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바로가기

전체기사보기

“꽃신 신고, ‘꽃길인생’ 걸으세요”

한 땀 한 땀 장인의 손길로 전통신 명맥 이어
60여 년 오롯이 ‘전통신’ 만들기 한길
우리 것 지키는 자부심 하나로 버텨
4대째 이어지는 한결같은 전통신 사랑

내용

한국의 전통신을 흔히들 ‘고무신’으로 알고 있는데, 우리 전통신은 짚·마·나무·가죽·비단 등을 재료로 만들었다. 높은 신분은 비단이나 가죽으로 만든 신발을 일반 백성은 나막신이나 짚신 등을 주로 신었다.

△전통신을 만들고 있는 안해표 화혜장.   - 출처 및 제공 : 권성훈



곡선을 그리며 날 듯이 날렵하게 올라간 코, 형형색색 화려한 자수…, 우리 고운 전통신 ‘꽃신’이다. 한 땀 한 땀 장인의 손길을 거쳐 완성한 꽃신은 어여쁘고 아름답다. 꽃신에는 ‘인생 내내 꽃길 밟고 살아가라’는 축복의 의미가 담겨 있다.


한국의 전통신을 흔히들 ‘고무신’으로 알고 있는데, 우리 전통신은 짚·마·나무·가죽·비단 등을 재료로 만들었다. 높은 신분은 비단이나 가죽으로 만든 신발을, 일반 백성은 나막신이나 짚신 등을 주로 신었다. ‘꽃신’은 한복 입은 여성의 아름다운 자태를 더욱 돋보이게 했고, 발목까지 올라오는 ‘가죽신’은 사대부의 권위를 과시했다.


안해표 화혜장03-권성훈

△전통신을 만드는 부산시 무형문화재 제17호 화혜장(靴鞋匠) 안해표(70). 

  그는 열두세 살 무렵부터 아버지 어깨너머로 화혜 기술을 배워 60여 년 가까이 혼을 다해 가업과 전통을 잇고 있다.

 -사진 - 권성훈
 

전통문화 지킴이…2010년 인간문화재 지정

전통신을 만드는 부산광역시 무형문화재 제17호 화혜장(靴鞋匠) 안해표(70·2010년 지정). 그는 열두세 살 무렵부터 아버지 어깨너머로 화혜 기술을 배워 60여 년 가까이 혼을 다해 가업의 맥을 잇고 있다. 그의 조부 두영 씨가 경남 합천 관아에서 조선 후기 사대부와 관리들이 신던 흑혜(黑鞋)를 만들었고, 부친 학봉 씨도 평생 전통신을 만들었다. 조부와 부친 모두 전통신 하나에 인생을 걸었던 장인이었다. 아들 동일 씨까지 4대째 전통신 만드는 일을 이어오고 있다.


“그냥 자연스러운 일이었지요. 가업을 이어야 한다는 책임감도 있었고. 생계유지조차 힘들었지만 그래도 만들었습니다.”

돈이 안 되는 일을 하다 보니 생활고에 손을 떼려고 한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때마다 “내가 여기서 그만두면 전통신의 명맥이 영원히 사라지겠지”하는 책임감 같은 것이 있었다. 전통신을 만든다는 자부심 하나로 어렵고 힘든 시절을 버티고 또 버텼다.


안해표 화혜장05-권성훈

△화혜장 안해표, 그는 ‘전통신 박물관’을 만들고 싶은 꿈이 있다. 굳이 자신의 소유가 아니더라도 뜻을 밝혀오는

   이가 있다면 자신이 만든 모든 전통신을 내어줄 생각도 있다.                             사진 - 권성훈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했던가. 인간문화재로 지정되고 부산에 전통신 만드는 장인이 있다는 입소문이 나면서 서울의 한 방송국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그의 전통신은 2011년 방영된 SBS 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를 통해 일반 대중에 선을 보였다. 주요 배역들이 그가 만든 신을 신었고 전통 화혜장으로 특별 출연하기도 했다. 2011년에는 국립고궁박물관이 진행하던 복식재현사업의 하나인 ‘영친왕 신발 복원 작업’에 참여, 이때의 인연으로 박물관은 그의 전통신을 전시하고 있다. 세계 40여 개 나라 장인들이 공예품과 전통 장식품, 악기, 활 등을 겨룬 2012년 여수엑스포 홍보 행사에서도 ‘최고 장인상’을 받았다.


2014년 부산에서 열린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에 참가한 아세안 10개국 정상들은 한국의 전통신을 선물로 받았다. 정상들에게 건넬 ‘공식 특별선물’로 그가 만든 조선시대 왕이 신던 ‘적석’이 선정된 것이다. 적석은 비단과 홍베, 종이만을 사용해 대나무 바늘로 바느질하고 500번 이상 나무망치로 두드려 형태를 잡은 뒤 온돌방에 불을 지펴 말려 완성한 예술품이다. 지난 2012년에는 부산지역 전통을 지키며 문화 운동에 앞장서 온 공을 인정받아 ‘제13회 부산문화대상’을 받았다.


옛 기법 그대로…전통방식 고수

그가 전통신을 만드는 작업 공간은 사하구 감천문화마을 내 ‘전통신전수관’(사하구 감내1로155번길 ☎051-292-2224)과 부산전통예술관(수영구 수영로521번길 63 ☎051-758-2530∼1) 내 부산무형문화재 기능보유자 입주 공방 두 곳이다. 최근 주로 머무는 공간은 부산전통예술관 입주 공방이다.


그의 공방은 왕과 왕후가 제복을 입을 때 신었다는 ‘석’, 기녀들이 주로 신던 구름 문양을 넣은 ‘운혜’ 등 전통신이 채우고 있다. 60여 년 동거동락 해 온 신골과 작두망치, 송곳, 쇠자 같은 낡고 닳은 도구들이 작업실 곳곳에 놓여 있다.


안해표 화혜장04-권성훈

△안해표 화혜장은 조부와 부친으로부터 물려받은 도구들로 전통신을 만든다.       사진 - 권성훈
 

그는 조부와 부친으로부터 물려받은 도구들로 조선시대 이후 전해져 오고 있는 전통방식 그대로 흑혜(黑鞋:조선시대 사대부들이 신던 신의 하나. 무명 포(布)를 울타리로 콧등에 흰 선을 장식), 당혜(唐鞋:조선시대 부녀자가 신던 갖신), 태사혜(太史鞋:앞코가 넓고 높은 것이 특징으로 사대부 양반들이 주로 신은 신), 아혜(兒鞋:어린이 신), 목화(木靴), 어름혜 등 다양한 종류의 전통신을 만든다.


그가 만드는 전통신은 가죽을 주재료로 수십 번의 공정을 거쳐야 한다. 소재 구하기도 어렵고 만드는 과정은 더없이 까다롭고 복잡하지만 옛것 그대로를 고집한다. 한지·삼베·모시 등을 손질해 밑창을 만들고 무명과 비단을 직접 염색하고 풀을 먹여 한 땀 한 땀 이어내는 데 공을 들인다.

숙련된 장인의 솜씨로도 밑창이나 중창, 옆창 한 짝을 다는 데만 꼬박 2시간이 걸린다. 특히 ‘혜(鞋)’를 만들 때는 여러 겹의 목천을 붙여 만든 백비 위에 단을 붙여 신울(발등을 감싸는 부분)을 준비하고, 소가죽으로 밑창을 만든 뒤 신울과 밑창을 손으로 맞바느질해 꿰맨다. 바늘땀 자리엔 기름을 먹인다. 비를 맞아도 물이 스며들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신발 밑창이나 옆창의 바느질 자국은 백토(석회)를 칠해서 막아준다.


안해표 화혜장06-권성훈

△사진 - 권성훈
 

“전통신은 자연에서 난 재료로 만들기 때문에 쉽게 닳지 않아요. 한 켤레를 만드는 데 빨라야 일주일, 목이 올라가는 신발은 보름에서 한 달은 족히 걸려요. 50여 번에 이르는 공정 하나하나를 손으로 합니다. 그만큼 정성과 인내가 들어갑니다.”

그는 자신이 만든 신발은 한눈에 알아본다. 문양들이 나타내는 선만으로 찾을 수가 있다. 섬세한 손놀림과 고도의 집중력으로 전 과정을 수작업으로 하다 보니 손가락에는 굳은살이 늘 박여 있다.


‘전통신 박물관’ 만들고 싶은 꿈 이뤄졌으면

화혜장 안해표, 그는 ‘전통신 박물관’을 만들고 싶은 꿈이 있다.  굳이 자신의 소유가 아니더라도 뜻을 밝혀오는 이가 있다면 자신이 만든 모든 전통신을 내어줄 생각도 있다. 박물관이라도 하나 지어 놓으면, 맥이 끊어지지 않고 볼거리가 될 것이라고 믿고 있다. 그는 부인과 아들들이 함께 했기에 전통신 만드는 외길이 외롭지 않았다고 말했다. 현재 부인은 화혜장 무형문화재 후보로, 아들은 전수조교로 가업을 이을 준비를 하고 있다.

※ 참고:부산전통예술관 발간 ‘부산무형문화재 기능보유자 전수교육관’ 소개 자료




화혜장…전통신 만드는 ‘장인’

‘화장’ 장화…‘혜장’ 목 없는 신


∎화혜장은?

‘화혜장(靴鞋匠)’은 전통신을 만드는 장인을 일컫는다. 조선시대 ‘화장’(목이 있는 장화 형태의 신발을 만드는 장인)과 ‘혜장’(목이 없는 고무신 모양의 신발을 만드는 장인)을 함께 이른다. 우리말로는 ‘갖바치’라 부른다. 화혜장이 생긴 것은 고려시대 말기로 추정하고, 조선시대 들어 본격적으로 활동했다.

조선시대 간행된 ‘경국대전’을 보면 중앙관청에 화장 16명, 혜장 14명이 소속돼 있었고, 1865년(고종 2년)에 만든 ‘대전회통(大典會通)’ 경공장(京工匠) 본조에는 화장과 혜장이 각각 6명이 배속됐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로 조선 후기까지는 전통신의 수요가 많았다.

실제로 화혜장 ‘갖바치’는 ‘값바치’로 불릴 만큼 잘나갔다. 신분제가 허물어지면서 양반의 전유물이던 꽃신에 대한 평민의 수요가 몰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무신과 구두가 들어오면서 전통신의 명맥은 급격히 사라졌다.

작성자
조민제
작성일자
2020-09-23
자료출처
다이내믹부산
제호

다이내믹부산 제202010호

첨부파일
다이내믹부산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페이지만족도

페이지만족도

이 페이지에서 제공하는 정보에 만족하십니까?

평균 : 0참여 : 0

댓글은 자유로운 의견 공유를 위한 장이므로 부산시에 대한 신고, 제안, 건의 등 답변이나 개선이 필요한 사항에 대해서는
"부산민원 120 - 민원신청새창열림 아이콘"을 이용해 주시고, 내용 입력시 주민등록번호, 연락처 등 개인정보가 노출되지 않도록 주의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상업광고, 저속한 표현, 정치적 내용, 개인정보 노출 등은 별도의 통보없이 삭제될 수 있습니다.