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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7호] #3. 사람 이야기 두 번째: 부마항쟁 다큐 「10월의 이름들」 이동윤 감독 인터뷰

부서명
전시팀
전화번호
051-607-8043
작성자
이아름
작성일
2025-09-08
조회수
11
내용

#3. 사람 이야기 두 번째: 부마항쟁 다큐 「10월의 이름들」 이동윤 감독 인터뷰






1979년 10월, 부산과 마산의 거리는 자유를 향한 갈망과 민주주의의 숨결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러나, 부마민주항쟁은 긴 세월 동안 굵직한 민주화운동들에 가려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왔습니다.

그 잊힌 시간을 비추고, 이름 없는 얼굴들을 다시 불러낸 작품이 있습니다.

바로 국제신문이 제작하고 이동윤 감독이 연출한 다큐멘터리 〈10월의 이름들〉입니다.

이번 인터뷰에서는 영화평론가이자 언론인으로 활동해온 이동윤 감독에게, 그가 왜 부마를 선택했는지, 

작품을 완성하기까지 어떤 어려움과 울림을 마주했는지, 그리고 이 다큐멘터리를 통해 

오늘 우리에게 전하고자 하는 목소리가 무엇인지 직접 들어보았습니다.





1.  개인과 작품의 만남

Q. 감독님 소개와 함께, 다큐멘터리 <10월의 이름들>을 제작하게 된 계기를 들려주시겠습니까?


A. 저는 국제신문 소속 기자로 활동하면서 영화에 대한 꾸준한 관심과 공부를 이어왔습니다. 기자로 재직하는 동안 영화평론을 집필하며 영화평론가로 등단했고, 짧은 이야기라도 직접 영상으로 구현해보고 싶은 열망에 단편 영화를 제작한 경험도 있습니다. 〈10월의 이름들〉의 시작은 국제신문의 중요한 변화와 맞닿아 있었습니다. 당시 회사는 급변하는 미디어 환경에 발맞추어 디지털 콘텐츠 강화를 전략적으로 추진하고 있었고, 단순한 텍스트와 사진을 넘어 독자들에게 더욱 생생한 이야기를 전할 수 있는 영상의 중요성이 크게 부각되던 시기였습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부마민주항쟁을 다룬 다큐멘터리 제작이 결정되었고, 제가 연출을 맡게 되었습니다. 돌이켜보면 기자로서의 취재 경험, 영화평론가로서의 시각과 이해, 그리고 단편 영화 제작을 통한 현장 경험까지, 그 모든 것이 맞물려 이 작업으로 이어졌던 것 같습니다. 한 명의 기자로서, 그리고 영화를 사랑하는 한 사람으로서 〈10월의 이름들〉은 단순한 제작을 넘어 시대와 사람을 영상으로 기록하는 소중한 기회이자 도전이었습니다.


Q. 처음에 이 주제를 다루겠다고 했을 때 주변의 반응은 어땠나요?


A. 응원도 있었지만, 개인적 우려의 목소리가 더 강했습니다. "부마항쟁은 너무 오래된 이야기 아니냐", "광주에 비해 상징성이 약해서 사람들이 관심이나 가질까?" 같은 현실적인 걱정들이 대부분이었죠. 하지만 바로 그 지점이 제가 이 다큐멘터리를 만들어야만 하는 이유가 되었습니다. 모두가 희미하게 알고 있거나, 혹은 아예 잊어버렸기에, 누군가는 반드시 선명하게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고 확신했습니다.


Q. 부마항쟁이라는 주제는 감독님께 개인적으로 어떤 의미였나요?


A. 제게 부마항쟁은 교과서 속의 박제된 역사가 아니라, 제 윗세대가 온몸으로 겪어낸 살아있는 시간이었습니다. 결국 이 주제는 제 개인의 뿌리를 찾아가는 여정이었고,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내가 어디에 서 있는지를 확인하는 과정이었습니다.




Q. 이 작품이 감독님의 삶이나 예술관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궁금합니다.


A. 이 작품은 제 예술관을 완전히 바꿔놓았습니다. 이전에는 거대 담론이나 구조적인 모순을 드러내는 것이 감독의 역할이라 생각했지만, <10월의 이름들>을 만들며 깨달았습니다. 역사를 움직이는 진짜 힘은 이름 없는 개개인의 용기와 눈물, 작은 목소리들이 모여 만들어진다는 것을요. 이후 저는 '한 사람'의 우주에 더 깊이 천착하게 되었고, 그의 이름을 불러주는 것이야말로 가장 위대한 역사의 기록이라는 믿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2. 1979년 부마항쟁을 바라보다.




Q. 감독님이 바라보는 1979년 부마항쟁의 역사적 의미는 무엇입니까?


A. 부마항쟁은 박정희 유신 독재의 종말을 앞당긴 결정적 도화선이자,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일어난 최초의 대규모 민주화운동입니다. 서슬 퍼런 총칼의 위협 속에서도 "독재 타도"를 외쳤던 부산과 마산 시민들의 용기는, 이후 80년 광주와 87년 6월 항쟁으로 이어지는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도도한 물결을 연 위대한 시작이었습니다. 이는 결코 평가절하되어서는 안 될 명백한 역사적 사실입니다.


Q. 당시의 사건이 오늘날 한국 사회의 민주주의 과정에 어떤 기여를 했다고 생각하시나요?


A. 부마항쟁은 불의한 국가 권력은 결국 국민의 힘으로 무너뜨릴 수 있다는 소중한 선례를 남겼습니다. 당시 시민들이 보여준 저항의 DNA는 우리 사회 깊숙이 새겨져, 이후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시민들이 광장으로 나설 수 있는 역사적 자신감의 원천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누리는 오늘의 민주주의는 바로 그날, 거리로 나섰던 평범한 시민들의 피와 땀 위에 서 있는 것입니다.


Q. 부마항쟁은 다른 민주화운동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는데, 그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A. 가장 큰 이유는 직후에 발생한 5·18 민주화운동의 비극성이 너무나 컸기 때문일 것입니다. 광주의 참상은 부마항쟁의 기억을 상당 부분 덮어버렸고, 이후 정권들 역시 자신들의 정통성과 관련이 적은 부마항쟁을 적극적으로 조명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서울 중심의 역사 서술에서 지방에서 시작된 항쟁이라는 점도 상대적으로 소외된 원인 중 하나라고 봅니다.


  


Q. 감독님은 다큐멘터리로 어떤 ‘공백’을 채우고자 하셨나요?


A. 저는 사건의 나열로만 남은 역사의 공백을 '사람'으로 채우고 싶었습니다. 부마항쟁이라는 거대한 이름 아래 가려졌던 학생, 노동자, 상인, 주부 등 평범한 시민들의 얼굴과 목소리를 복원하고 싶었죠. 그분들 한 명 한 명의 고통과 용기의 서사를 통해, 차갑게 느껴졌던 역사를 뜨거운 피가 흐르는 우리의 이야기로 되돌려놓고 싶었습니다.


3. 제작 과정의 이야기

Q. <10월의 이름들>은 어떤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나요?


A. "왜 우리는 그들을 기억하지 않는가?"라는 아주 단순하지만, 근본적인 질문에서 시작했습니다. 민주주의의 위대한 역사를 만들었음에도, 왜 그 주역들은 이름 없이 잊혀야 하는가에 대한 분노와 안타까움이 있었습니다. 역사는 승리했지만, 개인은 패배한 아이러니를 더 이상 외면해서는 안 된다는 강한 문제의식을 느꼈습니다.


Q. 기획 단계에서 가장 먼저 잡으신 핵심 키워드나 콘셉트는 무엇이었나요?


A. 핵심 키워드는 단연 '이름'과 '얼굴'이었습니다. 그래서 기획 초기부터 '부마항쟁'이라는 사건 중심의 서사를 버리고, 그 시대를 살아낸 '사람들'의 이야기를 따라가는 로드무비 형식을 구상했습니다. 잊힌 이름들을 하나씩 찾아 불러주고, 그들의 얼굴을 화면에 새기는 것 자체가 이 다큐멘터리의 가장 중요한 연출 방향이었습니다.


Q. 제작 과정에서 가장 큰 어려움이나 잊을 수 없는 순간은 무엇이었습니까?


A. 40년이 훌쩍 넘는 세월의 벽이 가장 큰 어려움이었습니다. 많은 분이 돌아가셨거나, 혹은 당시의 트라우마로 인해 입을 열기 힘들어하셨죠. 가장 잊을 수 없는 순간은, 평생을 죄인처럼 숨어 지내셨다는 한 어르신께서 카메라 앞에서 처음으로 그날의 이야기를 털어놓으시며 "이제야 좀 살 것 같다."라고 하시며 눈물 흘리시던 모습입니다. 그 순간, 이 영화가 반드시 완성되어야 할 이유를 다시금 확인했습니다.


 


Q. 그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하셨는지도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


A. 조급함을 버리고 기다리는 것만이 유일한 방법이었습니다. 인터뷰를 강요하지 않고, 그저 찾아뵙고 말벗이 되어드리며 마음의 문이 열리기를 기다렸습니다. 저희는 기록자가 아니라, 그분들의 아픔을 듣고 함께 울어주는 '청자'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런 진심이 전해졌을 때 비로소 굳게 닫혔던 기억의 빗장이 조금씩 열리기 시작했습니다.


Q. 특히 인상 깊었던 증언이나 시민들의 이야기가 있다면 소개해 주시겠습니까?


A. 40여 년 만에 폭행 및 구금당한 장소로 갔던 이용만 선생님의 이야기가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당시 인터뷰만 진행 예정이었는데, 선생님께서 장소로 가자고 제안해주셨습니다. 물론 그 당시 장소는 많이 바뀌었지만, 선생님의 그 결단이 기억에 남습니다.


4. 작품의 의도와 메시지

Q. 작품 제목에 ‘이름들’을 담으신 이유와 그 안에 담긴 의미를 설명해 주신다면요?


A. '부마항쟁'이라는 사건명은 우리에게 아무런 감흥을 주지 못하지만, '김영희', '이철수' 같은 구체적인 '이름'은 그 사람의 인생과 역사를 떠올리게 합니다. 제목에 '이름들'을 담은 것은, 이 역사가 박제된 사건이 아니라 수많은 개인이 살아낸 삶의 총합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이름 하나하나를 불러주는 행위를 통해, 잊혔던 영웅들을 현재로 소환하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을 담았습니다.




Q. 이름을 불러주는 것, 기록하는 것이 민주주의와 기억에 어떤 힘을 준다고 생각하시나요?


A. 이름을 불러주고 기록하는 것은 그 사람의 존재를 인정하고 그의 역사를 존중하는 가장 기본적인 행위입니다. 이는 개인에게는 명예의 회복을, 공동체에는 역사의 교훈을 선사합니다. 민주주의는 결국 개개인의 존엄성을 지키는 것에서 시작하며, 한 사람 한 사람의 희생과 헌신을 잊지 않고 기억할 때 비로소 더 단단해질 수 있다고 믿습니다.


Q. 다큐멘터리를 통해 관객들에게 가장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는 무엇입니까?


A. "우리가 기억해야 할 영웅은 아주 평범한 얼굴을 하고 우리 곁에 있습니다."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습니다. 민주주의는 특별한 누군가가 완성해서 우리에게 선물하는 것이 아니라, 불의를 보고 참지 못했던 평범한 이웃들의 용기가 모여 이룩한 것임을 꼭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그 역사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으며, 바로 당신이 그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말을 건네고 싶었습니다.


Q. 그 메시지가 관객들에게 잘 전달되었다고 느낀 순간이나 반응이 있었나요?


A. 한 청소년 관객이 GV(관객과의 대화) 시간에 이런 소감을 남겼을 때 가슴이 벅차올랐습니다. "영화를 보기 전까지 부마항쟁은 그냥 옛날 일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영화를 보고 나니 돌아가신 저희 할아버지의 이야기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역사를 자신의 가족사와 연결하며 현재의 이야기로 받아들이는 그 순간, 제가 전하고팠던 메시지가 와닿았다고 느꼈습니다.


5.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Q. 부마항쟁이 오늘을 살아가는 시민들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A. 민주주의는 완성된 결과물이 아니라, 끊임없이 관심을 가지고 지켜내야 하는 살아있는 생명체와 같다는 교훈을 줍니다. 우리가 무관심해지는 순간, 민주주의는 언제든 후퇴할 수 있다는 것을, 1979년의 시민들은 온몸으로 보여주었습니다. '나라가 알아서 해주겠지'가 아니라, '내가 바로 이 나라의 주인'이라는 주권 의식을 잊지 않는 것이야말로 부마항쟁이 우리에게 주는 가장 큰 가르침입니다.





Q. 특히 젊은 세대가 어떻게 이 역사를 받아들이면 좋을지 조언해 주신다면요?


A. 부마항쟁을 따분하고 어려운 역사 공부로 접근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그저 40여 년 전, 지금의 여러분과 비슷한 나이였던 언니, 오빠, 형, 누나들이 왜 차가운 거리로 뛰쳐나와야만 했는지 그 마음에 공감해보는 것에서 시작하면 좋겠습니다. 그들의 용기와 선택이 있었기에 지금 우리가 당연하게 누리는 자유가 있다는 사실을 한 번쯤 생각해보는 것만으로도, 이 역사는 여러분에게 큰 의미로 다가갈 것입니다.


Q. 마지막으로 이번 다큐멘터리와 인터뷰를 통해 독자와 시민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부탁드립니다.ㅠ


A. 우리의 역사는 우리가 기억하는 만큼만 존재합니다. <10월의 이름들>을 통해 잊혔던 이름들을 함께 기억해주시고, 더 나아가 여러분 주변의 숨겨진 역사와 이름들에도 관심을 두시길 부탁드립니다. 우리의 기억과 기록이 모일 때,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역사는 더욱 풍성하고 단단해질 것입니다.





이동윤 감독은 부마민주항쟁을 먼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오늘 우리 곁에서 여전히 숨 쉬는 기억으로 되살려 주었습니다.

이름 없는 얼굴들을 불러내고, 그들의 용기와 눈물을 잊지 않는 일이야말로

우리가 민주주의를 이어가는 또 하나의 시작임을 깊이 일깨워줍니다.

소중한 이야기를 들려주신 이동윤 감독님께 깊이 감사드리며,

앞으로 그가 전해줄 또 다른 기억의 울림을 기대하며 이번 인터뷰를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