기에는 서아시아의 변방에서 일어나는 비극의 무게가 지나치게 가혹합니다. “‘그냥 책일 뿐’이야, 냉정하게 바라보자!”라고 말하기에는 알량한 양심이 허락하지 않습니다.
일개 독자로서 <난 두렵지 않아요>가 놓일 한 지점을 찍으라면, 이 책은 ‘(읽기에)고통스러운 책’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이크발, 파티마, 마리아가 보여준 세상은 지옥입니다. 인간의 무한 탐욕이 자행한 생생한 지옥의 기록이 <난 두렵지 않아요>인 것입니다.
저자는 이크발의 죽음을 파티마에게 알리는 마리아의 편지로 끝을 맺습니다. 마리아는 제2, 제3의 이크발이 나타나고 있다고 전하며 희망의 끈을 놓지 않습니다. 저자는 마리아를 통해 애써 희망의 불씨를 지피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희망은 쉽게 오지 않을 듯합니다. 가야 할 길이 너무 멀게 느껴지는 탓이지요. 지금 이 순간에도 세계 곳곳에서 2억 4600만 명의 어린이들이 강제노역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그 참혹한 현실을 알면서도 우리는 이 자리에 천연스레 앉아있고, 스타벅스 커피를 마시며, 떨어지는 아파트값을 걱정하고, 터키산 명품 카펫을 탐하는 모순된 모습을 보이고 있지는 않은지요.
책장을 덮으며 미켈란젤로의 피에타상을 떠올렸습니다. 싸늘하게 식은 아들의 시신을 안고 참척의 고통을 인내하고 있는 한 어머니, 마리아. 이제 우리가 할 일은 무엇일까요. 저는 감히 말합니다. 마리아의 무릎에서 예수를 내려놓고 그 자리에 이크발 마시흐를 뉘어야 한다고. 몸의 마디마디에 깊게 고통 새겨진 소년의 작고 여린 몸을 끌어안고 뜨거운 눈물을 흘려야 한다고….
“가엽고 가여운 ‘내 새끼’!”
목젖 가득 울음을 토해내며 어린 소년을 뜨겁게 품어 안는 그날, 어쩌면 희망의 씨앗이 뿌려질지 모를 일이지요.
나는 모릅니다.
파키스탄의 시골 마을에서 밭은기침을 토해내며 카펫을 짜고 있을 어린 소년 소녀들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나는 모릅니다.
사상충에 감염돼 부풀어 오른 코끼리 다리를 하고 뜨거운 적도의 열선 아래에서 아라비카 커피 열매를 따고 있을 절망의 눈동자를 위해서 내가 어떤 일을 할 수 있을지를, 나는, 나는 모릅니다.내가 알고 있는 것은 단 하나, 이 땅의 신음하는 어린 영혼을 위해 우리가 해야 하는 첫 번째 일은 그들의 여린 목숨을 내 무릎 위에 올려놓고 깊게 안아주는 것이라는 것을. 그리고 위로하며 쓰다듬어 주어야 한다는 것을.
이크발을 생각합니다. 뜨거운 눈물이 흐릅니다. 떨리는 손을 내밀어 여윈 등을 다독여주어야겠습니다.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오직 이 한마디.
“이크발, 불쌍한 내 새끼!”
그리고 우리에게는 아직 해야 할 일이 남아있습니다. 나머지는 나와 당신의 몫이겠지요. 이제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그 답을 찾아야 합니다.
- 작성자
- 김영주
- 작성일자
- 2012-06-25
- 자료출처
- 부산이라좋다
- 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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