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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내믹 부산 기획연재

[쿨부산 스토리텔링 공모전 가작] 오륙도

내용

아버지의 죽음은 지독한 냄새와 함께 찾아왔다. 처음에 폐에서 시작된 암세포가 온 몸으로 퍼져 결국 대장까지 전이되었다. 죽음의 순간, 몸에 있는 배설물이 한꺼번에 쏟아졌고 그렇게 아버지는 눈을 감았다.

그 후,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문뜩 떠오를 때마다 그 냄새가 함께 느껴졌던 것은 그만큼 아버지와 함께 했던 기억이 고통스러웠고, 또 싫었기 때문이었는지 모른다. 어머니의 죽음을 감당할 수 없었던 아버지는 삶의 방향을 잃어버렸고, 그렇게 살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삼년 만에 암으로 시한부 판정을 받았다. 그리고 다시 일 년의 투병 생활 끝에 그렇게 갔다. 자식들에게는 가난과 힘든 기억만을 남긴 채. 그리고 내 십대의 마지막 순간도 그렇게 지나갔다.

어떻게든 대학에는 가야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일을 하면서 공부를 했고, 조금 늦었지만 대학에 들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대학 생활은 낭만과는 거리가 멀었다. 당장 생존이 급했다. 수업을 마치면 바로 아르바이트를 가야 하는 일상의 반복이었다.

삶에 조금의 안정이 찾아온 것은 대학 졸업 후 안정적인 직장을 갖게 되면서였다. 그 때 결혼을 했고, 이년 후 아들이 태어났다. 내가 아버지가 된 순간이었다.

올해 여섯 살이 된 아들은 자연에서 노는 것을 무척 즐거워했다. 산에 가면 여러 종류의 나무들과 동물들에 관심이 많았고, 풀밭에서는 곤충을 쫓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특히 갯벌을 다녀온 뒤로는 바다에 호기심이 부쩍 많아졌다. 그래서인지 아들은 바다에서 배를 한 번 타보고 싶다고 했다. 처음으로 배를 직접 타고, 넓은 바다에 나가보고 싶어 했다. 아들의 말을 듣자마자 바로 계획을 잡았다. 처제가 결혼해서 부산에 살고 있는데, 여름에 휴가를 내서 부산에 가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부산에서 유람선을 타고 오륙도에 가 보기로 했다. 오륙도는 육지에서 가까워서 아이와 함께 배를 타고 다녀오기 적당하다고 처제가 말했다.

부산에 도착한 다음 날에 오륙도 선착장으로 향했다. 아내는 처제와 있게 하고, 아들만 데리고 갔다. 배를 처음 타게 되는 아들의 특별한 경험을 아버지와 아들 간에 공유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차에서 내려 바닷가에 다가가자 넓은 바다가 눈앞에 펼쳐졌다. 너무나 맑은 하늘 위로 뭉게구름이 솟아오르고 있었다. 아들은 신이 나서 저만치 뛰어 가고 있었다. 푸른 바다 위에 저만치 오륙도가 보였다.

그 순간이었다.

처음에는 기시감을 느낀 것인가 싶었다. 분명 이 곳에 처음 와봤다고 생각했는데, 왠지 모르게 풍경이 익숙했다. 그런데 단순한 느낌이 아니었다. 언젠가 와봤었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배에 올랐고, 배가 바다로 출항했다. 아들과 함께 바다와 섬을 보면서도, 한편으로는 기억을 더듬고 있었다. 배가 섬 옆으로 돌면서 갈매기들이 배 위로 날아오기 시작했다. 그러자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아이들이 갈매기들에게 과자를 주기 시작했다. 과자를 들고 팔을 길게 뻗고 있으면, 갈매기들이 날아와 과자를 낚아챘다. 아들은 그 광경을 보면서 손뼉까지 치며 즐거워했다.

그 때였다. 오륙도에서의 기억이 떠오른 것은.

그것은 기시감이 아닌, 초등학교 때의 분명한 경험이었다. 그것도 그렇게도 생각하지 싫었던 아버지와 관련된 기억이었다.

초등학교 5학년 여름 방학, 아버지는 어머니는 집에 있게 하고, 아들인 나만 데리고 여행을 떠나셨다. 그 여행의 첫 번째 방문지가 바로 부산이었다. 부산을 시작으로 남해안을 돌고, 목포를 거쳐 부여와 공주를 거쳐 집에 도착했던 2주 남짓한 여행이었다. 부산에서, 오륙도에서 나는 배를 처음 탔다. 그 때도 더할 나위 없이 하늘이 푸르렀다. 배를 타고 오륙도를 돌면서 아버지는 나에게 왜 섬 이름이 오륙도인지를 설명해 주셨다.

 “오륙도는 썰물일 때는 다섯 개의 섬으로 보이고, 밀물일 때는 여섯 개의 섬으로 보여서 오륙도인거다.”

아버지는 나에게 좋은 추억을 만들어 주려고 했으며, 여행을 통해 부자간의 친밀한 기억을 함께하고 싶어 했다. 그리고 나를 사랑했다.

 “오륙도는 방패선, 솔섬, 수리섬, 송곡섬, 굴섬, 등대섬, 이렇게 6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런데 밀물 때는 방패섬과 솔섬 이렇게 두 개의 섬으로 보이는 것이, 썰물이 되면 물이 빠져서 하나의 섬으로 합쳐 보이게 됩니다. 이것을 우삭도라 부르지요. 밀물과 썰물에 따라 섬이 다섯 또는 여섯 개로 보여서 오륙도라 하는 것입니다.”

배의 선장님은 마이크로 오륙도에 대해 설명하느라 한창이었다. 옆에 있는 아들을 쳐다봤다. 아들은 섬을 바라보며, 그 설명에 집중하고 있는 듯 보였다. 눈앞에 있는 오륙도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아버지를 생각했다.

아버지에 대하여 기억조차 싫었던 것은 인생의 시련 앞에서 무너져 내린 한 남자의 모습이었기 때문이었다. 또한 어머니를 잃은 나의 슬픔을 생각하지 않고, 아내 잃은 자신의 절망만을 강요했던 아버지에 대한 미움 때문이었다. 그런데 오륙도에서 아버지와 이렇게 간직하고 싶은 추억이 있었던 것이다.

문득, 아버지는 혼자서 참 힘들었을 것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즈음에 아버지는 직장도 잃었다. 아내를 잃고, 경제력도 상실한 한 남자의 절망과 무기력함을, 이제 아버지가 되어 사회생활을 하고 있는 지금에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나조차 삶의 무게가 힘겨워 질 때면, 사랑하는 가족이 오히려 부담으로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런데 그 당시 아버지는 어떠셨을까. 내가 혼자 세상을 살아왔듯이, 아버지도 혼자 세상을 살아갔을 것이다. 내가 그동안 힘들었듯이, 아버지도 힘들었을 것이다. 내가 세상사는 것이 무서웠듯이, 아버지도 세상살이가 무섭지 않았을까. 그 때 내가 느꼈던 아버지의 차가움은, 아버지의 무심함은, 바로 아버지의 삶의 무게가 아니었을까.

어느덧 배는 오륙도를 돌고 선착장을 향하고 있었다. 점차 멀어져 가는 오륙도를 바라보며 아버지는 오륙도와 같은 존재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아버지란 존재는 거대한 산과 같기를 바란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인생을 향해 나아갈 때, 커다란 디딤돌이 되어 주는 존재. 인생의 풍파 속에서도 안전한 울타리가 되어 주는 존재. 많은 풍성한 것들을 줄 수 있는 큰 산과 같은 존재 말이다. 하지만 나의 아버지는 오륙도와 같은 존재였다. 작은 돌섬에 불과한 섬들. 환경이 척박해서 사람이 살 수 없는 섬. 그리고 밀물과 썰물에 따라 다섯 개의 섬, 여섯 개의 섬으로 모습이 바뀌듯, 아버지 또한 현실을 극복하지 못하고 상황에 휘둘리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런데 지나온 삶을 돌이켜 보면, 아버지의 영향력 크기보다, 아버지의 능력보다, 아버지의 강함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아버지라는 '존재', 그 자체였다. 작은 돌섬에 불과한 오륙도가 그렇게 존재하는 만으로도 의미가 있듯, 아버지라는 존재 그 자체만으로도 나에게는 살아가는 힘이 되었을 것이다.  

안타까웠다. 아버지는 그 때 왜 나에게 솔직하게 힘들다고 말하지 않았을까. 자신의 약함을 그대로 드러내지 않았을까. 그랬다면, 그럴 수 있었다면 아무리 아버지가 작은 돌섬에 불과하더라도, 그와 함께 했던 추억을 돌이켜 보며 인생의 힘든 싸움을 조금은 덜 할 수 있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삶 속에서 아버지를 기억했을 것이다.

그래도 이제는 아버지라는 한 남자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그에게 화해의 악수를 청할 수 있을 것 같다. 그에게 얼마나 힘들었냐고, 참 수고했다고 말해 줄 수 있을 것 같다.

배에서 내려 선착장에 올랐다. 아들은 신이 나서 다음에 또 오자고 한다. 바다에서 섬을 바라보는 것이 너무 좋았고, 갈매기들이 주위에 날아다는 모습이 재미있었다고 한다. 그러더니 무얼 발견했는지, 뛰어가기 시작했다. 아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아들에게 아버지와 함께 했던 추억을 만들어 주겠다는 결심을 했다. 그리고 늘 내 모습 그대로 솔직하게 다가가기로 결심했다. 아들에게 어떤 아버지, 어떤 존재가 될지는 모르겠다. 끝까지 노력하겠지만, 자신할 수 없는 것이 바로 인생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아들이 아버지가 자신과 동행했던 좋은 기억을 간직하도록 하는 것은 놓치지 않을 것이다.

시원한 바람이 가슴을 치고 갔다. 그리고 뒤를 돌아보았다.

오륙도는 그렇게 존재하고 있었다.

작성자
이원석(경기 고양시)
작성일자
2012-10-31
자료출처
부산이라좋다
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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