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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내믹 부산 제부산이야기 10월호 통권 132호 호 문화관광

오래된 공간이 가진 매력 그 속으로 빠져보자!

부산 나들이 - 오래된 공간의 변신

내용

근대의 시간을 걸어본다. 역사의 조각들을 퍼즐처럼 맞추는 문화 공간, 오랜 세월이 반짝 반짝 닦아준 건물들이 가을을 품고 있다. 부산역 맞은편, 도시철도 1호선 중앙역 7번 출구로 나와 오른쪽으로 든 길 모서리에 있는 빨간 벽돌집 4층 건물이 1927년에 건립된 ‘옛 백제병원’이다.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세련미를 가진 서양식 신식 건물로 부산 최초의 근대식 종합병원인 ‘백제병원’이 들어섰다. 2014년 등록문화재 제647호로 지정된 이 건물은 철근을 사용하지 않고 벽돌과 나무로만 지었다. 건물은 순탄하지 않았던 격동기의 역사처럼 종합병원에서 중국식 요정 ‘봉래각’, 일본군 장교 숙소, 치안사령부, 중화민국 영사관, 예식장, 탁구장 등 다양한 용도로 쓰였다가 지금은 1층에 커피전문점이 생겼다.

 

100년 역사 그대로 간직한 ‘옛 백제병원’

둥근 아치 모양으로 멋을 낸 건물 입구. 100년에 가까운 시간의 향기가 뿜어져 나온다. 문을 열자 벽돌 골조가 그대로 드러난다. 입구의 밝음과 내부의 어둠이 극명한 차이를 보여 과거로 돌아가는 듯한 묘한 느낌이 든다. 그러나 차차 눈이 편안해지고 내부 풍경에 익숙해지면 숙성된 빛이 추억의 시간 속으로 우리를 끌고 간다. 햇볕 잘 드는 창가에 녹색 식물들이 늘어서 있다. 벽돌을 부수고 만든 울퉁불퉁한 연결 출입구, 벗기다 만 것 같은 페인트, 정형화되지 않은 철제 창과 높다란 천장, 외부로 늘어뜨린 굵은 전선 끝에 매달린 콘센트, 작은 계단 위에 문이 없는 어두운 방의 입구, 희미한 빛이 길게 늘어선 복도의 고적함이 중세의 수도원처럼 고풍스럽다. 철제 탁자 위의 커피잔과 키 큰 아치형 창에서 쏟아지는 부드러운 빛이 고전과 현대를 뒤섞어 신비스러운 분위기를 만든다. 건물을 지은 땅이 반듯한 사각형이 아니라 마름모꼴인데다 2개동을 하나로 합친 형태라서 내부가 병원건물 같지 않다. 창문의 위치뿐 아니라 사각형, 마름모꼴 형태의 다양한 내실 모양의 변화가 다채롭다. 어울릴 것 같지 않으면서도 조화롭고, 자유분방하면서도 질서가 있다.

 

역사의 상흔 그대로 남아, 시간을 거슬러 간 듯

1층 오른쪽 넓은 방은 지하도 아닌데 지하처럼 살짝 낮은 위치다. 위아래 내리닫이 창문을 달아 방의 격조를 높였고, 벽면은 타일로 돼있다. 이 방의 가장 큰 특징은 직사각형의 커다란 창을 통해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의 자유로운 모습을 방 안 깊숙이 끌어들인 점이다. 중국 요릿집 봉래각의 주방이 있었던 이 공간은 요즘 젊은이들의 창업지원 프로젝트로 활용되고 있다. 참신한 아이디어의 상품을 홍보할 수 있는 전시실로 빌려준다. ‘옛 백제병원’이 인기를 끄는 이유는 시간의 흔적을 뜯어고치지 않고, 그 상흔들을 현대적인 실내장식으로 활용했기 때문이다. 예술적 안목이 놀랍다. 아흔 살의 건물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광복과 전쟁 등 질곡의 굵은 주름이 새겨져 있다. 1972년 화재로 시커멓게 불 탄 골조를 보수하지 않고 독특한 분위기가 나도록 활용했다. 군데군데 싱그러운 발상전환이 톡톡 튄다. 또 타일바닥에 구멍을 뚫어 나무를 자라게 한 것도 1920년대의 시간을 불러온 듯한 극적인 효과를 준다. 내부 건물의 높은 천장은 그 당시 건축 방식을 엿볼 수 있는데, 마감처리를 하지 않고 건축 자재를 그대로 노출시켰다. 목조계단과 장식, 정교한 창문틀 등 목재로 마감된 건축의 미학이 시대를 뛰어넘는다. 이처럼 예술적 원형 그대로 살아있는 근대건조물은 흔치 않다. 고전에서 현대의 감각까지 선명하게 기록된 이곳이야말로 과거로의 시간여행 최적지다.

 

등록문화재 제647호인 옛 백제병원 건물은 순탄하지 않았던 격동기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지금은 1층에 커피전문점이 생겼다.

▲ 등록문화재 제647호인 옛 백제병원 건물은 순탄하지 않았던 격동기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지금은 1층에 커피전문점이 생겼다. 

 

영화·뮤직비디오 촬영 인기 … 일본식 가옥 ‘정란각’

최근 가수 아이유의 ‘밤편지’ 뮤직 비디오를 촬영해 젊은이들의 관심이 쏠린 ‘정란각’이 지난해 6월 ‘문화 공감 수정’으로 탈바꿈했다. 부산 사람들이 흔히 ‘고관입구’라고 부르는 동구 수정동에 있는 일본식 2층 기와지붕의 목조건물이 ‘정란각’이다. 도시철도 부산진역 1번 출구에서 직선거리 200m쯤에 계단식 정원으로 둘러싸인 ‘정란각’은 일제강점기에는 일본인 철도청장의 관사로 쓰였다. 광복이 되면서 종업원이 200명이나 넘는 대형 고급 요릿집으로 바뀌었다. 사진 애호가들의 출사지뿐 아니라 가수들의 뮤직비디오 촬영, ‘범죄와의 전쟁’ 등 영화 촬영지로도 인기를 끈 ‘정란각’은 얼마 전까지 1층은 찻집으로 2층은 게스트하우스로 개방했으나 일본식 주택의 난방문제로 겨울에 숙소로 쓰기 어려워 지금은 1, 2층 모두 카페로 쓰고 있다. ‘정란각’은 1943년 다미다미노루(玉田穰)라는 부호가 일본 무사 계급이 선호하는 ‘쇼인즈쿠리’라는 건축 양식으로 지었는데, 지금도 오랜 세월의 흔적까지 윤기 나게 닦여 그 정갈한 자태가 눈부시다. 맞배지붕이 높이 솟은 대문으로 들어서자, 마당에 듬성듬성 놓인 징검돌이 반겨준다. 석등과 건물 모서리의 화려한 장식이 눈에 띈다. 대문은 세 칸이며, 몸채 1동은 남쪽을 향해있다. 현관 오른쪽은 붉은 벽돌로 지어졌지만 나머지는 대부분 목조로 지어졌다. 고풍스런 정원등이 서있는 아담한 뜰을 지나 실내로 들어갔다. 툇마루(엔가와)와 장마루를 설치한 복도, 그리고 다다미방이 거의 원형 그대로 보존돼 있다. 마루에 유리창을 달아 비교적 밝은 편인 1층과 2층은 제각각 매력을 한껏 발산한다. 건축주는 목재와 기와, 유리 한 장까지도 모두 일본에서 자재를 가져와 지었다고 한다. 못을 쓰지 않고 지은 것이 특징이다. 나무로 만든 벽장이나 미닫이의 손잡이 등 내부 목재를 쓸 때 작은 홈 하나까지 사용하는 사람들을 생각한 마음이 엿보인다. 사람에 대한 지극한 사랑 없이는 완공될 수 없는 건축공법 같다. 

 

1·2층 모두 어르신들이 운영하는 실버카페로

먼저 차를 주문했다. 찻값은 모든 메뉴가 동일하게 4천원이다. 어르신들이 운영하는 실버카페다 보니 차를 마실 동안 인심 좋은 동네 어르신 집에 온 손님마냥 푸근하게 대접 받는 느낌이다. 이국적인 건축물뿐 아니라 특별한 대접을 받았다는 따뜻한 추억까지 챙겨갈 수 있는 특별한 공간이다. 1층 다다미방의 일부 온돌방과 주방은 개조됐지만 대부분은 원형 그대로를 유지하고 있다. 일본 주택에서만 볼 수 있는 1층과 2층 사이 반 2층에 문간방처럼 쉴 수 있는 특이한 공간이 눈길을 끈다. 2층 복도와 다다미방을 구경하며 만날 수 있는 창호 문양은 일본다운 정교함 그 자체다. 액자를 걸거나 도자기를 진열하는 ‘도코노마’를 비롯해 창살부터 외벽, 균형감 있는 화병까지 적재적소의 완벽함이다. 특히 작은방의 서랍장은 기모노를 넣었던 장으로 서랍장 손잡이에는 여자 손가락 세 개만 들어가는 홈이 파여 있다. 그리고 실내 화장실이 있었던 부근에 타일을 붙인 작은 개수대가 남아있다. 손만 씻을 수 있었던 공간이었음을 짐작케 한다. 창호 문에는 비밀스런 창이 달려있는데 밖에서는 볼 수 없지만 안에서는 밖을 볼 수 있도록 한 구조다. 또 신기했던 것은 창호지를 외부에서 붙였는데 이는 우리 전통 양식과는 반대다. 여러 개가 연결된 다다미방은 벽이 아니라 보통 문으로 구분 짓는데, 회의를 하거나 손님을 많이 초대했을 때는 문을 개방해 거대한 하나의 방으로 사용한다. 각각의 방이 확장돼 회의장이나 연회장으로도 사용해도 손색이 없다. 명절에는 휴무이니 잘 확인하고 방문하길 바란다.

 

동구 수정동에 있는 일본식 2층 목조건물 ‘정란각’이 지난해 6월 ‘문화 공감 수정’으로 탈바꿈했다.

▲ 동구 수정동에 있는 일본식 2층 목조건물 ‘정란각’이 지난해 6월 ‘문화 공감 수정’으로 탈바꿈했다.

 

어촌의 삶·풍경 품은 소박하지만 알찬 공간 

‘구덕포’는 ‘청사포’보다 작은 마을로 송정해수욕장과 붙어 있다. 해안선을 따라 동해 남부선이 통과했는데 지금은 폐선 철길로 남아 사랑을 듬뿍 받고 있다. 해안가 어촌 마을이 관광지로 변하며 하루가 다르게 고층건물이 들어서고 있다. 4년마다 풍어제를 지내던 풍속도 없어졌다. 미포방향의 송정해안을 쭉 따라 걷다보면 더 이상 길이 없다는 안내문을 만난다. 바로 그때, 동화책 속에 있을 법한 분홍색 지붕의 바닷가 외딴집 ‘구덕포상회’가 여행객을 반긴다. 작은 마당 가득 바다가 출렁이는 촌집. 이 집은 비린내 나는 어촌의 삶과 풍경들이 하나씩 사라지는 것을 붙잡고자 했던 간절한 마음이 살린 집이다. 할머니 한 분이 오래 살았던 집을 지금의 ‘구덕포상회’ 주인이 인수해 집 외관은 물론 내부 서까래까지 그대로 보존했다. 대문 앞에 적힌 주소는 ‘송정동 841번지’. 가게 안으로 들어가 보니 꽃·가방·의류·양초·장신구 같은 아기자기한 소품들을 팔고 있었다. 내부는 문방구·의상실·머슬랭관 등 여러 섹션으로 나뉘어져 있었고, 여행 기념품이 될 만한 아이디어 상품들이 즐비하다. 근대 건축 여행은 시간의 순환을 보여 준다. 100년, 또는 그 이상의 건축물을 지켜내는 일은 빨리 짓고 빨리 부수는 우를 범하지 않고, 나무가 1년에 단 1개의 나이테를 만드는 것처럼 느림의 미학으로 천천히 가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우리에게 소중한 자산으로 다시 돌아올 테니까. 그런 의미에서 이번 달은 흘러가버린 시간을 당당하게 활보해 보는 건 어떨까!

 

송정해안을 쭉 따라 걷다보면 분홍색 지붕의 바닷가 외딴집 ‘구덕포상회’가 여행객을 반긴다.

▲ 송정해안을 쭉 따라 걷다보면 분홍색 지붕의 바닷가 외딴집 ‘구덕포상회’가 여행객을 반긴다.

 

구덕포상회

▲구덕포상회.

 

구덕포상회는 사라지는 어촌의 삶과 풍경을 붙잡고자 오래된 어촌집을 인수해 만들었다. 가게 안에는 아기자기한 소품들을 팔고 있다.

▲ 구덕포상회는 사라지는 어촌의 삶과 풍경을 붙잡고자 오래된 어촌집을 인수해 만들었다. 가게 안에는 아기자기한 소품들을 팔고 있다. 

작성자
글/이영옥·사진/권성훈
작성일자
2017-09-25
자료출처
부산이라좋다
제호

부산이라좋다 제부산이야기 10월호 통권 132호 호

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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