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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내믹 부산 이야기리포트

임진년에 임진왜란을 생각해 본다

내용

1592년 음력 4월 13일 저녁무렵.

부산 자성대 앞바다에는 왜적들의 배가 새까맣게 몰려와 있었다. 왜장 고니시가 “명을 칠테니 길을 빌려달라”고 한다. 이에 부산진성(지금의 증산공원) 의 첨사인 정발장군은 일언지하에 거절한다. 다음날 새벽 왜군은 부산진성으로 쳐들어갔다.

당시 왜군은 조총을 소지한 채 18700명의 군사를 이끌고 왔었고, 부산진성에는 겨우 1000명 정도의 군사가 있었다. 싸움의 승패는 이미 결정되어 있었다. 정발장군은 장렬히 싸웠지만 전사하고 부산진성은 함락되었다. 당시 성안에 있던 개와 고양이마저 살육 당했다고 하니 참으로 끔찍한 패배였다.

부산진성을 함락시킨 왜군은 그 여세를 몰아 동래성으로 향한다. 14일 저녁 무렵. 왜장 고니시는 동래부사 송상현에게 다시 길을 빌려달라고 한다. 이에 송상현 부사는 “싸워서 죽기는 쉬워도 길을 빌려주기는 어렵다”고 말한다. 다음날 새벽 왜군은 동래성을 공격한다. 성을 지키기 위해 백성들과 군인들은 있는 힘을 다해 싸웠으나 역시 패배. 동래성도 함락되었다. 그때가 15일 아침 10시경 이었다.

14일과 15일 양일간에 부산진성과 동래성이 그렇게 무참하게 함락되었다. 겨우 이틀만의 일이었다. 2012년은 임진년이다. 420년 전인 1592년도 임진년이었다. 그해 녹음이 막 짙어지는 초여름 부산에서는 조선을 7년 동안 유린하게 되는 임진왜란이 그렇게 시작되고 있었다.

임진왜란에 대해서는 국사시간에 열심히 공부했지만 암기식 교육을 받다보니 실제 피부에 와닿지 않았다. 그런데 얼마 전 중구 좌천동에 있는 증산공원을 다녀오면서 그곳이 바로 임진왜란이 시작된 첫번째 피비린내 나는 전쟁터라는 것을 알고 임진왜란에 대한 관심이 생겼다.

겨우 이틀만에 부산이 그렇게 무너지다니.... 왜군은 전쟁에서 너무 쉽게 이겼다는 생각이 든다. 만약 부산진성과 동래성이 함락되지 않았다면 조선의 백성들은 그렇게 7년동안 유린당하지 않았을텐데.... 어쩌면 지방홀대의 결과물은 아니었을까... 6.25전쟁과 더불어 생각해 보면 부산은 지정학적으로 너무나 소중한 곳이었다.

작성자
정헌숙/부비 리포터
작성일자
2012-01-04
자료출처
부산이라좋다
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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