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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내믹 부산 제부산이야기 통권 제111호(2016년 1월호)호 기획연재

얼씨구! 장구가락에 신나는 발림 부산 최고 풍물잽이 ‘노름마치’

Busan People / Great! 부산 / 박종환 부산농악 장구 예능보유자

내용

 

지난해 12월 둘째 일요일. 동구 자성로에 위치한 풍류전통예술원은 부산농악 수장구 박종환 씨가 두 제자를 어르고 달래며 전수하는 장구가락으로 가득 찼다.

“장구는 편하게 쳐야 해. 힘이 들어가면 소리가 곱게 다스려지지 않아. 채를 쥔 손에 힘을 빼고 치는 순간 궁글게 쳐야 소리의 강약을 얻을 수 있단 말이다. 다스름부터 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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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시절 굿판에서 듣던 풍물에 관심 가져

“두두두둥 두두두둥 더덕 두둥 더덕 두둥”

마주 앉은 최선희(35·부산농악 전수자)와 최보라(22·부산대 국악과) 두 제자의 표정이 진지해진다. 8년 차인 최선희는 장구채를 잡을 때마다 항상 처음 배울 때처럼 기대감으로 두근거린단다. 초년생 최보라는 선생의 말 한마디, 장단 하나 놓치지 않으려고 두 눈에 쌍심지를 곧추세우고 긴장의 끈을 놓치지 않는다.

“아니야 아니야, 채가 채편에 닿는 순간 채를 회전시켜야 해, 그래야 탁한 소리가 나지 않는 거야.”

채가 채편에 닿는 순간 채를 회전시키다니, 초년생으론 어려운 기교일 수밖에. 그러나 지도하는 선생의 장구 소리는 벌써 방안 가득 공명을 이룬다. 채(열채)와 궁글채 소리가 끊어질 듯 하면서도 이어지며 공명을 토해낸다. 흐느끼듯 물결치는 어깨사위가 채를 잡은 두 팔과 손 사위를 감싸며 장구와 삼위일체를 이룬다.

장구는 가운데가 잘록한 반구(半球)의 장구통에다 북가죽을 입혀서 두드려 소리를 내는 악기이다. 공명통의 양편은 각각 크기에 따라 큰편을 ‘궁편’이라 하고, 작은편은 ‘채편’이라 한다. 보통 장구를 칠 때는 궁편을 손으로 치지만 마당이나 판에서 연주하는 농악에서는 궁편을 궁글채로 연주하며, 채편과 궁편도 복판을 쳐서 소리를 극대화한다. 두 북을 서로 잇는 끈(숫바)을 조이거나 풀어 소리의 세기를 조정하기도 한다.

박종환(朴鍾煥·50)은 어릴 적 고향 창원 북면 마금산 자락에서 봄·가을이면 동네 어른들이 걸쭉하게 한 판 벌이던 풍물굿을 잊지 못한다. 어른들이 풍물을 연주하는 모습을 보고 곧잘 따라 흉내냈다. ‘어린 놈이 기특하게 잘도 따라하는 구만’ 소리를 듣고 컸다. 마을에 굿판이라도 열리면 어정판을 서성이며 무당들과 화랭이(남자악사)들이 한바탕 짜는 모습을 신기하게 앉아서 지켜보았다. 모 심고 논 맬 때 어른들이 부르는 들노래가 그렇게 좋았기에 부산대에 진학하자마자 망설임 없이 ‘전통예술연구회’ 동아리에 들었다. 방과 후에 모여서 배우는 풍물은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젊은 피를 뜨겁게 달궜다. 

허나 동아리에서 배운 것으로는 분에 차지 않았다. 스승을 찾아 나섰다. 전라도 정읍으로 설장구를 배우러 가고, 남사당 출신의 임광식·이수영 등에게서 꽹과리를 배웠다. 그렇게 풍물을 배운다고 방학 때마다 쫓아다니다 보니 한 학기 등록금 받아 놓은 것이 야금야금 없어지는 줄도 몰랐다.

대학 동아리서 풍물 시작 … 전국 돌며 스승 찾아 배워

박종환의 풍물을 향한 꿈은 1986년 이용식(부산농악 장구 예능보유자) 선생을 만나면서부터 자리 잡혀 갔다. 당시 부산풍물패 단장이었던 선생의 분명하면서도 궁글고 빠른 타법과 춤을 추는 남성적인 가락에 매료됐다. 비록 아기자기하고 재미있는 가락은 못되지만 경상도 특유의 무뚝뚝하고 까칠한 남성적인 맛의 매력 때문이었다. 

자기만의 타법(打法)을 좀처럼 내보이지 않는 스승에게 매달렸다. 공연장에서 녹화한 스승의 연주모습을 보고 익힌 가락을 보여드리고 비로소 문하생이 됐다. 스승의 가락을 이어받으면서 장구의 매력에 빠지고 풍물의 소중함을 깨닫게 됐다. 경상도 덧배기가락도 모두 섭렵했다.

그런 한편 김한순 선생에게는 꽹과리를 배웠다. 부산농악의 중추를 이루던 정윤하(북)·엄정섭(징)·이성근(소고) 선생들도 이때 만났다. 이 무렵만 해도 농악(풍물)을 장래의 직업 일환으로는 생각하지도 않았을 때다. 그저 풍물이 좋아서 학교 동아리활동일랑 제쳐 두고 어른들을 만나는 일에 신명이 나서 쫓아 다녔다. 부산농악과 인연을 맺는 계기가 된 것이다. 그로부터 지금껏 부산농악은 박종환의 대명사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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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환 부산농악 장구 예능보유자는 대학 동아리 시절 시작한 장구의 매력에 빠져 전국을 돌며 풍물을 배웠다(사진은 박 예능보유자가 꽹과리를 연주하는 모습).


1993년 부산농악 정회원 … 밑바닥부터 다시 배워​

풍물에 빠져들수록 의문도 많고, 알고 싶은 것들도 많아졌다. 분명 무언가 또 다른 세계가 있을 것 같았다. 대학도서관에서 찾아본 ‘한국의 명무’ 저자 구희서(당시 한국일보 기자)를 찾아 무작정 서울로 갔다. 구희서가 당시의 취재수첩을 가져와 보이면서 “이러 이러한 분을 만나 보아라. 그런데 부산에 살면서 어째 유명한 타악잽이인 동해안별신굿의 김석출 선생을 모르느냐?” 란 말에 충격을 받았다.

1990년 가르칠 시간이 없다는 선생을 뵙기 위해서 동해안별신굿판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굿판이 열릴 때마다 멀찍이서 선생의 장구가락을 듣고 보기를 수차례, 드디어 수인사로 얼굴을 점찍고 굿 음악을 배우기로 작심한다. 1997년부터는 거동이 불편한 선생을 위해 차량 운전을 맡아하면서 굿 현장에서 본격적인 굿 음악에 심취한다. 동해안별신굿 꽹과리의 화려하고 박을 쪼개어 치는 독특한 ‘자브라깽이’타법도 배웠다. 굿청에서 양중(남자무당)들로부터도 인정받았다.

1993년에는 부산농악의 정회원이 됐다. 소고부터 시작해 북, 꽹과리 등을 다시 익히는 등 밑바닥 초년생 회원의 수순을 밟았다. 그러면서 전국 각처의 이름난 ‘잽이(악기연주자)’들을 찾아다니며 풍물공부하기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이들에게서 배운 많은 가락을 바탕으로 전통음악인으로서의 기틀을 쌓아갔다.

장구는 풍물의 사물 중 가락에 버금가는 소리의 높낮이를 연주할 수 있는 유일한 악기여서 예부터 연주법이 발달해 왔다. 여성국극단 시절의 설장구놀이가 그 대표적인 사례다. 풍물놀이에서 장구가락을 강조한 설장구놀이가 활발한 곳은 풍물굿 가락이 풍성하고 넌출대는 호남지역의 풍물굿이다. 판굿 짜임새도 다채로워서 좌도굿과 우도굿으로 나뉜다. 지역에 따라 판새도 완연히 다르다. 

설장구(장구춤)는 발동작(발림)이 많아서 놀이(공연장)에서는 장구를 왼쪽허리에다 띠로 동여매 흔들리지 않게끔 고정시켜야만 한다. 그리고 양손에 든 채와 궁글채로 장구를 치면서 기량을 한껏 뽐내며 풍물판에서 꽃을 이룬다. 채삼모 쓰고 연풍대(둥글게 빙글빙글 도는 것)를 이룰 때는 장구와 함께 도는 몸놀림이 빨라서 신고 있는 운동화가 새하얀 무늬띠를 이루듯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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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환은 지난해 부산시 무형문화재 부산농악 장구 예능보유자로 지정됐다. 

가장 젊은 부산농악 장구 예능보유자

부산농악 정례공연에서 수장구 박종환의 기량은 한층 돋보인다. 풍물꾼들의 마당놀이와 오방진, 멍석말이, 호호굿과 우물굿 등이 끝나고 개인놀이가 시작되면 박종환이 장구를 왼쪽옆구리에 동여매고 남실 춤추며 놀이판 중앙으로 들어선다. 궁글채와 채를 돌리며 발을 바꾸어 벌리고 굽히는 등 멋진 발림을 하며 장구가락으로 솜씨를 보인다. 한 장단에 두 발걸음을 옮기는 까치걸음을 걷고, 엇붙임 장단으로 가볍게 뛰기도 한다. 그리고 장구를 신나게 치며 연풍대를 돈다. 그러면서 얼굴에는 시종 환한 웃음을 띤다.

조승현(조판조)-이용식으로 이어지는 장구 스승에게 배운 설장구가락을 풀어낸다. 장구가락은 장판방에 콩 떨어지듯 개운한 맛이 있어야 제격이라더니 춤 장단과 가락장단이 절묘하게 엮어진다. 장단에 맞추어 채상모가 큰 원을 그리며 돌아간다.

박종환은 이용식·김한순·김석출 등 기량이 뛰어난 훌륭한 잽이들을 풍물의 길잡이로 모셨다. 어느새 부산농악 식구들도 벌써 3세대로 접어들어 이제 젊은이들이 뜨거운 열정으로 판을 달궈가고 있다. 

고분도리걸립굿과 아미농악을 근간으로 출발한 부산농악은 부산에서 민속음악의 최고봉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지난해엔 훌륭한 기량을 지닌 젊은 풍물꾼들이 부산시 무형문화재보유자로 지정받기에 이르렀다. 박종환도 가장 젊은 부산농악 장구 예능보유자로 지정받았다.

박종환은 그와 사유를 함께하면서 풍물단체의 대표를 맡고 있는 최의철·박순호·김인수 등과 젊은 꾼 풍물마당 ‘청’(淸)을 결성해 매년 다양한 장르의 풍물을 발표하고 있다. 이들의 연주는 풍물세계의 또 다른 지평을 열어주는 계기가 돼왔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들의 활동을 예의 주시하고 있는 것이다. 박종환의 오늘이 있기까지엔 초등학교 교사인 부인의 내조가 컸다. 

풍물이 좋고 전통음악이 그저 좋아, 음악 찾아 전국을 누비고 바깥세상에 사는 박 씨의 진솔한 삶을, 그 진정을 이해하고 보듬어주며 가정을 지켜주었기 때문이다. 이미 고인이 됐지만 이용식·김한순·김석출 스승의 가르침으로 오늘에 이르면서 스승의 명예에 걸맞은 최고의 풍물잽이 ‘노름마치’가 되고 싶은 간절한 마음으로 오늘도 장구 앞에 앉는다. 

 

작성자
주경업 부산민학회장
작성일자
2016-01-14
자료출처
부산이라좋다
제호

부산이라좋다 제부산이야기 통권 제111호(2016년 1월호)호

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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