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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6호] #2. 공간 이야기 두 번째: 이바구꾼 손민수가 전하는 역사의 아픔을 품은 새로운 빛의 동네 ‘광복동’

부서명
전시팀
전화번호
051-607-8043
작성자
이아름
작성일
2025-06-09
조회수
18
내용

#2. 공간이야기 두번째: 이바구꾼 손민수가 전하는 역사의 아픔을 품은 새로운 빛의 동네 ‘광복동’







광복동(光復洞)은 그 이름에서부터 특별한 울림을 줍니다. 이름만 들어도 느껴지는 해방의 희열, 그리고 그 이면에 깃든 고난과 변화의 시간. 오늘날 광복동은 수많은 사람에게 쇼핑과 부산 관광의 중심지로 사랑을 받고 있지만, 이 거리의 곳곳에는 한국 근현대사의 복합적인 기억이 짙게 배어 있습니다. 광복동의 길을 거닐다 잠시, 한적한 골목 어딘가에 발을 멈추면 과거의 숨소리가 귓가를 간지럽히는 묘한 느낌을 받게 됩니다.




  

현재 우리 눈 앞에 펼쳐진 광복동의 모습은 하루아침에 그려진 풍경화가 아닙니다. 그 바탕에는 조선과 일본의 두 역사가 충돌하고 얽히면서 만들어낸 세월의 지문이 선명하게 찍혀 있습니다. 1678년 용두산 아래 11만 평 규모의 초량왜관이 생긴 것을 시작으로, 1876년 개항 이래 일본인 전관거류지가 되면서 일본인들의 진출은 본격화되었고, 1910년 이후 이곳은 일본인들의 중심거주지가 되었습니다. 1914년 일제는 부제(府制)실시를 통해 부산 일대를 일본식 행정구역으로 재편성했는데요. 당시의 광복동은 변천정(辨天町), 금평정(今平町), 서정(西町), 그리고 행정(幸町) 등 4개의 지역으로 구분되어 있던 일본인들의 거주지였으며, 부산 최고의 상업지이자 번화가였습니다. 광복동을 가로지르는 지금의 광복로는 원래 앵천(櫻川)이라는 작은 하천이 흘렀던 자리입니다. 1886년 복개되어 길이 되었고, 일제강점기에는 '장수통(長手通-나가테도오리)'이라 불리며 번화가로 성장했습니다.






조선인들에게 억압과 차별이 서려 있던 거리였던 이곳은, 1945년 광복을 맞으며 ‘광복동’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얻게 됩니다. 부산시의 동명 유래에 따르면, 광복동이란 동명은 광복 이후 동명 개칭 때 ‘일본인들이 가장 많이 살았고 번창했던 곳에서 조국의 광복을 맞은 그 뜻을 기린다.’라는 의미였다고 합니다. 말 그대로 우리 민족이 갈구했던 자유와 희망을 상징하는 이름이었던 것입니다.




광복 이후 광복동은 부산의 중심지로 더욱 빛을 발했습니다. 6·25전쟁 이후 피란 수도 시기, 피란민들에게 이곳은 삶의 터전이기도 했습니다. 피란 예술가와 문인들도 이곳에서 새로운 터전을 닦고 흔적들을 남겼죠. 화가 이중섭은 광복동을 오가며 작품 활동과 교류를 이어나갔습니다. 그는 전쟁으로 인해 가족과 이별한 후, 가족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을 작품 속에 담아냈습니다. 전쟁 속에서도 광복동은 문화예술가들에게 창작의 갈망을 실현할 수 있었던 절실한 무대이자 그들의 연대 공간이었던 것입니다.





  

광복동의 문화적 의미는 단순한 상권 이상입니다. 1960~70년대 대한민국 패션의 최전선이었던 이곳은 4·19혁명부터 80년대에 이르기까지 민주화운동의 뜨거운 심장이기도 했습니다. 특히 1970~80년대에는 광복동과 남포동의 독특한 연계성으로 인해 '광포동'이라는 이름이 등장한 것도 흥미롭습니다. '광포동' 일대에 즐비했던 극장들, 다방들, 그리고 음악감상실과 주점들은 단순한 상업 공간을 넘어 부산 문화예술인들의 사랑방이 되었습니다. 문화예술인들이 시대정신을 뜨겁게 논했던 이곳은 문화예술과 부산의 역사가 공명하는 특별한 공간으로 자리매김하게 됩니다.





  


시간이 흐르며 광복동은 계속해서 변화를 겪습니다. 현대적인 발전과 함께 부산 시민은 물론 관광객에게도 사랑받는 상업과 문화의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2005년 광복로 정비사업, 2008년 차 없는 거리 운영, 2009년 롯데백화점 광복점의 개점은 광복동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광복동의 오래된 골목 속에는 예전의 정서가 남아있고, 이 공간에서 살아오신 어르신들의 눈빛 속에는 과거의 기억들이 서려 있습니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광복동은 과거의 상처를 품으며, 그 너머의 새로운 삶을 이루어낸 공간입니다. 역사의 아픔과 함께 새로운 시작의 에너지를 담아낸 특별한 장소입니다. 이름이 바뀌고, 거리 모습은 변해도 이곳을 지나는 역사의 흐름은 여전히 선명합니다.



 

광복로의 한가운데에 있는 시티 스폿, 새천년 상징 조형물 앞에 서 봅니다. 빌딩과 간판 너머로 재잘거리던 도시의 소리가 멈추고, 문득 아버지의 손을 잡고 미화당백화점을 지나 용두산을 오르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거리를 가득 메웠던 고갈비의 연기, 광복로 먹자골목 좌판에 깔린 당면과 국수를 보며 입맛을 다셨던 기억에 눈시울이 붉어져 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