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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내믹 부산 기획연재

부산, 역사·문화 어우러진 ‘부산의 중심’

I♥Busan / 우리 사는 부산 / ① 중구
자갈치시장·국제시장·용두산공원·BIFF광장 … 명소 즐비

내용

부산은 따뜻하다. 전국이 영하권일 때도 영상일 때가 많다. 어떤 때는 남쪽 제주도보다 기온이 높다. 기후는 심성에 영향을 미쳐 부산사람은 따뜻하다. 온화하고 다정다감하다. 낙동강 하구처럼 품도 너르다. 전국에서 몰려든 전쟁 피란민을 기꺼이 흔쾌히 품은 곳이 부산이다. 당시는 부산이 곧 대한민국이었다. 6·25 전쟁 마지막 보루 부산이 있었기에 오늘의 한국이 있다! 부산은 복 받은 곳이다. 바다와 산과 강과 온천은 부산을 매일매일 반짝이게 하고 오늘 다르게 하고 내일 다르게 한다. 다이내믹 부산이고 글로벌 부산이다. 부산이 아우르는 자치구는 모두 열여섯 군데. 하나하나가 보석이고 보배다. 보석을 닦는 마음으로 보배를 어루만지는 마음으로 열여섯 자치구를 매월 한 군데씩 들여다본다. 들여다볼수록 빛나는 자치구이고 우리 사는 부산이다. <편집자 주>

중구는 부산의 중심이다. 중구를 중심에 두고 중구 동쪽에 있으면 동구, 서쪽에 있으면 서구다. 남구 북구도 마찬가지다. 부산의 구제(區制)는 1957년 실시됐다. 부산시민들이 줄기차게 요구했던 부산의 특별시 승격이 무산된 데 대한 대안으로 1956년 12월 17일 '부산시 구제에 관한 법률안'이 국회에서 통과됐고 이듬해 1월 1일부터 구제가 실시됐다. 구제 실시 이전 중구는 중부출장소였다. 출장소 명칭 역시 부산 중심에 있다고 중부였다.

부산항과 영도가 내려다 보이는 용두산 공원에서는 해마다 5월이면 조선통신사 한일문화교류축제가 열린다(사진은 지난해 열린 축제 모습).

한국 최초 개항지 … 부산서 가장 먼저 발전

중구가 중심이 된 데는 부산항 역할이 컸다. 큰 정도가 아니라 절대적이었다. 대원군 쇄국정책이 풀리고 나서 한국에서 가장 먼저 개항한 곳이 부산이었고 중구였다. 1876년 외세에 의한 개항이었지만 근대도시, 국제무역 항구도시로 부산이 나아가는 발판이 마련됐다. 개항하자 전국 각지 상인들이 현재 중구 영주동 터널 위 산비탈에 정착했다. 부산이 왜인 말고 외지사람들로 북적인 건 그때가 처음이지 싶다. 부산 최초 근대학교가 들어선 곳도 영주동 산비탈 어름이었다. 1968년 부산 최초 시영아파트도 영주동에 들어섰다.

'최초'란 말이 연못에 돌멩이 던지듯 툭툭 나온다. 그만큼 중구에는 최초로 들어선 것이 많다. 어떤 건 한국 최초고 어떤 건 부산 최초다. 영도다리는 한국 최초 들어 올리는 다리고 봉래초등학교는 부산 최초의 근대학교다. 부산 최초 터널이며 첫 유치원이며 백화점이며 우체국, 도서관, 데파트, 지하도 등등도 모두 중구에 처음 들어섰다.  

부산항이 열리자 중구는 발전에 발전을 거듭했다. 1889년 11월 현 대청로에서 구 미화당백화점까지 도로가 놓였다. 당시는 송현산이라 불리던 용두산공원을 가운데 두고 근대적 도시형태 시가지가 지도에 나타났다. 1908년 4월에는 경부선 기점이 초량역에서 부산역으로 옮겨지면서 부산항과 연계됐다. 오늘날 부산역은 동구에 있지만 당시는 중구에 있었다. 역과 항구가 이어지면서 중구는 한국 최대 물류기지로 발돋움했다.

한국 최대 수산시장 자갈치

2015년 현재 부산항은 한국을 대표하는 항만이다. 세계 150여 나라와 교류하며 연간 10만여척 선박이 기항한다. 개항 139주년을 맞는 올해는 개항 이후 처음으로 환적화물 1천만개 시대가 열릴 전망이다. 6m짜리 컨테이너 기준이다. 수출입화물 950만개를 합하면 부산항 올해 컨테이너 총 처리물량은 2천만개에 육박한다. 이는 부산항이 글로벌 항구로 부상했음을 뜻한다. 지난 2월26일 '개항 139주년 부산항 발전 기원제'를 열고 세계 속의 부산항이 되기를 부산시민 내남없이 기원했다.  

한국 최대 수산시장인 자갈치 시장은 사시사철 신선한 해산물을 사러 오는 관광객들이 줄을 잇는다.

'부산 중구는 한국에서 가장 활기가 있는 곳입니다.' 이따금 외지인에게 하는 말이다. 대개는 긴가민가하는 눈치다. 그렇지만 자갈치시장과 국제시장을 예로 들면 다들 '맞다, 맞다' 그런다. 자갈치는 애초 자갈이 깔린 갯가였다. 일제강점기 갯가를 매축해 택지를 조성하고 상가를 조성하면서 자갈치는 부산·경남 어패류 공급원으로 입지를 굳혔다. 그러다 광복과 6·25전쟁을 거치면서 시장이 들썩거렸고 부산이 들썩거렸다. 광복을 맞아 일본이니 동남아니 각지에서 돌아온 귀환동포들이 남포동 바닷가에 전을 펼쳤다. 6·25전쟁 피란동포들이 또 전을 펼치면서 한국에서 최고로 활기 넘치는 삶의 현장이 됐다. 한국의 자갈치가 됐다.

국제시장은 또 어떤가. 영화 '국제시장'이며 '꽃분이네'를 굳이 들먹이지 않더라도 국제시장은 중구를 국제적이게 하고 부산을 국제적이게 한다. 국제시장은 1945년 광복이 되자 일본인 소유 갖가지 전시통제 물자들이 부평동 공설시장 일대에 쏟아지면서 꼴을 갖추기 시작했다. 1950년 6·25전쟁 피란민들이 가세해 군용물자와 잡화들이 시장 주류를 이뤘다. 650여 업체 1천500개 가까운 점포가 1공구에서 6공구까지 나뉘어 있다.

남포동은 먹는 것, 입는 것 모두 풍성하다(사진은 남포동 먹자골목에서 길거리 음식을 먹고 있는 관광객 모습).

부산국제영화제 발상지… 국내 유일 헌책방골목

'중구는 문화의 도시이기도 합니다.' 외지인은 이번에도 긴가민가한 눈치다. 생기가 넘치는 도시라며 시장 두 곳을 들먹이더니 불쑥 문화도시라니. 시장과 문화의 연결고리가 석연찮다는 표정이다. 하지만 그 근거를 들면 다들 또 '맞다, 맞다' 그런다. 문화도시 근거는 둘. 하나는 부산국제영화제 발상지 중구 남포동, 다른 하나는 한국 유일한 헌책방골목인 보수동책방골목이다. 영화와 책은 문화 예술이 똘똘 뭉친 수정체라서 어느 외지인도 중구가 문화의 도시라는 언급에 토를 달지 못한다.

국내 유일의 헌책방 골목인 보수동 책방골목은 6·25전쟁 이후 피란민들이 생계를 위해 책을 내다 팔면서 형성됐다. 매년 9~10월 보수동 책방골목 문화행사가 열린다.

자갈치시장에서 도로를 건너면 남포동. 남포동은 먹는 것, 입는 것, 보이는 것 모두가 이름값을 한다. 점포는 점포대로 노점은 노점대로 붐빈다. 평일 저녁이나 휴일이면 모르는 사람끼리도 어깨를 붙이고 다닐 만큼 인산인해다. 주로 젊은이들이다. 극장 매표소 줄은 길게길게 이어진다. 남포동은 부산국제영화제(BIFF) 발상지다. 극장가 BIFF광장은 내로라하는 영화인들을 핸드 프린팅 동판으로 기억한다. 남포동은 부산 최초의 극장 행좌(幸座)와 송정좌(松井座)가 있던 곳. 1924년 우리나라 최초의 영화제작사 '조선키네마주식회사'도 이 근처에 있었다. 한국 영화계를 빛낸 춘사 나운규 영화며 부산 최초의 영화 '해의 비곡(海의 悲曲)'을 거기서 만들었다.

남포동은 부산국제영화제(BIFF) 발상지다. 중구 BIFF광장에는 내로라하는 영화인들의 핸드 프린팅이 바닥을 장식하고 있다.

남포동 광복로에서는 매년 12월 크리스마스트리 문화축제가 열린다.

'사람이 만든 책보다 책이 만든 사람이 더 많다.' 보수동책방골목 입구 홍보문구다. 보수동의 헌책방 역사는 1950년 6·25전쟁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이전에도 땅바닥에 보자기 펴고 헌책을 파는 장면을 봤다고 회고하는 팔십대 노년층이 더러 있다. 본격적으로 헌책 난장이 선 것은 6·25전쟁 피란민이 보따리를 풀면서다. 피란 꾸러미 귀한 책들이 생계를 위해 시장에 나왔고 입소문이 퍼지면서 팔려는 사람, 사려는 사람으로 시장은 나날이 커져 오늘에 이른다. 골목을 걸으면 책방마다 한가득 진열해 둔 책에서 나는 향내가 진동한다. 책 향내를 맡으며 책 제목을 훑으며 골목 이 쪽 끝에서 저 쪽 끝까지 걸어가노라면 책이 사람보다 많은지 사람이 책보다 많은지 헷갈리기 일쑤다.

40계단은 6·25전쟁 피란민들 애환이 서린 계단이다. 40계단 문화관광테마거리는 옛 사진과 당시 생활을 형상화한 조형물과 간이의자 등을 갖췄다.

40계단·민주공원 … 부산역사 품은 명소 곳곳에

책방골목 주위로도 명소가 숱하다. 부산가톨릭센터가 있고 부산근대역사관이 있고 용두산공원이 있다. 가톨릭센터는 1980∼90년대 부산 민주화운동 성지. 가톨릭센터가 거기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든든했다. 부산근대역사관은 그 자체가 역사다. 일제강점기 동양척식 부산지점, 광복 이후 미 문화원을 거쳐 2000년 역사관으로 단장했다. 건물은 옛 건물 그대로다. 용두산공원은 부산 최초 시민공원. 용두산 터줏대감은 꽃시계와 119m 부산타워, 비둘기다. 이승만 대통령이 재임할 때는 그의 호를 따 우남공원이라 불렀다. 이순신 장군 동상 동판 글씨가 이승만 친필이다.

문화 하면 내세울 게 또 있다. 40계단 문화관광테마거리와 40계단 문화관이다. 40계단은 6·25전쟁 피란민들 애환이 서린 계단. 계단을 오르내리며 품을 팔았고 계단에 앉아 영도다리를 바라보며 실향민 향수를 달랬다. 테마거리는 옛 사진과 당시의 군상을 형상화한 조형물, 간이의자 등을 갖췄다. 문화관은 2003년 2월 개관한 복합 역사문화공간이다. 동광동 주민자치센터 5층과 6층에 각각 상설전시관과 특별전시관을 운영한다. 하루 벌어 하루 살던, 그러면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던 삶의 흔적들이 옷깃을 여미게 한다.

민주공원도 숙연한 마음으로 찾아야 할 곳이다. 일제강점기 항일운동과 4·19민주혁명, 부산민주항쟁, 그리고 6월 항쟁으로 이어진 부산시민의 숭고한 정신을 기린다. 부산민주항쟁 20주년 기념일인 1999년 10월 16일 개관했다. 부산시민 민주수호 의지를 다잡도록 전시회, 강연회, 토론회, 문화예술 공연, 영화상영 등 시민친화적 행사를 자주자주 벌인다. 부산사람은 역사의 격변기마다 맨 앞에 섰다. 낙동강 강물처럼, 부산바다 바닷물처럼 평소에는 물렁한 것처럼 보여도 국가가 위기에 처하면 금정산 고당봉처럼 뾰족하게 대들었던 게 부산사람이고 부산정신이다. 부산정신을 한 군데 모신 곳이 민주공원이다.

4월부터 12월까지 다채로운 축제 이어져

활기가 넘치는 도시답게 중구는 축제의 도시다. 굵직굵직한 축제가 여럿이다. 4월과 5월 광복동 패션아트 페스티벌과 조선통신사 한일문화교류축제, 9월 보수동 책방골목축제와 40계단 문화축제, 10월 부산국제영화제와 자갈치축제, 12월 부산항 빛축제, 크리스마스트리문화축제 등이다. 축제를 통해 중구는 안과 밖이 경계를 허물고 하나가 된다. 중구 바깥, 가까이는 부산에서 찾아오고 조금 멀리는 한국 곳곳에서 찾아오고 더 멀리는 외국에서 찾아온다. 축제를 통해 중구는 부산의 중구에서 한국의 중구가 되고 세계의 중구가 된다. 축제 때만 그러랴. 축제가 아닌 때에도 사시사철 사람이 붐비는 중구는 사시사철 한국의 중구고 세계의 중구다.    

중구는 신생의 도시다. 바다를 매립해 삶의 터전을 일구었던 백 년 전에도 그랬고 원도심 공동화 현상을 겪었다가 다시 파릇한 기운을 내뿜는 현재도 그렇다. 밤이 없는 불야성 부평동 야시장에 가 보라. 힘차게 솟는 해를 정면으로 맞받는 산복도로 산동네에 가 보라. 중구에서 내뿜는 신생의 기운을 흠뻑 들이키면 누구라도 기운이 넘친다. 누구라도 파릇해 보인다. 사람 사는 곳 어디든 다르랴만 우리 사는 부산은 무엇이 달라도 다르다. 그 중심에 중구가 있다.

작성자
동길산 시인
작성일자
2015-04-02
자료출처
부산이라좋다
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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