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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내믹 부산 기획연재

[쿨부산 스토리텔링 공모전 가작] 아버지의 품같은 이제는 나의 고향, 부산

내용

그 사람의 집은 부산이라고 했다. 부산이 집이라는 말에 내 마음이 움직였던 건지도 모르겠다고, 지금 와서 생각해 본다. 대학 친구의 소개로 만난 그는 내가 알던 부산사람의 이미지와는 달랐다. 다정스런 말투와 목소리, 친절하고 배려있는 행동. 하지만 그런 모습을 보면 볼수록 내 마음이 삐뚤어지게 표현됐다. 부산 사람은 절대 안된다는 어머니의 말, 어린 마음에 깊숙이 박혔던 상처가 그를 밀어내야 한다고 나를 이끌었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우연히 기차에서 아버지를 만났다고 했다. 부산에 놀러갔다 돌아가는 길에 어머니에게 다정스레 말을 걸어왔던 아버지. 그렇게 두 사람은 서울까지 가는 동안 대화를 나누면서 호감을 키웠고, 곧 연인이 되었다 했다. 말끔한 차림새와 부산사람같지 않았던 다정한 말투와 친절한 행동이 마음을 사로잡았었노라고 어머니는 말했었다. 그렇게 만나기를 3개월만에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청혼을 했다고 한다. 부산에서 알아주는 부잣집 아들이었다는 아버지. 하지만 공무원 딸로 엄하고 귀하게 컸던 어머니의 이른 결혼을 외할아버지는 달가워 하지 않았다고 했다. 하지만 이미 둘만의 약혼여행으로 뱃속에 내가 자라고 있었다. 외할아버지의 마지못한 승낙으로 결혼이 결정됐다. 그리고 결혼생활을 한지 3개월만에 아버지는 어머니를 친정으로 가 있게 했다. 사업이 어렵다는 이유로 예물도 모두 가져간 뒤였다. 그리고 사업이 망했다는 소식과 함께 아버지는 사라졌다. 어머니는 혼인신고도 채 못한 상황이었다. 그렇게 나는 아버지 없는 아이로 자라야 했다.

내가 아버지의 존재를 알게 된 것은 초등학교에 들어가서였다. 그 전까지는 아버지가 외국에 유학을 가 있다고만 알고 있었다. 하지만 어렴풋이 그게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던 것 같다. 어느 날인가 어머니앞에 앉아 당돌하게 이렇게 물었던 기억이 선명하다.

혹시 이혼하셨어요?

차라리 알고 나니 속이 후련했지만, 그때부터 막연하게 부산에 대한 애증이 시작되었던 것 같다. 아버지의 고향이라는 부산, 나와 어머니를 버린 그 사람의 고향 부산.

믿었던 딸의 결혼 실패는 외할아버지에게 엄청난 충격으로 다가왔었던 것 같다. 늘 속상하고 원망스런 눈빛으로 보시던 외할아버지 때문에 어머니와 나의 외갓집 생활은 마음이 편안하지 않았다. 명절 때마다 이방인 취급받는 것도 마음을 늘 서늘하게 만들었다. 참다 못해 언젠가 부산에 삼촌이 살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던 기억이 나서 처음으로 삼촌에게 편지를 썼다. 나중에 갚아드릴테니 작은 방 하나만 마련할 돈을 좀 빌려주실 수 있겠냐고. 돌아온 대답은 미안하다는 것 뿐이었다. 부산은 죽도록 미운 곳이 되었다.

그렇게 내게는 미움과 원망으로 가득했던 그 곳 부산, 그곳이 그의 집이라는 얘기를 듣고 묘하게 반가움을 느꼈다. 아마도 깊은 애증의 저 밑바닥에는 막연한 그리움이 언제고 박차고 나올 준비를 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절대로 결혼같은 건 하지 않겠다고 맹세했었던 나는, 밀어내고 도망치려했지만 결국 그 사람과 사랑에 빠지고 말았다. 단단하게 얼음처럼 버텨오던 나는 그 사람을 보며 한번도 속해보지 못했던 완전하고 완벽한 가정을 이루고 싶다는 소망을 품게 됐다. 대학을 졸업한지 2년도 채 되지 않은 때였다.

결혼을 하겠다는 딸의 말, 그것도 어머니처럼 부산에서 사업을 한다는 사람과 결혼을 하겠다는 말에 어머니는 큰 충격을 받으셨다.

혹시 당신처럼 딸이 되지는 않을까, 자식이 어미의 길을 그대로 닮아간다는 옛 어른들의 말씀이 현실이 되는 것은 아닐까. 어머니는 몹시도 걱정하고 괴로워하셨던 것 같다.  그 마음을 모르는 내가 아니었지만, 그저 다를 것이라고, 어머니와는 다른 삶을 살겠다는 말씀으로 설득할 수 밖에 없었다.

결혼을 결정하고 양가 상견례를 위해 부산을 찾아야 했을 때, 어머니도 나도 긴장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아버지와의 일로 한 번도 찾지 않았다는 부산, 나 역시 여행삼아도 한 번도 찾지 않았던 부산이었다. 어떤 느낌일지 만감이 교차했다. 부산역에 내리자, 낯설지만 따뜻한 풍경을 마주했다. 내 상상속의 부산은 거칠고, 무책임하고, 우울감이 가득한 도시였는데 내 눈과 마주한 부산은 밝고 생기 넘치고 정감있는 모습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사람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은 남아있었다.

해운대로 자리를 옮겨 달맞이에 자리한 음식점에서 상견례를 시작했다.

얼음처럼 차가운 나를 무뚝뚝하지만 정감있게 맞아주시던 어머님과 아버님.

바다를 보면서 도란도란 얘기를 이어가는 동안, 오랫동안 움켜쥐고 풀지 않았던 빗장이 조금씩 스스르 풀리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잠시 후 어머님들이 잠시 자리를 비우고 아버님과 마주앉게 된 순간, 어색해서 어쩔 줄 모르는 나를 아버님이 부르셨다. 무슨 일인지 떨리는 마음으로 다가간 내게 아버님이 보여준 것은 군밤이었다.

니가 군밤을 좋아한다면서? 그래 내가 집에서 이걸 구워왔다 아이가. 이따 가다 무라.

그때 그 순간의 느낌을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지금도 잘 모르겠다.

눈물이 날것 같기도 했고, 독에 감염돼 있다가 해독제를 마신 것처럼 치유되는 느낌인 것 같기도 했다. 무뚝뚝하지만 그 따뜻한 말씀이 내게는 그렇게 갈구하고 목말라했던 아버지의 사랑으로 다가왔었던 것 같다.

상견례를 마치고 그 사람과 나는 달맞이 길을 걸어 해월정에 올랐다. 때마침 보름이었는지 환하고 둥그런 달을 보며 남편이 말을 했다.

우리 아버지는 부산 해운대 토박인데, 아버지가 그러는데 이 달맞이길이 있는 데가 와우산이라데. 근데 여기에 연인들의 소원을 들어주는 바위가 있다고 하더라. 바위는 몬봤지만 속으로 내가 뭐라 소원을 빌었는지 아나? 니 아버지 찾아달라고 소원 빌었다.

이토록 이 사람을 따뜻한 사람으로 키워준 부산토박이 부모님들과 부산이 처음으로 눈물나게 고마웠다.

  

그렇게 미움과 애증으로 눈길조차 주지 않았던 그 곳 부산에서 나는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가족들과 함께 7년을 살아오고 있다.

내 생에 처음으로 가족이라는 따뜻한 울타리를 경험하게 해준 부산. 친아버지로부터 버림받은 아픈 기억을 준 부산이지만, 또 다른 아버지의 따뜻한 사랑을 경험하게 해준 부산.

작성자
이주원(부산시 좌동)
작성일자
2012-10-31
자료출처
부산이라좋다
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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