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근대역사관
#3. 사람이야기 첫 번째: 금난새가 되살리는 아버지의 「8월 15일」
지난 7월 <별관 대가의 2세들> 이후 1년 만에 금난새 지휘자를 만났습니다.
2021년 부산에 개관한 금난새뮤직센터에서도 활동하고 계시는 금난새 지휘자를 만나
음악으로 표현된 아버지 금수현 선생님이 작곡하신 「8월 15일」에 대한 감상을 들어보았습니다.
그리고 음악과 함께하는 부산의 모습에 관한 이야기도 나누었습니다.
Q1. 안녕하세요, 선생님. 오늘 이렇게 귀한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현재 부산에 있는 금난새뮤직센터에서도 활발하게 활동하고 계시는데요, 뮤직센터는 어떤 곳이고 어떤 공연 프로그램들이 진행되는지 소개해주실 수 있을까요?
금난새뮤직센터는 실내악 공연을 하는 곳으로, 4년 전 부산에 기반을 둔 기업인 고려제강의 후원으로 만들어지게 되었습니다. 제 이름을 딴 뮤직센터가 생긴 것이 참 감사하고 기쁩니다. 부산의 문화계, 음악계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규모가 큰 오페라나 오케스트라에 비해 실내악은 아직까지 그렇게 유명하지 않아요. 실내악은 가족적인 분위기에서 50명, 100명 정도의 규모로 이루어지는 음악회인데, 이런 식의 음악회는 우리나라에서 잘 없었습니다. 음악계의 균형적인 발전을 위해서는 실내악도 중요하다고 봐요. 저는 그동안 실내악 공연을 해 온 경험을 통해 부산에 뿌리를 내리고 둥지를 만든다는 마음으로 임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190회 정도의 공연 해설을 했죠. 부산 시민들이 많이 좋아해 주셨습니다. 작년 10월부터는 제 아들인 금다다 대표가 저를 대신해 해설을 하기도 했는데, 저와는 또 다른 매력이 있어서 반응이 좋았어요. 7월에 있을 금난새 썸머 뮤직 페스티벌에서는 저와 아들이 나누어서 맡기로 했습니다.
Q2. 부산이라는 도시가 선생님께는 어떤 의미인가요? 한국 근현대사에서 부산이 갖는 특별함을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나이가 들수록 고향이 정말 중요하다고 느낍니다. 저의 고향이 부산이라는 것을 늘 생각해요. 자갈치 시장의 모습, 집에서 본 바다와 섬의 풍경, 할아버지께서 사시던 대저, 근처의 낙동강, 추운 날 건너가던 구포 다리, 구포 국수, 둑에서 오리를 잡던 삼촌들... 어린 시절 부산에서 자란 기억들이 아직도 저에게 남아 있습니다. 6.25 전쟁 때는 피난민들로 집이 와글와글했었던 기억도 납니다. 부산이 버텨내지 않았다면 우리나라가 없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제가 졸업했고, 교장직을 했던 서울예고도 6.25 전쟁 때 부산에서 천막을 친 피난 학교로 시작됐다고 하니까요.
Q3. 광복 80주년을 맞이해서 아버님이신 금수현 작곡가께서 작곡하신 「8월 15일」을 중심으로 선생님의 음악 세계에 대해 이야기 나눠보고자 합니다. 선생님께 아버님 금수현 선생님은 어떤 분으로 기억되시나요?
아버지께서는 일본에서 공부하고 돌아오신 후 교육자로서 일을 시작하셨습니다. 작곡뿐 아니라 음악 문화 전반에 대한 아이디어가 많은 분이셨어요. 오페라단도 만드셨고, 음악을 통해서 여러 가지 사회 활동을 하셨습니다. 그런 아버지의 영향을 제가 받은 것 같아요.
Q4. 「8월 15일」은 어떤 의미로 작곡된 곡인가요? 이 곡을 처음 들으셨을 때의 기억이나 느낌이 있으시다면요?
'새로운 발견'이라는 느낌입니다. 아버지께서 나라를 사랑하신 마음을 음악을 통해 표현하신 것 같습니다. 저도 이 곡을 오케스트라 버전으로 편곡을 해보고 싶어지네요. 성악가와 의논을 해볼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 음악을 반도네온으로 만들면 어떨까 하는 아이디어가 떠오르네요. 아버지가 남긴 이 곡을, 80년 후에 아들이 현대화된 음악으로 편곡해서 표현한다는 것이 남다른 의미가 될 것 같습니다.
Q5. 선생님만의 음악 철학이 있으시다면 무엇인가요? 특별히 중요하게 여기시는 가치가 있다면요?
'Never Say No'라는 말을 종종 합니다. 언제나 좋은 홀에서 공연하는 것만이 다는 아니라는 뜻이 담겨 있는 말이죠. 요청하는 측이 큰 곳이든 작은 곳이든, 좋은 일을 위해서 하는 것이면 예산이 거의 없어도 하자는 마음입니다. 15년 전쯤, 경기필하모니 오케스트라를 지휘할 때, 소년원 아이들을 위해서 공연과 해설을 부탁받았습니다. 그 아이들이 이런 음악을 들을 기회가 없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 제안을 수락했습니다. 10여 년 전에 오케스트라를 데리고 울릉도에 간 적도 있었습니다. 울릉도에 사는 아이가 오케스트라 실연을 보는 건 힘든 일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사회에 음악이 필요한 곳이 있다면, 그곳에 가서 공연했습니다. 클래식을 대중화하기 위해 꾸준히 노력해 왔습니다.
Q6. 클래식 음악이 대중과 더 가까워지기 위해서는 어떤 방법이 필요하다고 보시나요? 선생님만의 소통 방식이 있으시다면요?
주목받지 못하고, 그늘에 있는 사람이나 악기를 찾아 빛을 보게 해주는 게 저의 임무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곳에 있든 좋은 원석을 알아봐 주는 게 제가 할 일인 거죠. 우리나라의 문화가 발전하려면 균형 있는 감각이 필요합니다. 알려지지 않은 좋은 연주자들이 너무나 많아요. 제도권 안에서의 예술이 아니라 더 친근하고 청중과 함께 호흡하는 예술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금난새뮤직센터뿐만 아니라 부산근현대역사관 같은 곳에도 음악이 있어야 한다는 거죠.
Q7. 선생님께서 음악을 통해 추구하고 계신 궁극적인 목표나 가치는 무엇인가요?
결국, 음악이 사회 속에 더 들어가야 하고, 사회와 호흡해야 한다고 봅니다. 더 다양한 음악이 우리 삶 속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음악은 삶을 풍요롭게 하기 때문입니다.
Q8. 앞으로 음악을 하게 될 젊은 세대들이나 후배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으시다면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50년 전, 30년 전의 우리나라와 지금의 우리나라의 모습은 다릅니다. 세계가 우리나라를 주목하고 있어요. 얼마 전에 유튜브로 부산역 안에서 젊은이들이 연주하는 영상을 봤습니다. 그런 도전이 많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문화회관이나 콘서트홀에서 연주하는 것뿐만 아니라 일상 속에 있는 공간에서도 얼마든지 연주할 수 있죠. 음악에 관해 열린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음악을 함에 있어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즐거움입니다.
Q9. 앞으로 계획하고 계신 프로젝트나 기대하고 계신 일이 있으시다면 살짝 소개해주세요.
7월에 금난새뮤직센터에서 여름 실내악 페스티벌이 있을 예정입니다. 저도 해설에 참여하기로 했어요. 많은 분들이 좋아해주시는 행사이니만큼, 잘 준비해보려고 합니다.
80년이라는 긴 세월을 건너온 아버지의 「8월 15일」이 이제 아들의 손끝에서 새로운 선율로 다시 태어나려 합니다.
이는 단순한 편곡을 넘어 부자(父子) 간의 깊은 음악적 대화이자, 역사를 이어가는 아름다운 방식입니다.
'Never Say No'라는 따뜻한 철학으로 콘서트홀을 넘나들며 사람들의 마음 곁에 다가선 금난새 지휘자.
그의 음악은 화려한 무대보다 일상의 작은 공간에서, 더 깊은 울림으로 우리 곁에 머물렀습니다.
고향 부산에서 펼치는 그의 음악 여정은 진정한 예술이 무엇인지를 조용히 속삭여줍니다.
광복 80주년을 맞는 오늘, 우리는 음악이 단순한 소리가 아니라 마음과 마음을 잇는 다리이며,
세대와 세대를 이어주는 끈임을 새삼 깨달으며 인터뷰를 마무리합니다.
마지막으로 바쁘신 중에도 귀한 시간을 내어 깊이 있는 이야기를 들려주신 금난새 선생님께 깊은 감사를 드리며,
인터뷰 진행에 도움을 주시고 소중한 자료를 제공해주신 금난새뮤직센터 금다다 대표님께도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