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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6호] #1. 다시 쓰는 역사 두 번째: 소설 「잃어버린 사람」 속 광복동에서 만난 그것

부서명
전시팀
전화번호
051-607-8043
작성자
이아름
작성일
2025-06-09
조회수
7
내용

#Ⅰ. 다시쓰는 역사 두 번째: 소설 잃어버린 사람」 속 광복동에서 만난 그것








역사가 잃어버린 사람들이 끊임없이 모여들고 흩어지며 시공간을 초월해 길게 펼쳐져 있는 부산. 제멋대로이고, 소란스럽고, 너무 뜨겁고, 한없이 친절해 사랑할 수밖에 곳. 상실되고 삭제돼 유령이 된 사람들과 그들이 존재했던 (무분별한 개발에 묻혀버린) 장소들을 찾아, 걸어서, 버스를 타고, 부산 한복판을 가로질러 영도까지 들어갔다 나오곤 하던 답사의 날들이 떠오릅니다. 소설을 쓰는 행위가 복원의 행위임을 다시금 일깨워준 부산은 ‘역사의 주인공은 누구인가?’, ‘기억이란 무엇인가’라는 거대한 질문이기도 합니다.


   


제가 다시 부산을 찾는다면 쑥국을 만나고 싶어서일 것입니다. 해방되고, 귀환선을 타고 돌아온 사람들로 넘쳐나던 시기에 부산 서쪽 바닷가 마을인 모지포에 살았던 가장 늙은 과부. 일제강점기 이전에 양산에서 낙동강 하구와 상류를 오가는 나룻배를 타고 어부에게 시집와, 남편을 바다에 잃고 과부가 돼, 생선 행상으로 키우며 삶을 살아낸 여인.







하늘로 던져진 물고기는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 모지포의 가장 늙은 과부 쑥국의 집 마당에 떨어진다.

귀가 밝은 편인 쑥국은 집 뒤 텃밭에 총각무 씨를 심다가 마당에 뭔가가 툭 하고 떨어지는 소리를 듣는다.


(…)

“다금바리네…….”

그녀는 싸리 울타리 너머, 앞으로 고부장히 뻗은 길을 바라본다. 흙먼지가 풀풀 날리는 그 길에는 사람 그림자 하나 없다.

그녀는 고개를 외로 들어 빛으로 가득한 바다에 눈길을 준다. 마을의 다른 집들과 외떨어져 언덕배기에 자리한 그녀의 집에서는 

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그녀가 시집와 딸을 낳을 때만 해도 그 집에는 시부모, 남편, 시누이 셋, 시동생이 살고 있었다. 

그녀보다 먼저 살고 있던 그들은 죽거나 떠나고, 가장 나중에 들어온 그녀 혼자 남겨져 20년 넘게 그 집을 지키며 살고 있다.

바다에 떠 있는 외돛배에 눈을 고정시키고 그녀는 자신에게 묻는다.

‘누굴까……?’

열흘 전에도 누군가 그녀의 집 마당에 물고기 한 마리를 던져주고 갔다. 그녀는 방에서 바느질을 하다 마당에 뭔가가 툭 하고 떨어지는 소리를 들었다. 시래기죽으로 연명하던 그녀는 물고기로 국을 끓여 네 끼를 맛있게 먹었다. 된장을 심심하게 푼 물에 토막 낸 물고기와 납작하게 썬 무를 넣고 끓인 국을 국물 한 방울 남기지 않고 다 먹었다.

바닷고기의 몸에서 흘러나온 기름은 인간의 살을 찌우고 푸석한 피부에 윤기를 돌게 한다.

홀로 사는 늙은 과부인 그녀에게 바닷고기는 귀하다. 그래서 시동생은 바다에서 잡은 바닷고기를 그녀에게 가져다주곤 했다. 그 시동생이 세상을 떠나고 바닷고기는 그녀에게 더 귀한 게 됐다.

마을의 살아 있는 어부들 얼굴을 하나하나 떠올리던 그녀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말한다.

“고맙습니다!”

그렇잖아도 굽은 허리를 더 구부리며 하늘에 대고 공손하게 인사한다.

“잘 먹겠습니다.”

그녀는 그러고 나서야 땅에서 다금바리를 집어 든다. (『잃어버린 사람』 중에서)




쑥국이 마당에서 하늘을 올려다보며 중얼거리던, 고맙습니다! 그녀의 고분하지만 꿋꿋한 목소리에 내 목소리가 겹쳐 떠오르게 하고 싶습니다. 그녀가 허리를 하늘과 그 아래 만물을 향해 굽힐 때 내 허리가 그녀의 허리에 겹쳐져 굽혀지길. 어느덧 80년이 지나고 쑥국은 여전히 그곳 모지포의 어느 빈 집 마당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어느 맘씨 좋은 어부가 허공으로 던진 물고기가 그녀의 마당으로 툭 하고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부산은 쑥국이 살아낸 삶만큼이나 측은하고 숭고한 수많은 삶이 인연을 맺으며 뒤엉켜 흐르는 곳이기도 합니다. 쑥국의 삶을 복원하는 것은, 그녀와 짧게 혹은 길게 인연을 맺은 무수한 사람들을 복원하는 것이며, 생선 행상이었던 그녀의 발길이 닿았던 장소들의 복원이기도 합니다.






자, 시간을 더 거슬러 올라가, 젊은 여인으로 되돌아간 쑥국이 생선 행상을 나갑니다. 어부 남편이 그물을 내려 잡은 물고기들이 광주리 그득 담겨 있습니다. 그녀는 해방 후 광복동으로 지명이 바뀐 장수통까지 갔다가 집으로 돌아올 것입니다. 하루 종일 걸리는 먼 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