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강변 도심 속에 숨겨진 고려가요의 고향 <정과정 유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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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여름의 싱그러운 초록빛이 가득한 주말, 부산 수영구 망미동에 있는 작은 비밀의 숲 같은 곳, ‘정과정 유적지’에 다녀왔습니다. 이곳은 학창 시절 국어 시간에 한 번쯤 들어봤을 고려가요 <정과정곡>이 탄생한 역사적인 장소인데요. 고려시대 문신이었던 정서가 이곳으로 유배를 와서 정자를 짓고 오이밭을 일구며, 임금님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담아 노래를 지은 곳이라고 합니다. 주변은 온통 높은 아파트와 도로로 둘러싸여 있지만 이곳만큼은 시간이 멈춘 듯 울창한 녹지가 그대로 보존되어 있어 묘한 매력을 풍깁니다.

공원 입구에 들어서니 이곳의 유래가 적힌 커다란 안내판이 먼저 반겨주었습니다. 가만히 읽어보니 정서가 이 근처에서 오이밭을 가꾸고, 근처 망산에 올라 저 멀리 개경에 계신 임금님을 바라보며 잔을 바쳤다는 애달픈 이야기가 적혀 있더군요. 이야기를 머릿속으로 그리며 낮지 않은 돌계단을 천천히 걸어 올라갔습니다. 초여름의 기분 좋은 나무 그늘 덕분에 발걸음이 한결 가볍고 시원했습니다.

계단 끝에 다다르자 울창한 나무들 사이로 화려하고 멋진 단청을 뽐내는 팔각정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정자에 가까이 가니 처마 밑에 한자로 큼직하게 쓰인 현판이 눈에 띄었고, 사방이 시원하게 트인 정자 위로 올라가니 도심 속 소음은 사라지고 맑은 새소리만 가득했습니다. 옛날 정서도 이 자리에 앉아 수영강을 바라보며 답답한 유배 생활의 시름을 달랬을 거란 생각이 드니 기분이 묘해지기도 했습니다.


정자 주변을 거닐다 보면 유적지를 묵묵히 지키고 있는 거대하고 검은 바위인 '경암'과 한눈에 봐도 세월이 느껴지는 커다란 보호수가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그 옆에는 한글로 빽빽하게 노래 가사가 새겨진 정과정 시비가 서 있는데요.

절절한 가사를 천천히 읽어보았습니다. 우리말로 전해지는 고려가요 중에서 유일하게 작가를 정확히 알 수 있는 작품이자 후대 유배문학의 시초가 된 대단한 문학 작품이라 그런지 비석 앞에 머무는 시간이 꽤 길어졌습니다.


정과정 유적지는 단순히 가볍게 산책하기 좋은 동네 공원을 넘어 수백 년 전 한 문인의 애틋한 마음과 숨결이 그대로 박제되어 있는 뜻깊은 문화 공간이었습니다. 화려한 광안리나 해운대 바다도 좋지만 이번 주말에는 조용하고 잔잔한 수영강변을 따라 걷다가 역사와 문학의 향기가 가득한 정과정 유적지에서 여유를 즐겨보시는 건 어떨까요?
- 작성자
- 임주완
- 작성일자
- 2026-06-29
- 자료출처
- 부산이라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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